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G의 원류 <던전&드래곤>의 창시자 개리 기각스(Gary Gygax, 오른쪽 사진)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69세. 해외에서는 ‘레벨’ ‘클래스’ ‘HP’ 등의 개념을 창시한 그를 ‘RPG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지난 4일 <던전&드래곤>(Dungeons&Dragons, 이하 D&D)의 유통사 ‘위저드 오브 코스트’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개리 기각스의 타계를 알리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그는 올해 초까지도 거실에서 지인들과 <D&D>를 즐겼으며, 올해 6월에 나올 <D&D 4.0>에도 조언을 아끼지 않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했다.
개리 기각스가 만든 <D&D>는 요즘 세대가 즐기는 CRPG(Computer Role-Playing Game)이 아니라 펜과 종이, 주사위로 즐기는 TRPG(Table-top RPG)였다.
<D&D>는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고, 이후 <발더스 게이트> <네버윈터 나이츠> 등 수많은 CRPG의 소재로 사용되며 현대 RPG의 기반이 되었다. 2007년에는 <D&D>의 이름을 그대로 쓴 MMORPG <던전앤드래곤 온라인>이 국내에서 서비스되기도 했다.
개리 기각스는 동료 데이브 아네슨(Dave Arneson, 60세)과 함께 <D&D>와 <어드밴스드 D&D>를 공동으로 탄생시켰다. 1974년에는 TSR(Tactical Studies Rules)를 설립하고 자신이 만든 최초의 룰북(TRPG의 규칙을 적은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는 이후 TSR을 통해 <D&D>의 룰북과 설정, 시나리오 캠페인을 발전시켜나갔다.
1997년 TSR은 ‘위저드 오브 코스트’에 인수됐고, <D&D>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더 많은 CRPG의 원작으로 사용되었고, 2000년에 <D&D 3차 에디션>이 나왔다. 오는 6월에는 4차 에디션인 <D&D 4.0>이 발매될 예정이다.
TSR이 인수된 뒤에도 개리 기각스는 새로운 퍼블리셔들을 만나 자신만의 왕성한 판타지 세계를 펼쳐나갔다. 최근에는 ‘트롤 로드 게임즈’를 통해 <캐슬&크루세이드>(Castles&Crusades)를 지속적으로 출시해왔으며, 여러가지 소설과 판타지 창작활동을 이어왔다.
만일 그가 <D&D>를 만들지 않았다면 우리들은 수많은 불후의 명작 RPG들을 만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직접 <D&D> 라이선스로 개발되지 않은 RPG라고 할지라도 <D&D>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렵다. <엘더스크롤>이나 심지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도 <D&D>가 만든 RPG의 기본은 이어지고 있다.
개리 기각스는 어렸을 때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판타지의 세계에서 롤플레잉을 즐겼다. 오프라인 <D&D>가 해외처럼 폭발적인 인기를 얻지 못했던 한국에서는 그를 잘 모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즐기고, 재미를 느끼는 RPG에는 분명 그의 흔적이 남아 있다.
다음은 그가 2005년 한 해외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세상이 나를 이렇게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진정 게임 플레이를 즐겼고,
자신의 지식과 재미 있던 경험을 모든 이들과 나눴던 사람이라고.”
타계 전까지 RPG와 판타지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쳤던 개리 기각스.
개리 기각스의 타계를 애도하는 글과 함께 검은색으로 뒤덮힌 <D&D> 홈페이지.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전세계 RPG 팬들의 게시물도 각종 포럼에 줄을 잇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