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승강(柔能勝剛). 노자(老子)의 황석공(黃石公) 삼략(三略)에 나오는 글귀 중 일부로,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다’ 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회유책이 강경책보다 때로는 더 나은 전략이라는 의미로 많이 쓰이기도 하지만, BLG와 젠지의 경우는 말 뜻 그대로 표현하고 싶을 만큼, BLG는 부드러웠고, 젠지는 우직하게 강함만을 내비쳤다. 마지막 5세트의 한타와 넥서스 앞 공성에서의 처절함은 부러지기 싫은 대나무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애처로웠다.
한국에서 열리는 롤드컵, LCK 1번 시드, 유력한 우승 후보, 모든 조건이 삼박자처럼 맞아 떨어지던 초강팀인 젠지가 무너진 이유, 그리고 BLG가 그들을 꺾은 핵심적인 이유, 강함과 부드러움을 주제로 이번 매치를 리뷰해보고자 한다. /장태영(Beliar) 필자, 편집=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출처: 라이엇 게임즈)
※ 본 리뷰는 외부 기고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1, 2 세트) 탑이 강해야 협곡이 산다? 그래서 얼마나 강했던가?
1, 2세트는 젠지가 가히 5경기 내내 공들인 탑라인 견제와 탑라인 몰아주기의 철저한 패착으로 이어진 경기였다.
먼저 1세트다 첫 밴 페이즈에서부터 시작된 스노우볼을 살펴보자. 니코와 레넥톤, 자야 등 월즈 메타에서 상대적으로 유용하게 쓰이는 챔피언을 주로 소거했던 젠지는 선픽으로 잭스를 가져온다. 빈의 폼이 물이 오른 상황에서, 빈만 잡으면 BLG를 공략할 수 있다고 바라본 판단에서 나온 이 밴픽 전략은 허망하게 두 세트를 내주는 발단이 되었다.
서머 시즌 ‘도란’ 최현준의 정글 인접률은 7.81로 2위였다. 1위였던 ‘라스칼’ 김광희(10.76)에 비하면 큰 격차지만, 양 팀과 팀 내에서 담당하는 역할 부담이 상이함을 감안해야 한다. ‘도란’은 그만큼 정글과 밀접하게 붙어 있을 때 시너지가 나는 유형의 탑 라이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밴픽 단계에서부터 팀이 전심전력으로 밀어줬던 탑 라이너는 부진한 존재감과 더불어 아트록스의 성장을 전혀 견제하지 못하며, 한타에서의 무지막지한 유지력을 보유하게 만들며 되레 반정공신이 되었다.
(출처: LCK)
게임 시작 후 6분이 지난 상황이다. 글로벌 골드에서는 소폭 앞서고 있으나, 템 셋팅이 앞서는 ‘도란’이 ‘빈’ 천쩌빈과의 싸움에서 되레 밀리는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본인 진영 타워에 인접한 곳으로 전장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일부 피해를 감수하는 모습이라 이해해본다 해도, 기본적인 딜 교환조차도 밀렸다.
유리한 구도로 판을 짜왔음에도 판을 이해하지 못하고, 판을 적극 활용하지 못한 ‘도란’의 엄연한 패착이었다. 심지어 이러한 장면은 1분이 지난 뒤에도 수 번이 반복된다. 소위 1코어를 뽑으면 아트록스가 유리한 구도로 역전된다는 일련의 공식조차 성립되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출처: LCK)
딜 교환과 라인전을 통한 성장, 양쪽에서 모두 아트록스에게 수세에 몰린 잭스는 전령 앞 한타가 벌어진 상황에서 부쉬를 타고 진입하는 아트록스를 전담 마크하는 병법을 선택한다. 결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적어도 잭스가 아트록스와 비등한 성장을 했다는 전제 아래 말이다. 잭스는 이미 레나타 궁극기가 깔린 상황에서 유일하게 궁극기 범위에 포함되지 않은 챔피언으로 팀원들의 재진입 구도를 펼쳐주기 위한 키 역할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더군더나 이니시를 위해 이미 폭사해버린 ‘피넛’ 한왕호의 렐의 몫까지 감당하기 위해선 보다 기민한 움직임이 필요했다. 하지만 여기서 ‘도란’의 잭스는 끝까지 ‘빈’의 아트록스만을 마크하는 선택을 한다. 오히려 팀원들이 재진입을 해주는 상황에서 아트록스의 개입만 막으면 한타의 승리 가능성은 남아있다고 바라본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세 명의 집중포화에 노출되며 전선이 붕괴되는 역할을 제공하고 만다.
