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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영화작가 지망생, 페르시아의 왕자가 되다

원작자 조던 매크너의 개발 비화, GDC 2011 강연

정우철(음마교주) 2011-03-03 23:13:12

1990년대 전 세계를 휩쓸었던 게임 <페르시아의 왕자>를 기억하는가? 우리는 당시 기존 게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부드러운 액션과 60분 안에 미로 같은 궁전을 지나 공주를 구출해야 하는 긴장감과 묘미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 같은 재미는 이제 명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돼 있다. 이 게임을 만든 개발자는 단 한 명. 바로 GDC 2011에서 강연한 조던 매크너(Jordan Mecher)다. 당시 기술로는 혁신적인 모습을 보여준 개발 비화는 어떤 것이 있을가?

 

GDC 2011 고전게임의 재평가 섹션에서 원작 개발자인 그가 <페르시아의 왕자>를 들고 직접 등장했다. /샌프란시스코(미국)=디스이즈게임 정우철 기자

 


‘페르시아의 왕자’ 조던 메크너도 이제 어엿한 중년이 됐다.

 

■ 그는 원래 게임 개발자가 아니었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조던 매크너는 게임 개발자가 아니었다. 할리우드에서 스타 작가를 꿈꾸는 수많은 지망생 중 하나로 <페르시아의 왕자>를 개발하기 직전까지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물론 게임을 개발해 보고 싶다는 욕구는 있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가 처음 컴퓨터를 접한 것은 1979년 선물로 받은 애플 II였다.

 

5.25 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사용하던 애플 II.

 

그는 생각해 보면 당시 애플 II를 선물로 받았을 때부터 내 인생은 바뀌어 있었다. 물론 그때는 이 기계로 내가 게임을 만들지 전혀 몰랐지만 말이다고 회상했다.

 

1984년, 그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컴퓨터 게임을 개발하는 데, 그 게임이 바로 <가라데카>였다. 이 게임은 <페르시아의 왕자>를 만드는 데 가장 큰 영감을 준 게임이기도 하다. 당시 유행하던 또 하나의 게임 <로드런너>에서는 미로 속에서 퍼즐을 풀어 나가는 게임 디자인을 떠올렸다.

 

그가 처음 구상한 <페르시아의 왕자>는 사실 <가라데카> <로드런너>를 합쳐 놓은 듯한 콘셉트의 게임이었다. 1985년 여름, 대학을 졸업하면서 <가라테카>의 퍼블리셔 브로드번드 소프트를 찾아간 그는 게임을 만들겠다고 제안했고, 이듬해인 1986년부터 개발에 착수했다.

 

당시 빌보드 컴퓨터 게임 차트를 석권했던 <가라데카>.

 

1985년 여름, 대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의 모습.

 

 

■ <페르시아의 왕자>에 영감을 준 것들

<페르시아의 왕자>를 개발하는 데 영감을 준 콘텐츠는 다양하다. <가라테카>를 통해 부드러운 액션과 공주를 구출하는 영웅의 이야기를, 영화 <인디아나 존스: 레이더스>를 보고 어드벤처를, 영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을 보고 페르시아라는 배경을 떠올렸다.

 

 

조던 매크너는 내가 본 영화와 즐긴 게임에서 느꼈던 흥분과 재미를 내가 만드는 게임에 넣고 싶었다. 내가 무슨 게임을 만들어야 할지, 어떤 게임을 개발하기를 원했는지, 내가 어떤 경험을 주고자 했는지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퍼블리셔였던 브로드번드는 <가라데카>의 속편을 만들기 원했지만, 그는 새로운 IP(지적재산권)를 만들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던 게임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구상을 하기 시작했다.

 

 

 

■ 프레임 단위의 표현을 생각하다

 

우선 부드러운 캐릭터의 동작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했다. 지금은 모션캡처 등의 기술을 이용할 수 있지만 1980년대에는 UFO에서나 배울 수 있을 기술이었다. 그가 착안한 방법은 로토스코프’로 영화에서 프레임 단위로 촬영한 영상을 연속적으로 보여주는 기법이었다.

 

 

조던 메크너는 자기 자신이나 형제들에게 게임에서 나올 액션을 취하게 하고 그것을 녹화해 프레임 단위로 컷을 나눠서 작업을 진행했다. 첫 촬영을 하고 나서 테스트 버전의 애니메이션을 만들기까지 3개월이 걸렸다.

 

모션캡처가 없었던 80년대의 게임은 만드는 데 손이 많이 갔다.

