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콘텐츠는 디스이즈게임과 오피지지의 협업으로 제작됐습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롤)은 기본적으로 상성 게임이다.
OP(overpowered; 밸런스 붕괴를 만들 만큼 성능이 강한 상태) 지위를 가진 챔피언이라도, 반드시 카운터를 먹일 만한 상성 챔피언이 서로 물고 물리기 마련이다. 숱한 패치와 리워크, 리뉴얼로 상성이 완전히 뒤집히거나 붕괴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스토리 설정이나 초기 단계에서 챔피언이 가지는 속성 탓에 어쩔 수 없이 취약하거나, 어쩔 수 없이 막강한 상성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롤>이 e스포츠로서 인기를 대변해 온 핵심에는 이러한 상성들이 큰 공을 세웠다. 고작 20개 남짓의 선택지 챔피언을 고르는 순간부터 게임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끊임없이 물고 물림을 거듭하는 게임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롤>의 아쉬운 모습을 보인 듯한 것은, 과도한 OP 챔피언의 남발과 더불어 이러한 상성관계가 후반 기대치라는 소위 ‘밸류’ 하나로 정리 되어버린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LCK 서머 초반부를 주름잡는 이른바 ‘밸류메타’에 대한 우려도 결국 이런 획일성에서 나온 우려라 할 수 있다.
성급한 우려일수도 있다. 하지만 우린 이러한 획일성을 경계해야 하는 차원에서 ‘밸류메타’의 문제를 짚어야만 한다. /장태영(Beliar) 필자, 편집=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출처: 라이엇 게임즈)
인간에게 있어 단조로움은 자연히 지루함이라는 감정과 연결된다. 게임도 역시 메타가 돌고 돌지 않고, 한 가지로 지속된다면 메타가 주는 지루함은 자연히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는 물론, 프로들의 경기를 시청하는 관중들의 흥미도 떨어뜨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의 메타는 흥미를 떨굴 만큼 꽤 유의한 영향을 발휘하는 것은 틀림없는 듯하다. 지난 6월 18일, DRX전을 마친 ‘기인’ 김기인은 고밸류픽의 절대적 영향력은 경계하면서도 “고밸류 챔프가 많은 조합은 버티는 게 관건”이라며, 초중반에 얼마나 잘 버텨주느냐가 고밸류라는 선택지를 쥔 팀의 성패를 좌우함을 시사했다.
하지만 <롤>을 두고 혹자는 ‘턴제 게임’이라는 얘기를 하곤 한다. 쉽게 생각해, 바론과 용이 동시에 출현했을 때 바론을 취하는 동안 소모한 턴은, 팽팽한 상황을 기준으로 볼 때 자연히 미드 포탑이나 용으로 회전하는 상대방에게 내어줄 차례라는 얘기와 같다.
(출처: LCK)
하지만 초중반 주도권을 내어주고 후반 기댓값만에 기댄 채 주구장창 슈퍼플레이와 라인전 줄다리기로 버티기만 한다면? 턴제 게임이라는 말은 무색해진 채 소위 ‘눕롤’이 반복된다. 결국 밸류메타는 ‘얼마나 후반 기댓값이 높은 챔피언을 잘 뽑느냐?’ 못지않게 ‘얼마나 후반까지 잘 눕느냐?’ 라는 질문을 플레이어들에게 던지게 된다.
이른바 눕롤 메타는 특유의 안정성을 바탕으로 후반 일발 역전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그러나 일발역전을 위해 버텨야 하는 시간이 상당하다. 밸류메타 자체를 회피할 방법은 여러 가지다. 초중반 라인전이 강한 챔피언 위주로 픽을 하거나, 아예 밸류값이 높다고 손꼽히는 챔피언들(아펠리오스, 제리 등…)을 모조리 밴해버리면 된다.
