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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한국 패키지게임 잔혹사…’100만 장 시대’ 이전엔 무슨 일이?

불법복제, 잡지 부록, 온라인게임을 거쳐 오늘까지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방승언(톤톤) 2023-07-21 15:33:41

“<데이브 더 다이버>, 누적 100만 장 판매 돌파.”


지난 7월 11일의 기록입니다. 인디 규모 게임(엄밀히 ‘인디 게임’은 아닙니다)으로서 국내외를 통틀어 인상적인 판매량입니다. 스팀 플랫폼 데이터 이용해 판매량을 추측하는 스팀DB, 등 사이트에 따르면 지금까지 전체 판매량은 200만을 넘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데이브 더 다이버> 이전에도 최근에는 세계적으로 결실을 본 한국 PC 패키지 게임이 적지 않습니다. 이는 스팀 플랫폼이 세계적으로 보편화함에 따라 국내 게임들도 세계 무대의 문을 두드리기가 이전에 비해 월등히 쉬워진 결과 풀이됩니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스팀 이전의 한국 PC 패키지 게임들은 대부분 고전을 면치 못했던 편입니다. 해외로 나갈 수는 없는 시대에 국내 시장만을 봐야 했죠. 그러나 저작권 인식 부족, 과도했던 ‘부록 CD’ 판촉, 인터넷의 보급, MMORPG 전성기의 도래 등 다양한 암초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지금과는 사뭇 달랐던 과거의 패키지 시장 상황을 몇 가지 예시를 통해 돌아봤습니다.

 

 

 

 

# 불법 복제의 그늘

 

1995년 출시한 <다크사이드 스토리>는 실종된 아버지를 찾아 나선 주인공 수희가 도시를 떠돌며 온갖 인물들과 충돌하는 내용의 ARPG 게임입니다. RPG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를 통해 대성공을 거둬 입지를 다진 손노리 팀이 이전 회사 ‘소프트라이’를 떠나 ‘데니암’에 합류한 뒤 만든 작품입니다.

 

풍성한 게임 볼륨, 손노리식 유머 감각, 깊이 있는 전투, 비선형적 진행 방식, 히든 콘텐츠 등 오늘의 액션 게임에 요구되는 여러 콘텐츠를 이미 구현하며 크게 모자람 없는 게임성을 자랑하는 타이틀로 꼽힙니다.

 

그러나 이 시기 국내외 게임시장의 난제였던 불법복제 문제를 <다크사이드 스토리> 역시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출시 전에 이미 게임이 유출, 복제되었고, 타격을 입은 데니암은 수개월 만에 PC게임 개발사업을 아예 포기하기에 이릅니다. 손노리의 개발자들도 새 회사를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다크사이드 스토리>와 전작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모두 당시로선 꽤 보편적이었던 불법복제 방지 장치가 탑재되어 있었습니다. 게임 중 등장하는 ‘P맨’이 게임 패키지에 동봉된 암호표를 보아야만 답할 수 있는 질문을 했던 것인데요. 하지만 질문이 나오지 않는 크랙 버전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결국 문제를 막을 순 없었습니다.

 

 

저작권 인식이 부족했던 과거 한국 게임시장에서 불법복제 문제는 다양한 형태로 이어졌습니다. 먼저 복사방지 기술이 아직 불완전했던 1990년대에는 물리적 복제 제품들이 비교적 쉽게 생산돼 유통될 수 있었습니다. PC통신 공간에서 암암리에 게임들이 공유되기도 했습니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 전국에 고속 인터넷이 보급되자 불법 복제 게임은 이전과 다른 속도와 범위로 대폭 확산하기 시작합니다.

 

수백 MB에 달하는(당시로서는 큰 용량입니다) CD-ROM 이미지를 이때부터 수 시간 만에 다운로드 받을 수 있게 되었고, 해적판 소프트웨어, 미디어를 공유하는 ‘와레즈’ 사이트도 범람했습니다. 그 결과 정품 구매보다 불법 다운로드를 선호하는 현상이 크게 두드려졌습니다.

 

이후 소프트웨어 복사 방지 기술은 점차 발전해 나갔지만, 이를 무력화하는 기술 역시 함께 발전하면서 큰 효력을 발휘하지는 못했습니다. 전문적으로 복사 방지를 우회하는 ‘크랙 집단’도 존재했고, 게임 출시 후 불과 몇 시간 만에 크랙 소프트웨어가 유포되는 사례도 적지 않았습니다.

 

와레즈 이후에는 토런트 등 P2P를 이용한 불법 공유가 성행했다. 이를 위한 대표적 사이트로 '파이럿 베이'가 있다.

