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 시간(자정~오전 6시) 청소년의 게임 이용을 제한하고 수면권을 보장하자는 취지로 발의된 청소년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 이른바 ‘셧다운 제도’가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둔 가운데 법조계, 학계, 게임 개발자는 물론 학생과 학부모가 참여해 셧다운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27일 오후 서울 홍대 상상마당에서는 문화연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주최로 셧다운 제도의 위헌성과 이중 규제의 문제점 및 실효성을 점검하기 위한 ‘셧다운 제도에 대한 제언’ 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에는 이병찬 변호사, 아주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김민규 교수, 게임 개발자 김종득 씨를 비롯해 셧다운 제도의 대상이 될 학생, 게임 과몰입 증상의 자녀를 둔 학부모가 참석해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셧다운의 부당함과 문제점을 이야기했다.
■ “셧다운, 헌법적 문제점과 위헌성 짙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이병찬 변호사는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 예방과 방지는 중요하지만, 추진 중인 셧다운제는 헌법적 관점에서 상당히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첫 번째 근거는 청소년의 게임 할 권리 및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권 침해다. 셧다운제가 시행되면 0시부터 6시까지 온라인 게임을 못하게 되는데, 이는 청소년들의 기본권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게임을 할 권리는 헌법에서 규정한 건 아니지만, 국민의 기본권인 행복추구권에서 일반적 행동 자유권과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권에 포함될 수 있다는 논리다.
두 번째 근거는 국내 온라인게임 업체 직업선택 자유와 평등권 침해다. 각 업체는 셧다운제 시행 후 야간에 청소년에게 게임을 서비스할 수 없으므로 뜻대로 서비스할 수 없는 직업선택의 자유에 제한이 발생한다.
또한 네트워크 기능이 없는 패키지 게임은 제한 없이 플레이가 가능해 온라인게임이 차별받는 것은 물론이고, 국내 업체에만 셧다운제가 적용되고 해외 업체에는 적용되지 않는 평등권 침해가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세 번째는 부모의 교육권 침해다. 부모는 자신의 인생-사회-교육관에 따라 자녀를 자유롭게 교육할 수 있는 권리를 갖지만, 셧다운제가 시행되면 자녀의 활동에 부모 대신 국가 권력이 개입해 자유롭게 교육권을 행사할 권리를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병찬 변호사는 “법적 규제는 최후의 수단이다. 헤겔은 ‘역사의 발전이란 곧 자유의 확대 과정’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역사의 발전을 부정하고 과거로 회귀하려 한다. 기성세대에게 낯선 미디어라고 해서 확증 없이 사회적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해 억압하면 풍요로운 미래는 기대할 수 없다. 청소년은 돈-자본-투표권이 없는 집단으로 의견을 개진할 기회가 차단돼 있는데 이번 법안에 청소년의 의견이 얼마나 반영됐는지 의문이다”고 밝혔다.
이어서 그는 “어른들이 솔직하지 못하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공부 안 하면 일찍 재우고 게임으로 싸우기 싫은 거다. 게다가 언제부턴가 공부 이야긴 빠지고 수면권만 부각되고 있다. 어른은 아이들이 기계적으로 크길 원한다. 보호대상이고 의사 결정 능력이 부족하니 이대로 크라는 얘기인데 이건 폭력이다. 자신들이 못하고 있는 걸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거다. 어른들의 욕심으로 아이들을 조종하려는 게 이번 셧다운제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 “실효성 없다. 게임 이용과 지도 방법이 교육돼야”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김민규 교수는 “셧다운제는 다양한 회피 수단이 존재해 실효성이 상당히 낮기 때문에 법적 제재보다 게임 이용 지도에 대한 부모의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한국입법학회에서 조사된 바에 따르면 학부모의 88%는 “자녀의 게임 이용을 지도하고 있다”고 응답했지만 청소년은 62%만이 “지도를 받고 있다”고 답했다. 부모가 생각하는 지도와 자녀가 느끼는 지도에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게임 중독이라는 역기능에만 몰입돼 있을 뿐 게임 이용과 지도 방법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김민규 교수는 “법적 제재로 인해 부모가 스스로 자녀의 생활에 대한 관리와 지도를 포기하고 법에 의존하게 되고 청소년은 법을 피하기 위한 다양한 수단 개발에 관심을 갖게 되며, 기업은 법적 규제의 범위만 유지해 발전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법적인 규제보다 부모와 자녀의 소통을 바탕으로 한 게임 이용 문화를 만들고 이용에 대한 이해와 지도 및 관리법에 대한 이해가 널리 교육되고 공유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 단순하게 셧다운을 법제화할 게 아니라 그 문제를 어떤 식으로 지도하고 뭐가 필요한지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끝으로 김민규 교수는 “게임의 역기능 해소를 위한 여러 사업들을 문화부가 2002년부터 방향성을 잡고 준비했지만 힘이 미약했다. 예산문제도 걸렸고 지속적으로 꾸준히 진행돼야 효과가 나오는데 들쑥날쑥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갖지 못하고 업계도 적극적이지 못했다. 이번 계기를 통해 새롭게 논의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 “게임, 첨단문화산업에서 사회악으로 치부됐다”
게임 개발자이자 강사인 김종득 씨는 “셧다운제가 인터넷 중독을 게임과 결부시키는 것은 물론 근거 없는 유해 주장과 졸속 법 추진으로 인해 첨단문화산업으로 인정받던 게임이 사회악으로 치부되고 게임을 즐기는 아이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몰려가고 있다. 15년 동안 유해물을 만들었다는 생각에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이라고 밝했다.
