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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의 가격은 어떻게 매겨야 하는가?

[리뷰] 워 호스피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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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석(우티) 2024-01-16 18:40:05

# 그대로 달릴 것인가, 레버를 당길 것인가?

그대로 달릴 것인가, 아니면 레버를 당길 것인가? 트롤리 딜레마(광차문제)는 좋은 게임 소재다. <프로스트펑크>는 생존과 존엄을 시험대에 올리는 게임이다. 빙하기가 찾아온 세계. 영하 40도의 추위에 살아남기 위해 소수의 인간이 열을 뿜는 증기기관에 뭉쳤고, 플레이어는 그 무리의 지도자가 된다. 플레이어는 80명의 유닛을 지휘하며, 자원을 관리하고, 제도를 제정해야 한다.

트롤리 딜레마는 윤리학의 고전 질문이자, 게임의 단골 소재이다. (출처: 디악시옴)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는 게임이 으레 그렇듯, 저울 위에는 언제나 편익과 비용이 오른다. 주민들에게 집을 지어주면 행복도는 올라가고 감기에 노출된 위험도 줄지만, 그만큼의 시간과 비용이 발생한다. 죽은 자의 집도 마찬가지다. 묘지는 고인을 지켜주는 한편, 유족들에게 추억의 공간이 되지만, 영하의 환경에서는 송장을 대충 눈밭에 묻어도 그것이 썩지 않기 때문에 자원을 아낄 수 있다.

폴란드 개발사 11비트 스튜디오는 <프로스트펑크>의 유닛에 가족관계와 배경을 제시해 이들 개개인에게 이야기를 불어넣었다. 유닛들은 사람이라서 석탄을 캐다가 손가락이 떨어지는 고통을 호소한다. 게임을 진행하며 플레이어는 아동을 각종 작업에 투입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아동을 유닛으로 쓰면 전체적인 생산량이 늘어나지만, 그 가족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길 수 있다.

비인간적인 선택들로 '불만'이 '희망'을 잡아먹으면 '사람'들은 시장에게 항의한다. 갈등을 슬기롭게 조정하지 못하면 지도자는 끝내 불미스러운 엔딩을 맞이한다. 빙하기에서 공동체에서 추방되는 것은 게임오버, 즉 죽음과 가깝다. <프로스트펑크> 통치의 묘는 '불만' 수치를 끓어오르지 않을 만큼 관리하면서 유닛을 착취해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있다. 

마키아벨리의 이론처럼, 플레이어의 목적은 공동체의 연속이기 때문에,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모두를 위해서 포댓자루 좀 나르면 어떤가? 지금 바깥 온도가 영하 40도인데. 살아남은 인구가 일흔 남짓에 일할 어른은 전부 병원에 앓고 누웠는데.

(Before) 어떻게 아이들에게 노동을... → (After) 빨리빨리 안 다니냐?

# 목숨의 가격은 어떻게 매겨야 하는가?

근작 <워 호스피탈>은 <프로스트펑크>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짐작되는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인 1918년 영국군 야전병원을 이끄는 소령이 되어 병원의 운영을 지속하면서, 전장에서 몰려드는 환자를 치료해야만 한다. 1월 11일에 출시한 따끈따끈한 신작이지만 후술할 문제로 '복합적' 평가를 받고 있다.

게임은 전쟁의 참화를 겪은 인물이 후손에게 그 비극을 서술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할아버지의 참전 경험을 영화로 만든 <1917>보다 직접적인 방식으로, 헨리 웰스 소령은 야전병원으로 파견되고, 그들을 치료한 이야기를 3개의 챕터에 걸쳐 들려준다. 엔딩까지 그 이야기는 전쟁을 소재로 한 수많은 미디어가 전하는 반전(反戰) 메시지와 결을 같이 한다.

게임은 야전병원장을 맡은 헨리 웰스 소령의 시선에서 진행된다.

