2001년 창업 후 네오플은 어떤 게임사보다 많은 경험을 했다. 성공과 인기하락을 거쳤던 게임포털 <캔디바>부터 서비스가 종료된 <신야구>, 초특급 흥행작 반열에 오른 <던전앤파이터>까지. 뜨겁게, 때로는 치열한 고민을 하며 8년을 지내왔다.
네오플은 2006년 NHN에 인수됐다가 2007년 독립해서 나왔고 이번에 다시 넥슨에 인수되면서 관심의 중심에 서있다. NHN 인수와 넥슨 인수 사이의 차이점은 바로 네오플 허민 대표의 거취문제. 대표이사 자리를 내놓은 허민 대표와 전화를 통해 심경과 계획을 들어봤다. /디스이즈게임 이재진 기자
TIG> 넥슨에 인수된다는 소식에 다들 놀라는 반응이다.
허민 대표: 내부 직원과 관계사에게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했는데 예상보다 먼저 알려져서 당황스럽다. 오늘 오후 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피인수 사실을 알렸고, 관계사들은 통화로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 오늘 처음 이야기를 들은 직원들은 당연히 많이 놀라는 눈치였다. 사안의 특성상 결정이 나고 도장을 찍지 않은 상황에서 먼저 알릴 수 없었다. 도장 찍은 지 얼마 안 된다.
TIG> 대표 자리를 내놓고 비상임 경영 자문 역할로 일선에서 물러나기로 했던데.
NHN에서 다시 독립한 뒤에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코스닥 상장부터 시작해서 회사의 양적, 질적 발전을 위한 방법은 거의 모두 생각해봤던 것 같다. 가능하면 대주주로, 대표이사로 남아있으려고 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솔직히 네오플 직원들에게 죄짓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나 지쳐있었다. 에너지가 바닥난 상황에서 회사를 경영한다는 것이 같이 일하는 식구들에게도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더라. 마치 ‘기름이 바닥난 버스를 운전하면서 계속 타고 있어달라’고 이야기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6개월이 넘게 대표이사를 맡아줄 경영자를 찾고 있었지만, 마땅치 않았다. NHN에서 나온 뒤에 외부에서 많은 투자, 인수 제의가 있었다. 그 가운데 넥슨의 제안이 가장 매력적이었다. <던전앤파이터>를 비롯해 앞으로 나올 신작들을 세계 시장에서 키워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TIG> 지쳤다고 했는데, 어떤 일들이 있었나?
온라인게임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도 정말 독특한 비즈니스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준비하고 만들고, 3개월 정도 흥행하고 또 다음 작품을 준비한다. 하지만 온라인게임은 끝이 없다. 매일 동시접속자수나 매출과 씨름해야 하고, 유저 반응도 살펴야 한다. 물론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던전앤파이터>가 잘될수록 부담이 늘어나더라.
네오플 설립 후 지금까지 게임을 총 23개 만들어왔다. 게임을 만드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인데, 요즘은 행복하지가 않았다. 온라인게임 회사 사장은 정말 엄청난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하는 자리인 것 같다.
매출이 늘고 회사는 성장하는데 정작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완전히 방전된 느낌으로 1년 가까이 버텨왔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봤는데 회사와 직원들의 발전을 위해서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였다.
TIG> 넥슨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메이플스토리>를 세계적으로 성공시키는 것을 보고 노하우가 남다른 것 같아 넥슨을 선택했다. 해외에서 잘한다고 생각했고, 네오플 조직과 합쳤을 때 시너지 효과가 잘 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조직문화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판단했고, 앞으로 네오플의 문화도 충분히 존중해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던전앤파이터>가 앞으로 진출해야 할 국가가 많이 남았는데, 넥슨의 노하우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양사의 개발 노하우를 합치면 세계적인 게임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하고 있다. 넥슨도 네오플을 세계적인 개발 스튜디오로 키워나가겠다는 계획을 말해주었다. 네오플 홀로 하면 10년 걸릴 일도 넥슨과 함께하면 5년에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TIG> 넥슨에 인수되고 나면 어떤 변화가 있게 되나?
외형적인 변화는 새로운 대표이사가 오는 것뿐이다. 네오플은 앞으로도 독립된 형태로 유지될 것이다. NHN하고 예전에 피인수를 경험해봤기 때문에 변화에 대해서는 넥슨과 충분히 논의를 거쳤다. 나만 대표이사 자리에 물러나는 것이고, 그 외의 임원과 직원은 모두 남는다. 고용승계는 확실히 이야기를 끝마친 부분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3할 이상 타율을 기록하는 타자에게 큰 간섭을 하지 않는다. 알아서 잘하는데 섣불리 간섭했다가는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넥슨과 인수 협상을 하면서 독립적인 위치를 유지하고, 네오플이 앞으로도 스스로 열심히 해나갈 것에 대해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TIG> 대표이사에서 물러나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최소 1년은 비상임 경영 자문으로 계속 일할 예정이다. 인수인계도 해야 하고 할 일이 많다. 네오플이 좋은 게임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는 데 매진할 생각이다. 그 후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을 정하지 못했다. 일단 네오플이 넥슨과 잘 결합될 수 있도록 하고, 개발이 잘되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TIG> 이번 피인수를 통해 많은 돈을 받게 될 텐데.
나를 포함해 네오플 내부의 주요 주주들이 지분을 일정량 모아서 전직원에게 나누어 줄 계획이다. 함께 고생했는데 누구만 결실을 보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원래 내 지분만 일정량 내놓으려고 했는데, 내부 주주들에게는 알려야 할 것 같아서 “지분을 일정량 내놓겠다. 참여하고 싶은 주주들은 같이 모아서 직원들에게 나누어 주자”라고 이메일을 보냈다.
하루도 되지 않아 내부 주주들이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지분을) 내놓겠다”고 오케이 사인을 보내왔다. 주요 주주들은 대부분 핵심 개발자들인데, 지난 8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정말 큰 감동을 받았다.
TIG> 나누어 주는 지분의 규모는 얼마나 되나. 배분 방식은?
자세한 액수를 밝힐 수는 없지만, 나를 포함해 내부 주주들이 모아서 직원들에게 나누어 줄 지분이 수십억 원 규모는 된다. 정규직, 계약직 가리지 않고 약 220명인 네오플 전직원에게 배분한다. 직급이 높다고 많이 받지 않는다. 네오플을 오래 다닌 순으로 많이 받는다. 일했던 일수를 계산해서 가중치를 두고 나누어 줄 것이다.
TIG> 앞으로 <던전앤파이터> 서비스는 어떻게 되나?
삼성전자가 퍼블리셔이고, NHN 한게임에도 채널링 계약이 되어 있으니 당장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앞으로 넥슨과 새로운 네오플 대표, 삼성전자, NHN이 함께 논의를 해나가야 할 부분이다. 대전제는 유저들이 혼란이나 불편을 겪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서비스에 차질을 빚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