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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유통사들, “한글화는 콘솔시장 발전의 희망”

GTA 5 한글판 유통으로 되돌아본 국내 콘솔시장의 한글화 상황

남혁우(석모도) 2013-10-16 15:21:11
최근 <GTA 5>를 비롯해 <비욘드: 투 소울즈> <라스트 오브 어스> 등 대작 콘솔타이틀이 한글화되어 출시되고 있다. 게임의 재미를 모두 느끼고 몰입하기 위해서 한글화는 필요한 부분이다. 특히 대사나 지문이 중요한 RPG나 어드벤처 게임은 필수적이다. 
 
국내 콘솔 게임시장은 불법복제 문제와 다양한 플랫폼의 등장으로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덕분에 한글화를 시도하고자 해도 시장 상황 때문에 이를 추진하기조차 쉽지 않다. 해외 개발사를 설득하고 추가비용을 들여 번역해도 다른 플랫폼에 밀려서 겨우 일정에 맞추는 것도 고역이다. 때로는 힘들게 한글화해 출시했지만, 불법복제되어 웹하드 등에 올라간 것을 보면서 후회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한글화된 양질의 게임은 늘어가고 있다. 국내에 콘솔게임 유통사들은 하나라도 더 한글화를 해야 유저들이 관심을 보이고, 그런 관심이 콘솔 시장을 넓힐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규 업체보다 기존 업체와의 계약이 어려운 한글화


콘솔 또는 PC게임이 한글화되기 위해선 해외업체가 요구하는 최소 주문량과 유통사가 지급해야 하는 한글화 작업 비용 그리고 예상 판매량의 경우의 수가 맞아야 한다.
 
해외게임이 국내에 출시될 때 해외 퍼블리셔나 개발사가 자체적으로 한글화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유통사가 한글화를 하면 얼마나 이익인지 어필하고 이에 따른 추가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 유통사가 제시하는 조건에 해외 업체가 만족하면 한글화 타이틀이 출시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원어로 출시하게 된다.
 
상대적으로 국내에 지사가 있는 해외업체의 게임은 한글화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해당 시장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SCEK의 경우는 최소한 북미 지역 퍼스트파티의 게임은 모두 한글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사실적인 오픈월드와 넘버링 시리즈 최초 정식 한글화로 폭발적인 인기를 끈 <GTA 5>.
 
해외업체가 유통사에게 요구하는 것은 매출과 연결되는 주문수량, 즉 출하량이다. 한글화 조건이 붙게 되면 개발사도 시간과 비용을 추가로 투입하므로 요구하는 주문수량이 늘어난다. 한글화를 위해 쓰이는 개발사의 인력이나 시간 등의 추가 비용도 유통사가 부담한다.
 
유통사가 해외업체와 계약하기 위해선 원리 원칙적인 분석이 포함된 자료를 통해 국내시장의 가능성을 어필해야 한다. 국내 유저의 성향은 어떤지, 이 게임을 즐길 유저 층은 누구인지, 비슷한 장르의 국내 판매랑 등에 대한 자료를 준비해 해외 업체를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 자료는 유통사가 해외업체가 요구하는 주문량을 감수면서까지 한글화를 진행할지 여부를 판단하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주문량이 너무 많으면 다른 게임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판매했음에도 재고가 많이 남게된다. 이는 유통사에게 금전적인 피해로 남게 된다.

에이치투 인터랙티브 관계자는 “국내에 출시 경험이 있는 업체보다 신규 개발사 또는, 아직 한국에 진출하지 않은 업체와 한글화 계약을 맺는 것이 그나마 수월한 편이다. 국내 시장에 진출했던 업체들은 한국 시장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한글화를 위해 추가로 인력과 시간을 투입하기보다 북미나 유럽에 투자하는 것이 비용 대 효율적인 측면에서 낫다고 판단하는 업체도 있다고 말했다.
 
에이치투 인터렉티브에서 출시한 칼립소 미디어 <라이즈 오브 베니스>. 
 


한글화 작업의 과정과 일정의 문제점


한글화 작업은 개발사가 직접 하기도 하고 소스코드를 오픈해 유통사가 처리하도록 하는 등 계약하는 업체마다 다르다. 유통사가 한글화할 때는 텍스트 번역부터 폰트, 글이 출력되는 타이밍 등을 모두 직접 처리하며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할 수 있다. 

반면, 보안에 민감한 업체는 유통사가 텍스트를 번역한 후 제공하면 이를 기반으로 한글화 작업을 진행한다. 물론 한글화 작업에 대한 인건비와 관련 비용은 대부분 유통사가 부담한다. 인기 있는 IP와 유명 개발사일수록 주문수량과 한글화 작업비용은 높아지는 편이다.
 
때로는 주문량을 늘리지 않고, 추가 인력 가용에 대한 비용을 요청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텍스트 번역 과정과 이에 필요한 제반비용은 유통사의 몫이다. 번역은 텍스트량, 번역 난이도에 따라 가격차이가 심하다. 예를 들어 중세 판타지는 사전에도 없는 단어와 고어를 사용하고 게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필요하므로 비용이 많이 드는 편이다.
 