이후 벌어지는 한타에서도 말 그대로 ‘일방적인’ 구도는 지속된다. 이 과정에서 BLG가 무리한 시도를 범하거나, 실수를 연발하는 등의 소위 ‘역전의 빌미’를 제공할 여지는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1세트만큼 BLG의 운영은 이번 롤드컵 경기 중 가장 부드러웠고, 물흐르듯 이어졌으며 젠지의 운영은 LCK에서 봐왔던 그것과 달리 너무 뻣뻣했고 딱딱했다.
(출처: LCK)
밴픽은 치열한 전략 속에서도 팀의 중심과 균형을 잡는 핵심적인 과정이다. 밴픽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던 모 감독의 소회는, 랭킹게임과 달리 적어도 전략의 체계적인 틀 안에서 움직이는 롤 E스포츠에서 밴픽에 도박적인 수를 무리하게 활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심지어 상대방이 쉽게 읽고 예측할 수 있는 수라면? 안 쓰느니만 못한 수로 전락한다.
젠지의 2세트 밴픽이 바로 그렇다. 여전히 ‘빈’의 잭스를 경계하는 차원에서 잭스를 선밴했고, 라인전 우세 구도를 유지할 수 없는 니코를 잘랐다. 바텀 라인의 메타 챔피언인 칼리스타는 물론, ‘엘크’ 자오자하오의 하이퍼 캐리력을 의식한 바텀 3밴도 눈에 띈다.
하지만 이 밴픽 전략은 이미 1세트를 통해 완벽히 노출됐고, 완벽히 공략됐다는 뚜렷한 한계가 있는 전략이다. 우직함만을 내세우다가 유연성을 잃었고, 이는 럼블-자르반-오리아나-자야-레나타라는 고벨류 메타챔 조합을 모두 허망하게 풀어주는 기상천외함으로 돌아왔다.
아트록스와 마오카이, 심지어 아펠리오스까지 어느정도 초반부의 안정적인 시팅과 성장이 보장되어야 성장치가 기대되는 챔피언임을 고려하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조합으로 전장에 나선 셈이 된 것이다. 이 모든 걸 ‘빈’ vs. ‘도란’의 구도에서 ‘도란’에게 웃어주는 상황 하나 만을 만들기 위한 전략이었다면, 차라리 전장이 협곡이 아닌 칼바람 나락이길 바랐던 건 아니었을까?
# 3, 4 세트) 체급이 느껴지지 않았던 젠지, 하지만 싸움의 기술로 쟁취한 승리
혹자는 ‘도란’ 최현준이 잃어버렸던 감각을 되찾았다고 표현한 순간이다. 3세트 드래곤 둥지 앞 한타에서 트리플킬을 홀로 챙기며 한타를 가히 캐리했던 순간이다. 하지만 이 앞 과정을 보면, 젠지에게서 느껴지는 소위 ‘강팀의 향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글로벌 골드와 라인전 구도를 살펴보면, 젠지가 극도로 유리한 상황에서 종지부를 찍는 한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젠지의 2023 서머 시즌 평균 게임 시간은 29:23초다. 리그로 한정해도 유이한 20분 대 플레잉 타임에, LEC의 G2 e스포츠와 함께 글로벌 10위에 해당할 만큼 가장 빠른 팀 중 하나였다. 여기에는 젠지가 다른 팀에게 늘 보여줬던 일종의 ‘강자의 권리’, 원하는 전장을 선택하고 원하는 시간과 원하는 구도에서 싸움을 벌이는 상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출처: LCK)
3세트의 한타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리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바람 드래곤을 얻어내는 한타 전 구도는 ‘피넛’ 한왕호의 마오카이를 활용한 한 점 돌파와 유리한 구도에서부터 출발했다.
