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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문화? 또는 유해매체?' 美 판결을 통해 바라본 게임의 법적 위치

박종현 교수, "뚜렷한 논쟁의 여지가 있다면 국가가 개입하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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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상(무균) 2019-08-24 05:29:21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또다시 총기 사고의 원인을 '게임 탓'으로 돌리며 논란이 일었다. 월마트는 매장 내에서 폭력적인 게임을 판매하지 않지만, 총기류는 판매하는 아전인수격 대응을 취해 "바나나 껍질 밟고 자살한다는 소리"라는 등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폭력적인 사건의 원인을 폭력적인 게임으로 지적하는 목소리 역시 작지 않다.

 

이런 지적에도 미국에서 게임을 강력하게 규제하지 못하는 이유는 '브라운 vs. EMS 판결(Brown v. Entertainment Merchants Association)'​ 덕분이다. 많은 미국 내 게임 관계자들은 브라운 vs. EMS 판결을 통해 게임 역시 미국 헌법에 의해 보호받는 콘텐츠임을 강조한다.​ 나아가 미국 내에서는 브라운 vs. EMS 판결은 게임을 법적으로 하나의 문화로 인정한 판결이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 사건의 시작은 1999년 큰 비극에서 시작된다.

 


 

1999년 충격적인 사건이 미국 콜로라도 주에서 일어난다. 두 명의 학생이 학교에 총을 들고 와, 900여 발의 실탄을 난사해 13명이 살해되고 21명이 상처 입게 된다. 범인 두 명 모두 자살하며 끝난 참사의 이름은 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이하 콜롬바인 사건)이다. 

 

콜롬바인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미국 시민들은 폭력적인 콘텐츠에 대한 제재와 강력한 총기 규제의 필요성에 대해 입을 모았다. 그리고 폭력적인 콘텐츠 중 하나인 ’게임‘ 역시 법적인 규제를 받기 시작했다. 일리노이, 루이지애나 등 미국 전역에서 게임 규제 법안이 상정됐지만, 실제로 적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캘리포니아는 달랐다. 캘리포니아 상원 의원인 르랜드 이(Leland Yee)가 18세 이하에 폭력적인 게임 판매 자체를 금지하고 당시 시행되고 있던 ESRB(한국의 게임등급제와 비슷한 제도)이상으로 확실한 라벨을 모든 게임에 부착하는 법안을 제안했다. 

 

해당 법안에서 ’폭력적인 게임‘은 미국 내에서 음란물 판정을 위해 지정한 ’밀러 테스트‘를 수정해서 판단했다. 밀러 테스트는 미국의 수정헌법 1조에 의해 보호되지 않는 음란물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미국 수정헌법 1조는 “의회는 표현의 자유, 출판의 자유를 제한하는 어떤 법률도 제정할 수 없다”으로, 밀러테스트 결과에 따라 '표현의 자유가 인정되지 않는 콘텐츠'라는 낙인이 찍히고 정부는 강력한 규제를 할 수 있다. 2005년 10월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이듬해 1월부터 시행됐다.

 

강력한 게임 규제에 크게 반발한 ESA(Entertainment Software Association, 미국비디오게임산업협회) 등 게임 산업과 관계된 협회들이 지방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지방 법원은 2007년 8월 “게임이 폭력성과의 인과성이 불투명하고 수정헌법 1조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캘리포니아의 게임 규제 법안이 잘못됐다고 판결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지사는 해당 판결에 항의하며 “우리의 법을 지킬 것”이라고 계속해서 항소를 이어갔고 결국 재판은 미국연방대법원으로 가게 된다.

 

 

 



 

대법원판결 자체는 싱겁게 끝났다. 2011년 6월 대법관 9명 중 7명이 캘리포니아의 게임 규제에 대해 ’위헌‘이라고 손들었다. 미국 대법원은 “게임은 수정헌법 1조로 보호된다(Video games qualify for First Amendment protection)”라고 밝혔고, 게임에는 많은 문학 장치가 존재하고 다른 매체와 구분되는 뚜렷한 특징이 있음을 위헌 근거로 들었다 

 

특히 일부 게임의 폭력성에 대해서는 그림 형제의 소설들을 예시로 들며 "이 둘은 큰 차이가 없다"라고 밝혔다. 이어서 고전인 <단테의 신곡>과 게임을 비교해도 "우리가 볼 때 사회를 위한 어떤 긍정적인 가치가 느껴지지 않더라도, 표현의 자유는 멋진 고전 작품만큼이나 보호될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폭력적인 게임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 명확한 관계성이 드러나지 않아 판단할 수 없고, 게임은 부모(가정)를 통해 관리를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덧붙였다.

 

사건이 판결 난 지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국 내에선 "게임은 매체이자 문화다"이라는 의견과 "기업 이윤을 우선한 판결일 뿐"이라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시각차이는 더 뚜렷해졌다. ​여전히 총기 사고와 게임을 연관시키려는 발언과 행동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브라운 vs. EMS 판결로 미국 내에서는 법적 · 정치적 행동 규제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박종현 국민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지난 21일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 문화연대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이 판결의 의미가 세 가지라고 밝혔다. (1) 게임 역시 헌법을 통해 보장받는 '문화'라는 것이다. 특히 수정헌법 1조, 다시 말해 게임에서도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다.

 

(2) 국가가 문화에 관한 법과 정책에 사회 · 자연과학적인 연구를 반영할 때, 어떤 식으로 반영해야 하는 지 보여줬다. 당시 폭력성과 게임 간 관계가 있다는 연구가 관계가 없다는 연구보다 배는 많았다. 하지만 미국대법원 판사들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며 판단을 하지 않았다. 박 교수는 "합리적인 국가라면 특정 사실을 연구한 결과가 팽팽하게 진행되면서, 뚜렷한 논쟁의 여지가 있다면 국가가 개입하면 안된다"라고 설명했다. (3) 만약 게임을 통해 청소년이 폭력성에 취약하다면, 이런 문제 해결의 주체는 국가이기 이전에 가족이라는 점을 판결을 통해 밝혔다고 지적했다.

 

▲ 세미나에 참가한 박종현 국민대학교 법학과 교수

 

하지만 브라운 vs. EMS​ 판결은 결국 미국 이야기다. 우리나라 헌법의 경우는 어떨까? 우리나라는 '문화국가원리'가 헌법에 직접적으로 명시되어 있진 않지만, 헌법에 포함된 기본원리로 해석한다.

 

문화국가원리는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문화를 제공하는 것으로 문화예술의 자율성 · 다양성을 보장하며, 문화에 국가가 개입하지 않으며, 시장 권력에 의해 문화 왜곡이 일어나는 등의 특별한 상황에만 개입하는 것을 말한다. 또 개입 방법 역시 직접적인 개입을 하지 않고, 공정성과 중립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 법률은 게임산업법, 이스포츠 진흥에 관한 법률, 문화산업진흥 기본법 등을 통해 법적으로 게임을 문화로 규정하고 있다. 박 교수는 최근 국내 게임 규제 이슈에 대해서 게임은 법적으로 문화라고 설명하며, "만약 게임에 대한 정부 규제가 있다면 이는 직접적으로 게임을 못 하게 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문화를 장려하는 방식이 되어야 할 것"이라 지적했다. 더불어, 게임의 내 법적 위치에 대해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