하지만 이 모든 걸 한 세트에 다 쥐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결국 맞불 작전으로 서로 고밸류를 나눠가진다면, 누가 최대한 잘 키우냐 즉, AOS 장르가 아니라 MMORPG가 되는 것이다. 육성이 아닌 전투가 모토인 <롤>의 게임장르를 생각하면, 치고 박고 싸워야 정상인 게임에서 우리는 30분 가량의 마린 키우기부터 먼저보게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LCK의 평균 플레이시간은 과연 밸류메타가 도래한 서머 시즌과 바로 이전 시즌인 스프링 시즌 간에 차이를 보일까? 정답은 ‘아니다’. 스프링 시즌 평균 게임 시간이 32분 11초인 반면, 서머 시즌은 30분 33초로 약 1분 40초 이상 게임 시간이 단축됐다. 하지만 팀 별로 평균 게임 시간을 살펴보면 꽤 극단적인 결과가 나온다.
젠지 e스포츠는 스프링 대비 서머 시즌 무려 게임 플레잉 시간을 5분을 단축한 반면(32:53 → 27:53), T1은 오히려 게임 시간이 31초 늘어났다(30:10 → 31:41). 고작 30초 만으로 T1의 부진을 예단할 수는 없다. 젠지의 독보적인 성적 역시 재단할 수 없는 통계다.
한 가지 사실 정도는 추론해볼 수 있다. 게임 시간이 필연적으로 길어지는 게임에서 유의미하게 플레잉 타임을 줄여내지 못하는 팀은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3위인 한화생명 e스포츠까지, 상위 세 팀은 스프링 대비 최소 2분 이상의 플레잉타임을 줄여냈다. 결국 밸류픽 믿고 누워도 강팀 상대로는 답이 뾰족이 서는 메타는 아님을 보여준다.
장기전이 필연적으로 도모되는 상황에서 플레잉타임을 극단적으로 줄여내는 팀이 다수 발생했다는 건 몇 가지 시사점을 낳는다. 우선, 메타의 운용법과 파해법을 명확히 아는 팀들과 그렇지 않은 팀으로 스플릿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밸류메타의 핵심은 후반까지의 캐리 라이너 성장 안정성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있다. 결국 원거리 딜러의 후반 한타 캐리력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라인 안정성을 보장해줘야 하는데, 강팀들은 이 안정성에 균열을 가함으로써 플레이 타임을 크게 줄이고 있다.
이번 시즌 젠지 e스포츠의 최단시간 경기였던 광동 프릭스와의 2세트 골드 그래프다. <롤>에서 골드 그래프 지표에 균열이 가기 쉬운 시간대는 크게 초반부 기준으로 첫 전령이 등장하는 8분 전후, 그리고 포탑 방패가 사라지는 14분 전후라 할 수 있다. 이 시간대보다 이르면 게임은 소위 ‘터진다’ 라는 표현이 적절할만큼 빠르게 기우는 반면, 이 시간대보다 늦게 균열이 가면 이후로 현재 메타는 밸류값이 높은 각 팀의 라이너들을 열심히 키우는 육성형 RPG 모드로 돌변한다.
해당 그래프에서는 6분 대와 13분 대에 바텀라이너와 정글러에게서 유의한 골드 편차가 발생한다. 특히 광동 프릭스가 진-하이머딩거라는 초반 주도권 쟁취가 필수적인 픽을 들고도, 오히려 주도권을 뺏기면서 골드 그래프의 끝은 한 차례의 역전 없이 그대로 젠지의 손을 들어주었다.
두 번째 시사점은 기댓값 + 유틸리티의 시너지를 이겨낼 상성 챔피언 조합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 메타를 거의 장악한 아펠리오스와 제리는 대표적인 밸류픽 챔피언이다. 이들 챔피언은 성장만 방해받지 않는다면 3대 1도 너끈히 해치울 만큼 위력 하나만큼은 보장된 챔피언이다. 문제는 이들 옆에 달라붙어 있는 유틸리티 서포터의 존재다.
