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 시리즈를 아십니까? 기자는 수업 시간에 책상 밑에서 몰래 하던 <놈>의 재미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폴더폰을 요리조리 돌리다가 선생님한테 벌을 받아도 게임을 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 문득 <놈투>가 하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대에 정상적인 방법으로<놈투>를 즐길 방법은 없었습니다.
<놈투>처럼 다시 하고 싶어도 유튜브 영상으로 만족해야만 하는 게임들이 많죠. 많은 사람들이 <놈> 시리즈를 기억하고 있지만, 당장 게임을 할 방법이 없으니 어떤 가치가 있는 게임인지 이야기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게임은 아카이브가 필요합니다. 이정엽 순천향대학교 한국문화콘텐츠학과 교수가 창간 15주년을 맞이해 게임 아카이브의 필요성에 대한 기고문을 보내왔습니다. 오랫동안 게임 아카이브의 필요성을 역설해온 분이죠. 디스이즈게임에서 총 4회에 걸쳐 "게임의 문화적 가치 보존을 위한 게임 아카이브"를 소개합니다.
이 글은 2월 18일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게임산업 재도약을 위한 대토론회' 자료를 수정, 보강한 것입니다. 외부 원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편집=디스이즈게임 김재석 기자
[창간 15주년 특집]
게임의 문화적 가치 보존을 위한 게임 아카이브 / 이정엽 교수
1. 게임은 문화다? 기억되어야 '진짜' 문화
2. 게임문화박물관, '라키비움'으로 세우자 (바로가기)
3. 외국과 한국의 게임 아카이브 사례 (바로가기)
4. '천만 영화', '800만 관중'... 게임의 흥행 지표는?
게임은 문화다. 오늘날의 게임은 과거와 같은 단순한 하위문화(subculture)나 미시문화(microculture)의 한 부류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주제를 바탕으로 창작되며, 게임 이용자들 사이의 상호연결을 통해 엔터테인먼트 환경을 제공하는 보편적 문화로 성장했다.
이런 상황은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특히 스마트폰이 도입된 2000년대 말 이후 시공간적인 제약 없이 유튜브 등의 다른 미디어와 혼종적으로 얽히면서 미디어 믹스 환경을 제공하는 거대한 비즈니스 사업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차원에서 게임은 당연히 문화다. '2019년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게임 이용률은 65.7%에 달한다. 전 국민의 2/3 정도가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 정도의 이용률을 달성한 매체를 문화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어불성설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게임 이용률은 2015년 이래로 계속해서 줄고 있다. 그 이면에는 확률형 아이템, 자동전투, 방치형 메커닉 등 모바일 게임이 확산시킨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환멸이 자리를 잡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노골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특히 유튜브를 중심으로 한 “보는 게임”의 성장과 맞물려 하나의 경향을 이루었으며, 이제는 한국 게임 시장을 경제적인 차원에서 거의 전적으로 지탱하고 있는 주춧돌이 되어버렸다.
상황이 이러므로 한국 게임 시장을 떠받치고 있는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이용자들의 개선 요구는 매우 강한 상황이지만, 이를 법적으로 제재할 경우 한국 게임의 생존 기반이 위협받는 상태에 이를 수 있으므로 정부와 게임 업계, 학계를 막론하고 이 문제에 대해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그 질문을 조금 좁혀서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한국에서 게임은 문화인가?” 혹은 “한국에서 게임은 제대로 된 문화로 대접받고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게임은 문화입니다. 질병이 아닙니다.”라는 문장은 작년 WHO에서 게임을 ICD-11에서 질병으로 등록할 때, 국내 게임 업계에서 대응 차원으로 시도했던 운동의 캐치프레이즈로 사용된 문장 중 일부이기도 하다. 당연히 게임은 문화이고, 질병이 아니다.
그러나 저 문장이 보호하고자 하는 한국 게임 산업은 기본적으로 소비적인 “망각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는 거대한 비즈니스 중심의 이전투구 장이라고 할 수 있다. 1년에 50만 개에 달하는 모바일 게임이 출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무슨 게임을 만들었고, 어떻게 서비스하고 있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게임 아카이브는 이처럼 최소한으로 문화에 가깝게 만들기 위해 게임을 기억하고, 수집하고, 보존하고, 전시하고, 교육하는 공간이다. 게임 업계 종사자들을 만나보면 늘 자녀들에게 아빠가 만든 게임이 이런 거라고 보여주고 싶었는데 서비스를 종료하게 되어 자신이 만든 게임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게임이 일종의 스낵 컬처로서 소비되고 버려지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이렇게 게임을 기억하고 보존하는 과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게임 개발자에게 더 신중하고 문화적으로 다양한 게임을 만들도록 유도할 수 있다.
문화라는 용어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불가능하다. 문화는 그것이 속한 담론의 맥락에 따라 매우 다양한 의미를 지니는 다의적인 개념이다. 대체로 특정한 매체 같은 한 분야가 그 사회 내에서 문화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작 게임 개발자의 풍성한 문화적 환경 속에서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게임을 창작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게임 아카이브는 국내에서는 주로 민간 주도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산하의 콘텐츠도서관이 나주에 존재하기는 하지만, 일단 주변에 게임 개발 회사가 없다시피 할뿐더러 유동인구도 많지 않아 수도권에서 접근성은 매우 나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콘텐츠도서관은 기존 게임 중 현재 서비스되는 게임들만 겨우 수집하고 있을뿐더러 게임 큐레이팅이나 게임을 기반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지 않아 단순한 수집-열람의 방식만 갖춘 도서관의 역할밖에 하지 못하고 있다.
제주도에 있는 넥슨 컴퓨터 박물관 역시 상당히 많은 수의 게임을 보유하고 콜렉션을 운영하고 있지만, NCM 라이브러리라는 오픈된 공간 외에 관람객이 특수한 어떤 게임을 지정해서 플레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넥슨 컴퓨터 박물관은 수장고에 굉장히 많은 게임을 보관하고 있으면서도 게임업계 관계자에게조차 이러한 수장고의 폐가식 열람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한국 및 세계 게임 역사의 주요한 게임들을 모아 그것들을 전시하면서 동시에 학술적인 연구나 게임 개발을 통해 필요한 게임들은 선별적으로 관계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국가적인 게임 아카이브가 필요한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