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탐방은?] 최근 모바일게임 시장이 커지면서 ‘스마트한’ 게임을 만드는 개발사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에 디스이즈게임은 모바일게임 개발사를 찾아가 그들의 비전과 신작을 살펴보는 연재물을 준비했습니다.
오늘 소개할 곳은 멀티플랫폼 전략시뮬레이션 <삼한제국기>를 개발 중인 과르네리 스튜디오입니다. 한국역사로 게임을 만들고 싶었던 개발자 2명이 2010년 설립한 회사죠. 두 개발자의 첫 작품인 <삼한제국기>를 영상으로 만나 보시죠.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 국가경영이 아니라 군주조종, 삼국 배경의 시뮬레이션
<삼한제국기>는 그 명칭처럼 한국의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전략시뮬레이션입니다. 유저는 고구려∙백제∙신라∙가야∙거란∙왜 등 삼국시대 동북아시아에 있는 국가의 군주가 돼 국가를 경영해야 합니다.
게임의 목표는 다른 군주보다 더 많은 업적을 쌓는 것입니다. 업적은 전쟁을 통한 영토확장이 될 수도 있고, 내정을 통한 경제발전이 될 수도 있죠. 특정 시기 동안 각 분야의 점수를 합산한 값이 가장 높은 군주가 승리하는 방식입니다.
게임을 시작하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지도가 눈에 들어옵니다. 서울, 경주 대신 한성, 서라벌과 같은 옛말이 도시 이름이라 역사에 관심이 적은 유저라면 다소 낯설지도 모르겠네요. 가만히 보고 있으면 각 도시에서 자동으로 병사를 모으고, 세금도 걷는 등 국가가 자동적으로 운영됩니다. 멍하니 보고 있다면 인공지능(AI) 운영이 계속되다가 게임이 끝날 수도 있죠.
유저가 모든 것을 경영하는 다른 전략시뮬레이션과 달리 <삼한제국기>에서 유저는 기본적으로 군주 하나만 조종할 수 있습니다. 국가를 경영한다기보다는 ‘군주’를 조종한다는 개념이죠. 유저가 직접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군주 한 명, 나중에 영입할 수 있는 ‘심복’을 모두 더한다 하더라도 조종할 수 있는 유닛이 여섯을 넘지 않습니다. 다른 부분은 AI에 의해 자동적으로 운영되죠. 극단적으로 말해 유저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게임은 흘러갑니다.
유저가 AI의 게임 진행에 개입하려면 회의를 소집해야 합니다. 회의를 통해 유저는 신하(AI)들에게 국정 운영방향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단, 이 과정에서 유저는 오로지 큰 방향만 설정할 수 있습니다. 만약 유저가 ‘징병합시다’라고 제안하면 신하들은 이와 관련해 자신의 당파에 유리한 구체적인 안건을 제시합니다. 유저는 이렇게 나온 시행안 중 하나를 선택해야죠.
시행안을 선택하고 회의가 종료되면 NPC들은 각자의 AI에 따라 명령을 수행합니다. 특정 도시에 명령을 내렸다면 이를 전하기 위해 실시간으로 파발이 출발하고, 이웃나라를 공격한다면 명령을 받은 도시의 군대와 보급대가 목표지점까지 이동하는 식입니다. 만약 중간에 파발이 죽거나 보급대가 공격을 받는다면? 파발을 받지 못했으니 유저의 명령은 수행되지 않고, 보급대가 공격받았으니 군대는 식량이 없어 회군하죠. 높은 사실성은 <삼한제국기>가 내세우는 특징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회의를 통해 내린 정책이 수행되면 유저는 이를 시행한 신하들을 대상으로 논공행상을 할 수 있습니다. 능력치가 좋아 높은 공적를 거둔 NPC는 치하를 받고, 이렇게 정책수행으로 쌓인 업적점수는 모두 군주의 업적점수로 치환되죠. 만약 신하가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면? 그럼 신하의 공적도, 군주의 업적점수도 모두 깎입니다. 때문에 시행안을 선택할 때 어떤 결과가 예상되는지 못지않게, 누가 명령을 수행하느냐도 중요한 변수가 되죠.
신하들이 제안한 시행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특정 NPC에게 직접 명령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비선라인을 통해 특정 NPC에게 명령을 내리는 ‘밀명’입니다. 신하들이 제시한 안건만 선택할 수 있는 회의와 달리, 밀명을 이용하면 유저가 직접 특정 NPC를 지목해 구체적인 명령을 내릴 수 있죠.
