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상급 기술력을 자랑하는 게임 개발사 에픽 게임즈. 3D FPS 게임의 효시인 <언리얼>에서 시작해, 한국에서도 널리 쓰이는 ‘언리얼 엔진’, 그리고 절정의 시각 표현 능력을 선보인 <기어스 오브 워>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에픽 게임즈의 연혁은 게임 기술 발전의 역사와 궤적을 같이 한다. 항상 센세이셔널햇던 에픽 게임즈의 기술 혁신, 그 중심에 서 있는 두 개발자를 만나 본다. /디스이즈게임 객원기자 류태영(USC 인터랙티브 미디어 디비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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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G> 게임 개발의 매력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팀: 게임 개발은 모든 프로그래밍 분야 중에서도 가장 변화무쌍하고 도전적인 분야입니다. 그래픽스, 데이터베이스, 수치 해석, 프로그래밍 언어, 유저 인터페이스, 툴, 인공 지능, 최적화 등 컴퓨터 공학의 모든 부분을 다루고 있죠.
레이: 게임 타이틀을 발매하기까지 반드시 풀어야 할 수많은 문제들과 어려움들이 저로 하여금 게임 개발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자극합니다. 각각의 개발 단계마다 새로운 수많은 도전 과제들이 주어집니다. 또, 각각의 프로젝트들은 비슷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서로 다른 각각의 문제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항상 도전의 연속이죠.
게임 개발은 또한 저에게 게임 기획 과정에 손을 댈 수 있는 재미있는 기회도 제공합니다. 저에게 게임 기획은 여전히 발전 가능성이 농후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넘쳐 나는, 하지만 아직은 제대로 정의되지 않은 분야로 느껴집니다. 참 매력적인 분야죠.
TIG> 게임 개발 과정의 대표적인 애로 사항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팀: 하나의 게임을 만들면서 각 프로그래머들이 코딩하는 라인의 수는 엄청납니다. 우리는 20 명이 안 되는 프로그래밍 팀으로 수백만 라인의 엔진을 만들었습니다. 이건 마치, 수백만 개의 움직이는 부품을 가진 기계를 만드는 과정과 같다고 보면 됩니다.
보잉 사가 비행기를 만드는 방식으로 우리가 게임을 개발한다면 우리는 2,000 명의 프로그래밍 팀이 필요할 거에요. 따라서, 당연한 얘기겠지만, 가장 큰 어려움은 프로젝트를 효율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도록 그러한 복잡성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레이: 빡빡한 일정과 비전의 충돌, 끊임없이 변화하는 게임 업계 환경이 아마도 가장 일반적인 어려움일 겁니다. 정확한 스케줄은 정말 보기 힘듭니다. 아무리 정확한 스케줄이라 해도 세 달 정도가 지나면 처음의 정확성은 온데간데없더라고요.
그리고, 비전의 충돌은 너무 열정적인 게임 개발자들이 한 프로젝트에 몰려 버리면 생겨납니다. 각자의 창조성을 모두가 동의하는 하나의 비전으로 통합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게임 업계 자체도 고유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새로운 게임이 발매될 때마다 그 다음에 발매되는 게임들이 충족해야 할 유저의 눈높이는 점점 상승한다는 점이죠.
매년 증가하는 게임 시장의 규모 역시 게임 개발을 점점 힘들게 하고 있어요. 일반적인 게임 개발 기간을 2.5 년으로 친다면 그 동안에 최소 3 개에서 5 개 정도의 비슷한 장르를 가진 게임이 발매됩니다. 이는 게임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최소 세 번에서 다섯 번 정도, 처음에 세워진 게임 개발 목표가 갱신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새로운 문제점들이 발생할 겁니다. 스케줄이 변경되어야 하고 그와 함께 더 많은 리소스와 시간이 필요해지기 때문이죠.
TIG> 게임 프로그래밍이 창조적이라 생각하나요?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무엇이 게임 프로그래밍을 창조적으로 만든다고 보나요?
팀: 저는 게임 프로그래밍을 50 퍼센트의 창조성과 50 퍼센트의 기술이 결합된 것으로 봅니다. 창조적인 부분은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여 어떻게 구체화하는가 고심하는 부분입니다. 기술적인 부분은 코딩의 부분부분을 효율적으로 문서화되고 안정성을 지닌, 그리고 빈틈이 없는 모듈로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죠.
레이: 모든 프로그래밍은 창조적인 문제 해결의 과정입니다. 특히, 게임 프로그래밍은 완전히 새로운 문제 해결 과정을 요구합니다. 게임 디자인 분야는 아직 태동기에 있기 때문에 기존의 게임들을 연구하며 수많은 창조적인 경험을 할 기회들이 있어요.