 

 

# <화이트데이>는 불법 복제의 대표 희생양일까?

 

여기서 불법복제에 희생된 대표적 국산 게임으로 종종 언급되는 <화이트데이> 사례를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화이트데이>는 수작 호러물로 평가받습니다. 학교라는 보편적 공간을 십분 활용한 설정과 스토리, 다양한 퍼즐 요소와 보스전 등 호평할 요소가 많습니다. 이 게임이 2001년 출시 당시 각종 와레즈 사이트에 활발히 공유된 것은 사실입니다. 이 때문에 이원술 손노리 대표는 국내 게임사 최초로 게임 불법 배포자를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화이트데이>의 실패가 오로지 불법복제 때문이었다는 판단에는 다소 이론의 여지가 있습니다.

 

우선 이 대표에 따르면 <화이트데이>의 ‘공식 판매량’은 8,000장 이하입니다. 그러나 이 대표는 게임을 불법 다운로드한 이용자가 그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추정하는데, 그 근거는 출시 직후 손노리가 배포한 게임 패치의 다운로드 횟수입니다.

 

이 대표는 “서버에 기록된 패치 다운로드 횟수는 발매 후 1달도 채 되지 않아 15만 건에 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8,000여 장이라는 초라한 숫자와 달리 실제 (불법) 이용자는 더 많았다는 추론입니다.

 

하지만 그 진위가 분명하진 않습니다. 온라인에 아카이빙 된 실제 패치 게시글의 2001년 11월 조회수를 살펴보면, 도합 3만 건 정도에 그치기 때문입니다. 이 대표가 말한 ‘15만 회’라는 수치가 확인되는 것은 2005년 6월에 이르러서입니다. 이때 기준으로 ‘<화이트데이> 1.15 패치’의 조회수는 15만 회에 달합니다.

 

2001년 작 <화이트데이>

 

 

# ‘잡지 부록’ 판촉과 ‘쥬얼 CD’

 

그렇다면 2005년에는 <화이트데이> ‘불법 다운로더’의 숫자가 정말로 수만 명 단위에 이르렀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화이트데이>는 2002년부터 ‘잡지 부록’ 계약을 맺었고, ‘쥬얼 CD’로도 생산됐기 때문입니다.

 

‘잡지 부록’은 국내 패키지 게임시장의 위축을 낳았던 또 하나의 주된 요소로 꼽힙니다. 게임 잡지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최신 게임 CD를 부록으로 제공해 독자를 유혹하는 판촉 경쟁도 과열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출시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신작들마저 부록으로 제공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당연히 소비자 사이에서는 신작 구매를 주저하는 문화가 형성되었습니다. 정가를 주고 구매한 신작 게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훨씬 저렴한 게임잡지에 포함되는 일이 부지기수였으니까요.

 

이렇듯 잡지 부록이 소비자의 구매 의욕 저하로 패키지 시장에 타격을 입힌 원인 중 하나였다면, '쥬얼 CD' 패키지는 게임사들의 숨통을 트여 줬던 하나의 자구책이었습니다.

 

쥬얼 CD는 간단한 종이 표지와 플라스틱 CD 케이스로 포장을 최소화해 제작비를 줄인 ‘염가판’ 패키징 방식이었습니다. 이는 특히 출시 후 인기가 줄어든 게임들의 재고 처리와 추가 판매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만나볼 수 있으니 일종의 '윈-윈'이었던 셈입니다.

 

한편 미니멀한 패키징만큼이나 유통 절차 역시 매우 간소했습니다. 당시 업계인들은 ‘트럭 채로 용산 상가에 살포되는 식이었다’고 술회합니다. 이 때문에 판매량 추적 등은 원천적으로 불가했고, 따라서 <화이트데이>의 진정한 판매량은 영원히 미궁으로 남게 됐습니다.

 

'쥬얼 CD'는 최소한의 패키징으로 제작 비용을 줄인 '염가판'이었다.

 

 

# 온라인게임 시대의 도래

 

한편 이원술 대표는 <화이트데이>의 불법복제 피해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하면서도 “손노리가 실패한 것은 불법복제 때문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원인’은 무엇일까요? 이 대표는 “패키지 게임에 대한 고집으로 시장 상황에 따른 사업전환을 발 빠르게 못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이것은 경영자로서의 실패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2000년대 한국 게임시장에 일어났던 대규모의 ‘패러다임 전환’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입니다. PC와 고속 인터넷의 보급, PC방의 유행 등이 맞물리면서, 국내 게임시장은 PC게임 중심에서 온라인게임 중심으로 빠르게 전환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넥슨이 1996년 개발한 세계 최초의 그래픽 온라인게임 <바람의 나라>, 그리고 1998년 엔씨소프트가 내놓은 <리니지>는 모두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에 들어 폭발적으로 성장합니다. <바람의 나라>는 1999년 동시 접속자 12만 명을 기록했고, <리니지>의 경우 2021년 12월 30만 명을 넘겼습니다.

