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주목해야 할 베트남 게임씬
▶베트남의 지스타 '게임버스'가 부러워진 이유
20년 묵은 게임 '실크로드 온라인', 베트남에서 대박 난 사연
'게임버스'라고 들어 보셨나요?
검색해보니, 이 글이 '게임버스'에 대한 국내 첫 기사네요. 13년 만에 취재 차 호치민에 간 건 순전히 이 행사 때문이었습니다. 놀랐고 부러웠어요. 더 자주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글로벌 진출을 모색하거나, 외부 개발력 확보에 관심 있거나, 게임 생태계 지원을 고민하는 분이라면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실 거예요. 동남아에서 떠오르고 있는 베트남엔 쌀국수나 반미, 오토바이와 글렌알라키 말고도 주목해야 할 게 많습니다. 게임씬도 ‘확실히’ 핫했습니다. /호치민(베트남)=디스이즈게임 시몬(임상훈 기자)
지스타는 2005년부터 시작했어요. 왜 그때였을까요? 그 무렵 나온 게임들을 보시죠.
▲ 2004년: <팡야>, <마비노기>, <카트라이더>, <스페셜포스>, <프리스타일>
▲ 2005년: <WOW>, <오디션>, <서든어택>, <던전앤파이터>, <실크로드 온라인>
바야흐로 한국 게임 시장이 막 폭발하던 시기였습니다. 한국 게임생태계는 번듯한 게임쇼가 필요했어요. 흩어져 있는 작은 게임쇼가 지스타로 통합됐죠. 해외 퍼블리셔들이 게임 발굴하러, 판권 사러 지스타에 몰려왔죠. 파티가 많았어요. 국내 주요 퍼블리셔들은 홍보 경쟁을 펼쳤습니다. 처음이라 미숙했죠. 덕분에 얻은 오명 '걸스타'. 어쨌든 한국 온라인게임 전성기가 막 시작했던 때였습니다.
베트남 게임버스는 2023년부터 열렸어요. 왜 작년이었을까요? 작년 7월 호치민에서 구글이 주최한 'Think Apps 2023'에 발표된 내용을 보시죠.
▲ 베트남산 게임 전 세계 다운로드 5위.
▲ 베트남 게이머 규모 전 세계 15위.
베트남 게임의 개발력과 시장 규모가 일정 수준으로 올라왔다는 걸 보여주는 데이터죠. 특히 베트남은 조작이 간단한 하이퍼캐주얼 장르에서 발군입니다. 글로벌 게이머들이 다운받는 25개의 게임 중 하나는 베트남 스튜디오가 개발한 거예요. 리듬게임 세계 1위 퍼블리셔도 베트남의 아마노츠(Amanotes)고요.
국내 게임업계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베트남은 게임 그래픽과 프로그래밍 아웃소싱 강국이에요. 그 역량이 <엑시 인피니티>(스카이마비스, 본사 호치민) 성공 이후 NFT게임(Web3 게임) 붐으로 이어졌죠. 글로벌 투자자가 몰려왔어요. 올해는 분위기가 확 달라졌지만, 지난해 게임버스는 NFT게임이 주류였습니다. 게임 시장도 매년 9% 성장하고 있고, 유저 규모는 5,460만 명 정도 됩니다. 평균 연령이 32세의 젊은 국가이고, 미중 갈등 속에서도 균형을 지키는 '대나무 외교'로 성장은 계속 될 전망입니다. 국가적으로 게임쇼를 열 만한 거죠.
올해 게임버스는 5월 11~12일 이틀 동안 호치민 푸토 체육관에서 열렸습니다. 평소 농구나 배구 경기가 열리는 곳이에요. 우리나라 장충 체육관을 생각하면 됩니다. 베트남은 아직 전시회 비즈니스가 활발한 곳이 아니여서, 코엑스나 벡스코, 킨텍스 같은 대형 전시장이 없습니다.
지스타가 초기에 ‘걸스타’로 논란이 됐던 것처럼 게임버스도 디테일은 아직 덜 정빈된 느낌이었습니다. 부스걸들이 B2B와 B2C 공간 사이 복도에 단체로 앉아 점심을 먹었고, B2B 공간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었죠.
하지만 행사 알맹이는 확실했습니다. 주요 베트남 퍼블리셔들이 대부분 참여했죠. 중국어권, 영어권에 이어 LCK 시청자층이 3번째 많은 해외 지역인 만큼 e스포츠 대회도 크게 열렸습니다. 게임 시상식, 투자 매칭, 코스프레 행사 등 다양한 이벤트도 펼쳐졌고요. 더운 날씨에도 게이머는 밀려들었죠. 현지 퍼블리셔 대표는 “작년에 3만 명이 왔는데, 올해는 4만 명이 왔다”고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다른 게 더 강렬한 인상을 줬습니다. 한 명의 공무원이었죠.
