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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NDC 17] "포기할 아이는 한 명도 없다" 방승호 아현정보고교장

마포구 '게임 과몰입 치유 및 재능 개발 프로그램' 방승호 교장의 교육철학

장이슬(토망) 2017-04-25 18:31:32

시작하자마자 기타를 들고 나왔다. 책상 많은 곳에서 말하는 것이 굉장히 어색하다며 강연을 시작한 방승호 아현정보고등학교장. 교실에서는 호랑이 탈을 쓰고, 밖에서는 학교 생활의 애환을 담은 노래를 발표한다. 방 교장은 그 활동만큼이나 교육계에서도 주목하는 인물로, 아현정보고의 '게임 교육'은 지난해 디스이즈게임에서도 취재한 바 있다. 이번 NDC에서 밝힌 게임 교육 과정을 만들기까지의 이야기와 방 교장의 교육 철학을 들어보자. // 디스이즈게임 장이슬 기자


 


 

10년 전, 아현정보고등학교 교감으로 발령받은 방승호 교장은 '학생들이 왜 공부를 포기하나' 궁금해서 전교생 상담을 시작했다. 

 

한 명, 두 명, 50명이 넘어가면서 공통 분모가 생긴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가는 시점에서 가파르게 올라가는 '기본기'를 따라잡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기는 것이다. 현행 교육 시스템은 공부가 느린 학생을 챙겨주지 않는다. 한 번 뒤쳐지기 시작하면 만회하기 힘들어진다. 

 

여기에 더해, 불화가 심한 가정이라면 뒷받침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압박을 받는 아이들은 의존 대상을 찾는다. 가장 많이 찾는 것이 게임과 담배다. 

 

"끄트머리 아이들 보니까 다 게임을 해요. 그것도 과몰입군 수준입니다. 그 정도 되면, 보통 고1까지는 보호자가 게임 하지 말라고 하면 안해요. 그런데 2학년, 3학년이 되면 안 듣습니다. 심각한 아이들은 보호자를 폭행하기도 합니다. 이건 대책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가 만든 아현정보고등학교 e스포츠학과. 현재는 게임제작과가 됐다.


일선 교사들의 증언도 비슷했다. 머리를 맞대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누군가 농담삼아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 아이들끼리 모아보자고. 그런데 하필 교장이 방승호 교장이었다. 정말로 'e스포츠학과'를 만들고 시설을 만들어 학생을 모집했다. 100명이 몰려들었다. 한국게임고등학교 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학생을 선발했다. 

 

학생은 뽑았는데 정작 이들을 가르칠 교사가 없었다. 서울시 교육청과 학교에 다섯 번이나 공문을 보냈지만 누구 하나 게임을 가르치겠다고 나서는 교사가 없었다. 겨우 컴퓨터 전공 교사 두 명을 데려왔지만 한 명은 '학생들의 생활 태도가 나쁘다'며 일 년 만에 그만뒀다. 남은 교사 한 명과 방 교장 둘이서 고군분투를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날 그 여선생이, 자기가 기가 막힌 걸 알아왔다고 해. 뭘 알아오셨냐면,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단이 있다는 걸 알아온거야. 그 선생님이 감독님을 쫓아가서 빌고 설득하고 해서 결국 감독님이 한 번 강연하러 오셨어요. 감독님이 강의를 하는데, 애들이 신을 영접하는 표정이 된 거야. 난 예수님 부처님이 후광을 본인이 내는 걸로 알았는데 애들이 쏴주는 거였어. 감독님이 애들에게 좋은 말씀 해주시니까 애들 표정이 달라져요. 그리고 그 여선생님 말도 참 잘 듣게 됐어."

 

교사도 학생들도 의욕을 갖기 시작했다. 한 번의 강연으로는 극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한 달이 지나면 원래의 생활 태도로 돌아가는 학생도 있었지만, 지도교사와 방 교장의 상담으로 조금씩 개선되기 시작했다. 보다 전문적인 커리큘럼과 시설을 갖추기 위해 마포구 시의원과 구청장을 찾아가 지원을 부탁하기도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엔 정말 게임에 대한 인식이 없었어요. 우리가 공립학교인데, 지들이 만들어놓고 있는지도 몰라."