‘도란’이 뛰어놀기 가장 좋은 환경, 정글러의 판 깔아주기와 정글러와 시너지 내기가 정확히 맞아떨어지면, 아무리 저점의 날이어도 반등의 여지가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출처: LCK)
3세트에서 재미있는 그림은 44분 경에 나온다. 이미 젠지에게 한참 유리한 구도고, 바론 파워 플레이도 3000대를 굴리며 속칭 ‘재미는 실컷 본 상황’. 레드 진영의 무너진 2차 타워 코 앞에서 열린 한타 와중에 젠지는 한 숨 고르며 모두 후퇴를 했고, 아트록스를 쥔 ‘도란’ 최현준은 무려 수호천사를 틀어쥔 아트록스 특유의 지속력을 무기로 5대 1을 과감히 벌여 팀을 퇴각시키는 시간적 여유를 벌어준다.
여기서 젠지가 1-2세트 간에 기대했던 탑 라이너의 모습이 정확히 나타난다. 소위 탑 라이너의 지배적인 캐리 장면보다는 ‘자야’, ‘카이사’, ‘아펠리오스’, ‘징크스’ 등 바텀 원거리 딜러의 하이퍼 캐리 장면이 도드라지는 것이 월즈의 주류 메타였다. 탑 라이너는 오히려 딜러와 탱커의 적절한 중간자적 위치에서 팀의 보호와 한타의 유지력을 챙기는 하이브리드에 가까운 포지셔닝을 이번 월즈에서도 보였는데, ‘도란’의 이 때 모습이 바로 그러한 메타의 정점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물론, 이 장면을 끝으로 무려 5세트까지 ‘도란’이 탑 라이너로서 해줘야 할 몫과 해줬어야 할 기대를 보여준 장면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는 게 젠지에겐 가장 안타까운 점이었을 것이다.
(출처: LCK)
4세트의 일발 한타는 다시 2차 타워 앞에서 나온다. 앞서 젠지는 강자의 권리를 가장 잘 사용했던 팀이라고 표현했다. 이미 22분 경, 바론을 접수한 뒤 바론 파워플레이를 굴리며 미드라인 2차 타워를 압박하던 BLG에게, ‘딜라이트’ 유환중의 렐이 기습 이니시를 건다. 젠지가 되레 수성을 하는 상황에서 무려 ‘엘크’의 애쉬와 ‘온’의 탐 켄치가 한 번에 CC기에 물리며 다시 한 번 젠지가 원하는 구도에서 싸울 수 있는 구도가 형성된다.
‘쵸비’의 아칼리가 뒷텔로 퇴각로를 붙잡고, ‘쉰’의 자르반이 정글로 퇴각길은 잡으며 공성 전선이 완벽히 무너지며 3킬을 쓸어 담는 상황이 나왔다. 젠지가 불리한 상황에서 원하는 구도를 형성하며, 2:2의 팽팽한 드래곤 스택 구도에서 드래곤 둥지까지의 전선 장악까지 노리게 된 그야말로 완벽히 설계된 한타였다.
이후, 25분 경 BLG의 구성원들은 전선 하나 형성하지 못한 채 완전히 각개격파를 당해버리는 데, 젠지의 움직임에 유연성과 시너지가 가미되며 더이상 부드러운 운영이 불가능해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곧 사직 실내체육관에 ‘실버 스크랩스(Silver Scrapes)’가 울려 퍼질 것임을 암시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 5세트, 그리고 한계 - 강자의 권리, 그리고 강자의 패착.
젠지는 3세트와 4세트에서 자신들이 가장 잘하던 것을 살려 승리를 얻었고, 매치를 2:2로 끌고 왔다. 적어도 5세트도 바론 앞 한타가 벌어지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 한타 구도를 보면서 느꼈던 것은 오직 한 가지, “이 싸움은 과연 젠지가 희망한 싸움인가?” 라는 점이다. 1분만 시간을 돌려보면, 젠지는 ‘쵸비’의 아칼리가 바텀 2차 타워를 압박하면서 사이드 스플릿을 통해 돌려 깎기 전술을 보여주고 있었다.
