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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차라리 게임을 안 만드는 게 낫겠다"

'매드 게임즈 타이쿤 2'에서 얻은 교훈, 그리고 현실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김재석(우티) 2024-01-12 16:59:02

# '자본주의 및 경제게임 축제'로 2024년 시작한 스팀

새해를 맞아 스팀에 '자본주의 및 경제게임 축제'가 한창이다.

올해는 돈 많이 벌라는 뜻인가? 아무튼 각종 시뮬레이션과 타이쿤 게임이 최대 75% 할인 중인데, <시티즈 스카이라인>, <빅 앰비션즈>, <플래닛 코스터> 같은 게임이 대상이다. 그 목록에 눈에 들어온 게임이 있었는데, 이름하여 <매드 게임즈 타이쿤 2>였다. 지난해 5월 정식 출시했으나 비슷한 시기 워낙 걸작이 많아서 잊고 지내던 타이틀이다.

<매드 게임즈 타이쿤>은 게임을 만드는 게임이다. 경영 시뮬레이션으로 플레이어는 신생 게임사의 성장을 책임지는 사장이 된다. 2015년 스팀을 비롯한 여러 플랫폼에 출시된 뒤 호평 받았고, 8년의 시간이 흘러 개발사 에그코드 게임즈는 후속작을 내놓았다. <매드 게임즈 타이쿤 2>에는 멀티플레이, 방향 전환, UI 개선 등 몇 가지 기능이 추가됐다.

역사에 남을 게임을 만들어 시드 마이어나 존 카맥 같은 전설이 되고 싶다. 평단과 유저를 두루 만족시키는 게임을 내놓고 싶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어서 돈을 벌고 싶다.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을 독자라면 이런 꿈을 한 번쯤 꿔봤으리라. <매드 게임즈 타이쿤 2>는 바로 그 로망을 향한 징검다리 같았다.

그러나 전설적인 게임개발자가 되기는 커녕 게임 하나 만들어서 푼돈 만지는 것조차 어려웠다.

스팀은 지금 '자본주의 및 경제게임 축제' 중이다. 수전노 같은 이미지가 퍽 마음에 든다(...)

# 내가 바로 '갓겜' 공장장? 하지만 실제는...

뻔한 이야기지만 좋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실력 있는 팀을 꾸려야 한다. 안타깝게도 게임 초반 회사에 이력서를 넣은 이들은 애매한 능력치의 범재들뿐이다. 이들을 교육실에 집어넣어 게임 개발을 가르칠 수도 있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바로 그 인력을 게임 개발에 써야 한다.

돈이 많다면 얼마든지 '갓겜'을 찍어낼 수 있겠지만, 플레이어가 쓸 수 있는 돈은 한정적이다. 평단이 찬사를 보내고, 실제 판매가 어느 정도 이루어져도, 게임 개발에 들어간 기간이 너무 길면, 돈을 벌 수 없다. 타이쿤 게임들이 주로 제공하는 '은행에 돈 빌리기'도 있지만 어떤 은행도 사업가에게 공짜로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매드 게임즈 타이쿤 2>는 우리가 아는 게임 생태계와 그 역사를 제법 잘 재현했다. 게임 개발의 역사 연표가 게임 안에서도 재현된다. 경쟁사들의 등장과 소멸, 새로운 게임기와 장르의 등장이 그대로 이어진다. 1970년대 석유 파동 같은 게임 세계 바깥 이벤트도 경영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역사를 알면 대응하기 쉽다.

<매드 게임즈 타이쿤 1&2>는 게임을 만드는 일에 관한 게임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는 이것이다.

플레이 중 그 유명한 아타리 쇼크가 왔을 때, 기자는 파이프라인을 모두 멈추고(그러니까 '범재'들을 해고하고), 콘솔기술 연구에 전력했다. 그리고 경쟁사보다 몇 년 앞서 휴대용 게임기를 내놓았다. 어차피 게임을 만들어도 팔리지 않을 것이니 대신에 차세대 콘솔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1989년 첫 출시된 게임보이 시리즈는 <슈퍼 마리오>, <포켓몬스터>와 같은 걸출한 타이틀과 더불어 대흥행하며 세계적으로 1억 대 넘게 팔렸다. 닌텐도보다 앞서 신화를 재현하고 싶었다.

그러나 개돼지 소프트웨어(회사 이름)는 도산했다. '마이개돼지'(휴대용 게임기 이름)는 출시 초기 내구도 문제를 겪었고, 경쟁사만큼 퍼스트파티 게임을 확보하지 못했다. 부랴부랴 게임을 만들었지만, 비용 절감을 위해 수년 전 개발자들을 내쫓은 탓에 역부족이었다. 경쟁사만큼 게임기 광고 마케팅을 펼 수도 없었다. 출시는 빨랐지만, 경쟁사에게 우위를 빼앗겼다. 개돼지 소프트웨어는 창고에 '마이개돼지' 게임 재고만 가득 쌓아 놓은 채 폐업했다.