 

다음 작업은 판자로만 이루어진 던전을 만드는 일이었다. <페르시아의 왕자>는 알다시피 모든 길이 판자 단위로 만들어져 있다. 이는 게임 개발 초보였던 그가 던전의 모듈 디자인을 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이후 판자식 미로를 만들어 연결해 애니메이션과 합쳐서 테스트한 후, 레벨 에디터를 만들어 던전을 만드는 데까지 8개월이 필요했다. 문제는 이후부터가 실제로 게임을 만들어야 하는 과정이라는 점이었다.

 

 

미로에 적용할 다양한 함정을 생각하고 이를 피하는 움직임을 다시 촬영해 프레임 단위로 구성하고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과정은 긴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그런데 그때, 그의 앞에 인생의 선택지가 놓이게 된다.

 

 

 

■ 할리우드에서의 부름과 허비한 시간들

 

당시 그는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과 동시에 영화 시나리오 작업도 하고 있었다. 개발을 시작한 지 9개월이 지난 1987 5월, 할리우드 에이전트로부터 자신의 시나리오가 채택됐다는 연락이 왔다.

 

그는 당시만 해도 제작자와 감독이 나를 보자고 해서 금방이라도 영화가 만들어질 줄 알았다. 이후 8개월 동안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작업했지만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물론 그동안 게임 개발은 완전히 잊고 있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영화 시나리오 작업이 무산된 이후 그는 자신이 8개월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을 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게임을 만들기 시작한 지 벌서 17개월이 지났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17개월 동안 한 일이라고는 게임을 이제 만들 수 있도록 준비한 기본 작업뿐이었다.

 

조던 메크너는 이후 3개월 동안 게임을 제작하는 데 최선을 다했고, 개발을 시작한 지 2년 만인 1988 8월이 되자 게임의 기본적인 형태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4개월 동안 레벨 10부터 50까지 디자인을 만든 상태에서 게임에 전투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 정적이면서도 동적인 전투와 모험의 적용

 

조던 메크너가 생각한 <페르시아의 왕자> 전투의 기본은 펜싱이었다. 그리고 영화 시나리오 작가답게 영화적인 발상을 게임에 접목했다. 그가 게임에 적용할 전투의 영감을 얻은 것은 <로빈훗의 모험>이라는 영화였다.

 

그 영화에서는 서로의 칼을 위아래로 빠르게 휘두르며 공격과 수비를 하고, 그 액션이 간단하면서도 화려하게 표현됐다. 그것을 게임에 적용했다. 물론 실제 동작을 영상으로 촬영하고, 이를 다시 프레임 단위로 구분하는 작업을 거쳤다.

 

 

전투까지 적용하면서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인디아나존스: 레이더스>에서 봤던 모험이라는 콘셉트의 추가였다. 이를 위해 점프와 매달리기 등이 연결되는 레벨 디자인을 최종적으로 손보면서 게임은 완성을 눈앞에 두게 됐다.

 

그때가 1989 5, 개발을 시작한 지 33개월째였다. 게임에 들어갈 음악을 만들고 엔딩 장면을 구상하면 개발도 끝낼 수 있었다. 2개월 만에 구상했던 엔딩을 적용하고 최종 버전을 만들어 냈다. 이제 발매만 남아 있었다.

 

 

 

■ <페르시아의 왕자>의 첫 판매량은 84

 

<페르시아의 왕자>의 첫 버전은 애플 II로 발매됐다. 간단하면서도 화려한 전투, 다양한 난이도의 퍼즐 같은 미로, 실제 움직임과 같은 캐릭터 애니메이션이라는 3개의 특징으로 명작에 남은 고전게임의 최종 판매량은 84장에 불과했다.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당시 애플 II의 사양에서는 저화질의 움직임을 보였고, 음악은 잡음이 섞여 제구실을 못했다. 그리고 90년도는 게임 시장이 애플 II에서 IBM 호환 기종, 16비트 PC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었다.

 

<페르시아의 왕자>가 빛을 본 것도 바로 PC 버전이 등장한 1990 5월 이후였다. PC 버전을 만들기 위해 화질과 애니메이션, 음악의 질을 높였다. 그 결과, 유저들의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게임 개발을 시작한 지 4년 만의 일이었다.

 

대부분의 게이머가 기억하는 <페르시아의 왕자>는 1990년에 나왔다.

 

이후 맥(MAC) 버전과 새로운 마케팅의 적용, 해외 버전 라이선싱 등을 통해 1992년 이후 승승장구했고, 시리즈가 이어지면서 3D 게임으로도 개발됐다. 물론 영화로도 제작되면서 조던 메크너의 또 다른 꿈도 이루어졌다.

 

만약 개발 과정에서 할리우드의 시나리오가 영화로 제작됐다면, 또는 애플 II 버전이 실패하면서 포기했다면? 아마도 우리는 지금도 <페르시아의 왕자>가 어떤 게임인지 모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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