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보기] 2023년 여름 코믹마켓(C102) 포토투어
# '한국' 게임 기자가 왠 코미케?
사실 저는 '게임 기자' 명함을 달고 활동한지 꽤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코믹마켓'(コミックマーケット, 이하 코미케)과의 인연은 거의 없다시피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코미케는 일본 서브컬처 문화의 성지, 2차 창작의 보고라고 불리지만 '게임', 특히 '한국 게임'과는 인연이 없다시피한 행사이기 때문입니다.
옛날 옛적(그래봐야 한 15~20여년 전) 그라비티의 <라그나로크 온라인>이나 <팡야> 같은 게임이 일본에서 선풍적으로 인기를 얻었을 때는 코미케에서도 한국 게임 관련 부스가 많았다고는 하더군요. 하지만 정말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 '한국인'인 제 입장에서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서나 보던 '먼 나라' 이야기였습니다.
코미케가 열리는 일본 도쿄 빅사이트의 전경이다
그런데 지난 해 즈음부터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선봉장은 넥슨게임즈의 <블루 아카이브> 였습니다. 이 게임이 일본에서 트위터 트랜드를 주도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자연스럽게 2차 창작이 늘어났고, 이는 그대로 코미케에도 열풍으로 이어졌다는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한 열풍이 아니라 얼마 전에는 코미케에서도 인기 있는 콘텐츠만 받을 수 있다는 '장르 코드'를 받았다는 소식이 이어졌습니다.
이 게임을 시작으로 <가디언테일즈>, <승리의 여신: 니케> 등 다양한 한국 게임, 한국 콘텐츠의 참여가 늘어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드디어 저도 당당하게 "코미케 다녀오겠습니다" 를 외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다녀온 이번 여름 코미케(C102)는 상상 이상으로 '한국의 존재감'이 높았습니다. 서브컬처 문화를 주도하는 일본, 그 일본에서도 상징적인 행사인 코미케, 여기에 '한국'이 한 축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블루 아카이브, 그리고 한국 콘텐츠의 인기, 결코 허언이 아니다
먼저 이야기를 해볼 것은 역시나 <블루 아카이브>입니다. 코미케, 아니 일본에서 느껴지는 <블루 아카이브>의 인기는 결코 과장이나 허언이 아니었습니다. 코미케만을 한정해서 이야기하자면, 기업 차원에서 광고나 관련 상품, 굿즈들의 판매가 활발한 것은 둘 째 치고, 무엇보다 일반 유저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활동 규모가 엄청났습니다.
앞에서 잠깐 말했지만, 코미케는 굉장히 많은 인기를 얻어서 2차 창작이 활발한 콘텐츠에 한해 '장르 코드'를 부여합니다. 이번 C102에서 장르 코드를 부여 받은 '단독 콘텐츠'는 채 10개가 되지 않으며, 설사 장르 코드를 부여 받았더라도 채 50개가 되지 않는 동인 서클만이 참여할 정도로 소위 '인기가 한 풀 꺾인' 콘텐츠 또한 존재합니다.
그런데 <블루 아카이브>는 장르 코드를 부여 받지 않았음에도 500여 서클이 관련 회지와 굿즈를 낼 정도로 그 기세가 엄청났습니다. 간단하게 말해 이건 일본에서 굴지의 인기를 얻고 있는 <페이트/그랜드 오더>를 포함한 '타입문'(TYPE-MOON) 보다도 서클의 참여가 많은 것입니다. 이런 <블루 아카이브>의 기세에 코미케측은 다음 겨울 코미케(C103, 12월 개최 예정)부터 이 게임에 단독 장르 코드를 부여할 예정입니다.
<블루 아카이브> 하나만 잘 나가는 것이라면 사실 그냥 "블루 아카이브가 킹왕짱입니다" 한 마디로 정리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코미케 현장에서는 <블루 아카이브> 외에도 다양한 한국 게임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시프트업이 개발한 <승리의 여신: 니케> 또한 10개가 넘는 서클이 참여해서 다양한 동인 회지와 굿즈를 판매했습니다. 특히 이 게임은 동인 부스 자체의 참가도 눈에 띄었지만, 기업이 직접 참여하는 '공식' 기업관에서 굉장히 독특한 방식의 이벤트를 진행해 많은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밖에도 굉장히 마니악(?)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 성인 전용 모바일게임 <라스트오리진> 같은 게임도 이번 코미케에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관련 사진을 보여드리고 싶으나, 대놓고 R-18(성인지) 등급의 이미지이기 때문에 기사에 첨부 못하는 것은 양해해주세요)
게다가 긍정적인 것은 단순히 이들 한국 게임의 코미케 참여가 단발성이 아니라, 프로도 겸하는 유명 작가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낼 정도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국내에서는 '일본 시장'을 타겟으로 한 다양한 서브컬처 게임이 만들어질 예정입니다. 또 기존 작품들의 일본 서비스도 하나 둘 착착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런 만큼 '더 많은 한국 콘텐츠를 코미케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상상은, 굉장히 실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느껴집니다.
# 한국 아마추어 작가들의 참여도 활발
단순히 '콘텐츠' 측면에서만 한국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번 여름 코미케에서는 참여 서클 측면에서 봤을 때도 '한국 작가들의 참여'가 굉장히 활발했던 것이 또 눈에 띄었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한국보다는 일본에서 인정 받으며 활동하던 동인, 아마추어 작가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과거 서울 코믹월드 같은 국내 행사에서만 활동하던 작가들. 그리고 신인 작가들의 '일본 진출' 또한 크게 늘어난 것입니다.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최근에는 트위터와 각종 게임 커뮤니티를 통해 작가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것이 이전보다는 다소 쉬워졌습니다. 그런 만큼 '일본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한국 작가들을 코미케 참여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는 것인데요.
실제로 저 또한 이번 행사에서 '코미케에 처음 참여한' 한국 작가들을 다수 만날 수 있었습니다. 또 동시에 이런 작가들의 '코미케 참여'를 돕는 개인, 혹은 조직(팀) 단위의 서포터들이 다수 활동 중이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소비자' 입장에서 뿐만 아니라, 어떤 의미로는 '생산자'의 입장에서도 '일본 최대의 서브컬처 콘텐츠 행사' 중 하나인 코미케에서 '한국'의 존재감은 나날히 늘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국적을 떠나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2차 창작만으로' 작가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서브컬처 콘텐츠, 그리고 게임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