 <E.T.>가 망한 뒤, 아타리는 그 카트리지를 사막에 묻어버렸다. 무리하게 사업을 벌이다 망해버린 '개돼지 소프트웨어'의 게임들도 그 꼴이 났을 것이다.

# "차라리 게임을 안 만드는 게 낫겠다"

최근 다시 인기를 얻은 '4살 아이의 한마디'처럼, 'Fail'은 실패가 아니라 '다시 하라는' 것 아니겠나? 2번째 플레이에는 전략을 바꿨다. 몸값이 낮은 소수 인원으로 개발실을 꾸리고 외주업무를 시작했다. 게임을 만들지 않고 외주 개발만 하니 돈이 모였다. 연구실에서 연구자들이 신기술을 개발하는 동안, 개발 노하우가 쌓였다. 기기 개발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게임 만드는 게임인데 게임을 만들지 않으면서 돈을 벌게 된 것이다.

적당한 돈을 모은 뒤에 실력 있는 개발자를 섭외하고, 간단한 레벨(B+~A)에서 당대의 인기 장르와 주제를 따라했다. 그러더니 돈이 제법 모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난 뒤, 마케팅부서에서 타사 게임을 유통하라는 미션을 받았다. 평가가 좋은 게임들을 골라 퍼블리시하다 보니 돈이 많이 벌렸다. 그제서야 AAA급 게임을 만들 여력을 갖추었다.

이때부터 개발실에서만 게임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회사에 음악 스튜디오, 그래픽 스튜디오를 만들어서 협업해야 한다. 그렇게 지금 개돼지 소프트웨어는 수십여 명의 직원들이 '블루 데드 리뎀션'을 개발 중이다. 기자는 아직 '블루 데드 리뎀션'의 성공을 확신할 수 없다. 이렇듯 내 게임을 만드는 것도, 그 게임으로 돈을 버는 것도 쉽지 않다.

게임을 만들어도 잘 팔릴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 이렇듯 불확실성이 크다 보니, <매드 게임즈 타이쿤 2>의 초반부에는 차라리 게임을 안 만드는 게 낫다. 게임에 메타버스나 블록체인, 인공지능 같은 하이프(Hype)를 넣겠다고 투자자를 설득하는 기능 따위는 없다. 여러 분야의 노하우를 두루두루 쌓을 때까지 묵묵히 정도를 걸어야 한다.

현실 속 게임사 사장들도 대내외적인 시장 변동에 영향을 받을 텐데, 이들이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AAA급 게임부터 부서 간 협력이 필요하다. 또 범재들을 데리고는 협력 해봐야 '게임력'이 쌓이지 않는다. (출처: 에그코드 게임즈)

# 경영 상황이 어려워질 때 가장 먼저 손을 대는 것은...

<매드 게임즈 타이쿤 2>를 하면서 경영 상황이 어려워질 때마다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은 인력 부문이었다. 게임회사는 자동차 공장이 아니다 보니, 생산시설이라고 해봐야 작은 하드웨어뿐이다. 컴퓨터는 팔아봐야 얼마 되지도 않다. 그나마도 일회성 비용에 불가하다. 그러나 직원들은 계속 자리에 앉아 월급을 가져간다.

자연스럽게 이들을 해고한 상태에서 기존에 들어오던 수입이 안정적으로 들어온다면, 매출 감소세를 막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시나리오를 돌리게 된다. 그래서 위기가 찾아올 때면, 게임을 함께 만들던 개발자들을 드래그해서 해고해 버렸다. 직원들 사기는 떨어졌지만, 일단 매출 흐름은 어느 정도 되살릴 수 있었다.

현실의 게임 세계에서도 인력 감축의 레이스가 시작된 듯하다. '위드코로나' 이후 먼 나라의 빅테크에서 시작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불씨는 베스파와 원더피플을 지나, 어느덧 엔씨(엔트리브)와 라인게임즈(레그스튜디오), 데브시스터즈(브릭시티, 미국법인)까지 번져왔다.

'Fail은 실패가 아니라 다시 하라는 것'이라기에 밥벌이의 무게는 게임의 재도전보다 무겁다. 스팀은 '자본주의 및 경제게임 축제'를 펼치고 있지만, 2024년은 돈 벌기 쉽지 않은 한 해가 될 듯하다. 잠시나마 경영자 놀이를 해보니, 지금 누군가는 "차라리 게임을 안 만드는 게 낫다" 여기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 누군가는 "차라리 게임을 안 만드는 게 낫다"고 여기고 있을지도 (출처: 에그코드 게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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