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 (이하 배틀그라운드, 배그)는 2017년 출시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배그>는 <포트나이트 배틀로얄>보다 앞서 세계적인 배틀로얄 붐을 이끈 게임이며, 최근 들어선게임 안팎으로 빠르게 IP의 영토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시네마틱 트레일러와 전장 리마스터를 통한 스토리텔링이죠. 그래서 요즘 <배틀그라운드>의 스토리가 어떻게 나올지 많은 기대가 모이고 있는데요. <배그>에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담길지 기자의 두뇌를 풀가동해 가장 그럴 듯한 시나리오를 생각해봤습니다. 나름의 근거를 갖추기 위해 분량 조절에 실패했고 어디까지나 기자의 추측입니다만, 읽고 보니 꽤 그럴 듯합니다.
2020년에는 <배그> 스토리에 관한 보다 자세한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기대합니다. 많은 유저들이 지난 7월 공개된 시네마틱 트레일러 '에란겔의 첫 생존자'를 통해 <배그>에 독자적인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트레일러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아무도 살지 않는 외딴 섬 '에란겔'에서는 배틀로얄이 펼쳐진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어떤 남자가 있다.
그는 에란겔 주민 출신이자 그들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1965년에 소련군이 에란겔 주민을 모두 죽였기 때문이다.
CCTV 화면을 보는 남자는 배틀그라운드의 주최자다.
원래 에란겔은 저항군과 소련군 사이 전투로 황폐해진 섬으로 알려졌는데요. 이들의 전투 끝에 한 명의 생존자도 남지 않게 됐으며, 단 한 명의 생존자가 남아서 배틀로얄을 주최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스토리의 존재를 반영하듯 시즌 4 때 리마스터된 에란겔에는 이전보다 더 많은 과거의 흔적들이 추가됐습니다. 소련군과 저항군의 갈등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포스터와 낙서가 곳곳에 추가됐고 '쿼리' 지역에 저항군의 근거지가 추가됐죠.
또 패치를 통해 맵 곳곳에 드럼통이 추가로 배치됐습니다. 예전부터 에란겔을 탐험하던 유저들은 섬 곳곳에 방사능 주의 마크가 그려진 드럼통을 예의주시했고, 이를 통해 이 섬이 소련의 핵실험장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내놨습니다. 상식적으로 섬 전체 인구가 1명 빼고 전부 몰살되기는 쉽지 않은데, 핵실험으로 인한 사고가 일어났다면 납득하기 쉽습니다.
실제 소련에 에란겔이라는 지명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냉전 시기 미국은 남태평양에서 무수히 많은 핵실험을 진행했고, 소련도 마찬가지였죠. 영토 구조상 실험을 할 섬이 마땅치 않았던 소련은 세미팔라틴스크같은 내륙에서 핵실험을 진행했는데, 흑해에 울릉도만한 면적의 가상의 섬이 있어 이곳에서 핵실험을 했다는 설정을 추가했을 수 있습니다. 1979년 소련에서는 전대미문의 핵 사고 체르노빌 사건도 있었죠.
굳이 핵 사고를 전제하지 않더라도 에란겔은 모종의 이유로 전쟁이 벌어졌고, 주민들은 스스로 저항군을 결성했을 것입니다. 체첸, 조지아 등의 사례처럼 자치 독립을 요구하는 투쟁을 벌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지정학적으로 흑해는 러시아의 해양 진출을 위한 교두보였고, 역사적으로 많은 전쟁이 일어난 곳인데요. 당장 2014년 2월에도 러시아가 흑해에 면한 크림 반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시켜 우크라이나와 전쟁까지 간 적 있습니다.
또 1960년대라면 터키나 미국이 에란겔 저항군을 지원했을 수 있습니다. 북으로는 흑해, 남으로는 지중해를 끼고 있는 터키는 1952년 북대서양 조약기구에 가입해 소련의 지중해 남하를 막는 역할을 했죠. 터키는 나토에서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소모한 국가입니다. 흑해의 주도권을 둘러싼 터키와 러시아의 갈등은 현재진행형으로, 두 국가의 사이는 아직도 좋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터키는 쿠데타를 막겠다는 명목 하에 지중해의 섬나라 키프로스를 침공, '북키프로스' 정권을 세웠습니다.
