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를 쳐다보는 게 인게임 콘텐츠의 전부인 <바나나> 게임이 <발더스 게이트 3> 최대 동접 기록을 꺾었다. 이게 대체 무슨 황당한 일일까?
<바나나>가 18일 기록한 최대 동시 접속자 기록은 88만 명이다. 스팀의 역대 최대 동접 기록과 비교해보면 그 굉장함을 느낄 수 있다. <발더스 게이트 3>와 <호그와트 레거시>를 각각 11위, 10위로 밀어내고 역대 동접 기록 9위로 올라선 주인공이 바로 <바나나> 게임이다. 19일 오후, 실시간 동접 기록을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카운터 스트라이크 2>와 <바나나>가 1, 2위를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본지는, 말도 안 되는 흥행을 기록하고 있는 이 무료 게임에 대한 기사를 지난 4월 23일 출시 이후 두 차례 작성한 바 있다. 지난 5월 9일 첫 기사를 작성했을 때까지만 해도, <바나나> 동접 기록은 1,000명 내외였다. 6월 12일 두 번째 기사를 작성했을 땐, 20만 명 내외였다. 6월 19일 88만 동접 기록이 어떤 추세로 급증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주 내에 동접 100만을 넘기는 건 시간 문제로 보인다.
이 게임은 엄밀히 따지면 클리커 게임이 아니다. 클릭은 카운트만 해줄 뿐, 아무런 기능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본질은 3시간, 18시간마다 보상으로 지급되는 '바나나' 아이템이다. 스팀 장터에 팔 수 있는 희귀한 바나나를 얻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봇을 돌리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직접 환금은 불가능하고, 대부분의 바나나는 헐값이라는 측면에서 이걸 쌀먹이라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 접근 방식은 유사하다.
포브스의 시니어 기고자 폴 타시는 <바나나> 열풍을 보도하며 '머니 프린터'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돈 복사가 되는 구조라는 취지다. 반면, 개발자 스카이는 "투자 삼아 아이템을 구매하는 것을 추천하지 않고, 그건 우리 철학이 아니다"라고 못을 박았다. NFT에 대한 풍자라는 해석과 스캠 게임이라는 비판이 공존하는 상황. 차후 <바나나>류의 게임들이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농후한데, 스팀은 어떤 액션을 취할까?
사실상 상호작용이 거의 전무한 <바나나>가 '게임'이 아니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콘텐츠를 살펴보면 왜 이런 말이 나왔는지 금방 눈치챌 수 있다.
▶ 표면적으론 클리커 게임이다. 하지만 사실 클릭은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 3시간 주기로 접속 때마다 '바나나' 아이템을 하나씩 지급한다.(계속 켜놓고 있거나 클릭하고 있을 필요도 없다) 18시간 주기로 더 희귀한 바나나를 지급한다.
▶ 바나나 아이템은 스팀 장터에 판매 가능하다.
전 세계에 오직 5개 뿐인, 역대 최고가로 거래된 '크립틱나나'는 약 159만 원의 가격으로 판매됐다. 382만 개 가량 존재하는, 가장 흔한 일반 '바나나'는 0.36원에 거래되고 있다. 게임은 기간 한정으로 350원의 유료 바나나들을 판매하는데, 이후 오른 시세로 스팀 장터에서 거래되기도 한다. 사실 대부분의 유저들은 몇 백 원도 아닌, 몇 원에 해당하는 값싼 '바나나' 아이템들을 주로 만날 뿐이다.
<바나나>의 아이템은 스팀 장터에서만 거래된다. 밸브는 스팀 지갑에 충전된 돈을 환불해주지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다른 게임이나 다른 게임의 아이템을 구매하는 용도로만 쓰인다. 굳이 환금을 하고 싶다면, 선물용 게임 키 구매 후 리셀 마켓에 내놓거나, <카운터 스트라이크 2> 스킨 구매 사이트 등을 거치는 방법이 있긴 하다. 수수료가 매우 크고, 절대 권장되는 방법이 아니라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결과적으로 <바나나>가 "돈을 벌기 좋은 게임"이냐 하면 조금 애매한 측면이 있다. 직접적인 환금성도 없고, 그게 이 게임의 취지도 아니다.
개발자는 디스코드에 Q&A를 남겨뒀다. "크립토마이너인가"라는 질문에 "아니다"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스캠(사기) 게임이냐"는 질문에는 "수집 게임일 뿐이고, 이 게임을 돈을 얻기 위한 대상으로 보지 않았으면 한다. 그게 목적인 분들을 위한 다른 공간들이 있고, 여긴 그 공간이 아니다"라는 답변을 제시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유저들은 스팀 지갑의 '사이버 머니'를 극소량 얻을 뿐이다. 그런데, 밸브와 개발자 입장은 조금 다르다. 이들은 유저들의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수료를 수익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팀 장터에서 판매되는 아이템들은 국가별로 최저 판매가와 최저 수수료가 조금씩 달라, 단순 계산은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아이템이 거래될 때마다 최소 0.01달러, 아이템 가격의 5%를 수수료로 가져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루에 가장 흔한 '바나나' 아이템 하나에서만 이 정도의 거래 금액이 발생한다면, 다른 아이템까지 합산하면 절대 적은 금액은 아니다.(물론 다른 바나나들은 거래량이 현저히 적다) 지금의 추세를 보면 동접 기록은 당분간 더 오르겠지만, 언제까지 이 인기가 유지될지도 모를 일이다.
바나나 물량이 늘어나면서 시세가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해, 일반 바나나는 점점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결국 일반 바나나 거래로 (몇 원~몇 백 원 단위의) 재미를 보는 유저는 점차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 게임에 대해 NFT게임 열풍과 밈 투자에 대한 '풍자', '비판' 콘텐츠라고 분석했다. 스팀 장터를 바탕으로 한 거래까지도 가상자산 거래에 대한 풍자라는 해석이다. 잠시 반짝 했다가 잊혀진 많은 상품들처럼, <바나나> 게임도 그렇게 될까?
<바나나> 게임과 같은 게임이 스팀 동접 최고 기록을 갱신하고, 인기 순위에 오르는 현재 상황을, 밸브가 썩 달가워하지 않으리라는 분석도 많았다.
개발사 또는 밸브의 의지로 만약 게임이 서비스를 종료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이템은 스팀 지갑에 남아있을 수 있지만, 경우에 따라선 더 이상 판매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바나나> 게임이 지금의 방식으로 수익성을 유지한다면, 비슷한 게임이 우후죽순 더 많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밸브 입장에선 이 또한 그리 반가운 흐름이 아니다.
88만 명의 동접자 중 실제 플레이어가 아닌 봇이 많다는 분석도 있는데, 이런 정황을 고려해보면 특정 시점엔 밸브가 <바나나> 게임 또는 아이템 거래 방식에 제한을 둘 가능성이 있다.
디스이즈게임은 게임물관리위원회에도 <바나나> 게임이 유가증권에 해당하는지, 환금성이 있다고 보는지 견해를 물어봤다. 게임위는 "관련 부서에서 <바나나> 게임에 대해 현재 모니터링 중이며, 사행성 여부 및 유가증권에 해당하는지 차후 의견 전달을 드리겠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