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은 누가 많이 할까? 10대, 20대 여성이었다. 왜 10대, 20대 여성인가? 어쩌면 그것은 우문(愚問)에 가까웠다. 어느 분야에서나 특정한 세계관을 사랑하고, 창작 활동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이 바로 이들 그룹이었기 때문이다. 본엔젤스는 젊은 여성이 만들어내는 커미션의 가치를 알아보고 일찌감치 20억 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이들은 단순히 회사의 곳간을 채우기 위해서 투자를 받지 않았다. 자사가 서브컬처 씬에서 촉망받는 기업임을 공표함과 동시에 대중문화에서 커미션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함이었다. 대표를 포함한 임직원 모두가 크레페의 이용자라고 밝힌 쿠키플레이스는 독점보다는 치열한 경쟁의 시장이 좋다고 답할 만큼 자신감이 넘쳤다.
[디스이즈게임 쿠키플레이스 인터뷰 4부작]
① 사라진 대표, 완전히 망가져버린 스타트업... 어떻게 되살릴 수 있었을까? (바로가기)
② 5,000억 '커미션' 시장, 10% 중개 수수료로 성장하는 크레페 (바로가기)
③ 10대·20대 여성은 왜 커미션을 할까? 2차 창작은 왜 중요할까? (현재 기사)
④ 中은 미호요·빌리빌리 투자하는 커미션… 이들이 지키는 '덕질의 고향' (바로가기)
Q. 디스이즈게임: 크레페의 이용자는 주로 어떤 사람들인가?
Q. 성별이나 연령 분포는?
A. 남: 9할 이상이 10대에서 20대 여성이다.
Q. 창작은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인데 왜 10대, 20대 여성이 크레페에 가장 많을까?
A. 남: 결국 커미션은 신청하는 입장이나, 수행하는 입장이나 모두 창작을 하는 것이다. 소위 만화, 게임, 웹툰, 애니메이션 등 광의의 서브컬처라고 불러온 영역부터 인디밴드, 케이팝, 드라마, 영화, 심지어 프로스포츠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즐기며 활동하는 계층이 지금의 10대, 20대 여성이다. 그래서 당연히 이런 방식의 콘텐츠 향유(커미션) 또한 10대와 20대 여성 계층에서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Q. 결국 10대 20대 여성의 문화 향유력이 높기 때문에, 크레페 안에서의 활동도 많은 것이라는 뜻인가?
A. 장: 10대, 20대는 원래 창작욕이 가장 강한 시기이다. 직접 창작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내가 창작하고 싶은 것이 타인의 손으로 창작된 것을 보고 싶어 하는 욕구 또한 강하다. 커미션은 그 욕구를 충족하는 거래이자, 커미션주와 신청자의 관계성이 형성되는 행위이다.
그전까지는 한국에서 크레페처럼 버티컬하게 커미션을 중개하는 서비스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모일 공론장이 없었다. 소셜 네트워크는 도리어 가장 파편화되기 좋은 곳이다. 크레페가 생기며 커미션 내의 여러 문화와 장르가 공존할 곳이 생겼고, 그렇게 당연히 창작에 관심이 있는 10대, 20대 여성이 모였다고 보고 있다.
A. 남: 커미션은 가장 적극적인 형태의 문화 소비이자 콘텐츠 소비이다. 커미션은 신청자조차도 완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리해서 요청하고, 중간중간 여러 사항을 요구하고 대화하는 고맥락의 창작 활동이다. 그림이라고 한다면, 그림 커미션을 신청하는 사람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계속 구체화해가며 일종의 창작 기획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10대, 20대 여성들이 커미션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 콘텐츠 산업에 개인의 욕망이 확고해진 소비자들이 많아진다는 뜻이 된다. 같은 의미로, 그런 개인적 욕구를 충족하는 창작에 흥미와 즐거움을 느끼는 분도 늘어나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단순히 이미 만들어진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구매하고 감상하는 행위를 넘어서, 직접 창작에 관여하는 당사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Q. 기자는 개인화된 욕망 본위로 콘텐츠 소비가 발전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다. 크레페의 창작물은 대체로 만드는 사람과, 그것을 요구하는 사람의 것이다. 특정 창작물과 소비에 대한 보편적인 공감대가 만들어지기 어렵다. 크레페의 거래 건수가 몇 달 연속으로 성장하는 것이 불안한 신호는 아닌가 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점점 사회의 아젠다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개인화된 욕망에 매몰되지 않을까? 요컨대 드림의 세계에 들어가서, 서로 단절되고, 대화는 어렵게 되지는 않을까?