인터넷 중독과 게임 중독은 엄연히 다른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셧다운제를 찬성하는 이들은 청소년의 인터넷 과몰입 데이터를 갖고 온라인게임을 제한시키려는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게임의 유해성을 주장하지만,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종득 씨는 “2000년 중반부터 과몰입에 대해 많은 논의를 해 왔다. 그동안의 여러 일들이 경고였는데 업계가 가볍게 생각해 지금의 문제가 터진 듯하다. 지금이라도 기금을 마련하고 치료예방센터를 만드는 것과 게임 시스템 자체에서 적극 도입하는 것도 고민하는 등 더 자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청소년에게 게임을 즐길 권리를 달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활동 중인 청소년 검은빛(닉네임)은 “셧다운은 청소년에게 유일하게 주어진 문화를 즐길 권리를 박탈하고 있다. 그리고 셧다운 제도로 인해 울컥해진 감정은 두려움으로 바뀌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청소년들에게 게임은 ‘시간의 제약이 적고’, ‘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고’, ‘경제적 부담이 적은’ 3가지 여건을 갖춘 유일한 문화지만 셧다운 제도로 인해 이마저도 빼앗길 처지에 놓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 초중고 청소년들은 자정 무렵에 귀가하는 게 예삿일이 됐지만 그들이 잠깐 시간을 내어 문화를 즐기려는 것을 정부는 안타까워하지 못할 망정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마지막 남은 청소년의 문화까지 통제하려 든다는 것이다. 이는 청소년이 왜 아픈지 모른 채 해열제나 진통제만 먹이려는 것과 같다는 항변이다.
검은빛은 “청소년의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원한다면 입시교육 문제 해결과 복지 강화가 이뤄져야지 게임이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 원인을 찾아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문화를 누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지만 셧다운은 이를 막는 행위다. 주체적 인생으로 사는 권리를 뺏는 첫 출발이 될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 “셧다운보다 자녀의 이해와 부모의 역할이 먼저”
중학교 2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김혜정 씨는 “큰 아이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게임을 시작하고 현재 게임중독 치료를 받기까지 지옥을 맛봤다고 할 정도로 힘들었다. 하지만 셧다운 제도는 반대한다. 나도 고통을 당했지만 모든 부모가 셧다운을 원하는 건 아니다”고 밝혔다.
인터넷과 게임 과몰입이 심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부모들이 손잡고 나가서 함께 노는 등의 노력을 안 하고 부모가 편해지기 위해 쉽게 게임이나 PC에 부모와 친구 역할을 떠맡겼다는 것이다.
두세 시간씩 나가서 놀 짬을 사회가 안 주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저렴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도피처인 게임으로 간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공부 이외의 것과 고민을 나눌 친구와의 여유를 허락치 않아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비상구로 게임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모는 성적에 방해가 되니 게임을 막고 공부를 시킴으로써 갈등이 발생하는 상황이 빚어졌다.
김혜정 씨는 성적 저하와 부모 갈등, 수면부족이 게임 때문이라는 정부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자녀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학업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고 자신이 공부로 아이를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게임을 하기 시작했고 중독 증세까지 갔는데 그 과정에서 게임은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의 도피처이며, 이는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과 부모가 더 많은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아이는 원하는 성적이 안 나와서 무능하게 느껴지는 자신과 부모를 생각하니 견딜 수 없었고, 이를 잊으려고 간간히 게임을 하다 과몰입이 됐다. 그래서 학업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건강하길 원한다고 했더니 처음으로 자길 이해하는 엄마의 얘길 들었고 게임을 조절하겠다고 약속하더라. 전문의 상의를 받으며 열심히 치료하고 있다. 만약 진정한 수면을 바란다면 학습 노동을 강요하는 환경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공부밖에 못하고 도피처가 없는 상황에서 진지한 고민이 빠진 채 비민주적으로 자율성을 뺏기면 가출이나 자퇴 등 다른 사회적 청소년 문제를 야기할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과 부모는 셧다운제를 원하지 않는다. 아이와 부모를 생각한다면 강제적 금지보다 자율로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는 데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김혜정 씨는 “부모는 대문 안에서 노력할 테니 정부는 대문 밖 문제에 대해 노력해 달라. 그리고 아이들이 내몰리는 상황이 되지 않고 선택할 수 있는 주체적 아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이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