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큐라레: 마법도서관>에서 엉덩국과 콜라보레이션을 하는데 인터뷰 어떠세요?”
충격과 공포였습니다. ‘병맛 만화’로 인터넷 만화의 한 획을 그었던 엉덩국과 ‘고퀄리티 일러스트’를 내세운 카드 배틀 게임의 콜라보레이션 소식은 충격을 뛰어넘어 공포와 같았습니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캐릭터 사이에서 핑크색 팬티를 입은 우락부락한 남성 캐릭터가 상상이 되지 않았으니까요.
“진정한 약 빤 업데이트를 보여주겠다”고 선언한 <큐라레: 마법도서관>(이하 큐라레)의 개발팀과 입대를 앞두고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는 엉덩국(본명 김영택) 작가를 디스이즈게임이 만났습니다. 그들은 무슨 생각이었을까요? /디스이즈게임 송예원 기자
(군 입대를 앞둔 엉덩국 작가가 강력하게 신상보호를 요청해 '존슨'캐릭터로 대체합니다.)
큐라레, "제대로된 '약빤' 콜라보레이션을 보여주겠다"
<큐라레>는 유명
일러스트레이터가 참가해 화제가 됐던
게임인데요. 같은
반열에 오른(?) 소감이 어때요?
엉덩국: 같은 반열이라니요. 제가 감히. (웃음)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대신 얹혀간다고 해야 하나? 쉽게 말해 ‘버스’타는 기분은 들더라고요. 괜히 ‘진짜 작가’가 된 기분도 들고요.
처음
콜라보레이션 제안을 받았을 때
기분은 어땠나요?
엉덩국: 이해가 안 됐죠. (웃음) 아니 멀쩡하고 잘 나가는 웹툰 작가들 다 두고 굳이 왜 엉덩국 만화를 쓸까 싶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이런 고퀄리티 그래픽을 가진 게임에서 이만큼 파격적인 이벤트를 본 기억이 없더라고요. 오히려 파급력은 있겠다 싶었어요. 제 만화를 모르시더라도 한 번 보면 잊지 못할 것 같기도 하고요.
이번에
작업한 콘텐츠를 소개해
주세요.
엉덩국: 제가 그린 만화 중 ‘성 정체성을 깨달은 아이’라는 작품이 <큐라레>에 등장하는 콜라보레이션이에요. 게임 안에 ‘존슨’이라든지 ‘핑크’와 같은 만화 속 캐릭터가 마도서로 등장하는 거죠.
단순히 캐릭터만 등장하는 게 아니라 스토리까지 원작을 따르고 있어요. 미우라, 셀라, 델핀이 엉덩국에 떨어져 벌어지는 에피소드죠. “찰지구나”,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등의 유명 대사도 등장할 거에요.
양주영: 다른 게임의 콜라보레이션처럼 단순히 카드 한두 장 추가되는 수준이 아니라, 2주에 한 번씩 진행되는 정기 업데이트에 일환으로 보시면 돼요. 그래서 시나리오까지 신경 썼고요. 또 엉덩국 캐릭터를 <큐라레> 스타일대로 재해석한 새로운 일러스트도 보실 수 있습니다.
평소에도
작업 시간이 길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작업하는
데 어렵지 않았나요?
엉덩국: 12장 정도 작업했는데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완성작이 나오는 데까지는 2시간 정도 걸렸어요. 그림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뭐 작업할 게 없잖아요. (웃음) 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게 아니라 있던 그림을 요청에 맞게 다시 그리면 됐기 때문에 더 간단했죠.
강호연 팀장: 그래도 한 번 퇴짜 줬어요. ‘성 정체성을 깨달은 아이’ 처음 나왔을 때보다 실력이 일취월장해서 생각보다 너무 잘 그린 거에요. 저희가 원하는 그 특유의 느낌이 부족했죠.
엉덩국: 그때 당시에는 그림판을 썼는데 지금은 타블렛으로 작업하거든요. 실력이 늘기도 했지만 그림 풍이 조금씩 변한 것도 있고, 도구가 변하니까 선이라든지 이런 게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재 작업할 때는 오랜만에 그림판을 켰어요. 원작 만화 보면서 막 일부러 삐뚤빼뚤 그리기도 하고. (웃음)
‘병맛’의 엉덩국과 <큐라레>라니
결과물이 상상도 안 되더라고요. 도대체 이런
프로젝트는 어떻게 진행하게 된건가요?
강호연 팀장: 저희 스튜디오 안에 엉덩국 만화의 엄청난 팬이 있어요.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 얘기가 나오던 중 그분이 엉덩국을 적극 추천했고, 내부에서도 반응이 나쁘지 않아서 일사천리로 진행됐어요.
보통 업데이트는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해 진행하는데요.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매출 상승보다는 유저들의 관심을 되찾는 게 중요했어요. 사실 현재 <큐라레>의 성적이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는 상황이니까요. 매출을 올리려면 보편적인 방향이 옳았겠지만, ‘재미’를 통해 ‘관심’을 얻자 라는 게 가장 큰 목표였죠.
물론 이전에도 속된말로 ‘약빤’ 업데이트는 있었지만, 이번에는 게임을 즐겨 주시는 유저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정신 나간 거 아니야”라는 이야기를 듣자고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본래 게임 일러스트와
엉덩국 만화 간의 차이가 너무
나서 걱정도 됐을 것
같은데.
