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플레이를 생중계하는 방송에서 BJ(인터넷방송인)들이 확률형 아이템을 뽑는 행위를 걸고 내기를 진행하면, 사설 도박장일까?
최근 인터넷방송에서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변형 '스폰빵'이 문제가 되고 있다. <스타크래프트> 등 게임의 실력 대결뿐 아니라 게임 속 확률형 아이템을 뽑는지를 놓고 돈을 거는 행위까지 인터넷방송을 타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디스이즈게임 정우철 편집장, 김재석 기자
# 스폰빵, 유저들의 손으로 만드는 경쟁?
인터넷 방송계에는 흔히 '스폰빵'과 '사비빵'이라고 불리는 용어가 있다. 뒤에 살펴볼 '변형 스폰빵'에 대해 알기 전에 이 부분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스폰빵'은 아프리카 TV에서 활동하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들이 방송에서 하던 대결 방식 중 하나다. 시청자들이 별풍선을 후원하고 대결을 주선한 뒤, 이긴 사람에게 상금 형식으로 후원금을 지급하는 방식의 방송 프로그램으로 볼 수 있다.
전직 프로게이머들이 유저들의 상금을 놓고 겨룬다는 방식은 유행을 끌었다. 2019년에는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유저들이 아프리카TV와 함께 직접 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러한 스폰빵은 BJ와 팬들의 승부욕을 자극하고, 별도의 상금을 부수입으로 챙길 수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런 문화는 조금씩 변질되기 시작했다. <배틀그라운드> BJ들은 자체적으로 '킬내기'라는 규칙을 만들어서, 결과에 따라서 상금을 가르고 있다. 유저들의 후원이 아닌 BJ들의 사비를 각출해 내기를 하기에 이런 방송을 '사비빵'이라 부른다. 오가는 금액은 적게는 수십만 원부터 많게는 수백만 원 단위로 알려졌는데, 이런 방식의 내기 생중계는 모두 법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배틀그라운드>의 사비빵은 수백만 원이 오가는 게임으로 한때 유행했다.
그리고 인터넷방송 일각에서는 도박성 논란이 적지 않은 '변형'이 생겨나고 있다. 이를테면 BJ간의 대결뿐 아니라 공식 e스포츠 경기의 승부 예측을 통해 별풍선 등을 베팅을 한 뒤 결과에 따라 유저들끼리 재화를 나누는 행위 등이 보고되고 있다. BJ의 경기를 모으기 위해 플랫폼의 재화(별풍선)가 쓰이지 않고, 통장에 돈을 모금하는 경우도 발생하며 유저들은 경기 결과에 따라 돈을 나눠 받기도 한다.
실제로 유저와 BJ들 사이에서는 <리그 오브 레전드>와 <배틀그라운드>를 이용한 사비빵, 변형된 스폰빵이 왕왕 이루어지곤 한다. LCK 서머 결승전 등에서도 경기를 방송하면서 별도의 모금을 하고, 승부 예측과 베팅에 따라서 이를 맞춘 쪽이 나눠 갖는 사설 스포츠토토와 같은 방송도 우후죽순 올라왔다 사라지곤 했다.
이에 따라서 변형된 '스폰빵'과 '사비빵'에는 '유사 도박행위'라는 꼬리표가 붙고 있다.
# '스폰빵'과 '사비빵'은 유사 도박행위인가?
일각에서는 이런 스폰빵과 사비빵의 방식이 인터넷방송 생태계에 활력을 줄 뿐 아니라, 실력을 통한 내기이기 때문에 우연에 의한 결괏값을 기대하는 도박과는 차이가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
형법은 '도박'에 대해서 '재물을 걸고 우연한 승패에 의해 그 득실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도박을 결정하는 기준은 '우연성'이다. 그리고 한국인에게 허용되는 도박은 복권, 경마, 경륜, 경정, 강원랜드 출입, 스포츠토토, 청도 소싸움 총 7개뿐이다. 이들 7개 오락은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의 감독 행위를 통해서 관리되며, 그 외의 베팅을 통한 모든 행위는 불법 도박 행위로 규정되어 처벌 대상이 된다.
한국에서 진행되는 모든 '갬블링'은 사감위의 감독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스타크래프트> 방송의 스폰빵처럼 우승자에게 제공하는 후원금은 일종의 대회 상금으로 리그전의 성격을 띠고 있어 이들의 주장과 일부 부합한다. 실제로 원래 의미의 스폰빵은 약간의 논란은 있을지언정 도박이나 승부조작에 대한 논란은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다.
승부 예측 스폰빵은 더 큰 문제다. 현재까지 한국에서 승부 예측을 통한 합법 베팅은 스포츠토토(또는 프로토)를 통해서만 할 수 있다. 때문에 방송을 하는 BJ들도 승부예측을 통한 이익 나눔은 명백한 불법임을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방송은 대체로 암암리에 행해지고 있다. 즉 '토토류'의 스폰빵은 불법 도박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비빵 역시 내기 골프 등의 도박성과 유사해 방송 플랫폼에서도 정책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행위다. 실제 모니터링에서 적발되어 방송 정지 조치를 받은 BJ들도 상당수다. 그러나 적지 않은 BJ들이 정지 기간이 끝난 뒤 다시 복귀해 방송하거나, 다른 방송 플랫폼으로 터전을 옮겨서 진행하거나, 후술할 변형 스폰빵을 방송하고 있어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2008년의 대법원 내기 골프 판례에서 인터넷방송 사비빵을 어떻게 볼지에 관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2002년부터 약 2년 간 남성 네 명은 전국의 골프장을 돌며 내기 골프를 했다. 이들은 핸디캡을 정해 한 타에 50만 원에서 백만 원을 승자에게 주고, 별도로 전반전과 후반전 우승자에게 각각 5백만 원과 천만 원을 상금으로 주는 방식의 자체 규칙을 만들어 30여 차례의 게임을 진행했고, 전체 판돈은 약 8억 원 수준이었다.
