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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정치게임 ‘어몽 어스’에 등장한 진짜 정치인과 막장 임포스터

선거를 앞둔 미국에서 극과 극의 정치홍보가 벌어졌다.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방승언(톤톤) 2020-10-28 11:57:15

게임이 대세인 모양이다. 현실 정치가 ‘정치게임’에 침투했다. 반응은 극과 극이다.

 

11월 3일 미국 대선 및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어몽 어스> 안에서 정치인 홍보가 1주일 사이에 두 차례 일어났다. 같은 ‘홍보’라지만 그 성격과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게임을 이용한 홍보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화두를 던져 준 두 사건을 다시 살펴봤다.

 

 

# '43만 시청자' 끌어모은 최연소 미국 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이하 AOC)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은 최근 <어몽 어스> 스트리밍으로 현지인과 전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10월 20일 AOC는 본인 트위터 계정에서 <어몽 어스>를 함께 할 사람을 모집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나랑 투표 독려 차원에서 <어몽 어스> 플레이할 사람 있어요?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재미있어 보여요.)”

 

단순한 트윗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젊은 유권자 사이에서의 인기를 증명하듯 이 글은 약 4만 번 리트윗되고 3만 8,000개 이상 좋아요를 받았으며 댓글 1만 5,000개가 달렸다. 방송에 대한 팬들의 기대감은 커졌다.

 

 

10월 21일 진행된 AOC의 <어몽 어스> 라이브 스트리밍은 최대 43만 9,000명 시청자 수를 기록했다. 트위치 사상 단일 스트리밍 최다 시청자 수가 62만 8,000명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전문 스트리머가 아닌 사람으로서는 실로 ‘역대급’ 기록이다.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와 조 바이든의 사례와 비교해보면 더욱 두드러지는 수치다. 두 후보가 트위치 라이브 방송을 시도했을 때 최다 시청자 수는 각각 6,000명, 1만 7,000명이었다.

 

AOC 방송의 성공 배경으로는 여러 요인이 지목된다. 첫 번째는 AOC가 평소 구축해 놓은 ‘게이머’ 이미지와 여기에 매혹된 게임 팬층이다. 미국 최연소 의원 AOC는 본래 <리그 오브 레전드> 등을 즐기는 게이머로 잘 알려져 있다. AOC의 소셜 미디어 계정에는 젊은 팔로워가 수두룩하고, 그와 정치 성향이 맞는 게임 스트리머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다.

 

관련기사: 롤 실버 달성한 미국 최연소 여성 연방의원 AOC, 다음 목표는 골드 4?

 

두 번째는 게임 방송으로서의 ‘진정성’이다. 스스로 ‘투표 독려 방송’이라고 말했지만, 정작  3시간에 달하는 방송 시간동안 AOC는 게임 자체에 몰두했다. 대중에게 인기 있는 콘텐츠를 ‘겉핥기’식으로 다루는 경우가 잦은 정치인들의 관행과 대비돼 좋은 평가를 얻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 번째 요소는 의외로 ‘꿀잼’이었던 방송 내용이다. AOC는 첫 판부터 ‘임포스터’로 게임을 진행했다. <어몽 어스>는 ‘술래’인 임포스터가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고 우주선 크루원(승무원)들을 제거해야 하는 게임이다.

 

게임 구조상 임포스터는 해야 하는 일이 좀 더 많고, 상대적으로 숙련도가 필요한 역할이다. 처음 게임을 해보는 AOC가 이 역할에 배정돼 당황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줬다. 이후 크루원으로 게임을 할 때도 AOC는 어설픈 모습을 보여 ‘관전 포인트’를 제공했다.

 

<어몽 어스> 승리조건
크루원 승리조건:

① 크루원 전원이 각자에게 주어진 ‘임무’를 무사히 수행 ② 임포스터 전원이 우주로 추방당함.

임포스터 승리조건:

① 존한 크루원 수가 임포스터의 숫자와 동일해짐  임포스터가 일으킨 사보타지(방해 공작)를 승무원들이 제한시간 내 막지 못함

 

 

# '트럼프 지지' 외치며 게임 방해한 해커

 

AOC 방송이 이뤄진 시점으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은 23일, <어몽 어스> 팬덤에서는 다시 유명 정치인의 이름이 언급됐다. 이번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그 이유는 AOC와 많이 달랐다. 한 해커의 무차별 공격이 원인이었다.

 

10월 23일 미국 <어몽 어스> 유저들은 불쾌한 경험을 해야만 했다. 많은 공방에 ‘에리스 로리스’(Eris Loris)라는 이름의 봇이 접속했다. 이 방의 유저들은 토론이 시작돼도 아무런 채팅을 칠 수 없었다. 대신 “에리스 로리스 유튜브 채널에 구독하라”는 광고 메시지만 자동 전송됐다.

 

메시지에는 몇 가지 버전이 있었는데, ‘트럼프 2020’이라는 문구가 포함된 경우도 많았다.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를 선택하라’는 의미의 캐치프레이즈다.

 

 

이렇듯 게임 플레이를 심각하게 방해하는 해킹 공격에 유저들은 분노를 느꼈다. 관련 커뮤니티에는 ‘에리스 로리스’라는 인물을 저주하고 욕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더불어 ‘트럼프 2020’이라는 문구를 둘러싼 의혹도 제기됐다. 일부 유저들은 해커가 실제로는 트럼프의 상대 후보 조 바이든 지지자이며, 트럼프 재선 캠페인을 망치기 위해 이런 일을 벌인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외신 코타쿠 인터뷰 결과 당사자인 로리스는 실제 트럼프 지지자로 밝혀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로리스 본인은 “친구들과 <어몽 어스>를 즐겨 플레이하며, 게임이 재미있다”고 인터뷰했다. 그럼에도 게임을 해킹한 이유는 그저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해서’였다고 밝혔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분노와 증오가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고작 3분 정도 게임을 못하게 됐다는 이유로 기꺼이 인터넷으로 몰려가 잘 모르는 사람(에리스 로리스 본인)에게 ‘싫어요’를 스패밍한다는 사실이 참 우습다.”

 

더 나아가 로리스는 핵에 즉각 대처하지 못한 제작사 이너슬로스에게 미안함을 느끼지 않는다며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였다.

 

“어몽 어스는(개발사 이름 ‘이너슬로스’를 잘못 말한 것으로 추정) 작은 개발팀일지 모르지만,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다. 현재 <어몽 어스>는 대다수 트리플 A 게임보다 규모가 커졌다. 개발자를 더 뽑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니까 ‘인원이 3명 뿐’이라는 이유는 나한테 아무 의미 없다.”

 

 

이 발언에 대해 코타쿠는 ‘게임 개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때 할 수 있는 말’이라고 꼬집었다. 코타쿠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개발자를 고용하고 교육시켜 (기존 개발자들이 쓴) 코드를 확실히 이해시키는 과정을 거치며 개발팀을 키우려면 시간이 많이 소모된다. <어몽 어스> 정도 규모의 라이브 게임이 문제 없이 운영되려면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요소를 신경써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개발사는 하루아침에 인원을 늘릴 수 없다. 자칫 잘못하면 추가 인원들로 인해 발생한 문제가 해결된 문제보다 많아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