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했던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 승부조작이 사실로 밝혀졌다. 한때 열광하며 관전했던 경기가 ‘짜고 한 거짓’이라는 사실에 팬들은 분노하고 있다. 선수관리에 구멍이 뚫리면서 프로게이머의 관리감독과 인성교육 등 e스포츠의 고질적인 문제도 다시 고개를 들었다.
e스포츠 업계에는 <스타크래프트> 리그의 후원사를 구하기 힘들어질지도 모른다는 긴장감마저 감돌고 있다. 프로 스포츠에서 최악의 스캔들로 꼽히는 ‘승부조작’이 터진 <스타크래프트> 리그, 이번 사건으로 드러난 문제점과 현황을 정리해 봤다. /디스이즈게임 이재진 기자
■ 형사재판을 받는 프로게이머, 선수관리 ‘구멍’
프로게이머들에게 돈을 주며 ‘일부러 질 것’을 사주한 프로게이머는 원모 씨와 마모 씨 2명이다. 이들은 직접 불법베팅사이트에 돈을 걸어 배당금도 챙겼다. ‘누가 이길 지’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은 불구속 기소돼 형사 재판을 받게 됐다. 현역 프로게이머가 재판을 받는 초유가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브로커 역할을 한 프로게이머 2명의 공통점은 실력과 성적이 ‘하향세’였다는 것이다. 특히 한때 억대 연봉과 상금을 거머쥐며 e스포츠계를 호령했던 한 프로게이머의 추락은 ‘대체 왜?’라는 의구심까지 들게 만든다. 나쁜 길로 접어든 선수들이 원망스럽지만, 한국e스포츠협회와 프로게임단도 책임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승부조작에 연루된 선수들이 속한 프로게임단의 프론트와 감독은 “우리도 몰랐던 일”이라는 입장이다. 검찰의 수사 결과도 혐의는 없는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몰랐다는 것은 바꿔 말해 선수관리에 ‘구멍’이 났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다.
치열한 순위 경쟁과 명승부를 위한 연습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바른 사회구성원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젊은 선수들을 이끄는 일도 중요하다. 일부 프로게임단과 한국e스포츠협회가 선수관리 소홀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최근 들어 전직 프로게이머들의 범죄가 잊을 만하면 일어나곤 했다.(관련기사: 프로게이머 잇단 범법행위 [원문보기]) 당시에도 프로게이머의 진로 개척과 상담,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는데, 이제는 현직 프로게이머의 범죄까지 벌어졌다.
■ 추락한 신뢰, 리그 후원사 문제로 직결
e스포츠 팬들은 ‘억대 연봉’을 받던 현역 프로게이머가 승부조작에 깊숙히 가담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다. 명예보다 ‘돈’이었냐며 실망감을 드러내는 팬들도 많다.
한국e스포츠협회의 게시판에 글을 올린 한 팬은 “팬들을 이렇게 우롱하다니 실망이다. (그에게) 스타가 돈벌이 말고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그런 사람에게 스타 리그 우승 뱃지가 왜 필요한 걸까”라며 착찹한 심정을 토로했다.
더 큰 문제는 리그의 후원기업(스폰서) 유치다. 16일 검찰이 수사결과 발표가 나오자 거의 모든 매체들이 승부조작 사건을 앞다퉈 보도했다. 일간지와 지상파 뉴스에서도 승부조작을 비중 있게 다루면서 파문은 삽시간에 확산됐다.
지상파 저녁 뉴스와 아침 뉴스에서는 승부조작을 주요 기사로 전했다.
이는 곧 <스타크래프트> 리그와 e스포츠에 대한 불신의 형성으로 이어지기 쉽다. 당분간 후원사 유치를 논의할 때 나쁜 선입견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닥친 것이다. 당장 MBC게임과 온게임넷의 양대 개인리그 결승전을 앞두고 터진 승부조작 사건은 달아올라야 할 리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한 e스포츠 관계자는 “지상파 뉴스까지 크게 보도하면서 잠재적인 후원 기업의 결정권자들도 승부조작을 알게 됐을 가능성이 높다. 당분간 리그 스폰서를 유치할 때 어려움을 겪게 될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금융권에서 <스타크래프트> 리그를 후원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신뢰’ 문제는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오랜 전통의 ‘스타 리그’를 운영해 온 온게임넷은 더욱 난감한 상황이다. 승부조작의 브로커 원모 씨가 온게임넷의 프로게임단 소속 선수였기 때문이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온게임넷은 17일 저녁 공식 사과문을 게재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이어서 18일에는 프로게임단 스파키즈의 단장을 해임하고 감독을 직무 정지시키겠다고 발표하며 관리 소홀의 책임을 물었다.
온게임넷은 17일 프로리그 방송에 앞서 사과문을 내보냈다.
■ 스포츠계에서 회복된 사례가 드문 승부조작
프로 스포츠에서 승부조작은 치명적이다. 사태를 아무리 잘 수습해도 회복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고, 예전처럼 회복된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06년 발생한 이탈리아 프로축구 리그 ‘세리에A’의 승부조작 스캔들이다. 당시 승부조작에 연루된 우승팀 유벤투스는 우승컵을 박탈 당하고 하위 리그로 강등됐다. 하지만 강경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세리에A는 좀처럼 과거의 인기와 명성을 회복하지 못 하고 있다.
현재 많은 e스포츠 팬들은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이 최대한 투명하고, 확실하게 마무리되기를 바라고 있다.
한 e스포츠 커뮤니티의 팬은 “10년 공든 탑이 하루 아침에 무너질까 우려된다면, 한국e스포츠협회와 프로게임단이 지금부터라도 투명하고 공정하게 일을 처리해야 할 것”이라며 확실한 변화를 주문했다.
‘신뢰’가 중요한 금융권 후원사들이 있기 때문에 승부조작 문제는 더욱 민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