대법원은 이 내기 골프에 대해서 도박죄가 맞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골프는 실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긴 해도 실력만으로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힘들다"라며 "경기 결과를 확실히 예측할 수 없고 그 결과를 한쪽이 지배할 수 없을 때는 도박죄가 성립한다"라고 밝혔다.
또 "도박죄를 규정한 것은 정당한 근로에 의하지 않은 재물의 취득을 처벌함으로써 경제에 관한 도덕 법칙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내기 골프를 화투 등의 도박과 달리 취급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판시했다. 관련 법이 개정되지는 않았으므로, 인터넷방송에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돈을 주면 뽑아서 돌려주겠다는 BJ의 '변형 스폰빵'
8월 25일 출시된 넥슨게임즈의 MMORPG <히트2>, 차별화 모델 중 하나로 BJ들에게 프로모션을 일절 지급하지 않는 것을 내세우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 뽑기를 위한 프로모션이 일절 없기 때문에 해당 게임으로 방송하는 BJ들은 뽑기 방송을 진행하며 자체적으로 게임사와 협의되지 않은 '스폰빵'을 진행하고 있다. 자기의 돈을 들이지 않고 고액의 아이템 뽑기를 위해서 시청자들의 후원을 받는다는 명분이다.
게임 방송을 위한 프로모션이 일절 제공되지 않자, BJ들은 '시청자 후원 → 뽑기 → 대가 지급'의 형태로 뽑기 방송을 하고 있다. 이러한 MMORPG 변형 스폰빵의 핵심은 '시청자들이 후원을 가장한 베팅과 이를 통한 당첨금의 현금성 환전'이다. 당첨 방식이 플레이어의 실력이 전혀 포함되지 않은 완전한 우연성의 결과로 도박이라 볼 수도 있다.
그 방식은 이렇다. 확률형 아이템을 뽑는 과정에서 특정한 등급의 아이템이 나오면 입찰한 시청자에게 당첨금을 제공한다. 시청자가 별풍선으로 BJ에게 후원하면, 그는 뽑기 차례에 앞서 입찰을 진행한다. 뽑기 결과, 영웅이나 고대 등급 등의 아이템이 나오면 고시한 당첨금을 제공한다. 이들 프로그램은 외관상 일반적인 게임플레이 방송과 후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시청자에게 베팅이 유도되고 있다.
심지어 몇몇 BJ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상태에서 공개적인 방송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공개 방송에서는 베팅 결과에 따라 수십만 원의 상금을 거머쥔 시청자들의 리스트가 공개되기도 했다.
BJ 당사자들은 도박을 목적으로 한 게 아니라고 하지만, 방식은 다를 바 없다. 29일 <히트2> 뽑기 방송을 진행한 어느 BJ가 공개한 별풍선 개수와 상금을 비교해봤을 때, BJ는 여느 시청자들보다 많은 수익을 챙긴 것으로 보인다.
아프리카TV의 어느 인터넷방송에서 BJ가 뽑기 방송을 진행 중이다. 뽑기 등급과 당첨 금액 등이 안내되고 있다.
이런 행태는 지난해 경찰에 적발된 도박 사이트의 모습과 상당히 유사하다. 지난 2021년 11월, 경찰은 비트코인, 금, 환율 등의 가상자산의 등락에 베팅하게 하고 이를 맞추면 당첨금을 지불하는 일당을 인터넷 도박 사이트 운영 혐의로 검거했다.
그러나 이런 게임방송의 후원 유도를 위한 도박 혐의에 대한 증거를 찾기는 매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라이브 방송을 통한 실시간 모니터링을 제외하면 단속을 할 방법이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이다. 대가성 금전이 오가는 기록도 추적하기 어렵다.
베팅은 BJ 후원이라는 별풍선으로 진행되고, 당첨자 관리는 별도의 기록을 남기지 않으며, 현금 지급도 별도의 계좌를 통해 이체되는 방식이라 하나의 사건에 관한 여러 흔적들의 관련성을 따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금처럼 취급되는 별풍선과 후원을 통해 현금이 오가는, 우연성에 기대하는 형태라는 점은 도박의 정의와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문제는 심각하다.
디스이즈게임이 자문한 변호사는 "게임의 시스템을 이용한 이런 행위는 일종의 사설 도박장을 개설한 것과 같은 혐의를 받을 수 있다. 특히 완벽한 우연의 산물을 이용했고 현금 대가를 지급했다는 점에서는 도박죄 가능성이 높다. 다만 경찰 등에서 수사를 한다면 수익성 여부 등의 증거를 확보함에 있어서 난관이 있을 수 있어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날(29일) 방송 중, 당첨자 리스트가 표로 정리되어 공개됐다
"뽑기랜드 문닫으면 무슨 재미로 봐"라는 시청자의 도네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