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2일.
그리핀이 LCK에 머무른 시간입니다. 다소 굳어져가던 LCK의 흐름을 박살낸 그리핀은 하위권보다 최상위권이 익숙한 팀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올 시즌 이토록 처참하게 무너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올 시즌 그리핀은 정말 김대호 감독의 이탈로 인해 실패한 걸까요?
구 그리핀과 현 그리핀의 차이점을 짚어보는 한편, 김대호 감독이 합류한 DRX와 구 그리핀 사이의 연결고리도 정리해봤습니다. / 디스이즈게임 이형철 기자
본 콘텐츠는 디스이즈게임과 오피지지의 협업으로 제작됐습니다.
지난해 서머 시즌 그리핀은 와드를 많이 설치하기보다, 어떻게 설치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확실히 증명한 팀이었습니다.
지난해 서머시즌, 그리핀은 분당 3.7개의 와드를 설치했습니다. 이는 리그 9위에 해당할 정도로 낮은 수치입니다. 반면 지운 와드 개수는 1.86으로 리그에서 두 번째로 높습니다. 아주 적은 와드로 효율적인 시야 장악을 한 셈입니다.
때문에 올해 그리핀의 시야 점수는 더욱 충격적입니다. 올 시즌 그리핀은 분당 3.9개의 와드를 설치했습니다. 이는 지난 시즌보다 증가한 수치입니다. 하지만 지운 와드 개수는 오히려 0.14개 줄어들었죠. ‘가장 효율적으로 시야를 잡던’ 팀이 1시즌 만에 ‘가장 비효율적’으로 움직이게 된 겁니다.
물론 그리핀은 미드 라이너와 서포터가 이탈한 채로 시즌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탑, 정글, 원딜이 잔류했음을 고려하면 꽤 놀라운 하락 폭입니다. 한편으로는 시야에 관한 합이 전혀 맞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스스로에 대한 ‘고집’도 올 시즌 그리핀을 상징하는 요소 중 하나였습니다.
지난해 그리핀은 ‘우린 틀리지 않았어(이하 우틀않)’를 대표하는 팀이었죠. 그리핀이 우틀않을 외칠 수 있었던 건 그들이 ‘강팀’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올해 그들은 명백한 약팀으로 내려앉았음에도 실패한 밴픽을 고집스럽게 밀어붙였습니다.
이에 3월 28일 그리핀과 DRX의 경기를 중계한 이현우 해설은 “우틀않은 강팀의 특권”이라며 ”하지만 지금의 그리핀은 스스로가 약팀임에도 우틀않을 외치고 있다”라고 일침을 가한 바 있습니다.
# 구 그리핀과 DRX의 연결고리: 떠난 이들은 증명했다.
많은 분이 올 시즌 그리핀이 몰락한 이유로 김대호 감독의 이탈을 꼽습니다. 2017년부터 팀을 이끌어온 김 감독은 ‘콜 없는 한타’ 등 자신만의 철학을 통해 독특한 색깔을 입혔고, 3 시즌 연속 결승 진출 등 가시적인 성과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그리핀의 추락이 온전히 김 감독의 이탈만이라고 보긴 힘듭니다. 주전 미드 라이너와 서포터의 공백과 여러 풍파로 온전히 경기를 준비할 수 없었던 것도 고려해야합니다.
다만, 분당 설치한 와드와 제거한 와드에 있어서는 김 감독의 영향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올해 김 감독이 합류한 DRX가 2019 LCK 서머 시즌의 그리핀과 유사한 점수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DRX의 전신 킹존은 지난 시즌 분당 4.3개의 와드를 설치했고, 1.78개의 와드를 제거했습니다. 이는 각각 리그 2위와 4위에 해당합니다. 반면 김 감독이 합류한 올 시즌에는 분당 3.6개의 와드를 설치하고 1.81개를 지웠죠. 설치한 와드 개수는 크게 줄었지만, 제거한 와드 개수는 상승한 것입니다.
이는 지난 서머 시즌 그리핀이 기록한 시야 점수와 비슷한 흐름입니다.
물론 많은 와드를 설치하는 것이 높은 성적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지난 서머 시즌, 진에어는 분당 설치한 일반 와드와 비전 와드의 개수가 가장 많은 팀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0승 18패. 리그 꼴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감독이 지도한 두 팀이 해당 부분에서 비슷하다 못해 ‘똑같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꽤 인상적인 부분입니다.
많은 이들은 그리핀을 떠나는 쵸비와 도란 그리고 김 감독을 보며 의문부호를 띄웠습니다. 그들이 선택한 팀은 높은 연봉도, 스타급 선수들이 가득한 팀도 아닌 ‘DRX’였습니다.
하지만 DRX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14승 4패를 기록하며 올 시즌 리그 3위에 올랐습니다. 의문부호 속에 그리핀을 떠난 이들이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한 셈입니다.
# 남은 이들은 증명하지 못했다: 소드, 타잔 그리고 바이퍼
반면 팀에 잔류한 소드, 타잔, 바이퍼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그리핀 내부 갈등의 시작은 소드가 주전자리를 빼앗기면서 시작됐습니다. 2019 LCK 서머, 도란에게 주전 자리를 빼앗긴 그는 팀 대표에게 불만을 표출했고 이는 엄청난 나비효과로 다가왔습니다. 때문에 소드는 도란이 떠난 그리핀에서 자신이 주전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증명해야 했습니다.
타잔은 2019 LCK 서머 결승전 오프닝에서 ‘의자 씬’으로 인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한국 e스포츠 팬들에게 ‘의자에 앉는 것’은 해당 종목의 절대자를 뜻하는 상징성을 지닙니다. 때문에 이렇다할 우승 경력이 없었던 타잔은 많은 비판에 시달렸습니다. 아마도 그는 올 시즌 강한 미드와 서포터가 떠난 팀에서도 활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겁니다. 또한, 바이퍼는 리그에서 손꼽히는 서포터 리헨즈가 없어도 게임을 캐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답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세 선수는 올 시즌 그야말로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소드는 오른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성장과 갱킹을 모두 해내던 타잔은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바이퍼는 두 선수에 비해 양호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팀의 추락을 막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기존 선수들의 부진은 그리핀을 급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리그 오브 레전드>가 선수 간 호흡이 중요한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승강전을 앞두고 서포터 와디드를 영입합니다. 결국 도박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고 700일간 이어졌던 그리핀의 LCK 여정도 그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그리핀의 LCK 여정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출처: 그리핀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