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은 빛처럼 빠르게 변화하곤 합니다. '허니버터'가 유행하면 온갖 음식에 허니버터가 들어가고, '민초'가 유행하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음식에 민초를 넣는 등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만들어져 선보여지기도 하죠.
게임도 같습니다. 굴러 피하고 묵직하게 공격하는 것이 핵심인 '소울라이크'식의 액션이 유행하자, 여기에 패링 등 온갖 시스템이 빠르게 조합됐고, 이제는 '소울라이크'를 표방해도 변주를 통해 장르 초창기의 모습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빠른 템포의 전투를 가진 게임이 대다수입니다.
빠르게 발전하는 모습을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가끔은 원조의 슴슴한 맛이 그리워질 때가 있죠. 이런 찰나 우연히 한국에서 원조의 맛을 표방한 게임이 나왔습니다. 개발자가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지만, 게임을 체험한 입장에서는 확실히 그렇게 느껴졌는데요. 바로 국내 인디 개발사 '트라이펄게임즈'에서 만들고 있는 <V.E.D.A>(이하 베다)입니다.
<베다>는 장르 특유의 손맛을 살리면서도 기존 작품보다 쉽게 입문할 수 있는 난이도를 지향하고 있는데요. 덕분인지 보스의 패턴을 관찰하며, 합을 묵직하게 주고받았던 소울라이크의 옛날 감성이 살아나는 듯했습니다. 여기에 게임을 조금 더 흥미롭게 만들어 주는 로그라이트 요소도 한 스푼 첨가됐습니다.
시스템 설명 전에 먼저 게임의 스토리부터 알아두면 좋겠죠.
<베다>는 지구온난화로 고대 바이러스가 부활하며, 인류의 90%가 사망한 근미래, 변이 생명체를 피해 인류가 지하로 벙커에 들어가며 벌어지는 일을 다룹니다.
지하에서 인류는 지상의 공간을 되찾기 위해 훈련용 AI 시뮬레이터 '베다'로 요원을 길러내고 있는데요. 기억이 없는 플레이어는 시뮬레이터 안에서 훈련을 방해하는 외부의 해커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며, 기억을 되찾는 여정을 떠나게 됩니다. 이처럼 훈련 시뮬레이션이 게임 내 배경인 덕분에 '소울라이크 트레이닝 게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표방한 느낌이 있기도 합니다.
게임 배경은 시뮬레이션이다.
<베다>
기본적인 조작 방식은 여타 소울라이크 게임과 동일합니다. 회피와 가드, 일반 공격과 강공격, 앞잡기와 뒤잡기, 패링이 있습니다. 패링을 적절히 사용하면 공격을 튕겨내고 적을 기절시킬 수도 있죠. <베다>는 패링에 대한 리턴이 상당히 후한 편인데, 패링에 성공하면 적이 기절하고 잡기 공격을 할 수 있는 찬스가 주어집니다.
기자가 제공받은 시연 버전에서는 스테이지와 보스전 두 가지 콘텐츠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스테이지는 일반적인 소울라이크 게임처럼 굽이굽이 이어진 미로 같은 스테이지를 진행해 나가며 적과 맞서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카메라의 사각 지대에 숨어 있던 적이 기습해 온다던가, 바닥에 구멍이 있어 생각 없이 들어갔더니 수많은 적이 기다리고 있었던 함정인 것과 같은 기믹도 있습니다.
그리고 <베다>는 여기에 로그라이트 요소를 조합했습니다. 게임이 '시뮬레이션' 콘셉트기에 이것을 살린 것으로도 볼 수 있는데요.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랜덤한 장비와 버프를 주는 '코드'를 얻을 수 얻을 수 있습니다. 시연 버전에서는 선보여지지 않았지만 자원을 모아 강력한 공격을 할 수 있는 오버클록이나, 전투나 생명 유지 기능의 업그레이드도 가능합니다.
로그라이트인 만큼, 사망하면 최초의 시작 지점으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그 대신 필드의 난이도는 그다지 높지 않은 수준이죠. 정식 출시 시점의 모습은 어떻게 될 지 속단하기 어렵긴 하지만, <베다>를 개발 중인 트라이펄게임즈의 정만손 대표는 로그라이트인 점을 감안해 필드 난이도를 그다지 어렵게 잡지 않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로그라이트 장르의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아이템을 얻고 조합해 강해지는 것이 중요한데, 필드가 너무 어려우면 아이템 조합의 효능감을 느끼기 전에 플레이어가 사망을 반복하다 지쳐버릴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이네요.
시뮬레이션이라 사망하면 시스템이 재시작되는 방식이다.
필드에서 적을 쓰러트리고
여러 아이템을 획득해 교체할 수 있다.