강호연 팀장: 그걸 의도한 거에요. 기왕 재미를 주기로 한 거 눈에 확 띄어야죠. 또 원작 자체가 워낙 단조로워서 저희 게임의 때깔이 훨씬 좋아 보이는 효과도 있더라고요. ‘대비효과’라고 하죠? (웃음) 엉덩국 덕분에 <큐라레>를 처음 만나는 분들에게는 좋은 인상을 심어 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동성애 희화화 논란? "내가 잘못한 것"
엉덩국이
알려진 게 2008년이니까, 벌써 데뷔(?)한지 6년이나
흘렀어요.
처음 그림을 시작한 계기가
있나요?
엉덩국: 당시에 활동하던 한 사이트에 일명 ‘병맛 만화’가 한창 올라오고 있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따라 그려 볼까?’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거에요. 그림을 올렸더니 반응이 좋고 조금씩 관심도 받으니까 기분이 좋더라고요.
최근 연재를 시작한 웹툰에서도 공개했지만 대단한 만화가가 되겠다, 이런 의도로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그렇게까지 제 그림이 인터넷에 퍼질 줄 몰랐고요. 그냥 댓글 하나 달리는 거에 만족했던 건데 정신차리고 보니까 유명인(?)이 되어 버렸더라고요.
블로그를
통해 사과 만화를
그리기도 했지만, 단숨에 주목을 받으면서
동성애 비하 등의
논란의 중심이 되기도 했죠?
엉덩국: 앞서 말했지만 진짜 제 그림이 그렇게까지 퍼질 줄 몰랐고, 그 그림이 무슨 동성애 전체에 영향력을 미칠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어요. 그 때 제가 고등학생이었거든요. 철이 없었던 것도 있었지만 생각 없이 그저 웃기려고 그린 거여서 이후 논란이 되고 많이 당황했어요.
정말 나쁜 마음을 먹고 비하하거나 희화화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제가 악의를 가지고 만화를 그린 게 아니더라도 어쨌든 그분들이 상처를 받을 만큼 영향력을 미쳤다면 제가 잘못한 거죠. 사과 만화를 그렸던 건 진심이었습니다.
유명세를
타면서 욕도 많이
들었을 것 같은데
어린 마음에 상처 입거나
하진 않았어요?
엉덩국: 욕 많이 먹었죠. 그런데 크게 신경 안 썼어요. 블로그를 운영하니까 쪽지 같은 걸로 ‘쌍시옷 들어간’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냥 ‘ㅋㅋㅋㅋ’ 보내면서 웃어넘겨요. 대신 잘못한 것에 대해 비판을 하는 거라면 바로 사과합니다. (웃음)
그런
만화(?)를 그리는
걸 친구나 부모님은 모르세요?
엉덩국: 중고등 학교 때는 그냥 “쟤가 엉덩국이래”라며 사인을 받는 정도였고, 부모님들은 아예 관심이 없으세요. 그냥 ‘웃긴 만화’를 그려서 유명하다는 건 알아도, 인터넷 세상에 대해 잘 모르시거든요.
제가 먼저 “나 엉덩국이요”하고 밝히지는 않는데, 본의 아니게 이름이나 나이가 인터넷에 알려져서 상대가 엉덩국 아니냐고 묻는 경우가 있어요. 대학교에 와서는 조금씩 정체가 들통 나서 곤란할 때가 많았죠. 원하지도 않는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다든지. 군대 가서는 숨길 수 있을 때까지 숨길 거에요.
도대체
그런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는
건가요?
엉덩국: 만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큰 고민 없이 그리는 게 대부분이어서. (웃음) 구상을 따로 한다든지, 미리 스토리 라인 짠다든지 이런 복잡한 과정 없이 손 가는 대로 그려요. 연재물의 경우 지켜야 할 양식과 틀이 있어서 조금 시간이 걸리지만, 블로그에 올린 만화들은 보통 한 두 시간이면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워낙 스트레스 없이 작업하다 보니 지금까지 이어 올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처음 시작이 워낙 엉망이니까 그림을 잘 그려야 한다는 부담감도 없고요
어떻게
보면 취미로 시작한 만화가 최근
연재를 비롯해 <큐라레> 콜라보레이션까지 수입원이 됐어요. 애초에
만화가를 꿈꾼 건
아니었는데, 지금은
만화가로서의 앞날을 계획하고 있나요?
엉덩국: 간혹 제 만화의 인기 비결을 묻곤 하는데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막 그린 그림을 좋아해 주셨고, 그 스타일 그대로 밀어붙였을 뿐이거든요. 제가 그림을 따로 배웠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출중한 것도 아니잖아요. 전공도 만화와 전혀 상관없는 국어국문과이고요.
전공은 국문과이지만 글만으로는 제 영혼을 담기에 부족한 거 같고. (웃음) 지금처럼 그림으로 제 이야기나 생각을 담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요. 웹툰 등 시장은 항상 열려 있는 상황이어서 군대에 가서 많이 생각할 것 같아요.
중요한
시기에 입대를 앞두고 있는데, 아쉽지
않나요?
엉덩국: 군대는…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그냥 너~무 슬퍼요.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이제야 미래에 대해 뭔가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그 사이 잊혀지는 게 아닐까 두렵기도 하고요. 작업이 어렵지 않으니까 군대 가서도 그릴 수 있지 않냐고들 하는 데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컴퓨터나 인터넷을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닐 테고요.
그래서 더 많이 고민하고, 또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할 것 같아요. 잘 다녀오겠습니다. 엉덩국도 잊지 말아 주시고, <큐라레> 엉덩국 업데이트도 많이 사랑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