유미의 경우 리워크로 인해 사실상 이니시에이팅보다는 팀 전체의 전투 시너지를 높여주는 형태로 매커니즘이 바뀌었다. 떨어져 돌아다니는 것 이상으로 들러붙어 있는 일이 꽤 가치 있는 일이 된 셈이다. 한편, 전맵을 돌아다니며 사실상 팀원들의 손과 발을 풀어주다시피 하는 밀리오의 등장은 유미의 극단적인 전투 시너지와 광역 전투 시너지라는 대비되는 서포팅 컬러로 확고히 자리잡으며 완전한 주류 픽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주류 밸류 픽들에 대한 강팀과 약팀 간의 운용 노하우가 현격히 차이를 보이면서 리그의 순위 구도에도 어느 정도 확고함이 가시적으로 자리 잡히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이들에 대한 뾰족한 상성 구도 조차 현재까지 나타나지 않으면서 밸류픽은 사실상 바텀라인 한정으로 어느 정도의 강제성을 띠고 있다. 구사하기 어려우면 어떻게든 플랜B를 떠올려야 하는 상황에서, 뾰족한 플랜B 없이 ‘그저 메타가 하라는 대로’ 픽의 강제성이 수반되는 것이다.
최근에는 파해법으로 미드 트리스타나, 미드 이즈리얼 같은 플랜 B 성격의 2 원딜 전략이 나오고 있지만 유의한 효과를 내지 못하는 건 결국 주류 픽인 아펠리오스와 제리의 필연적 너프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이르고 있다.
50회 픽된 아펠리오스의 승률은 52%, 30회 픽된 제리의 승률은 53.3%다. 아펠리오스와 호각세를 다투던 징크스는 제리와 자야에게 물려 최근 2연패를 기록하고 있다. 밸류메타가 문제가 아니다. 궁극적으로 징크스를 들고 나올 때, 아펠리오스라는 뻔한 선택지 대신 여러 상성을 고려하며 제리나 자야를 꺼내들 수 있는 관계가 현재 메타에서 거의 없어졌기 때문에 획일성의 문제를 지적 하는 것이다.
(출처: LCK)
‘클템’ 이현우 해설이 개인방송에서 남긴 이 말은 현재 메타의 부실함과 장기적인 밸런스 붕괴, 흥미 저하 가능성 등을 단적으로 설명해 주는 이야기기라 할 수 있다. 라이엇 게임즈는 지난 스프링 당시, 소위 2 원딜 메타의 등장으로 시야 싸움은 물론 골드 싸움까지 2 원딜 진영이 압도해 버리는 플레이를 마주한 전례가 있다. 그리고는 다급히 서포터 아이템의 너프와 유틸형 원딜 ‘애쉬’의 너프를 통해 위력을 크게 절감시켜 버렸다.
과연 아이템과 챔피언 간의 시너지 연구가 게임 밸런스 전체를 흔들만큼의 ‘트윅(Tweek)’ 이었을까?
메타가 도저히 여건에 맞지 않으면 어느샌가 유저와 게이머들은 라이엇 게임즈의 밸런스 디자이너만 바라보는 형국이 되었다. 패치의 텀이라도 길다면 어떻게든 해법을 찾았겠지만, 근 2주에 한 번씩 찾아오는 손짓 덕분에 자잘한 패치도 밸런스를 흔들었다 뒤집었다를 반복한다. 오죽하면 <롤> 유튜버들 사이에서 ‘꿀패치, 너프될 때까지 맘껏 즐기세요’가 서슴지 않고 영상에 등장할까?
여느 때처럼 다시 라이엇의 패치를 기다리면서도 이번 ‘밸류 메타’의 도래는 <롤>의 기본적 재미를 앗아갔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성장치가 높은 챔피언이 점차 강해지는 건 게임 시스템 상 당연한 부분이다. 그러나 높은 성장치를 기대하기 위해 수많은 갱킹과 다이브로 방해공작을 펼치는 것도 <롤>의 일부분이 되어야만 한다.
지금은 마치 서로 짜 맞춘 듯한 안정적 게임 플랜 속에서, 일부 흔들 줄 아는 팀들이 치고 나가는 형국을 보이고 있다. 게임의 다양성은 잃은 채 원딜의 일발약진만 기대하는 게임에 어떤 재미를 느낄 수 있을까?
예고된 다음 패치는 라이엇의 문제 인식 역시 이러한 고밸류 메타에 초점이 닿아있음을 짐작케 한다. 많은 패치를 거듭하며 가장 재미있는 플레잉 환경을 만드는 게 목표인 밸런스 디자인에서 ‘가장 센 놈 잡으면 기강을 잡을 수 있는’ 게임이 탄생한 것은 아이러니하다.
(출처: L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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