전선에 초인접한 야전병원으로 파견된 헨리 웰스, 그러니까 플레이어는 사상자 후송소에 몰려드는 환자들을 치료할지 말지 결정하게 된다. 제일 먼저, 환자의 파일을 읽어본 뒤 경중을 파악해 생사를 결정한다. 치명도가 너무 높은 환자는 치료를 해도 살아남을 확률이 낮기 때문에 보급품을 소모할 뿐더러, 사기에 악영향을 미친다. (사기가 0%로 떨어지면 게임은 끝난다.) 따라서 병사의 목숨이 값이 나가는지 '각'을 재는 게 우선이다.

다음은 치료 스케줄을 짜는 일이다. 의사와 간호사는 24시간 일할 수 없다. 적당한 휴식을 제공해야 하며, 환자를 살리기 위해 이들을 혹사시키면, 도리어 이들이 실신해 큰 차질이 생기게 된다. 환자들을 최대한 많이 살리려면 적당한 휴식 스케줄도 맞춰줘야 한다. 병원 운영에 도움이 되는 VIP 환자들을 먼저 살릴 것인지, 아니면 오래 기다렸던 환자를 먼저 돌볼 것인지 또한 판단해야 한다.

선생님 근무표 나왔어요 ^^

치료가 완료되면 재활 기간을 거쳐 환자의 처분을 결정할 수 있다. 첫째는 전선 투입. 치료한 환자를 야전병원 근처의 참호로 보내어 독일군을 막아내게 할 수 있다. 독일군에게 참호선이 밀리면 야전병원 또한 공격되기 때문에 게임이 종료된다. 둘째는 본부 복귀. 환자를 본부로 복귀시키면 군사어음을 얻을 수 있다. 게임의 모든 시설 업그레이드, 자원 개발에는 이 어음이 사용된다. 

전선에 충분한 병력이 확보되면 병사를 본부로 돌려보내 어음을 받는데, 플레이하다 보면 '목숨으로 거래를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플레이어를 전역시켜 사기를 채우거나, 아직 치료가 안 된 환자를 전선으로 내모는 옵션도 있다.

그리하여 <워 호스피탈>은 전쟁 속에서 목숨의 값어치를 매기는 게임이다. <프로스트펑크>보다 더 직설적으로 생과 사를 결정지을 수 있다. 환자파일 상 살려 보낸 환자가 전선에서 치명적인 중상을 입고 돌아와, 사실상 사망을 선고할 때 전쟁의 허무함을 느낀다. 전쟁 중이기 때문에 새로운 인력을 데리고 오는 것도 어렵다. 인력을 구할 수 있는 임명장은 언제나 부족하고, 군의관을 비롯한 병사들은 언제나 피로를 호소한다.

<워 호스피탈>은 전쟁 속에서 목숨의 값어치를 매기는 게임이다.


수술 중에는 환자들의 신음이 끊이지 않는다. 기분이 좋지 않다.


환자들을 나르느라 실신한 수송대 병사들. 제때 교대해 주지 않으면 큰 손실을 보게 된다.


전선에서는 총알이 오가고 있다. 당연 환자가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진행에 따라 내과 수술과 정신질환 치료까지 해줘야 한다.

# 메시지는 참 좋은데, 이유 있는 '복합' 평가

하지만 지금 <워 호스피탈>은 구매를 권하기는 힘들다. 이런 게임이 얼리 억세스가 아니라 정식 출시를 했다니, 이제 스팀에 둘 사이의 구분이 사라졌나 싶어 아찔한 지경이다. 게임에 관심이 있다면 어느 정도 개발사의 사후지원이 이루어진 뒤에 구매하는 것을 강력 추천한다.

게임 오버 뒤에 처음부터 엔딩을 다시 봐서 이런 평가를 내리는 게 아니다.