<배그>의 스토리에 이렇게 상세한 지정학적 설정을 차용한다면 기존 <배그> 유저는 물론 역사물을 좋아하는 이들까지 끌어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기자의 뇌피셜이 적잖이 들어간 추측입니다만, 제작진들도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스토리를 추측하는 양상을 눈여겨보고 있다고 말한 적 있죠. 이 기사를 적는 기자보다 전문적으로 이런 추측을 하시는 유저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배그>의 두 번째 맵 미라마에도 스토리를 담은 시네마틱 트레일러 두 편이 공개됐죠. 두 편의 영상 내용을 종합하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미라마에는 부하들을 거느리는 '주인'이 있다.
미라마에서 주인의 허락을 받고 '죽음의 레이스'를 주최하는 '제3자'가 있다.
미라마에서 배틀그라운드를 열고자 하는 '러시아 자식'이 있다. (≒ 에란겔의 생존자)
제3자는 주인 몰래 미라마의 입찰가를 부르고 다녔다.
이는 러시아 자식이 미라마에서 배틀그라운드를 열게 하기 위함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주인은 제3자를 붙잡아 추궁한다.
제3자는 "거래의 기회가 올 때 잡았을 뿐", "미국인들의 손에 들어가는 것보단 낫다"라고 변명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몇 가지 사실들을 뽑아봅시다.
1. 배틀그라운드는 '러시아 자식'이 주최한다. 즉, 현재까지 <배틀그라운드>에 있는 에란겔과 미라마는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 사녹과 비켄디의 경우도 같다고 볼 수 있다.
2. 주인은 자신의 허락 없이 일이 진행되는 것이 싫으며 그를 막을 힘이 있다. 즉, 죽음의 레이스가 배틀그라운드보다 먼저 열리고 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3. 영상의 시점은 이전 트레일러인 '러시아 자식'이 섬에서 살아남아 장성한 뒤를 그리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배틀그라운드'의 존재를 알고 있다. '러시아 자식'은 에란겔에서 먼저 배틀그라운드를 연 이후 제3자에게 접근했을 확률이 높다.
4. '제3자'의 판단에 따르면 러시아 자식보다 비우호적인, 미국(인)이 실존한다.
미라마는 사막 지대로 ▲ 스페인어 지명 ▲ 교도소 건물 현관 앞 삼색기▲ 맵을 둘러싼 긴 장벽이 있는 것이 특징이죠. 이를 근거로 미라마가 멕시코를 모티브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인'과 '제3자'의 대화에서도 남미 억양을 들을 수 있죠. 개발진은 "미라마가 멕시코"라고 확정지은 적 없지만, 기자는 사실상 멕시코라고 보고 있습니다. 긴 장벽을 두른 남미 국가는 멕시코 뿐이니까요. <배그 모바일>의 미라마에는 'MEXICO 1985'라는 광고판도 등장하죠.
자세한 지명은 가상의 이름을 사용하지만 소련, 러시아, 미국 등 실제 국가명을 쓰는 <배그>이니만큼, 미라마는 가상의 멕시코 도시로 보입니다. 미라마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먼바다에 석유 시추선을 볼 수 있는데요. 게임 안에 바예 델 마르(Valle del Mar), 즉 바다의 계곡이라는 바닷가 마을도 있다는 점까지 종합해보면 미라마의 물은 바다로 보입니다. 태평양이거나 대서양에 해당할 것입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이어지는 코르테스해일 수도 있고요.
미라마를 둘러보면 꽤 다양한 시설들이 세워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석유 시추선부터 카지노, 호텔, 체육관, 항구에 광산까지 보이는데요. 1차 산업부터 3차 산업까지 고루 발전한 요충지로 추측됩니다. 폐허가 되기 전까지는 말이죠. 석유가 나오는 관광도시라니, 남미는 물론 전 세계를 통틀어도 이 정도로 발전한 도시는 손에 꼽습니다.
미라마에서 가장 큰 도시 로스 레오네스(Los Leones)는 고층 건물이 세워지다 멈춰선 것을 볼 수 있죠. 멕시코의 미라마는 고층 빌딩이 들어서기 직전에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폐허가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여담입니다만 미국의 로스 엔젤레스(Los Angeles)는 천사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로스 레오네스가 레온의 도시라는 뜻이라면, 트레일러에 등장하는 남성이 진정 미라마의 주인이라면 그의 이름을 레온(Leon)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미라마의 주인을 자처하는 인물이 활동하는 트레일러로 돌아가봅시다. 트레일러 1편을 보면 해질녘 도시에 건물마다 불이 들어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트레일러에 등장하는 지역이 미라마가 아니라고 볼 수도 있지만, 영상의 제목이 '미라마 시네마틱 트레일러'라면 이곳은 미라마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제3자가 끌려가는 곳은 미라마의 아시엔다 델 파트론(Hacienda Del Patron), 즉 후원자의 대농장과 굉장히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영상의 시점은 (1) 미라마의 주인이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며 (2) 도시가 쇠락하기 이전이면서 (3) 배틀그라운드를 개최하기 전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사막 속 오아시스처럼 번성한 미라마가 어떻게 황폐화되고 <배틀그라운드>의 전장이 되는지 살펴볼 것으로 보입니다. 배틀그라운드의 개최자와 미라마의 주인은 누구인지도 나오겠죠.
