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종다양한 강연이 이어진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 센터 GDC 2023 현장. 그 지하에서는 수백 개 업체들이 모인 엑스포도 함께 진행됐습니다.
나라별 개발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종합관도 여럿 꾸려졌는데, 스위스 부스에서 반가운 개발사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원더링 빌리지>를 만든 스트레이 펀(Stray Fawn) 스튜디오입니다.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이 개발사가 기자에게 반가운 이유는 <원더링 빌리지>를 인상 깊게 플레이했기 때문입니다. 움직이는 거대 생물 ‘온부’의 등 위에 마을을 꾸려, 오염된 세계를 함께 살아 나가는 게임 메카닉은 그 자체로도 매력적입니다.
그러나 <원더링 빌리지>는 여기서 더 나아가 유저가 선택에 따라 온부를 착취하거나 보살필 수 있는 섵택지를 구현해놨습니다. 온부를 괴롭혀 고혈을 짜내면 마을은 쉽게 번성할 수 있지만, 그만큼 온부의 생존-그리고 부락의 생존-은 어려워집니다. 이를 통해 현실의 우리들 역시 딛고 선 ‘삶의 터전’을 한 번쯤 내려다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한 게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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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리뷰에서 기자는 이런 주제 의식 파악과 함께 구체적으로 제작진에게 영감이 됐을 만한 미디어 레퍼런스 몇 가지 꼽아 봤는데요, 제작진을 정말로 만나 해석을 직접 확인할 기회가 주어지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스트레이 펀 스튜디오의 아티스트 슈테파니 슈투츠와 사운드 디렉터 클라우디오 베크에게 게임이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참고한 것 같다고 말하니, 눈을 반짝이며 “맞아, 그런데 어떤 거?”라고 되물어 왔습니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랑…” 까지 말했는데 즐거운 듯 두 사람은 “그리고 <모노노케 히메>도 있어”라고 덧붙였습니다. 주제 파악을 잘 해냈던 것 같아 기쁩니다.
반면 ‘온부’의 설정은 의외로 <이웃집 토토로>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는 큰 연관이 없었는데, 스튜디오 공동 창립자 미하 슈테틀러와 필로메나 슈바프가 전시회에서 고대 인도 신화의 거북이 그림을 보고 영감을 받아 떠올린 콘셉트라고 합니다. 해당 신화에 따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거대한 거북이 위에 올라선 네 마리 코끼리가 떠받치고 있습니다.
베크는 “움직이는 동물에 기대서 함께 살아가는 설정은 자연의 공생관계를 이야기하고 있어. 공생의 어려움과 이점을 동시에 전달하고자 했어”라고 설명합니다.
온부와 마을의 관계는 물론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은유한 것이기도 합니다. 슈투츠는 “게임 설정상 고대에는 ‘온부’같은 생물이 아주아주 많았고 함께 살았었어. 하지만 인간들은 이 생물들을 착취하고, 지구에 독성을 퍼지게 해 결국 온부는 동족이 다 죽은 채 혼자 살아남은 거야”라고 이야기합니다.
한편, 기자가 게임을 플레이한 것은 벌써 반년 전의 일입니다. 그동안 무엇이 바뀌었을까요?
일단 ‘온부 고문 건물’이 몇 개 생겼고, 늦봄과 초여름 사이에 대형 업데이트가 이뤄질 예정입니다. 새로운 환경인 ‘바다’가 더해지는데, 바다 환경은 건너는데 기력이 많이 소모돼 특히 위험합니다. 온부가 바다로 다가가기 전 충분히 휴식을 취하게 만들지 못하면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환경은 앞으로도 추가할 계획입니다. 하나 예정된 것은 ‘폐허’ 지역인데, 여기서는 인류가 멸망하기 전의 기술을 발견하거나, 그들의 역사를 확인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스토리 추가 계획은 없는지 묻자, 분명히 넣을 것인데, 아직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합니다.
‘엔딩’도 도입됩니다. 현재는 ‘일정 기간 살아남기’ 메카닉 뿐이지만, 이후에는 스토리적 완결을 지을 예정입니다. 그러나 끝을 본다고 해서 게임이 아예 끝나는 것은 아니고, 새로운 할 일이 생기게 될 거라네요. 업데이트가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