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연말, 모두의 기대를 받던 두 게임이 "시리즈 역사상 최악"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각각 11월 11일, 19일 정식 출시된 <GTA: 트릴로지>와 <배틀필드 2042>에 관한 이야기다. 두 게임 모두 유저 평점이 최악을 달리고 있다. <GTA: 트릴로지>는 평점 사이트 '메타크리틱'에서 10점 만점에 0.5점을 기록했다.
<배틀필드 2042>는 3만 8천여 개의 스팀 평가 중 27%만이 긍정 평가를 남기며 "대체로 부정적" 평가를 기록했다. 전작보다 한참 뒤떨어지는 수치다.
두 게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들여다봤다.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 새로운 변화가 만들어낸 최악 시너지
11월 23일 기준, <배틀필드 2042>의 스팀 평가
<배틀필드 2042>의 주요 문제점은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시리즈 고유의 건플레이 경험 상실 ▲지나치게 넓은 맵으로 인한 문제 ▲게임 완성도 미흡이다.
건플레이가 왜 문제가 됐을까? <배틀필드> 시리즈는 본래 "넓은 전장"을 배경으로 삼아 왔다. 거대한 맵에서 64인이 전투를 펼치며 발생하는 대규모 교전, 그리고 이런 전장 속에서 펼쳐지는 정신 없는 난전이 시리즈의 '셀링 포인트'였다.
<배틀필드 2042>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128인 참전"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인원수에 맞춰 맵도 더욱 커졌으며, 사전 공개한 시네마틱 트레일러에서도 수많은 보병이 얽히고설켜 싸우는 모습이 등장했다. 역대 최대의 인원이 넓은 맵에서 수많은 교전을 펼치는 장면을 <배틀필드 2042>를 통해 선보이겠다고 자신한 것이다.
트레일러를 확인해 보면 확실히 '대규모 난전'을 의도했다고 볼 수 있다 (출처 : EA)
그러나, 이 변화가 발목을 잡았다. 기자 또한 <배틀필드 2042>의 베타 테스트에 참여했고, 이 당시에도 느낀 사실이지만 "맵이 지나치게 넓다". 넓다는 것은 고사하더라도, "맵 대부분이 허허벌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FPS의 기본인 엄폐 플레이가 어렵다.
엄폐물이 없는 허허벌판을 일반 보병이 홀로 횡단하기란 불가능하다. 열심히 달려 봤자, 공격 헬기나 지정 사수에게 총을 맞고 사망할 게 뻔하다. 자연스레 보병은 이런 장소에서의 교전을 꺼리게 되고, 위에서 <배틀필드 2042>가 지향했던 정신없는 난전은 게임 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워진다.
맵이 넓기에 보병으로 횡단해야 할 거리가 너무 멀다는 것도 문제다. 가령 <배틀필드 2042>에 등장하는 '오비탈' 맵의 C 거점을 교전 끝에 수복했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상대는 자연스레 맵 상단의 D 구역으로 향하게 된다. 다시 교전에 다시 참여하기 위해선 맵을 횡단해서 올라가야 하는데, 걸어서 이동하면 몇 분은 족히 걸린다.
이런 허허벌판을 그냥 달려서 이동해야 한다. 보병은 막막하다
C 지역을 점령했는데, 사망한 적들이 D 지역에서 스폰돼 싸우기 시작한다면 그냥 재배치를 받는 게 낫다.
걸어서 올라가면 한세월이다
덕분에 플레이어가 맵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시리즈 역대 최다 인원"이 한 맵에서 싸운다는 현장감을 느끼기 어렵다. 심지어 유저 사이에서는 주요 교전 지점에서 스폰하지 못할 경우엔 일부러 사망하고 재배치되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의견도 있다. 그만큼 맵 설계가 나쁘다는 평가다. 맵만 넓고, 밀도가 낮다.
대비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기자의 추측이지만, <배틀필드 2042>의 제작진도 이를 예방하기 위해 플레이어 개개인이 탑승 장비를 원하는 위치에서 호출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맵에 존재하는 최대 탑승 장비 개수는 이전 시리즈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아군이 최대치의 탑승 장비를 운용하고 있다면 무용지물이며, <배틀필드> 시리즈는 보병을 선호하는 유저와 탑승 장비를 선호하는 유저층이 분명히 나뉜 게임이다. 보병을 선호하는 유저에겐 이 시스템이 크게 와 닿지 않는다.
그나마 뭘 탈 수 있다면 괜찮긴 한데...
넓어진 맵은 <배틀필드 2042>의 건플레이와도 나쁜 시너지를 발휘한다. 랜덤 스프레드를 간단히 설명하면, 처음 발사되는 초탄 2~3발은 조준한 곳으로 정확히 명중하지만, 이후 발사되는 총알은 무작위로 발사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서 "조준하고 쏴도 잘 맞지 않는"다.
