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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제1회 여성 게임 개발자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업계를 선도하는 여성 리더들과의 만남, 여성 개발자 네트워킹의 장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반세이(세이야) 2017-07-13 11:45:35

12일 저녁, 역삼역 유니티 코리아에서 제 1회 ‘Women in Gaming(이하 WIG)’ 행사가 열렸습니다. 행사는 게임업계에 몸담고 있는 여성들간의 교류, 게임업계 여성 리더들과의 만남 등으로 구성됐는데요. 페이스북 비공개 그룹을 통해 사전 신청을 받았으나, 너무 많은 희망자가 몰려 신청이 조기에 마감됐다는 후문입니다.  제1회 WIG 현장을 디스이즈게임이 다녀왔습니다. /디스이즈게임 반세이 기자​ 

 


 

 

본격적인 행사에 앞서 유니티 코리아가 준비한 식사가 제공됐습니다. 넓은 홀에 마련된 다양한 음식과 간단한 주류까지. 역시 친해지는 덴 같이 밥 먹고 술 먹는 게 제일이죠. 참석자들 역시 서로 명함을 교환하며 긴장된 분위기를 가볍게 푸는 모습이었습니다.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자 김인숙 유니티 코리아 지사장이 진행자로 나섰습니다. 김 지사장은 “우리가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자거나, 행사에 어떤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여성으로 게임업계에서 일하며 어렵거나 힘든 점, 지향점 등은 함께 나눴으면 한다”라고 행사의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참고로, 유니티가 개최하는 글로벌 개발자 컨퍼런스 ‘2017 유나이트 유럽’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세션이 같은 이름으로 진행됐었죠.  

 


  




 

처음 개최된 행사인데도 패널로 참여한 여성 리더들의 면면이 화려했습니다. 행사를 주최한 유니티 코리아 김인숙 지사장을 비롯해 한빛소프트 김유라 대표, 디지털스카이 조인숙 사업 개발 이사, 캣랩 황은애 대표가 참여했죠. 네 명의 패널은 각기 다른 경력 개발 스토리와 기억에 남는 순간을 참석자들과 나눴습니다. 

  

 

# 여성 리더들이 걸어온 고단한 길, 그리고 인생의 전환점

 

디지털스카이 조인숙 이사가 처음 일을 시작하던 당시에는 오히려 지금보다 여성 CEO가 더 많았다고 합니다. 여성이 직장에서 주요 업무를 맡거나 중간 관리자로 승진하기 어려웠던 시절이었기에 역량있는 여성들은 아예 자기 사업을 해 버린 것이 이유가 아닐까 한다네요. 조 이사는 지금은 유리천장도 많이 깨지고 있는 만큼, 꼭 창업이 아니더라도 여성들이 사내에서 승진해 리더가 되는 일이 앞으로는 더 많아지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합니다.

 

또한 조 이사는 ‘인생의 징검다리’를 강조했습니다. 일이 힘들고, 때론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지만 가고 싶은 방향이 명확하면 징검다리를 하나씩 놓아가며 결국은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죠.  

 

 조인숙 디지털스카이 사업 개발 이사

  

캣랩 황은애 대표는 끊임없는 공부의 중요성을 말했습니다. 프로그래머 출신 CEO인 황 대표는 첫 회사에서 연이은 야근과 주말 출근에 원형 탈모가 생길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그럼에도 사내 첫 여성 프로그래머로 입사했기 때문에 ‘내가 못하면 이후에 들어올 여성들이 선입견에 고생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독하게 회사 생활을 견디며 공부를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이직, 다시 스타트업을 창업하며 프로그래밍이라는 울타리 밖의 QA, 마케팅까지 많은 영역을 경험했다는 황은애 대표는 ‘창업하니 야생에 내팽개쳐진 기분’이라는 말로 CEO의 고단한 심정을 표현했습니다. 

  

 캣랩 황은애 대표

 

한빛소프트 김유라 대표의 시작은 봉천동 반지하방이었습니다. 무역을 전공한 김 대표는 게임 개발 자금을 대기 위해 베트남을 오가며 보따리 장사까지 했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어렵게 만들고, 유통했던 게임을 마케팅 하는 과정에서 들은 말 한 마디가 김 대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자가 무슨 마케팅이냐, 남자들이랑 같이 술도 못 마시면서.”

 

그 말을 듣고 화장실에서 많이 울었다는 김 대표는 “인생의 전환점이 화끈하거나 멋질 수도 있지만, 비극적이거나 절망적인 일일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 하나에 무너질 필요는 없다고도 덧붙였습니다. 무너지지 않고, 마음 다 잡고 달리면 어제와 오늘은 다르지 않을 수 있지만 2, 3년 뒤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요. 

 

김 대표의 경우, 여성으로 일하며 좋았던(?) 점도 있었습니다. 업계에 여성이 워낙 없다 보니 사람들 기억에 남기 쉽다는 것이 이유였는데요. 김 대표의 경우 어린 나이에 창업한데다 여성이다보니 상대방이 쉽게 하대하거나, 커피 심부름을 시키는 등 웃지 못할 일을 많이 겪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런 일들을 계기로 계약을 유리하게 풀어나간 에피소드도 있었고요.  