A. 장: 그 주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데, 최근 고민의 결과가 명확해졌다. 개인의 욕망이 인류 사회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 그 욕망을 없는 존재로 만들어 지워버리는 체계 역시 작동한 적이 없다. 차라리 그 욕망들이 더 이야기되고 인지되어 어떤 합의와 규칙 속에서 다뤄져야 할지 논의할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오히려 그래서 나 자신을 커미션 중개 IT 스타트업의 대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신들을 함께 모시는 만신전의 사제처럼 느낄 때가 종종 있다. 각자의 세계관은 결국 각 개인이 형성한 시나리오의 집합체다. 그것이 어떻게 통용되고 논의되어야 하는지는 공론장이 필요하고, 창작으로 표출되는 영역에선 우리에게 그런 역할과 책임이 일부 부여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커미션을 통해서 개인의 욕망을 충족하는 콘텐츠가 제작되고 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순전히 개인만이 쌓아올린 욕망과 세계관이 아니라 결국 누군가와의 관계를 통해서 완성이 된다. 그래서 크레페가 관계성을 중요시하는 것이다.
어차피 개인화된 욕망은 되돌릴 수 없는 변화이다. 그 속에서 건전한 관계를 통해 개인의 욕망이 충족되면서 합의된 규칙과 시스템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곧 크레페의 역할이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개인화된 욕망들이 공론장을 통해서 융합되고, 서로 성장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가 어떤 합의점을 찾아가는 데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통적으로도 여러 문화가 샐러드 보울처럼 잘 섞일 때가 문화적으로 가장 융성했다.
Q. 쿠키플레이스의 크레페에는 그만한 커뮤니티가 존재하나?
A. 남: 크레페에는 게시판과 같은 커뮤니티 기능이 없다. 그렇지만 이미 크레페는 커뮤니티처럼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커미션을 진행하기 위해서 메시지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 메시지 기능을 통해서 커미션에 대한 의뢰를 주고받는다. 크레페 메신저 체류 시간이 단순한 의뢰 중개 플랫폼보다 훨씬 더 길다. 그래서 이미 어떤 측면에서는 크레페가 커뮤니티라고 생각하고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서로가 각자가 좋아하는 장르나 '덕질'의 대상은 달라도 그 덕질을 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 무리에 소속되어 있다는 정체성을 대부분 가지고 있다. 원래 씬과 장르는 공동체의 다른 말이다.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것이 공동체다.
Q. 최근 스타트업 규모로는 이례적인 사회공헌을 했다고.
A. 남: 최근이라기엔 좀 지난 일이긴 한데, 여성의 날 전후로 트위터 RT 이벤트를 통해 RT당 100원을 한국여성의 전화에 기부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최종적으로 천만 원을 기부했다. 사회공헌이라기보단 응당 해야할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우린 우리가 기반하는 문화의 당사자이고 무엇에 기반하고 있는지 정확히 안다.
Q. 최근 투자 시장이 얼어붙었다는데, 보기 드물게 투자를 유치했다고 들었다.
A. 장: 지난 8월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로부터 20억 원 규모의 프리A 시리즈 투자를 유치했다. 이미 월 매출로도 손익분기점을 넘은 상태에서 회사의 유동성이 부족하진 않았다. 커미션이 하나의 시장이자 산업으로 이해될 수 있도록 투자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여러 투자사들을 만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그게 돈이 돼요?”도 아니고 “그게 뭐예요?”였다.
