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게임 개발자들은 살인적인 노동 환경에 치여 산다. 밤새 사람을 갈아 넣어 성공하는 게임 개발은 없어져야 한다. 등대는 도심이 아니라 바다에 있어야 한다.”
이는 9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게임산업 노동환경 실태와 개선과제 토론회’에서 정의당 이정미 의원이 한 말이다.
이날 토론회는 게임업계의 가혹한 근무 환경을 조명하고, 이것의 원인과 해결책을 찾기 위한 자리였다. 행사에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시민단체 ‘노동자의시간’, 노동시간센터, 한국 IT노동조합, 서울근로자건강센터, 게임개발자연대 등 다수의 노동 관련 단체가 참석해 한국 게임 산업의 노동 실태를 지적했다.
# 야근은 늘고, 임금과 근속 기간은 줄고…. 가혹한 개발 환경
발표자들이 손꼽아 지적한 것은 게임 업계의 가혹한 근무 환경이다.
‘노동자의미래’가 2011년부터 15년까지 서울단지 IT 노동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오프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 5년 간, IT 노동자들의 주간 평균 근무 시간은 11년 44.8시간에서 15년 48.5시간으로 약 4시간 증가했다. 52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 비중은 13.3%에서 26.1%로 급증했다.
하지만 늘어난 노동 시간과 달리,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더더욱 적어졌다. IT 노동자들의 시간당 임금은 11년 10,963원에서 15년 8,326원으로 급감했고, 임금 중상위권 노동자 비율은 32.8%에서 7.1%로, 최저임금 미만 수령자는 5.7%에서 14.1%가 되는 등 수익에 대한 전반적인 지표가 모두 하락했다.
IT 노동자들의 근속 기간 또한 평균 2년에서 1.8년으로 줄어들었다. 5년 이상 장기근속자의 비율은 9%에서 3.4%로 급감했다. IT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는 더더욱 강해졌지만, 노동자에게 돌아갈 임금과 근속 기간 모두 줄어든 셈이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게임개발자연대와 노동건강연대의 온라인 설문 자료를 인용하며 ‘게임’ 부문의 노동 실태도 IT 업계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노동안전보건연구소 최민 전문의는 조사 결과, 게임업계 종사자라 밝힌 이들(이하 개발자라 표기)의 월평균 노동시간은 205.7시간, 넷마블 재직자라 밝힌 이들(이하 넷마블 재직자라 표기)의 월평균 노동시간은 236.8시간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8시간 근무 기준, 월 근무 시간은 176시간 내외)
다만, 최 전문의가 인용한 게임업계와 넷마블 관련 설문의 경우, 응답자들이 실제로 게임 업계나 넷마블에서 일하는지 확인하지 않고 진행돼 수치를 100% 신뢰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 ‘시장 구조’ 자체가 가혹한 노동을 부추긴다
그렇다면 게임계의 이런 가혹한 노동환경은 왜 발생한 것일까? 노동시간센터 김연선 연구위원은 이를 모바일게임 중심으로 바뀐 시장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게임업계의 장시간 노동은 사실 온라인게임 시절부터 계속 있었던 문제였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되지 않은 것은 당시 개발자들은 성공을 위한, 그리고 ‘내 작품’을 만들기 위한 감내의 과정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바일게임 시대로 바뀌며 사정이 바뀌었다. 모바일게임이 시장의 중심이 되며 개발 주기도, 업데이트와 이벤트 주기도 훨씬 짧아졌다. 이는 자연스럽게 개발 부하, 그리고 더 잦은 ‘크런치 모드’로 이어졌다.
반면 성공, 그리고 ‘내 게임’에 대한 기대는 희미해졌다. 모바일게임 시대가 되며 출시작이 대거 늘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마케팅 해주는 ‘퍼블리셔’의 입김을 강화했다. 개발사와 계약한 퍼블리셔는 성공을 위해 유행에 따른 변화를 요구했고, 이는 개발자들에게 수시로 퍼블리셔의 ‘허들’을 넘을 것을 강요했다.
