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e스포츠를 위한 중장기 계획을 발표했다. 그간 정부가 상대적으로 무관심했기에 '일단' 반갑지만, 중요한 것이 하나 빠졌다. 바로 기업 관련 정책이다.
7일,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게임산업 진흥 종합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계획에는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게임산업 외에도 e스포츠를 위한 향후 5년간의 정책 방향이 담겼다. 정부는 e스포츠 선수 권익 보호에 나서고, 지역 e스포츠 활성화도 적극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특히, e스포츠는 관련 진흥 정책 외에도 올바른 게임 문화 확산을 위한 정책에도 다수 포함되며 이전보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올해로 e스포츠가 시작된 지 21년이 됐다. 이 시점에서 정부는 생활 e스포츠와 다양한 e스포츠 대회를 통해, 저변을 넓히려는 정책을 선택했다. 또 e스포츠의 정식 스포츠화까지 나선다. 하지만 e스포츠 투자 · 운영 기업에 대한 정책이 없다. 반면, 중국은 다수의 기업 관련 정책, 특히 기업 유치 정책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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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부 고발'이 쏘아 올린 공! 법으로 e스포츠 선수 지킨다
작년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 판을 뒤흔든 '카나비' 서진혁 선수와 그리핀 간의 불공정 계약은 수많은 팬의 분노를 샀다. 특히, 불공정 계약은 당시 김대호 그리핀 감독의 내부 고발로 알려졌고, 이로 인해 팬들은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대통령 청원은 약 일주일 만에 지지 인원이 20만 명을 돌파했고, 이후 박양우 문체부 장관이 "정부가 e스포츠 선수 권리를 지킬 것"이라며 직접 청원에 답했다.
▲ 올해 초, 불공정 계약과 관련 수사 등에 관해 답한 박양우 장관
그리고 박 장관의 답변은 이번 게임산업 진흥 종합 계획에 그대로 담겼다.
가장 큰 문제가 됐던 부분은 선수 계약서였다. 이와 관련해서는 '표준계약서'가 연내 도입된다. 빠르면 7월부터 배포된다. 또 미성년자 선수는 별도 계약서로 보호할 예정이다. 정부는 e스포츠 실태조사를 매년 진행하여 현황을 지속해서 파악하겠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선수 권익을 위한 위원회인 '이스포츠공정위원회'가 지난 1월부터 운영 중이며, 선수 권익 관련 교육도 모든 선수 대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e스포츠 선수등록제를 모든 e스포츠 정식 종목을 대상으로 빠르면 6월부터 적용한다. 특히, 정부는 선수등록제를 바탕으로 e스포츠의 정식 스포츠화까지 나선다는 입장이다. 정식 스포츠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최소 대한체육회 준회원 이상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정부 주도로 시도체육회 9개 이상 확대에 나선다.
또 정부가 직접 e스포츠 대회를 개최하고 종목 지원도 이어간다. 올해 11월에는 국가 대표 수준의 선수들이 나서는 한중일 3국 공동 개최 대회가 서울에서 열린다. PC · 모바일 · 콘솔 등 다양한 플랫폼 종목이 선정되며, 이후 세계 대회로 확대 개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지원 및 관리가 없다시피 했던 e스포츠 종목에 관해서는 ▲ 대회 장소 대관 협조 ▲ 동호인 대회 지원 ▲ 선수(팀) 관련 지원제도 등을 약속했다.
# 계획 좋은 생활 e스포츠, 계획 없는 e스포츠 기업 정책
이번 계획안에는 e스포츠를 '생활체육'화를 위한 정책도 담겼다. e스포츠를 즐기는 일반 국민을 늘려, 튼튼한 'e스포츠 저변'을 만들겠다는 것이 정부의 큰 그림이다. 이를 위해 국내 e스포츠의 근간 PC방을 e스포츠 시설로 지정하며, 지정 PC방에서는 다양한 동호인 리그와 대회, 지역 클럽팀 등을 운영할 예정이다.