다만 밀명은 회의라는 적법한 절차를 밟지 않았기 때문에 유저는 많은 정치적 부담을 지게 됩니다. 일단 비공식 명령이기 때문에 논공행상 자리에 밀명을 받은 NPC가 포함되지 않습니다. 만약 이를 무시하고 해당 NPC를 치하하면 신하들이 반발하고, 그렇다고 이를 무시하면 해당 NPC와의 관계도가 떨어지는 식이죠.
AI 비중이 높은 게임 플레이와 한정된 선택지. 잠깐 체험해 본 <삼한제국기>는 여러모로 기존의 전략시뮬레이션과 방향을 달리하는 게임이었습니다.
마치 플레이어가 국가 자체가 된 것처럼 모든 것을 좌우할 수 있었던 다른 전략시뮬레이션과 달리, 명령을 내릴 때도 신하들의 안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그나마도 파발이 제대로 도착해야만 명령이 수행되는 <삼한제국기>의 깐깐함은 색다른 느낌을 주더군요. 국가가 아니라 군주 자체를 조종한다는 느낌이었죠.
다만 아직 개발 중인 게임이라 그럴까요? 게임의 생소한 시스템을 따라가지 못하는 초반 안내와 투박한 그래픽과 디자인은 좀 아쉽더군요.
■ “선입견은 각오했다” 마니아를 위한 정통 시뮬레이션
과르네리 스튜디오의 김유석 대표
다음은 <삼한제국기>를 개발 중인 과르네리 스튜디오의 김유석 대표와의 일문일답입니다.
TIG> 게임이 독특합니다. 기존 전략시뮬레이션과 달리 AI의 비중이 굉장히 높네요.
김유석: 국가보다는 군주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습니다. 대부분의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은 유저가 국가 자체라도 된 것처럼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죠. 하지만 실제 군주라면 그것이 힘들죠. 당장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려도 당파에 따라 의견이 갈릴 테고, 명령을 실행한 신하도 이를 100% 완수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래서 <삼한제국기>에서 AI의 비중을 높였습니다. 유저를 절대적인 존재라기보다는 ‘군주’라는 한 인간으로 묘사하고 싶었습니다. 일례로
어떤 시행안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당파의 영향력과 호감도가 변화한다.
TIG> 전투보다 내정의 비중이 높습니다. 일반적으로 내정의 비중이 높은 게임은 어렵고 재미없다는 인식이 있는데 <삼한제국기>는 어떤가요?
<문명> 시리즈는 전투의 비중이 높지 않지만, 그것이 ‘재미없다’로 이어지진 않죠. 중요한 것은 게이머에게 어떤 선택지를 제공하느냐가 아닐까 합니다. 게다가 <삼한제국기>는 AI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손을 놓고 있더라도 게임이 굴러갑니다. 애초에 설계할 때부터 자연스럽게 유저가 배워 나가는 게임을 꿈꿨어요. 내정 콘텐츠 특유의 복잡함은 AI 비중으로 극복할 계획입니다.
TIG> 한국역사 소재의 게임이 흥행했던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왜 삼국시대라는 배경을 택했나요?
시뮬레이션을 좋아하고, 역사도 좋아합니다. 대학교 시절부터 이런 게임을 꾸준히 기획했었죠. 사실 그땐 막연히 돈이 되지 않는 기획이라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어느 날 의문이 들더군요. 과연 한국역사가 인기가 없을까 하고요. 사극이나 시대극 중에서는 이미 적지 않은 흥행작이 나왔잖아요. 영화계에서도 <최종병기 활>이라는 걸출한 사례가 생겼죠. <허준>이나 <대장금>은 해외에서도 높은 성적을 거뒀고요.
해외에는 아시아 역사에 관심 있는 유저가 많아요. 그런데 정작 아시아 역사를 다룬 작품은 <삼국지> 계열이 대부분이죠. 게임 특성상 해외시장도 많이 고려했었는데, 이런 것을 깨닫게 되니 조금이나마 자신이 생기더군요. 여력이 생긴다면 동북아만이 아니라 아시아, 나아가 세계 전체를 그릴 수 있는 게임도 만들고 싶어요.
TIG> 역사를 소재로 한 만큼 고증에 신경을 많이 썼을 것 같습니다.