그런 점에서 투자사 선택에 있어서도 고민했다. 결국 투자사 역시 지배구조의 일부이고, 플랫폼이 건강하게 성장하고 작동하기 위해선 좋은 지배구조가 필요하다. 첫 창업 투자를 받았던 소셜벤처 투자사에서 젠더 관점의 투자에 대한 리포트를 발간한 적이 있다. 당연히 투자사 역시 가급적 여성 대표가 있는 곳이나 담당심사역이 여성인 곳을 위주로 선택했다. 서브컬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는 곳도 선택 기준 중 하나였다. 이런 이야기들이 도리어 5년 전에 비해 덜 논의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회사는 사실 프리A 시리즈라고 하기엔 규모가 꽤 크다. 창업 2년 차인 작년 매출이 12억 원, 올해 매출은 약 26억 원 정도를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중개액은 올해만 약 28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회원수는 25만 명, 커미션 중개건은 월 10만 건에 달한다.
무엇보다 크레페는, 대한민국 10, 20대 여성 전체 인구 50명 중 한 명이 한 달에 한번 이상 접속하고, 200명 중 한 명이 한 달에 한 번 이상 커미션을 신청하는 곳이다. 한 세대를 대변할 수는 없어도 표상의 말석 정도에는 자리잡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PMF(Product-Market-Fit)을 검증하는 프리A 시리즈 단계는 이미 지난 것이다.
A. 남: 이런 단계를 지났는데도, 투자를 받기로 한 이유는 결국 좋은 덕질을 하고 싶어서이다. 서브컬쳐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형태는 결국 덕후들이 누리는 덕질의 퀄리티를 결정한다. 서브컬처 도메인에서 좋은 역할을 하는 기업의 절대수가 부족하다. '덕후'는 많고 이 사람들의 '덕질'도 활발한데, 그들을 담아내는 기업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부족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는 서브컬처가 산업이라는 인식이 내외부에 없었다. 여러 이유로 산업이라는 정체성과 존재를 지워왔다. 당연히 판에 돈이 돌지 않고 이러한 판 안의 기업 역시 영세하다. 기업이 영세하면 한두곳의 기업이 매출을 잘 내고 지속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판 전체가 활성화되지 못한다.
둘째는 영세한 탓에 서브컬처 도메인에 대한 암묵지가 있는 시니어를 지속적으로 키워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내가 몸 담은 도메인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시니어를 계속 육성해서 지속적인 비즈니스 플레이어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본시장의 투자를 받고, 이 씬에 돈이 돌도록 하는 게 투자 유치의 가장 큰 이유였다. 그래야 우리 혼자 성장하는 것을 넘어 서브컬쳐가 정당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Q. 추가적인 투자 유치 계획은?
A. 장: 현재로서는 투자를 받은 지 얼마 안 되는 상황이다. 투자 유치 논의를 하던 중에 손익분기점을 바로 넘겨버려 재무 모델링을 다시 짜고 있다. 통상적인 스타트업의 투자유치 주기는 18개월~24개월이지만, 전략에 따라 좀 더 길어질 수도 짧아질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서브컬쳐 스타트업이 투자를 받았다'를 자본조달 시장에 널리 전달하는 것이다. 그렇게 다른 플레이어들도 이 씬에 투자를 받고 뛰어들어서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는 시장이다.
Q. 글쎄, 독점이 좋은 것 아닌가?
A. 장: 작은 시장이나 이미 성숙한 시장에서는 독점이 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계속 커나갈 시장이라면, 선의의 경쟁이 좋다. 서로가 시장에 같이 투자하고 키워나가는 파트너가 된다. 그리고 그 경쟁에서 쿠키플레이스 또한 잘 할 자신이 있다. 그렇게 이 씬 자체를 키워나가는 것이 궁극적으로 좋은 일이다.
A. 남: 같이 산업을 키울 파트너와 시니어가 부족하고, 그렇기에 산업으로 이해받지 못한다. 이해받지 못하니까 친지들에게 우리 회사가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하루종일 설명해야하는 일도 잦고.(웃음)
가령 최근에 더쿠(커뮤니티)에 <마비노기> 카테고리가 신설되었다. <마비노기>에 신규 및 복귀 유저가 많이 늘어났고, 언급량 또한 증가해 아예 별도로 게시판이 생성된 것이다. 그런데 외부에선 <마비노기>가 이미 죽어가는 IP로 인식된다. (더쿠의 주 이용 계층은 여성인데) 여성 게이머들의 덕질과 소비가 이해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독점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시장을 구체화할 언어를 가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Q. 현재 새로운 팀원을 모집 중이라고 들었다. 어떤 분야에서 어떤 인재를 찾고 있는지?