게임을 재미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한 정의를 내린 사람이 지금까지 있었나요? 반면에, 게임 프로그래밍은 어떤 관점에서 보면 한 가지 아이디어를 그것이 재미있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반추하는 일종의 반복적인 과정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과정은 수많은 창조적 사고와 약간의 행운도 필요로 하죠.
TIG> 게임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서 기획자나 프로듀서와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나요?
레이: 저는 저만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있는데요, 제 방식은 이렇습니다. 다른 팀과 의논할 일이 있다면 최대한 자주 커뮤니케이션을 하도록 하세요. 물론, 때때로 험악한 분위기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할 때도 있겠지만 언제나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당신이 기획자이고 당신의 기획안을 관철하고 싶다면, 그 근거를 반드시 준비하세요. 그리고, 괜한 고집보다는 작은 양보가 기획자와 프로그래밍 팀 모두에게 훨씬 유익할 때가 많다는 걸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항상, 말하기 전에 생각하고, 생각하기 전에 먼저 귀담아 듣는 커뮤니케이션 방법에 익숙해지세요.
TIG> 자신만의 프로그래밍 팀 운영 노하우가 있나요?
레이: 저는 제가 관리하는 프로그래머들이 최대한 방해를 받지 않도록 가능한 거리를 유지하는 편입니다. 저는 프로그래머들이 철저히 그들의 주어진 사명인 ‘더 좋은 게임 만들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사실, 프로그래머들에게 이런저런 보고서를 쓰도록 하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거든요.
또한, 그들이 다른 팀원들에 의해 방해 받는 것을 미연에 방지합니다. 그 방해 요인이 디자이너건 아티스트건, 혹은 다른 프로그래머이건 간에 말이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떤 상황에 놓여있든지 그들이 충분한 수면을 취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 실제로 레이는 <기어스 오브 워> 시리즈의 발매가 임박한 즈음 촉박한 개발 일정에 쫓겨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료 프로그래머를 돕기 위해 새벽 2 시에 회사로 출근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TIG> 자신이 개발한 게임들 중에서 가장 아끼는 것을 꼽는다면?
팀: 저는 개인적으로 <언리얼> 1 편을 가장 자랑스러워합니다. 그 프로젝트는 3D 경험이 없었던 아주 작은 규모의 개발 팀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제 첫 번째 3D 프로그래밍 경험은 <언리얼> 1편에서였어요.
또한, <언리얼> 1편은 클리프 블레진스키(Cliff Bleszinski)의 첫 번째 하드코어 게임 디자인과 3D 레벨 디자인이 녹아 들어간 게임이었어요. <언리얼>은 우리의 처녀작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라이팅, 게임 디자인, 아트, 인공 지능 등의 분야에서 게임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엄청난 3D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레이: 저는 주저없이 <기어스 오브 워>를 꼽겠습니다. 저는 운이 좋게도 그 프로젝트의 초창기부터 중요한 역할로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게임 플레이를 직접 만들어 그 게임의 성공에 일조할 수 있었다는 것은 저에게 있어 큰 영광이었습니다.
<기어스 오브 워>는 많은 면에서, 현세대 콘솔 게임의 기준을 끌어올렸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앞으로 저는 다음 프로젝트를 통해 이 기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릴 예정입니다.
<기어스 오브 워> 시리즈의 리드 디자이너 클리프 블레진스키.
TIG> 게임 프로그래머의 관점에서 최고의 게임 디자이너를 정의한다면?
팀: 최고의 게임 디자이너는 현재 나와 있는 최고의 게임, 그 이상의 것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또한, 프로그래머들이 더 새롭고 재미있는 플레이를 게임 시스템 안에 구체화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독려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물론, 제한된 하드웨어 성능과 개발 환경에서 최고의 게임 기획안을 뽑아내는 것 역시 최고의 게임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중요한 자격 요건이겠죠.
레이: 세상에는 너무나 다양한 유형의 디자이너들이 있고 디자이너들은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한 유형의 디자이너를 최고라고 정의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아요.
저는 자기 게임에 대한 비전을 훌륭히 보여주면서도 기획 내용의 디테일을 개발자들에게 잘 전달해줄 수 있는 디자이너를 선호합니다. 그리고, 훌륭한 디자이너라면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을 언제나 정확하게 파악하고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과 잘 융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TIG> 당신들이 지금까지 만든 게임들은 기술적으로 뛰어났습니다. 혹시 다른 회사의 게임 중에서 기술적으로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나요?
팀: 참신한 기술적 아이디어를 엄청나게 창조적인 퍼즐 게임에 녹여냈다는 관점에서는 <포탈>을 꼽고 싶네요. 그리고, 콘솔 친화적이고 어떤 유저든지 놀랍도록 쉽게 접근할 수 있는 MOD를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리틀 빅 플래닛>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소니의 셀(Cell) 프로세서를 훌륭히 활용하여 엄청난 시각 효과를 연출한 <킬존 2>도 빠질 수 없죠.