 

그 결과 2002년 게임백서에 따르면 한국 온라인게임의 총매출액은 2,682억 원으로 전체 게임시장의 26.9%를 차지하면서, 1,939억 원으로 19.4%를 차지한 PC게임을 이미 앞지르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이 시기 많은 기업이 온라인게임시장 진출을 천명했습니다. 대표적 예시로 <창세기전> 시리즈로 국내 PC게임계에서 입지를 다졌던 소프트맥스는 미완성 게임 <마그나카르타>로 시장에 실망을 안긴 뒤 체질 전환을 천명, 2003년 <4 LEAF>를 출시한 바 있습니다.

 

이후 불법 복제 걱정이 없을뿐더러 PC 대비 막대한 수익을 내는 ‘온라인게임’은 한국 게임 씬의 메이저로 자리매김합니다. ‘한국 PC 패키지 게임’은 그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세계 최초의 그래픽 온라인게임 <바람의 나라>는 아직도 명맥을 잇고 있다.

 

 

# 스팀 플랫폼의 등장, 그리고 도전

 

밸브가 2003년 자사 게임들의 통합 런처로서 서비스하기 시작한 스팀 플랫폼은 2005년 타사 게임의 입점과 판매를 시작하면서 지속 성장했고, 2010년대 중반부터는 월간 활성 유저 1,000만 명을 넘기면서 명실공히 세계적인 PC게임 플랫폼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밸브에게 제공하는 판매 수수로 30%를 제외하면 유통비용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 스팀 플랫폼은 전 세계 게임사들이 글로벌 무대로 진출할 수 있는 쉬운 통로가 되어줬습니다.

 

지금이야 '국내에서 안 되면 세계를 노리는' 전략이 유효하지만, 물리 패키지를 판매하던 시절에 이는 대형 게임사도 쉽게 꿈꾸기 힘든 선택지였습니다. 현지에서의 제작, 유통, 마케팅을 모두 담당할 퍼블리셔를 찾는 일부터 쉽지 않았고, 설령 계약에 성공한다 치더라도 막대한 중간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단한 절차 없이 '다이렉트'로 해외 게이머들에 게임을 전달할 수 있는 스팀은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게임사들의 '유통 혁신'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스팀 '개방성'은 심지어 2017년 한차례 더 강화됩니다. 본래 유저들의 정기 투표로 신작 게임의 스팀 입점 여부를 결정하는 ‘그린라이트’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이마저 폐지되면서 스팀의 문턱은 더 낮아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같은 해인 2017년, 스팀을 통한 국산 게임의 세계 진출의 가능성을 여실히 증명하는 전례 없는 타이틀이 등장합니다. 크래프톤(당시 블루홀)의 <배틀그라운드>는 이전까지의 한국 게임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대기록을 여럿 달성했고, 스팀 플랫폼 상에서 세운 ‘최대 동시 접속자 수’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은 아성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후 크고 작은 국산 게임들이 스팀을 통해 세계 시장의 문을 두드리면서, 이제 한국 PC게임들은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100만 시대’에 도달했습니다.

 

액션 로그라이크 <스컬: 더 히어로 슬레이어>는 국내 인디 최초의 100만 장 판매 게임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사우스포 게임즈는 ‘인디 발굴’에 나선 네오위즈와 손잡고 2020년 <스컬: 더 히어로 슬레이어>를 출시,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한국 인디 게임 사상 최초 100만 장 판매의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프로젝트 문은 경우 별도의 퍼블리셔 계약 없이도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을 통해 출시 5년 만인 올해 초 다시금 100만 장 판매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올해 넥슨의 화제작 <데이브 더 다이버>는 아마도 국내 ‘싱글플레이’ 패키지 게임 중 가장 빠르게 판매량이 상승한 게임일 듯합니다. 지난해 10월 얼리억세스를 시작한 이래 지난 7월 100만 장 판매를 발표했습니다.

 

이들 게임은 3만 원 이하의 소규모 게임으로서 판매량에서 더 유리했던 측면이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올해 출시 예정인 네오위즈의 신작 소울라이크 <P의 거짓>의 예상 성적에 귀추가 주목됩니다. Xbox 게임 패스 ‘데이원’ 입점, 풀 프라이스에 가까운 6만 4,800원의 가격, 후반기 여타 대작들의 출시 일정 등 난관은 많은 편입니다.

 

하지만 사전에 공개한 티저 영상, 게임플레이 데모 등을 통해 장르 팬들의 기대를 상당히 끌어내고 있습니다. 국산 풀프라이스 싱글 게임 최초의 ‘100만 게임’이 될 수 있을까요? 응원과 기대를 함께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