 

결국 지원금을 받아 일주일에 두 번, 전문대 교수와 프로게이머 감독을 강사로 초빙할 수 있게 됐다. 학생들 스스로도 서로 게임을 해서 실력을 올리는 등 적극적으로 변했다. 준프로게이머가 세 명 등장했다. 그중에는 현재 북미에서 활동 중인 프로게이머 손석희도 있었다. 

 

"처음에 아이들을 뽑을 땐 졸업시키는 것이 목표였어요. 그런데 그 단계를 넘어버린 거에요. 아이들 눈높이에서 그들에게 맞는 교육을 하면, 모든 아이들이 천재로 변합니다. 생활 지도라는 단어가 나오지도 않을 정도로 변해요. 포기할 아이는 한 명도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마포구에서 시행 중인 '게임 과몰입 치유 및 재능 개발 프로그램' 교육 중인 방 교장

이후 방 교장은 다른 학교로 발령받아 이동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아현정보고등학교로 돌아왔지만 e스포츠과는 없어져 있었고, 사회에는 여전히 게임과몰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방 교장은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게임 교육을 시작했다. 

 

e스포츠과 대신 만들어진 게임제작과에 <리그오브레전드>를 하는 학생 여섯 명이 있었다. 이들을 모아 프로게임단 '워너비(WannaB)'를 창단하고 전용 교실을 만들었다. 감독을 영입하고 동아리를 만들면서 학생들에게 언제 게임을 처음 시작했는지 물어봤다. 중학생 때란다.

 

다시 마포구청장을 찾아가 설득을 했다. 중학생 대상으로 게임 교육을 해볼 테니, 강사를 초정할 수 있는 비용만 달라고 했다. 방 교장의 노력 끝에 매주 토요일 프로게이머가 와서 게임을 가르쳐주는 중학생 대상 특별 프로그램인 '게임 과몰입 치유 및 재능 개발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방 교장은 또다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프로그램에서는 프로게이머가 전수하는 <리그오브레전드> 비법 뿐 아니라 게임에 필요한 영어 단어와 관련 인문학을 가르친다. 영어는 닉네임(Nickname) 같은 간단한 단어, 인문학이라고 해봐야 <리그오브레전드> 챔피언의 모티브가 된 교양 상식 정도다. 

 

그런데 효과가 있었다. 게임에 살짝 지식을 얹어줬을 뿐인데, 학생들의 교양 수준은 물론 논리적인 글쓰기도 잘하게 되었다. 또 방 교장은 게임과몰입의 주된 원인이 의존과 자기통제력이라고 생각해 게임 시간을 기록하는 플래너를 직접 만들어 나눠줬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프로그램을 시작할 땐 과몰입군 진단을 받은 아이들이, 프로그램 마무리 즈음에는 일반군으로 재분류가 되기도 했다. 

 

놀이의 긍정적인 효과를 설명하며 참관객과 발씨름을 하는 방승호 교장

"게임이라고 편견을 가지고 튕겨내기보다, 건전한 쪽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을 잘 하는 아이들이 있고, 댄스 하는 아이들도 있어요. 학교는 연구소, 때로는 엔터테인먼트 회사 같은 역할을 수행하며 학생들을 다양한 세상으로 연결해줘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방 교장은 'PC방 만들고 음반 내는 교장'으로 유명하지만,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강연에서 스스로 밝힌 바에 따르면, 10년 전 아현정보고 재직 시절 했던 전교생 상담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학교에 PC방을 만들며 진행한 전교생 상담에서 학생들의 꿈이 뭔지 물어보고, 특기를 찾아내도록 돕다 보니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까지 하게 됐다. 그 결과 평소 노래를 좋아한 방 교장은 학교 문화를 담은 음악 <금연송>, <돈 워리>를 발표하기도 했다.

 

방 교장은 조는 학생들을 깨우기 위해 호랑이 탈을 쓰거나, 상의와 하의를 어울리지 않게 입기도 했다. 호랑이 탈을 쓴 첫날 500명의 아이들과 손을 잡고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사진을 찍는 등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방 교장은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떠올린 창조적인 발상을 실행하는 용기를 가지면 주위의 의식이 바뀔 것이라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