노동 강도가 높아진 이유의 대부분이 ‘퍼블리셔의 숙제’인 셈이다. 더군다나 이 숙제는 만들지 못할 경우, 게임을 내지도 못하고 계약 해지되는 결과를 만들 수도 있는 숙제였다. 개발사에게 주어지는 부담은 더더욱 커졌다.
설상가상으로 시장은 업체에게 더더욱 세련된 게임, 빠른 개발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개발은 모듈화되었고, 개발자들은 내 게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공장처럼 게임의 ‘부품’을 만든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개발자의 숙련도는 물론, 노동 의욕까지 악화시켰다.
그리고 이런 환경이 가혹해진 노동 강도를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반면 개발자 대부분은 온라인 시대의 경험 때문에 이를 감내해야 할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 상황은 나날이 나빠졌고, 이렇게 강해진 노동 강도는 어느 순간부터 임계점을 넘기 시작했다는 것이 김영선 연구 위원을 설명이다.
# 포괄임금제 개선부터 크런치 규제까지, ‘게임 특화’ 규제 필요하다
그렇다면 게임업계의 이런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선 어떤 것이 필요할까?
토론회에 참석한 사람들 대부분은 먼저 정부의 적극인 감독, 특히 게임업계에 ‘특화된’ 관리 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임금 관련해 문제가 된 포괄임금제부터 개선하고, 이외에도 정부가 직접 게임 업계의 노동 실태를 조사하고, 이를 게임백서에 포함시켜 계속 문제를 공론화시키고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한국노동안전보건센터 최민 전문의는 “게임 업계는 타 업계와 달리 ‘크런치’와 같은 특수한 고강도 노동이 많기 때문에, ‘주당 노동 시간’뿐만 아니라 ‘최장 근무 시간’ 규제 등 게임계에 걸맞은 조치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센터 최민 전문의
다른 하나는 노동 문제에 대한 ‘기업 책임’ 강화다. 현재 국내법은 근무 중 일어난 사고가 노동자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노동자’ 측이 직접 규명해야 한다. 하지만 참석자 대부분은 이것이 현실과 걸맞지 않은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만약 개발자가 사망했을 경우, 유족이 이를 만약 ‘과로사’라 증명하고 싶으면 개발사에 업무 기록 등을 요청해야 하는데, 기업이 자기에게 불리할수도 있는 자료를 얼마나 순순히 주겠냐는 의문이다. 서울근로자건강센터 정최경희 센터장은 이런 사례를 설명하며 앞으로는 노동 관련 사고의 증명이나 분석은 최소한 정부가 나서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최경희 센터장은 “한국의 돌연사 발생 비율은 0.2%에 불과하다. 3천 명 규모 회사에서 30년 동안 1건이 나오기도 힘들단 얘기다. 넷마블 돌연사의 명확한 인과 관계를 확인할 순 없지만, 돌연사라고 마냥 손 놓고 있는 것은 장기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좋지 않다. 이런 사건에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노동환경과 관련이 있진 않은지 확실하게 인과관계를 증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근로자건강센터 정최경희 센터장 (오른쪽에서 2번째)
마지막은 시장 구조에 대한 장기적인 개편이다. 앞서 김영선 위원이 설명했듯이, 지금의 노동강도 문제는 게임 시장의 구조에서 비롯되었다. 때문에 참석자들은 정부와 기업, 노동자가 모두 나서서 지금의 불합리한 시장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게임개발자연대 김환민 사무국장은 “현재 대형 퍼블리셔들이 사용하는 ‘싹수 보이는 개발사를 적대적 인수합병하고 단물 빠지면 내치는 방식’은 효율적인 성공 방법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중소 개발사와 개발자들을 고사시켜 게임산업의 성장 동력을 고사시킬 위험이 있다. 하나의 성공 모델이 있다고 무작정 쫓는 것이 아니라, 업계의 미래를 생각해 보다 다양한 성공 모델을 고안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동시간센터 김영선 위원은 이를 위해선 정부의 ‘공정한 시장 거래’ 감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다양한 성공 모델이 탄생하기 위해선 중소 개발사가 커야 하고, 중소기업이 크기 위해선 지금처럼 중소기업이 하도급업체처럼 불합리하게 부려져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노동시간센터 김영선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