바론을 통한 콜플레이로 전선을 한 번에 좁히며 젠지가 원하는 구도와 흐름대로 플레이를 이끌 수 없게 만드는 것이 BLG에겐 당장 필요한 전술이었던 셈이다. BLG는 결국 바론을 2번이나 치는 시늉을 하면서 젠지를 완벽히 속이게 된다. BLG의 구도상 빠르게 바론을 먹기도 어려웠거니와, 먹고 나서 5:5 한타의 결과가 자칫 에이스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기에 페이크 플레이임은 자명했다.
하지만 젠지는 희망하지 않았던 싸움을 마치 유리한 구도로 인식한 듯, ‘쵸비’부터 둥지 뒤로 불러올리며 계획에 없던 싸움에 응하게 된다. 싸움은 강자의 권리로 벌일 수 있는 특권이다. 그러나 손자병법에서는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 이라는 구절이 있다. 장군과 졸병이 일치단결하면 이긴다는 단순한 논리지만, 병법에 적용하면 윗 진영과 아랫 진영의 생각이 일치하면 이긴다는 논리로도 해석된다.
(출처: LCK)
불과 한타가 뭉게지기 4초 전의 상황이다. 팀의 유지력과 딜링을 담당하는 ‘페이즈’ 김수환과 ‘도란’ 최현준은 아랫 쪽에서 합류를 노리고 있던 반면, 이미 ‘쵸비’, ‘피넛’, ‘딜라이트’는 전장 한 가운데에 합류해 BLG의 5인에게 일방적으로 얻어 맞고 있었다. 진입하는 구도 역시 ‘딜라이트’의 선 이니시, ‘피넛’의 후진입, ‘쵸비’의 후방 암살로 매우 순차적이었다. 하지만 화력 지원이 안되는 상황에서 탱킹으로 수성할 시간만 벌어준 셈이 됐다.
강자의 권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면, 어쩌면 이 싸움은 ‘BLG’가 강자였고, 강자의 권리를 적극 활용한 쪽 역시 판세를 완벽히 주도한 ‘BLG’ 였던 것이다. 글로벌 골드와 킬 스코어의 차이와 별개로 바론 페이크 콜에 젠지는 완벽히 속았고, 이 싸움 이후로 젠지는 5세트의 주도권을 완전히 놓치게 된다.
(출처: LCK)
23분의 상황도 보도록 하자. 전세의 주도권을 마치 51:49 수준으로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던 젠지가 ‘도란’ 최현준이 자르반의 대격변에 물리며 갑자기 의도치 않던 한타에 휘말리게 된다. 체력과 초시계가 모두 빠지며 탱커 노릇을 해줄 수 있는 챔피언이 사실상 실종된 젠지가 이 한타를 호응할 이유는 한 가지도 찾을 수 없었다.
여기에 자신의 프로 역사상 처음 럼블을 썼던 ‘빈’의 럼블이 가히 정점을 찍는다. 먹기 좋게 가지런히 모여있는 젠지의 4인에게 이퀄라이저를 깔고, 퇴각을 위해 몸을 던진 ‘쵸비’ 정지훈의 아칼리를 녹여버린다. 젠지는 싸움도 못해보고 전투를 패배했고, BLG는 가히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부전이승(不戰而勝),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최고의 승리 계책을 보였다.
(출처: LCK)
젠지의 패배는 1세트에서 5세트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하나의 잘못이 있었다. ‘강함을 자신했던 패착’이었다. 강자의 권리는 상대방과 원하는 때에 원하는 구도로 싸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원하는 때가 오지 않으면 되레 유연성을 잃는다는 맹점이 존재한다. 밴픽과 전투 모두에서 젠지는 유연성을 잃었다.
앞서 전투에서의 유연성을 꼬집었다면, 1세트에서 5세트에 이어지기 까지, 젠지가 가졌던 억센 밴픽 단계에서의 고집을 문제로 지적해본다.
# 무엇이 문제였나
(출처: gol.gg)
1) 라인전 주도권이 핵심이었나?