물론, 랜덤 스프레드는 무조건 나쁜 시스템이 아니다. 랜덤 스프레드 없이 총기 반동이 항상 일정하다면, 신입 유저가 반동 제어에 익숙한 신규 유저를 상대하기 너무나 어려워진다. 그렇다 하더라도 <배틀필드 2042>의 랜덤 스프레드는 지나치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배틀필드 2042>는 움직이면서 사격할 경우 랜덤 스프레드 빈도가 더욱 커진다. 움직이면서 사격하면, 총알이 잘 맞지 않는다.
<배틀필드 2042>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영상 (1차 출처 : 레딧)
앞서 말했듯이 <배틀필드 2042>의 맵은 개활지가 대다수다. 적 포착이 쉬워 상대적으로 원거리에서 교전이 발생하는 빈도가 높다. 여기에 랜덤 스프레드 문제를 곁들이면, 서로 중거리에서 총을 열심히 쏘는데도 못 죽이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한다. FPS 장르인데, 총을 쏴서 적을 사살하는 쾌감이 없다. FPS 장르에서 가장 중요히 여겨지는 '건플레이'에 대한 감각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랜덤 스프레드와 총기 밸런싱은 패치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요소로 여겨지지만, 맵 구조가 문제다. 맵 구조는 쉽게 개편하기 어렵다. 밸런싱과 게임플레이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개발 기간도 상당히 소요되기 때문이다. 단기간에 눈에 띄는 개선이 이루어지리라 기대하긴 힘들어 보인다. 장기적으로 두고 봐야 하는 일이다.
레딧에서 정리한 <배틀필드 2042>의 문제점. 사진 외에도 수많은 문제점이 서술되어 있다 (출처 : 배틀필드 레딧)
# 새로운 시스템 도입 실패... 만성 버그까지
'스페셜리스트'로 대표되는 <배틀필드 2042>의 신규 시스템도 유저 평가 면에선 좋지 못하다.
본래 <배틀필드> 시리즈는 '돌격병', '공병', '의무병' 등으로 병과를 나누고, 병과별로 장비와 무기를 제한해 역할을 구분했다. 돌격병은 상대와 교전하며 점령 지점을 수복하고, 공병은 아군 탑승 장비를 수리하거나, 대전차 지뢰를 통해 상대 탱크를 파괴한다. 이런 분대 협동 플레이가 시리즈 핵심이었다.
<배틀필드 2042>는 병과 시스템을 과감히 삭제하고, '스페셜리스트'로 이를 대체했다. 스페셜리스트 간 장비 제한은 없으며, 각 스페셜리스트마다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배틀필드 2042>의 스페셜리스트
스페셜리스트 추가도 앞 문단에서 언급한 '시리즈 최대 규모 멀티플레이'와 나쁜 상호작용이 됐다. 간단히 말해, 모두가 비슷한 캐릭터를 선택하면 구분이 잘 안 간다. 상대 팀도 똑같은 스페셜리스트 중 하나를 사용하기에 색적이 어려워진다. 소규모 게임이라면 개성적인 외모가 메리트로 작용할 수 있지만, 대규모 게임에서 이런 캐릭터 시스템을 선택한 것은 호불호 요소가 됐다.
여기에 버그를 추가하면 상황은 더욱 악화한다. <배틀필드 2042>의 UI 시스템 오류로 인해, 아군이나 적 모델링 위에 보이는 색적 표시기가 제대로 안 표기되는 경우가 있다. 덕분에 베타 테스트 당시에는 아군이 서로를 사격하는 촌극이 빈번히 발생했다. 생긴 것도 비슷하고, 적 유무를 판단하기도 힘드니 "일단 쏘고 보자"는 식이다. 팀킬이 없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
외에도 ▲가시성이 나쁜 UI ▲UI 크기 커스텀 설정 삭제 ▲심각한 버그 ▲엉성한 3인칭 처형 모션 등이 유저들에게 지적받고 있다. 즉, <배틀필드 2042>는 낮은 완성도와 새로운 시스템, 게임플레이 간 발생한 나쁜 상호작용으로 시리즈 사상 가장 나쁜 평가를 마주하게 됐다. 다수의 팬이 전작보다 후퇴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배틀필드 2042>의 킬 모션. 1인칭에서 3인칭으로 바뀌었고, 시리즈 트레이드 마크 중 하나인 "군번줄을 따는 모션"이 사라졌다.