A. 남: 여러 분야에서 인재를 찾고 있다. 거의 전 포지션이라고 보면 된다. UI, UX, 서비스 기획은 채용을 하고 있고, 앞으로는 사업, 전략 이 쪽에도 채용을 진행할 예정이다. 개발이나 마케팅 직군 역시 채용할 계획이 있다.
사실 쿠키플레이스는 크레페 사용자 채용을 제일 선호한다. 우리가 지금 그렇게 구성되어있기도 하다. 문화 콘텐츠 사업은 대단히 고맥락의 성격이 있다. 각 요소를 다루기 위해서 어떤 고민을 해야만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문화의 당사자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지원자가 크레페의 유저인지 아닌지를 상당히 중요하게 보고, 그것을 통해서 이 사람이 어떤 배경과 어떤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판단한다.
당연히 유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채용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당연히 어떤 문화를 존중하고 공존을 위해 다른 문화와 섞여 들어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규칙이나 체계가 왜 존재해야 하고,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결국 서비스를 만들고 운영하는 사람에게 이런 고민이 없으면, 서비스의 본질을 파괴하는 결과로밖에 나타날 수밖에 없다.
지금 크레페에 해외 신청자 유입이 상당히 많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는 사실 지금까지 글로벌 유저를 위해 지원하는 기능은 페이팔 결제 하나 뿐이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한국의 커미션주들이 한국을 넘어 더 넓은 세계의 신청자들과 크레페가 제공하고자 하는 안전망을 통해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글로벌 사업 전개 포지션의 사람들 역시 계속해서 채용할 예정이다.
Q. 커미션 시장이 양지의 빛을 많이 받는다고 가정해 보자. 만약 그 시점에 IP 홀더가 자신의 IP를 활용한 2차 창작을 금지시킨다면, 어떻게 되는 건가?
A. 남: 저작권 관련 가이드에서 권리 침해 행위에 대해서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IP홀더가 '이 플랫폼에서 커미션 거래를 원하지 않는다'라고 요청이 들어온다면, 권리 침해 여부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다. 만약에 그런 요청을 실제로 받는다면, 특정 IP 관련 커미션을 제한하는 절차가 있다.
Q. 실제 그런 사례가 있었는지?
A. 남: IP 홀더는 아니고, 플랫폼 바깥에서 커미션을 진행하는 분인데 다른 사람이 그 그림을 베껴서 크레페에서 돈을 벌더라는 사건이었다. 그런 경우에는 자료를 받아서 그림을 베꼈다는 근거를 확인한 뒤에 일차적인 판단을 한다. 단순히 비슷하게 그린 것으로는 쉽게 '맞다, 아니다'를 판단하기 어려워서 법적 조치를 안내한다. 완전히 그림을 복사해서 자신이 그린 것이 아닌 것을 속인 경우에는 강제로 커미션을 닫는다. 문을 닫기 전에 커미션을 진행하는 분에게도 재차 사실 확인을 거친다.
Q. 반대로 IP홀더가 2차 창작을 적극 권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넥슨은 자사 게임을 주제로 한 콘텐츠를 만드는 아티스트들과 함께 2차 창작물 전시, 교류 행사를 열기도 했다. 앞으로 공식에서 2차 창작을 권장한다면 그것이 크레페에게 위협이 되지는 않을까?
A. 장: 오히려 선순환 구조가 훨씬 더 잘 만들어질 것이다. 공식에서 2차 창작을 지원하게 되는 순간부터, 2차 창작은 명백히 제도권 안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관심을 가지고 실제로 해당 IP로 창작하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공식이 제공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커미션은 언제나 일어날 수밖에 없다. 공식이 2차 창작을 지원한다면, 결론적으로 씬 자체가 탄탄해지게 될 것이다.
서브컬쳐 비즈니스를 하는 이들에게 요구되는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쿠키플레이스 입장에서 2차 창작 분야는 전체의 12%에 그친다. 다소 당사자성이 떨어지지만 그럼에도 2차 창작에 대한 논의는 씬을 위해 필요하다. 결국 콘텐츠 산업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재화는 콘텐츠 그 자체이다. 공식이 제공할 수 있는 콘텐츠 양에는 한계가 있다. 게임 한 개를 제작할 리소스로 두 개를 만들수는 없지 않은가?