미라마의 주인은 전형적인 남미 카르텔의 보스 모습을 하고 있는데요. 마체테를 만지작거리는 그의 주변으로 보이는 럼(으로 보이는 술), AK-47(로 보이는 소총), 시가 등을 보면 "나 카르텔 대빵이야"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의 카르텔은 번성한 도시 미라마를 근거지로 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콜롬비아의 파블로 에스코바르처럼 지역 주민들에게 선정을 베푸는 후원자(Patron)처럼 활동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거대 도시의 주인이라고 스스로를 칭할 정도라면, 지역의 치안은 물론 각종 이권을 움켜쥐고 그 중 일부를 주민들에게 나눠줬겠죠.
이들은 마약 밀매를 주요 수입원으로 하는데, 미국이 장벽을 세워서 판로가 사라졌고, 돈줄이 끊겨서 '죽음의 레이스'를 개최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르텔과 미라마에 닥친 가난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고 그러던 와중에 배틀그라운드를 열어보자는 제안을 받은 것이 아닐까요?
<배틀그라운드>의 전장이 단순히 '승자 독식을 위한 전투만 무한 반복되는' 아무런 의미 없는 '배틀그라운드'가 아닌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무대가 되고 이를 위한 세계관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배그> 유저들에게 큰 기대를 모으고 있지만,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무런 이야기도 없던 곳에 급하게 내러티브를 집어넣다가 탈이 날 수도 있거든요. <배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면서까지 이야기를 들려주면 유저들은 만족할까요?
지금 제작진은 트레일러같은 게임 외적인 방법으로 게임의 스토리를 알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펍지가 게임사라면 <배그>의 새로운 이야기를 게임으로 풀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도 그런 시도를 하고 있고요. 바로 글렌 스코필드(Glen Schofield)의 스튜디오 스트라이킹 디스턴스(Striking Distance)입니다.
지난 6월 26일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스트라이킹 디스턴스는 펍지주식회사 산하의 독립 개발 스튜디오로 <배틀그라운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줄거리가 있는 게임을 만들고 있습니다. <데드 스페이스>, <콜 오브 듀티> 등 그가 참여했던 게임들의 면면을 떠올려보면 게임은 <배틀그라운드>의 스토리를 볼 수 있는 슈팅 게임이 될 것으로 짐작됩니다. <배그>의 세계관은 여기 담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추가로 <배틀그라운드>의 핵심 개발자 브랜든 그린(Brendan Green)이 암스테르담에서 새로운 형태의 멀티 게임 신작을 개발 중이죠. 이 게임이 <배그> 유니버스를 공유하는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SNS를 통해 "게임 공간에서 상호 작용과 연결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할 것이다"라며 신규 프로젝트에 대한 포부를 밝힌 바 있습니다.
새로운 이야기가 실린다면 펍지주식회사의 신작에 들어갈 것이지 지금의 <배그>에는 어떤 줄거리가 담기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한 판 하면 땡'인 배틀로얄 게임 안에 내러티브를 녹여내기란 쉽지 않죠. 게임 밖에서 트레일러를 많이 공개하고, (리마스터 에란겔이 그랬던 것처럼) <배그> 전장 위에 조금씩 변화를 주는 식으로 업데이트가 진행될 공산이 큽니다.
같은 장르의 <에이펙스 레전드>는 "3명이 한 팀을 이뤄 상금을 목표로 분투하는 서바이벌 게임"이라고 시작부터 세계관을 깔고 시작했지만, <배그>는 그렇지 않죠. 왜 승자 1명만 뽑는가? 이들을 싸우게 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자기장은 누가 어떻게 조작하고 작동하는가? 토끼옷이나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조커 옷을 입고 배틀그라운드에서 뛸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배틀로얄에 참전한 나는 누구인가? 등등 스토리를 넣기로 한 이상 설명할 것들이 많은데, 배틀로얄 룰 안에 이런 요소를 넣기란 어려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