또 정부는 아마추어를 위한 대회로 생활 e스포츠에 나선다. 동호인은 물론 대학교 · 군인 등 특정 계층을 타깃으로 한 리그 개최 계획을 발표했다. 동호인 대회는 월별 대회부터 연간 대회까지 나뉘어 체계적으로 진행되며, 대학 리그는 7월 예선을 시작으로 9월 결승전을 한다. 대회는 현재 건설 중인 각 시도 e스포츠 상설 경기장을 통해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 생활 체육과 같은 맥락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튼튼한 저변을 먼저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생활 e스포츠 정책만으로는 e스포츠 판 자체를 확대하기에는 부족하다. 유저가 e스포츠를 즐기는 것만큼이나, 최고 수준의 e스포츠를 보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즐기는 사람이 많아지면 프로 e스포츠도 자연스럽게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지금은 빠르게 e스포츠 산업이 발전하는 만큼 이를 국내로 이끄는 마중물 정책은 필요한 시점이었다.
e스포츠 산업은 '프로 e스포츠'를 중심으로 크게 발전하고 있다.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정부의 한발 빠른 판단이 필요했다. 하지만 향후 5년간 문체부의 게임 관련 계획은 e스포츠 자체의 저변 확대에 그친다. e스포츠는 특성상 국내 시장에만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더 세계적인 관점에서 e스포츠 관련 기업 유치에 나서고 산업 지원이 필요하다.
▲ LCK 경기가 펼쳐지는 롤파크
최근 프랜차이즈화를 선언한 LCK를 생각하면 더 아쉬움이 남는다. 최근 라이엇게임즈는 "LCK 10개 팀 모두 프랜차이즈 신청했다"라고 밝혔지만, 정부 차원의 관심이 있다면 더 많은 투자자가 LCK에 모일 수 있다. LCK에 투자되는 금액은 선수 연봉 · 구단 운영 등을 결정하기 때문에, 특히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기 수준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대회 개최 계획은 있지만, 세계적인 e스포츠 대회를 유치하겠다는 계획이 없는 점도 아쉬움이 남는다. 중국은 e스포츠 대회 유치를 위해 대회 장소 대관부터, e스포츠 관련 업종 무비자 등 전폭적인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 "세금 감면하고 무비자 지원한다" 국내 망설일 때, 중국 큰 그림 그린다
정부가 망설이고 있을 때, 중국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국내와 달리, 중국은 정부 중심으로 정책을 통해 기업과 대회에 유치에 나서며 e스포츠의 중심을 자처하고 있다.
상하이는 수년 전부터 '세계 e스포츠 수도'를 목표로 e스포츠 관련 인력 · 세금 규제를 개혁했고, 외국인 비자 기준을 크게 낮췄다. 중국 최고 휴양지로 꼽히는 하이난도 10억 위안(약 1,700억 원) 규모의 e스포츠 산업 특별 펀드를 설립했으며, e스포츠 대회 참가 선수는 입국 관광 비자를 면제하고 있다.
▲ 많은 중국 도시 중 항저우가 가장 활발한 정책과 계획을 내놓고 있다. (사진: 항저우 도시 전경)
작년 WCG가 개최된 시안은 물론, 광저우와 충칭도 국제 e스포츠 대회부터 지역 연고 팀 모시기에 힘을 쏟고 있다. 올 4월에는 항저우가 2022년까지 14개의 e스포츠 시설 건립이 포함된 'e스포츠 산업 발전 추진 5대 전략'을 발표했다. 특히, 항저우는 2022년 아시안게임이 개최되는 도시다. 아직 e스포츠가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지 않았지만, 추가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런 지원을 받은 중국 e스포츠는 매해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 시장조사업체 아이리서치에 따르면, 2019년 중국 e스포츠 규모는 예년보다 25% 넘게 성장한 20조 원으로 추산했다.
많은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종목사 진행 e스포츠 대회에는 큰 관심이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다른 스포츠도 지원하는 문체부 입장에서는 프로 e스포츠 지원이 일종의 특혜로 비치는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생활 e스포츠만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e스포츠를 지키긴 어렵다. 또 더 이상은 뛰어난 실력의 선수들에게만 기대는 것도 큰 무리다. '플레이어(아마추어 및 프로 e스포츠 선수)'만이 아닌 '플래너(e스포츠 관련 기업)'를 위한 정책도 있어야 할 시점이다.
▲ 투자 · 지원 앞세운 중국과 북미를 고려하면, 선수 인기에만 기대는 e스포츠는 도태되기 쉽다 (출처: 2019 롤드컵 주제곡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