번역은 상황에 따라 유통사가 직접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주로 외주업체를 통해 이뤄진다. 외주업체의 번역 비용은 단어당 300~700 원으로 책정되어 있다. 게임에서 사용하는 단어는 적게는 3만 단어에서 많게는 10만 단어가 쓰인다.
 
시나리오가 중요한 만큼 방대한 대사가 포함된 <비욘드 투 소울즈>.

텍스트를 번역한 후에는 제대로 번역된 것인지 확인하는 언어 테스트와 게임에 제대로 적용됐는지 확인하는 오류 테스트도 진행해야 한글화가 마무리된다.
 
이를 위해서 유통사가 개발사와 함께 작업하고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해야 하지만, 다른 해외시장에 비해 시장규모가 작은 한국어 작업은 테스트 역시 다른 국가가 일정이 마무리된 후에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자연히 출시일이 맞춰야 하므로 자막 싱크가 맞지 않거나 오역이 발생하기도 한다. 
 
인트라 게임즈 관계자는 “오타는 정말 부끄러운 부분이다. 한글화 작업 후 게임에 맞게 제대로 번역이 됐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해 실수한 부분이 있었다. 앞으로 최대한 그런 부분을 없애려 노력하려 한다”고 말했다.
 
감염의 공포가 몰아닥친 세상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의 여정을 그린 <라스트 오브 어스>.


불법복제, 대응책 마련과 인식의 전환이 필요


게임백서의 통계 자료를 살펴보면 국내 콘솔게임 시장은 2010년부터 지속해서 축소됐다. 스팀이나 오리진 등 해외 디지털콘텐츠 플랫폼을 통해 유통되는 실질적인 양은 확인하기 힘들지만, 국내에 정식으로 유통되는 콘솔 게임의 판매량은 확실히 줄어들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아직도 게임에 대한 저작권 인식이 자리 잡지 못했다는 데 기인한다. 지금도 웹하드에서 게임을 불법으로 다운로드받는 것을 정당한 소비라고 생각하는 유저가 존재한다. 올해 초 에이치투 인터랙티브는 한글패치를 정식으로 구입한 유저에게만 제공했지만, 그날 공유사이트를 통해 공유된 것이 이를 반증한다.
 
음반, 영화와 달리 게임의 불법복제에 대해서는 정부나 관련단체 역시 손을 놓고 있다. 유통사의 입장에서는 웹하드 등에 게임이 올라오면 내려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이다. 물론 생각을 달리해서 유통사가 웹하드 업체와 제휴해 정식으로 해당 사이트에서 게임을 판매하는 것도 가능은 하다. 

하지만 이를 위한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고 영화나 음악, 또는 불법으로 올라온 게임에 비해 수십 배 이상 높은 금액이 책정되기 때문에 유저들이 웹하드에서 게임을 구입할지에 대해서도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콘솔 게임 하나의 가격은 보통 5~6만 원을 넘는다. 음반 하나, 영화 한 편을 극장에서 보는데 1~2만 원 정도의 비용이 책정되는 것과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해외 퍼블리셔들이 시장을 분석할 때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작은 시장 중 하나로 분류된다. 불법복제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중국과 동급, 혹은 소비인구에서 그 아래로 취급되는 경우도 많아서 자연스럽게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마련이다.

에이치투 인터랙티브 관계자는 “불법복제가 많고 시장수요가 적은 것도 문제지만 해외업체가 국내 시장을 인식하는 수준이 낮다는 것도 문제 중 하나다. 시장이 성장하기 위해선 양질의 게임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좋은 게임이 한글화되지 않는다면 즐길 수 있는 유저도 줄어들고 재미도 반감되기 때문에 유저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된다”고 말했다. 
 

한글화는 시장을 넓히는 가장 좋은 방법


유통사들은 국내 콘솔게임시장의 활성화를 위해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한글화다. 판매량이 급증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유저들이 한 번이라도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만들고, 시장을 넓혀가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GTA 5>의 한글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리고 발매 당일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에 올랐고 판매 자체도 상당한 열기를 불러 일으켰다. 심지어 이 열기는 SNL 코리아 등에서 게임의 패러디 영상을 만드는 등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에이치투 인터랙티브 관계자는 “한글화에 대한 노력을 알아주는 유저가 늘어나는 것만 해도 감사한데 정발 된 게임을 사자는 분위기가 조금씩 나타나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국내 콘솔게임 시장을 성장시키는 나비효과가 되길 바란다. 만약 나비가 안 된다면 우리가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이 될지도 모르겠다”며 농담이 섞인 말을 하기도 했다.  

CFK 관계자는 “한글화 작업을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게임을 알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RPG는 언어가 중요한 게임이다. 하지만 그 언어가 외국어라서 게임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기 때문에 판매량이 좋지 않은 것으로 생각한다. 적어도 ‘이 회사의 이 게임은 이래서 재미있구나’를 느낄 수 있다면 다음 타이틀은 어떤 재미를 가지고 있을지 유저들이 예측하고 구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