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1. 한국 온라인게임 산업은 어떻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디스이즈게임은 어떻게 론칭할 수 있었을까? 정답은 인터넷이다. 오늘은 세계 두 번째로 한국에서 인터넷이 연결된 날이다. 1982년 5월 15일, 경북 구미 전자기술연구소와 서울대학교 사이에 인터넷이 개통됐다. 순전히 이 사람 덕분이었다.
2.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송재경 XL게임즈 대표의 선생님 중에는 유명한 사람이 두 명 있다. 문화부 장관까지 했던 영화감독 이창동은 서울 신일고 시절 그의 국어 선생님이었다. 카이스트 SA연구소(System Architecture LAB)에서는 이 분에게 배웠다. 호랑이 선생님이었다. 김정주 NXC 대표도 이 사람의 제자였다. 그 외에도 한국 IT계에 유명한 제자들이 많다.
3. 1943년 그는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운동을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2~3학년 때 학생회장을 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4·19혁명이 일어났고, 일본 역시 유사한 문제로 시끄러웠다. 고등학생만 1만 5,000여 명이 참여한 시위가 있었다. 그는 학생 대표로 연설을 하던 도중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라는 부분에서 말을 멈췄다. ‘일본을 우리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4. 대학 시절 <글 읽기와 삶 읽기> 시리즈를 재밌게 읽은 기억이 난다. 대학생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은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가 썼다. 그는 ‘또 하나의 문화’와 ‘하자센터’에서 활동하면서 여성 문화와 청소년 문화에 대한 실천적인 담론을 생산해왔다. 미국 UCLA 대학원에서 인류학 박사 과정을 밟았다. 그 시절 컴퓨터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5살 연상의 이 남자를 만났다. 결혼했다.
5. 60년대 초 이 남자는 UCLA 대학원에서 컴퓨터를 만드는 연구를 했다. 알파넷(ARPANET)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던 레너드 클라인락 교수를 만났다. 학업이 즐거웠다. 참고로, 알파넷은 미국 국방성의 지원으로 구축된 데이터 네트워크다. 세계 최초로 패킷 교환방식의 데이터 통신을 실현했다. 이는 현 인터넷의 기술적 출발점이다. 교수와 학생은 2012년 인터넷 소사이어티가 만든 ‘인터넷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33명 중 두 명이었다. 40년 만에 다시 만났다.
6. 이 남자는 박사 학위 과정을 마치고 미 항공우주국(NASA) 제트 추진 연구소의 연구원이 됐다. 우주선을 컴퓨터 네트워크 방식으로 지구와 연결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출세가 보장됐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독재 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이었다. 미국 동료들은 모두 “미쳤느냐”며 만류했다. 조국의 선진화에 기여하겠다고 생각한 그는 1979년 2년 한국에 왔다. 구미의 한국 전자기술연구소에서 컴퓨터시스템 개발실장을 맡았다.
7. 한국 정부는 이 남자가 컴퓨터를 만들어 주기를 원했다. 우리나라가 칼라TV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자신감이 넘치던 시기였다. 이 남자의 생각은 달랐다. 귀국할 때부터 '한국형 알파넷'을 만들고 싶었다. 세계 20번째 컴퓨터 개발 국가보다 세계 2번째 인터넷 개발 국가가 더 욕심 났다. 컴퓨터보다 컴퓨터끼리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청와대에 가서 인터넷을 개발해야 한다고 우겼지만 안 됐다. 정부 바람처럼 컴퓨터 개발 작업을 하면서 인터넷 개발도 슬쩍 끼워 넣었다.
8. 1982년 5월 15일 구미 전자기술연구소 컴퓨터개발실은 팽팽한 긴장감에 싸여 있었다. 서울에 있는 컴퓨터에 원격 로그인을 시도하려던 참이었다. 컴퓨터에서 "삐익 삐이익"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수십 명의 연구원들은 이 남자를 둘러싼 채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글자가 떴다. '$ rlogin snucom'. 한국 인터넷이 시작했다. 환호가 넘쳤다. 이날 서울대의 PDP 11 중형컴퓨터와 전자기술연구소의 VAX 11/780 중형컴퓨터가 1,200bps 속도의 전용회선으로 연결돼 통신에 성공했다. 사람들은 이 네트워크를 SDN(System Development Network)이라 불렀다.
9. 이 남자는 한국 인터넷 20주년 행사도 치르지 못했다. 정년퇴직 때 적극적으로 불러주는 곳도 없었다. 일본 게이오대와 중국 칭화대에서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모셔가려고 경쟁했다. 현재 게이오 대학 부총장으로 재직 중이다. 2012년 한국의 한 매체는 인터넷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33명을 기사화하며 이 남자를 ‘킬남 콘’이라고 개명해 적었다.
10. 5월 27일 판교에서 열리는 NDC 2014에서 이 남자는 키노트 강연자로 나선다. ‘인터넷 :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주제로 발표한다.
정답: ‘대한민국 인터넷의 아버지’ 전길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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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DC 2014, 전길남 박사부터 김정주, 송재경, 김학규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