사실 어려움이 많았어요. 삼국시대의 사료는 지금 남아 있는 것이 많지 않거든요. 아마 이 시대를 다뤘던 개발자라면 누구나 똑같은 고생을 했을 것 같아요. 더군다나 <삼한제국기>는 한반도 국가만 다룬 것이 아니죠. 중국에는 ‘거란’과 ‘후연’이 있고, 바다 건너에는 ‘왜’도 있잖아요. 결국은 고증 위에 상상력을 더했죠.
그렇다고 고증을 무시하겠다는 것은 아니에요. 다행히 요즘은 온라인을 통해 패치가 가능하잖아요. 어긋난 것이 있다면 게임성에 지장이 가지 않는 범위 안에서 고쳐야죠. 다만 지금은 고증이 안착할 수 있게끔 게임의 틀을 갖추는 데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TIG> 과르네리 스튜디오는 2인 개발사로 알고 있습니다. 2명이 게임을 개발하기는 어렵지 않나요?
계속 이렇게 일해서 이제는 어려운 것도 모르겠네요. 물론 개발자 수가 적어 속도가 나지 않는 것은 아쉽죠. 하지만 그보다 고대사 사료가 부족한 게 더 아쉬워요.
사실 주변에서 2인 개발사라고 하면 대견한 눈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아요. 어떤 경우는 본의 아니게 헝그리하게(?) 개발하는 인디게임 개발사로 포장되기도 하죠. 고맙긴 하지만 게임의 사업성을 추구하고, 또 스튜디오의 투자처를 찾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참 민망하더군요.
시장성은 달리 말하자면 그 게임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느냐는 이야기잖아요. 처음부터 세계시장을 노린 게임인 만큼 상용게임 개발사로 받아들여지길 바랍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게임의 질부터 끌어올려야겠지만.(웃음)
TIG> 게이머들에게는 게임의 배경보다 게임 자체의 퀄리티가 더 중요하죠. <삼한제국기>는 아직 다른 게임에 비해 부족한 점이 많아 보입니다.
맞아요. 그 흔한 병과 시스템도 아직 없고, 그래픽이나 접근성 면에선 정말 부족한 점이 많죠. 그런 주제에 게임은 한국시장에서 인기 없는 하드코어 전략 시뮬레이션을 표방하고 있고요.(웃음)
소규모 개발사가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이 언제 어떤 것을 개발하느냐일 거예요.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이 <삼한제국기>의 특징이냐’고 생각해요. 뛰어난 그래픽이나 병과 상성 등은 다른 게임에도 많이 있죠. 그래서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내정, 정치, 그리고 AI 중심의 플레이에 모든 힘을 쏟았어요. 이것은 다른 어떤 게임도 제공하지 못하는 <삼한제국기>만의 무기거든요. 볼륨과 최적화는 그 다음 문제죠. 부정적인 선입견 정도는 이미 각오했어요.
물론 걱정도 많아요. 곧 게임을 공개해 피드백을 받을 계획이거든요. 아무리 마니아를 위한 게임이라지만, 투박한 그래픽과 불친절한 시스템에 유저들이 도망갈지 모른다는 걱정도 크죠. 하지만 이미 3년 이상 개발한 게임인 만큼 피드백이 절실해요. 스팀의 ‘얼리 액세스’처럼 개발자와 유저가 같이 게임을 개발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줬으면 좋겠어요.
TIG> 앞으로의 개발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24일부터 26일까지 일산 킨텍스에서 열리는 굿게임쇼에서 <삼한제국기>가 공개되며, 이후 잠깐 게임을 가다듬었다가 PC 싱글플레이 버전을 온라인에 공개할 계획이에요. 2인 개발의 특성상 일정이 어찌 될지 모르니 자세한 날짜는 알려드리지 못하겠네요. 앞서 말했듯이 얼리 액세스 개념이기 때문에 너그러운 마음으로 피드백을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콘텐츠 측면에서는 초기 접근성과 UI에 집중할 계획이에요. 곧 대중에 선보이는데 그래도 점점 알아먹을 수 있는 게임이 되어야 할 것 아니에요.(웃음) 이후에는 게임의 특징인 내정과 회의 시스템을 더 보강하고 싶네요. 아직은 기술력의 한계로 아쉬운 점이 많거든요.
완성도 문제로 대중에 공개하진 않았지만 현재 아이패드 버전과 온라인 모드도 같이 개발 중입니다.아마 게임이 정식으로 서비스될 때는 PC, iOS, 안드로이드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삼한제국기>를 즐길 수 있을 겁니다. 그 때까지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