 

 한빛소프트 김유라 대표 

 

김인숙 유니티 코리아 지사장은 첫 커리어를 게임업계에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들어간 식품회사. 마케팅 팀 28명 중 여성은 김 지사장 혼자였습니다. 여성 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상사는 언제나 김 지사장에게만 커피 심부름을 시켰고, 이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높은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도 늘 인정받지 못하는 기분을 느꼈던 김 지사장은 퇴사 후 한게임에 입사하게 됩니다. 생태계가 온라인으로 바뀌고 있었고, 대기업처럼 체계가 잡혀있진 않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자신을 인정해 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네요. 

 

김 지사장 역시 김유라 대표처럼 쓴 소리가 마인드셋을 바꾸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합니다. 또한, 어떤 사람의 어떤 행동이 싫으면 그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저 위치에 가면 나는 그러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던 것들 하나하나가 지금의 김 지사장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김인숙 유니티 코리아 지사장 

 

네 패널이 공통적으로 꼽은 ‘함께 일 하고 싶은 사람’의 조건은 ‘태도가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상사에게 깍듯하거나 그런 것 말고요. 타인을 배려하고,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일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더 잘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다고 하네요. 일은 배우면 되는 것이라고요. 

  

 

# 결혼과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 여성 직업인이라면 한 번쯤 해 봤을 고민 

 

한 사람의 여성이자 직업인으로 살아가며 꼭 한 번쯤은 고민하게 되는 것이 바로 결혼과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 문제인데요. 네 명의 패널들 중 출산과 육아를 경험한 패널이 김인숙 지사장 한 명이었던 점이 개인적으로, 또 같은 여성으로써 조금 씁쓸했습니다. 두 명의 패널은 결혼은 했지만 아이가 없었고, 한 명의 패널은 싱글이었죠. 그러나 무려 쌍둥이 남매를 기르는 김인숙 지사장이 의미있는 조언을 건넸습니다.  

 


  

김 지사장 역시 결혼과 출산을 겪으며 직장을 그만둘 뻔 한 위기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일 욕심이 많았던 김 지사장은 회사에서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고, 그 때마다 게임업계 사정을 잘 모르는 남편과 갈등이 많았죠. 아이가 생긴 것을 알게 된 뒤엔 더 힘들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무려 쌍둥이. 걱정은 더 컸습니다. 그럼에도 김 지사장은 어떻게든 직업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고 합니다. 물론 베이비시터와 친정 어머니의 도움을 받았지만요. 그렇게 힘겨운 일상을 이어가던 김 지사장에게 교사였던 지인이 건넨 조언 한 마디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 보면, 바른 아이와 바르지 못한 아이는 부모 차이에서 온다. 부모가 바르고, 평범하게만 살아도 아이는 바른 길을 간다. 본인 뒷 모습만 보고 살아라.”

 

이후 김 지사장은 마음을 편히 먹었다고 합니다. 대신, 일에 집중할 때는 육아에 포커싱을 조금 낮추고 육아에 집중할 때는 일에 포커싱을 좀 낮추는 식으로 밸런스를 조절하고 있다네요. 물론 남편 역시 열심히 육아에 동참하고 있답니다. 그래서인지 김 지사장은 “결혼도 할 수 있으면 하고, 아이도 낳을 수 있으면 낳는 게 좋은 것 같다.” 라고 말했습니다.  

 


  

아이가 없는 황은애 대표는 ‘일을 이해해 주는 남자와 결혼하라’ 라는 조언을 건넸습니다. 황 대표는 “옆에서 같이 야근하던 남자와 결혼해서인지 서로의 일을 너무 잘 안다”고 말해 김 지사장의 부러움(?)을 샀는데요. 다른 것은 몰라도 결혼은 꼭 자신의 일을 이해해 줄 수 있는 남자와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 나를 지켜주는 것은 언제까지나 자존감,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

  

네 명의 여성 리더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자존감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서른 살에 처음 창업해 여러 차례 망하기도, 흥하기도 하며 이 자리까지 온 조인숙 이사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상처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라며 ‘그러나 얼마나 빨리 털고 일어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고비는 언제나 찾아오고, 하나의 고비를 넘기면 다음 고비가 반드시 찾아오기 때문이죠.  

 


 

크게 투자받아 진행했던 사업이 망하고, 조 이사는 한 때 업계를 떠날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조 이사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어떤 굴곡을 만나도 다시 일어나게 만드는 ‘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자존감’이었다고 합니다.  

 

김유라 대표는 이따금씩 본인의 어깨를 두드리며 ‘잘 했어, 잘 하고 있어.’라고 되뇐다데요. 어찌 됐든 본인 스스로 본인에게 의지하는 수 밖에 없다면서요. 친구도 있고, 가족도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결국 나 자신이 혼자 헤쳐나가야 한다는 거죠. 그렇기에 김 대표는 나를 사랑해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제1회 Women in Gaming 행사는 밤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습니다. 단 한 명의 참가자도 자리를 뜨지 않고 늦은 시간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요. 패널들의 이야기도 좋았지만, 이렇게 많은 여성 개발자가 한 자리에 모인 것 자체가 처음이라 모두 들뜬 모습이었습니다. 같은 여성 업계 종사자로써 뜻깊은 행사를 주최한 유니티 코리아에 마음 깊이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이런 좋은 자리가 계속 이어졌으면 합니다. ​

 

 최연소 참가자 루미. 올해 9살로, ‘이터니티’에서 엄마, 아빠와 <용사학교>를 개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