진행이 안 될 정도로 프레임드롭이 발생했다. 또 버그가 게임의 진행을 여러 차례 막았다. 전쟁 상황 중에 어음을 소모해 자원을 구매했는데, 버그 탓에 어음만 소모되고 자원이 채워지지 않았다. 전선으로부터 환자를 이송하기 위한 구급차는 제대로 동작하지 않았고, 자원을 실을 트럭은 운행 자체를 하지 않았다. 요즘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해준다는 자동저장도 없다. 단축키가 일절 없어 유닛의 일정 관리를 위해 매번 건물 버튼을 클릭해야 했다.

그래도 이전 챕터의 업그레이드 내용이 그대로 이어지기 때문에, 챕터 1부터 차근차근 플레이를 한다면 어렵지 않게 클리어할 수 있다. 다만, 마지막 챕터에서 게임 플레이 타임을 늘이기 위해서 지루한 공세를 계속 막으며 버티게 된다. 이쯤 되면 거의 모든 빌드가 상위 궤도에 올랐기 때문에 파훼가 쉽지만 공세가 끝나지 않아 진행 속도를 매우 빠름으로 설정하고 엔딩을 보기 위한 지루한 '딸깍'을 계속해야 한다.

또 트롤리 딜레마에서도 유저를 대단히 괴롭히지는 않는 듯하다. 게임은 같은 병원에서 함께 일하던 간호사가 실신했을 때도, 애써 고쳐준 병사들이 죽었을 때도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마치 '그것이 전쟁'이라는 듯하지만, <프로스트펑크>처럼 팝업과 같은 몇 가지 장치를 넣었다면 플레이어가 훨씬 더 동요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환자들의 파일을 읽을 때는 <페이퍼 플리즈>가 떠오르지만 그들에게 서사가 강조되지 않아 측은지심이 들지도 않았다.

할 일이 너무 많아서


환자 파일을 읽어볼 겨를도 없다


대부분의 선택 옵션은 지역 모험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이야기가 야전병원 바깥에서 진행되어 몰입되는 편이 아니다.

# 조금 삐뚤빼뚤하게 새긴 기념비

그래도 이러한 게임 구성에 전쟁의 지긋함과 무상함을 게임으로 풀어내려는 기획의도가 있었다고 선해해 본다. 군필 한국 남성이라면 으레 '네가 사회에서 무엇을 했든 여기서는 다르다'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워 호스피탈>의 소총수들도 사회에서 무엇을 했든 몰려오는 독일군의 진군을 막는 병정에 불과하다. 

게임 초반 야전병원의 묘지에는 돌을 깎아 기념비를 세우는 이벤트가 있다.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이런저런 사정으로 전사한 병사들의 이름이 수백 개나 기록된다. 챕터를 진행할수록 사망하는 병사들은 많아지는데, 이에 따라 기념비에 새겨지는 이름은 더 많아진다.​ 이 안에는 '얘가 사회에서 뭘 했지' 하며 파일을 유심히 살펴본 병사도 있었고, 가망이 없는 환자인 것을 알고 시간에 쫓겨 파일을 읽지도 않고 치료를 거부한 환자도 있다. 

이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플레이어의 몫이다. 헨리 웰스 소령은 묘지에 기념비를 세우지 않도록 지시할 수 있다. 기억하지 않기로 결정한다면, 그것은 아무 일도 아니게 된다. 플레이 초반 게임은 이 기념비 이벤트를 꽤 공들여 강조한다. <워 호스피탈>은 (버그 때문에) 조금 삐뚤빼뚤하게 새긴 기념비 같다.

<워 호스피탈>의 추모비

우리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기록하고, 또 기억한다. 보통 기념비는 승리의 프로파간다가 되곤 하지만, 전사자의 이름이 빼곡하게 새겨진 게임 속 기념비는 "전쟁은 죽음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삶"이라는 에밀 졸라의 경구를 상기시킨다. <워 호스피탈>은 바로 이 문장으로부터 출발한다.

플레이어가 만나는 웰스 소령의 일기는 '전쟁은 절대 안 된다'는 절규로 가득하다. 그러나 지금도 뉴스를 켜면 곳곳에 "죽음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삶"은 계속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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