장비 조합이 핵심
그리고 한 가지 흥미로웠던 점을 꼽자면 소울라이크지만 점프 부분에서는 너무나 원조의 맛을 따라가지는 않았습니다. 고지대에서 회피 버튼을 누르면 알아서 점프하며, 조금 높은 곳을 기어올라 갈 수 있는 파쿠르 시스템이 있어 맵을 탐험하다 낙사로 죽는 걱정은 크게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파쿠르도 있고 점프 거리도 길기에, 구르기 점프를 시도하다 절벽에서 낙사할 일은 적다.
소울라이크 장르의 꽃은 보스전입니다. 무수히 죽음을 반복하며, 보스의 패턴을 하나하나 공략하며 끝내 격파했을 때의 쾌감이 상당하기 때문이죠. 보스가 돌진 공격을 해 올 때는 앞으로 구르기, 달려와서 공격할 때는 속으로 1을 세고 패링 버튼을 누르기, 공격을 피하면 두 대만 때리고 무조건 뒤로 구르기 등 자신의 공략 방법을 하나하나 만들어 나가며 끝내 개발진이 준비한 난관을 극복한다는 재미가 핵심입니다.
<베다> 또한 보스전에 많은 공을 기울였는데요. 핵심은 최근 대부분의 소울라이크 게임이 표방하는 빠른 전투보다는 한 합씩을 주고받는 느낌에 집중한 느낌입니다. 최근 소울라이크 장르에 익숙한 게이머가 늘어나고, 개발진 역시 같아지면서 여러 게임이 초반부부터 정신없는 보스 패턴을 선보인다는 점을 생각하면 환영할 만합니다.
특히 패링에 대한 리턴이 큽니다. 요즘 소울라이크 게임에서는 패링 한 번 성공한다고 '공격할 시간'을 주지는 않습니다. 연속적으로 패링에 성공해야 한두 번의 공격 시간을 주거나, 아니면 수없이 패링에 성공해 그로기 게이지를 전부 깎아 내야 비로소 공격 시간이 생기곤 하죠. 반대로 <베다>는 패링에 한 번 성공하면 보스가 곧바로 짧은 스턴 상태에 빠지고, 이 상태에서 잡기 공격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패링의 성공은 앞잡(앞에서 잡기) 공격으로 이어진다.
물론 후반 콘텐츠에서는 달라질 여지가 있다.
하지만, 무조건 공격을 주고받는 과정이 반드시 단조롭게는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보스가 체력이 감소하면 기존의 패턴에 변칙이 생기기도 하죠. 가령 보스가 달려와서 공격하는 패턴은 손쉽게 패링할 수 있기에, 종종 보스가 달려와 즉시 공격하는 대신 뒤로 한 번 회피하는 방식으로 '낚시'를 시도하는데요. 보스와 단조로운 전투 양상을 이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개발진의 의도로 보여 흥미로웠습니다.
결론적으로 <베다>를 체험해 본 결과, 로그라이트 요소를 섞긴 했지만 정말로 소울라이크가 태동하던 시기 본연의 맛을 살려내기 위해 개발진이 노력했다는 점이 느껴졌습니다.
약간 묵직한 전투 시스템 속에서, 적의 패턴을 외우고 움직임이 보일 때마다 자신이 체득한 공략 패턴으로 공방합을 주고 받으며 차근차근 공략하는 그 느낌이죠. 보스를 수십 번 잡고 나니 왜 개발진이 '소울라이크 트레이닝 게임'이라고 <베다>를 소개했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보스와 패턴을 주고받으며 자신만의 공략을 주고받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울라이크 액션의 기본기를 다시 기초부터 다지는 느낌이었네요.
점프해 내려찍는 공격은 왠만하면 앞-대각선 구르기로 피해진다-는 상식 같은 것도 통용되는 편이다.
현재 <베다>는 2025년 여름 경 얼리 액세스를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개발 중입니다. 지금까지 <베다>는 플레이엑스포, 지스타, TGS 등 여러 게임쇼에서 전시됐고, 여기서 받은 피드백을 기반으로 플레이어 캐릭터의 모델링을 6등신에서 8등신으로 바꾸고 속도감을 상승시키기 위해 여러 개선안이 적용됐는데요. 얼리 액세스 시점에는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콘텐츠를 포함해 더욱 많은 변화를 적용해 찾아올 예정입니다.
기사에서 소개된 시연 버전 외에, 대중에게 공개하기 위한 별도의 정식 데모 버전도 현재 제작 중에 있습니다.
따라서 소울라이크 장르를 좋아하거나, 국내 인디 행사에서 <베다>를 보았거나, 혹은 이 기사를 보고 게임에 관심이 생긴 게이머라면 스팀 상점 페이지에서 <베다>를 '찜 목록'(위시리스트)에 올려두는 것은 어떨까요? 지금까지 여러 게임쇼에서 국내외 여러 인디 게임 개발자의 이야기를 들은 결과, 개발을 이어갈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스팀 상점의 위시리스트라고 하네요.
(출처: 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