(출처 : 유튜브 채널 Kodji)
물론, <배틀필드> 시리즈는 신작을 발매할 때마다 만성적인 버그 문제를 겪어 왔고, 최소 1년은 지나야 문제가 해결되고 정확한 평가가 가능해진다는 "1년필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개발사 '다이스'도 SNS를 통해 문제 해결 의지를 피력한 만큼, 과연 <배틀필드 2042>가 산적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많은 지적을 샀던 호버크래프트 버그. 빌딩 벽을 그대로 타고 올라간다 (출처 : 유튜브 채널 Nick)
# <GTA 트릴로지> "돈 더 내고, 더 나쁜 게임 하기"
<GTA 트릴로지>도 완성도 면에서 지적받고 있다. <배틀필드 2042>가 신작으로써 전작을 계승하지 못했다는 의견에 마주했다면, <GTA 트릴로지>는 '리마스터'라는 명목하에 명작으로 평가받던 원작을 훼손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한 외신은 "때때론, 과거에 머무는 게 낫다"고 언급했다.
주된 이유는 ▲엉망인 최적화 ▲넘쳐나는 오·탈자 ▲엉성한 모델링 ▲게임플레이에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버그 등이 꼽히고 있다.
먼저 최적화 문제다. <GTA 트릴로지>는 단순히 그래픽 품질만을 개선한 리마스터 게임임에도 PC, 현세대 콘솔 모두에서 프레임 드랍이 빈번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현세대기인 PS5에서도 프레임 유지를 못 해, 패치를 통해 개선 작업을 해야 할 정도다. 한 유저는 "현세대기로 리마스터 게임을 하면서 프레임 걱정을 해야 하니, 촌극이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엉성한 캐릭터 모델링도 불만의 대상이다. 원작에서 큰 외투를 입고 있던 캐릭터의 팔이 리마스터에서 지그재그로 꺾여 있는 것처럼 표현되는 등, 황당한 장면이 눈에 띈다. 리마스터임에도 개선 여부가 크게 와닿지 않는 모델링도 지적받고 있다.
원작에는 없었던 기상천외한 버그도 발생해 팬들을 당황케 하고 있다. 벽을 통과하거나 허공을 걸어다니는 정도는 애교다. 컷씬 도중에 NPC가 차에 치이거나, 헬기 '모터' 대신 헬기 자체가 빙빙 돌거나, 좌우로 움직이면 자동차가 커지는 등 눈으로 보고도 이해하기 힘든 버그가 많다. 당장 유튜브에 "GTA Trilogy"를 검색하면 "Bug"가 최상단 관련 검색어로 나올 정도다.
게임 내 버그를 모은 동영상 중 하나 (출처 : 유튜브 채널 catlarious)
외에도 <GTA 트릴로지> 발매 전 정황도 부정 평가에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013년 발매된 <GTA 5> 이후로 락스타 게임즈는 신작에 대한 정보를 발표하지 않았다. 2022년 3월 발매 예정인 <GTA 5 리마스터>와 <GTA 트릴로지> 정도가 전부다. 이에 <GTA 5> 차세대기 리마스터 버전의 트레일러가 비추천 세례를 받기도 했다.
멀쩡히 판매되고 있던 기존 게임을 락스타 스토어에서 삭제하고, 가격을 올렸다는 점도 불만 대상이다. 3만 원대에 판매되던 원작을 삭제하고 AAA 게임과 같은 가격으로 <GTA 트릴로지>를 판매했다. 돈을 "더 내고", "더 나쁜" 제품을 구매하게 된 모습이다.
유저가 직접 만들었던 리마스터 모드도 직접 락스타가 제거했다는 점도 꼽힌다. 지난 7월 락스타는 ‘DMCA’(디지털밀레니엄저작권법)에 따라 저작권 위반 소지가 있는 <GTA> 시리즈 리마스터 모드를 각종 사이트에서 제거했다. 이에 모드 제작자들이 해외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결국 초유의 사태에 직면한 락스타도 사과문과 해결책을 올리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락스타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게임 개선을 위한 지속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GTA 트릴로지>구매자들에게 게임 원판을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리마스터판 품질이 너무나 나빠 원판을 다시 제공하게 된 꼴이니, 유저 입장에선 아이러니하다.
11월 22일, 락스타는 사과문을 작성하고 구매자들에게 클래식 버전을 무료 제공할 것임을 밝혔다
2021년 연말에 기대작과 함께한 '집콕'을 기대했던 게이머들은 우울한 뉴스와 마주하게 됐다. <배틀필드 2042>는 변화를 시도하다 원작 정체성마저 잃고 표류한 형국이 됐고, <GTA 트릴로지>는 "원작을 망쳐놓고 비싸게 판 게임"이란 의견에 마주했다.
게임 바깥을 둘러싼 이슈가 아닌 순전한 게임 그 자체가 문제라는 점에서 더욱 우울한 뉴스다. 두 개발사 모두 <배틀필드> 시리즈나 <GTA> 시리즈를 통해 개발력을 인정받아 온 회사라 안타까움이 크다.
현재 두 개발사는 공식 SNS를 통해 과도한 비판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며,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통한 문제 해결 의지를 밝혔다. 여러모로 게이머에게 힘든 2021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