2차 창작은 그러한 영역에서 IP홀더가 제공할 수 있는 콘텐츠량 한계를 넘어선 공급을 이루어내고, 그것이 IP에 대한 팬덤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K-뷰티와 K-푸드 등 국내 소비재의 글로벌 약진은 케이팝을 필두로 한 국내 콘텐츠의 글로벌 진출에 빚을 지고 있고, 국내 콘텐츠 산업의 성장에는 이러한 2차 창작의 기여가 있었다.
동시에 본질적으로 모든 창작자들은 2차 창작이란 과정을 거쳐가며 성장한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1차 창작과 2차 창작을 구분할 수 있을까? 오래된 논쟁이고 제도권 안으로 포섭할 그 어떤 적극적인 변화가 없던 상태에서도 한국 콘텐츠 산업은 이미 여기까지 성장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 창작, 서브컬쳐, 동인(연성)판은 그레이 존이라는 낙인 속에서 창작자들이 오랫동안 자기 검열의 늪에 빠져있도록 방치되었다.
그래서 서브컬쳐 비즈니스에게는 두가지 책임이 있다. 하나는 대형 IP 홀더들에게 적극적으로 2차 창작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지원한다면 본인들의 IP조차 더욱 풍성해질 것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 다른 하나는 그레이존이라는 이유만으로 창작자들이 여러 폭력에 방치되는 상황을 지양하고 비즈니스로서 제시할 수 있는 규범을 마련하는 것이다.
여러 서브컬쳐 비즈니스들이 창작자를 방패삼아 논란을 회피하고, 각종 검열로 창작자들의 존재를 지워내는 현황에 대한 문제인식이 있다. 게임 업계처럼 IP의 영향력을 이미 알고 있는 플레이어들은 열심히 2차 창작을 위한 공간을 열어두고 있고, 나름의 룰을 제정하고 있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더 많은 콘텐츠 산업의 도메인들이 이러한 2차 창작자들 내지는 유저 참여형 콘텐츠가 가져다주는 혜택을 인정하고 주목할 것이다.
Q. 그렇다면 2차 창작이 대중 문화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A. 남: 이미 연예 업계에서는 팬 크리에이터 활동을 했던 분들의 가치를 굉장히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다. <응답하라 1997>의 성시원(정은지 扮)도 팬픽을 쓰다가 방송작가가 된다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듯이, 케이팝과 방송계는 2차 창작을 사실상 인정하고 있다. 그것을 수면 바깥으로 내보내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케이팝도 당장 팬 크리에이터의 활동을 통한 효과를 엄청 많이 받고 있다. 케이팝에서는 그런 창작을 권장하기도 한다.
Q. 소위 '홈마스터' 활동이 아이돌의 홍보활동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은 들었다. 그런 부류의 창작이라면 권장을 하겠지만, 엔터사가 공식적으로 '아이돌을 팬픽 소재로 삼아달라' 하지는 않지 않나?
A. 남: 팬들의 자체적인 크리에이터 활동이 대중 문화 마케팅에 소리 소문 없이 상당한 수준의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엔터계 역시 그런 특징을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활용을 하려는 편이다. 그 과정에서 무엇이 위로 가고, 아래로 가는지 같은 상위 문화와 하위 문화의 구분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팬 크리에이터들의 역할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본다.
A. 장: (케이팝 아이돌 관련) 비공식 굿즈도 어떻게 보면은 커미션의 영역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한때 엔터사들이 그런 것들을 '때려 잡던’ 때도 없진 않았다. 그러나 한때는 엔터사들이 직접 2차 창작 지원을 위한 이벤트를 열기도 했었다. 이제는 엔터사의 매출 절반 가까이 팬들의 간접 참여형 콘텐츠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 참여형 콘텐츠가 매출 성장에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다. 이러한 로직이 엔터사를 넘어 콘텐츠 산업의 다양한 도메인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가령 게임구단이나 심지어 야구구단이 엔터사 모델을 참고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