젠지는 5세트까지 시종일관 라인전에서 주도권을 내주기 쉬운 미드 라인 챔피언을 고르지 않았다. 오히려 게임의 주도권이 탑과 바텀에 있음을 의식한 듯, 1/2세트를 제외한 나머지 세트에서 오리아나, 니코, 신드라 등의 이번 롤드컵 주력 AP들을 일절 견제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2가지다. OP 챔피언을 손에 쥘 것인가, 잘 하는 주도권용 챔피언을 가져올 것인가? 젠지는 1/2세트 아지르를 픽함으로써 후자를 택한 뒤, 모두 실패한 뒤에야 밴픽 전략을 시급하게 수정한다.
바텀 라인의 밴픽 전략도 문제였다. 아펠리오스의 라인전 주도권은 초반부에 가히 절망적이다. 1레벨 기준 무기 교체 외엔 별다른 스킬샷이 없기에 오히려 수세적인 라인전을 펼쳐 성장에 방해받지 않는 라인전을 펼쳐야 한다. 1세트에서 선보인 전략이 실패했다면, 2세트는 전면적인 수정이 절실했다. 리그가 아닌 단기전이기에 더더욱.
하지만 젠지는 2연 아펠로 바텀의 지배력을 완전히 잃었고, 오히려 자야-레나타 조합에 호되게 당한 뒤인 3~5세트부터는 두장의 밴카드를 오로지 자야-레나타에 활용하는 등 뒤늦은 피드백을 보여주고야 말았다.
2) 빠른 스노우볼링을 노린 BLG, 젠지의 대응책은 아트-마오카이?
아트록스와 마오카이는 한타 유지력이 빛나는 챔피언이다. 이말인 즉슨 한타가 빈번하게 벌어지는 후반으로 갈수록 존재감이 두드러짐을 의미하며, 유통기한이 무한하다는 의미다. 이 말을 다시 비틀어보자. 유통기한이 무한하다면, 애초에 쓰임새가 없게 만드는 것, 즉 재료로서의 가치를 퇴색시키는 게 상대하는 팀에겐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초반 성장이 핵심이라면 그 성장을 이룩할 라인전의 개입, 카운터 정글링, 갱킹 등 수많은 방법들이 아트록스와 마오카이의 안정적인 성장을 방해할 요소들이었다. 그리고 이 방법들은 젠지의 상체라인에게 정확히 주효하며 3세트를 제외한 나머지 세트에서 모두 주도권을 잃는 이유가 됐다.
3) 5연 자르반, 고집인가 여유인가?
(출처: 웨이보)
LPL 전 프로게이머 ‘닝’ 가오전닝은 “5연 자르반은 이해할 수 있다. (아마도) 젠지가 자르반의 티어를 낮게 바라본 듯하다”고 평했다. 실제로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피넛’ 한왕호는 아지르와 오리아나의 구도에서 아지르의 연습게임 내 승률을 근거로, 연습실에서의 티어 구도가 경기에 영향을 일부분 미쳤음을 인정하기도 했다.
젠지 입장에서는 자르반보다 마오카이를 차용한, 그리고 자르반을 내주고도 할만한 이유를 내부에서 찾았다는 의미다. 고집이냐, 여유냐는 모두 결과론이지만, ‘쉰’ 펑리쉰의 자르반이 시리즈 MVP를 수여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한 가지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유연성, 즉 적절한 상황적 피드백의 부재.
젠지는 그동안 ‘스코어’ 고동빈 감독의 맞춤형 밴픽 전략으로 LCK 내에서 마치 외줄타기 장인처럼 전략가적인 면모와 선수 개개인의 체급을 적절히 조화해 국내 프로씬을 제패했다. 하지만 국제 무대에서는 달랐다. 매번 마주보는 상대, 매번 마주하는 스타일은 익숙함을 주었고, 보다 분석하기 편리한 환경이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변화무쌍한 단기전에서 상황적 역량의 필요성은 그 어떤 역량보다 강조된다. 5연속으로 같은 챔피언을 하는 동안, 그 지배력을 간과했다면, 그 팀에게 전략적 유연성이 있었다고 과연 평할 수 있을까? 3:2라는 스코어가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2023년 LCK 1시드의 무기력한 패배는 한국에서 열리는 월즈의 자존감과 긍지를 퇴색케 하는 큰 아쉬움으로 돌아온다.
(출처: 라이엇 게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