TIG> 최근,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의 수많은 게임업계 종사자들이 일본 게임들의 기술적 낙후에 대해 우려하고 있습니다. 기술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보나요?
팀: 수많은 세계 최고의 게임들이 일본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따라서, 일본 게임 업계의 기술적 완성도나 창조성은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일본의 게임 회사들은 그들의 개발 프로세스를 오늘날의 대규모 프로젝트에 걸맞도록 변화시키는 데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하복 물리 엔진이나 몰핌 애니메이션, 언리얼 엔진 3와 같은 미들웨어나 기술적으로 새로운 프로세스들에 좀더 투자하는 것이 그들의 개발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일본 게임회사들을 방문했을 때, 많은 개발자들이 매우 열심히 일하는 것을 봤습니다만 제한된 툴과 낙후된 기술들이 그들의 생산성을 저하시키고 있다고 느꼈거든요.
게다가, 일본 회사들은 너무 모든 걸 숨기려는 경향이 있어요. 열린 자세와 적극적인 개발사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더 큰 도움이 될 텐데 말이죠. 메이저 개발사들이 GDC와 같은 업계 이벤트를 통해 그들의 지식을 공유할 때, 전체 개발사의 개발 수준 향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또한, 일본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게임 업체는 직원들이 유창하게 영어로 읽고 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게임 업계에서 특히, 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는 90% 정도의 사람들이 영어로 커뮤니케이션을 합니다. 바꿔 말해서, 10 퍼센트의 비영어 사용자들은 메인스트림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의 에픽 게임즈를 있게 한 첫 번째 3D FPS 게임 <언리얼>.
TIG> 최근 떠오르고 있는 아이폰과 같은 새로운 게임 플랫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팀: 지금의 모바일 게임들은 1990년대의 PC 게임들과 닮았어요. 작은 팀으로 금방금방 만들어낼 수 있고, 적은 투자로도 수익을 기대할 수 있죠. 요즘의 모바일 게임 개발 붐은 저에게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조가 계속되진 못 할 거예요. 모바일 디바이스들의 성능이 발달할수록 개발팀의 규모와 투자비용은 급격하게 증가할 것이 자명하거든요. 모바일 게임 업계는 곧 오늘날의 콘솔 시장과 같이 변해갈 겁니다.
TIG> 기술적인 관점에서 인디 게임에 대해 논한다면?
팀: 인디 게임들은 창조성 배출구 역할을 훌륭하게 해 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새로운 디자인 아이디어와 기술에 대한 실험들이 주로 인디 게임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죠.
TIG> 최근의 게임 개발 기술의 발전 속도는 해마다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것들은 게임의 개발을 쉽게 해 주고 있기도 합니다. 5년 후의 게임 개발 기술은 어디까지 도달해 있을까요. 이러한 발전적인 변화들은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팀: 앞으로 다가오는 가장 큰 기술적 도전은 인텔 사에서 보여준 Larrabee 프로세서와 같은 대규모 멀티 코어 CPU에 최적화된 게임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10개에서 100개에 이르는 CPU 코어를 활용하는 게임을 개발하는 것은 게임 프로그래머들에게 엄청난 도전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TIG> 미래의 게임 프로그래머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한 말씀 한다면.
팀: 현재의 게임 업계는 모든 컴퓨터 관련 분야 중에서 가장 첨단을 걷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10 년 동안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많은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겁니다. 그렇기에 새로운 기술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하면 안 됩니다.
당신이 전공하고 있는 분야, 혹은 그 밖의 모든 분야에서도 기술 변화 트렌드의 정점에 설 수 있도록 노력하세요. 이를 위해 최신 개발 툴과 실험적인 오픈 소스 개발 환경들에 대해 항상 체크하고 그 환경하에서 자신만의 코드를 작성하는 연습을 해 보세요. 이를 통해 새로운 게임 개발 프로그래밍 방법에 대해 배울 수 있으며 점차 향상되고 있는 당신의 프로그래밍 실력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겁니다.
레이: 우선, 게임을 많이 플레이하세요. 그리고, 그 게임의 어떤 점들이 그 게임을 재미있게 하며, 어떤 것을 바꾸면 그 게임이 더 재미있어질지 생각해 보세요. 게임 개발을 직업으로 생각하기 전에 먼저 당신의 취미로 만들어야 합니다. 직접 당신만의 게임을 제작하거나 나와 있는 게임들의 MOD 프로젝트에 참여해 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세상에는 당신과 경쟁할 프로그래머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따라서, 이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숙련도보다도 당신의 게임 개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열정이 그 경쟁자들보다 앞서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 인터뷰에 응해 주신 팀 스위니와 레이 데이비스, 인터뷰에 도움을 주신 레드스톰의 양인영 씨와 에픽 게임즈의 다나 콜리 씨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2009년 6월 9일, 류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