중국에 판호가 있다면, 베트남에는 G라이선스가 있습니다. 이 라이선스 발급을 포함해 게임 정책을 총괄하는 책임자는 정보통신부 방송전자정보국 레꽝뜨(Le Quang Tu Do) 국장입니다. 이 인물은 개회사는 물론 패널 토론(아래 사진)까지 참여해 베트남 게임씬의 한계와 발전 방향에 대해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했죠. 한국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패널 토론에 참여한 이들은 베트남 게임이 하이퍼캐주얼 중심이어서 게임 퀄리티나 규모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를 극복할 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젊은 개발자를 잘 키울 방법에 대한 논의는 ‘새로운 세대의 게임 수도’(a new-generation gaming capital)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로 이어졌죠.
‘새로운 세대의 게임 수도’, 이런 표현을 언급할 수 있는 자신감이 부러웠습니다.
레꽝뜨 국장은 개회사 마지막 부분에 이런 바람을 이야기했죠. “게임버스가 지스타나 차이나조이처럼 큰 글로벌 게임 행사가 되기를 꿈꾼다.” 저는 그럴 가능성이 꽤 있다고 느꼈습니다. 최근 베트남 게임씬의 발전, 정부의 적극적인 진흥과 함께 또 다른 낯선 장면을 봤기 때문이죠.
레꽝뜨 국장에 이어 키노트를 발표한 인물은 쥬이응우옌(Duy Nguyen)이었습니다. 그는 구글 국제 성장 컨설턴트(International Growth Consultant)죠. 구글 컨설턴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베트남은 모바일게임 아웃소싱 개발과 제조의 중심지에서 벗어나고 노력하고 있다. 이제 모바일게임을 수출 자산이자 신흥 기술의 중요한 부분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게임산업의 경제적 잠재력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올해 우리(구글)는 정보통신부 및 방송전자정보국과 파트너십을 맺고 베트남 게임버스의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중략) 지난 5년 동안 구글은 Gaming Grow Lab, Play Developer Connect, Game Design Masterclass 및 Think Apps와 같은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현지 개발자와 적극적으로 협력해 왔다.”
구글은 하이퍼캐주얼 중심의 베트남 게임 개발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발표 장표에는 베트남 국기가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태극기가 펄럭이는 구글 장표를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덧붙여 이런 말을 했죠. 따끔했습니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게임 개발자들은 나이가 많다. 당연히 경험도 많고 역량도 뛰어나다. 하지만 새로운 변화에 대한 적응이나 유연성이 부족하다. 베트남은 젊은 개발자들이 많다. 새로운 변화에 더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구글에 이어 로블록스와 메타의 임원이 차례차례 등장했습니다. 한결같이 베트남 게임이 자신들의 플랫폼에서 거둔 성과에 함께, 베트남 개발자들과 더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드러냈죠.
베트남 게임 개발자들은 분명 한계가 있지만, 빠른 속도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구글, 로블록스, 메타 등 대형 글로벌 업체의 러브콜이 뒤에서 밀어주고 있으니까요.
행사장에는 VNG게임스, VTC 게임 그룹, 가모타, 소하게임, 펀탭, 고수온라인 등 베트남 주요 메이저 게임사가 모두 참가했습니다. 이 또한 지스타와 다른 양상이죠. 정부 눈치를 더 볼 수 밖에 없는 시장인 탓도 있겠지만, 지스타 초기처럼 성장 생태계의 낙관적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올해 게임버스에 부스를 낸 한국 게임 관련 회사는 두 곳이었습니다. Web3 게임을 개발하는 메타버스랩스와, AB180의 마케팅 성과분석(Attribution Tracking) 솔루션 에어브릿지였죠. B2C 부스로 출전한 메타버스랩스는 VTC온라인, 고수온라인과 베트남 퍼블리싱 관련 MOU를 체결했습니다. 글로벌 확장에 적극적인 에어브릿지는 B2B 공간에서 가장 큰 부스를 내고 베트남 개발사들과 미팅을 진행했죠.
부스는 안 냈지만, 결제 솔루션 회사 엑솔라는 파티를 주최했습니다. VTC 온라인 이용득 부사장은 “엑솔라가 정말 똑똑하다. 정부 공식 연회를 빼면 유일한 네트워크 파티를 개최했다. 베트남 업계 관계자들에게 확실히 어필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베트남은 미국, 중국, EU의 러브콜을 동시에 받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현대차가 도요타보다 더 많이 팔리는 유일한 동남아 국가이기도 하죠. 현대차와 기아차 판매량이 1, 3위를 차지하고 있어요. 그동안 한국이 베트남에 가장 많은 투자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겠죠. 1986년 도이머이(개혁개방) 초기부터 활약한 하노이 김우중, 호치민 박연차는 여전히 국빈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한국 게임사들이 게임버스에 더 많이 참여해 베트남 게임사와 네트워크를 만들고 협업 기회를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한국과 인연이 깊고, 발전 전망도 밝은 게임 개발씬을 구글, 로블록스, 메타, 엑솔라 등 외국 회사들에게 속수무책 뺏기는 건 좀 그렇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