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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칼럼] AI가 게임을 쉽게 만들어준다는 건 착각일지 모른다

혁신과 확장에 대한 비용들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김승준(음주도치) 2024-06-26 17:27:07

시대가 변했다. 머신러닝에서부터 생성형 AI까지 인공지능 기술은 생활 속 깊이 들어왔고, 같은 GPT도 날이 갈수록 고도화되어 가고 있다. 텍스트, 이미지 심지어 영상까지도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기술 발전을 보고 있노라면, <리그 오브 레전드> 블리츠 크랭크의 대사처럼 "인간 시대의 끝이 도래"하는 건 아닌지, 허망한 상상을 하게 된다.


물론, 실제로 그런 비관적인 미래가 빠르게 찾아 오리라 생각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인공지능의 발전에는 앞으로 더 많은 장애물이 생기리라 예상하는 쪽에 가깝다. 정확히는 인공지능 자체가 겪는 문제보단,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사람들의 문제다.


한편, 게임 업계에서도 AI를 활용한 게임들이 조금씩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그 최전선에 있는 대표적인 예시가 크래프톤 12개 자회사 중 하나인 렐루게임즈의 게임들이다. 음성 인식 게임 <마법소녀 카와이 러블리 즈큥도큥 바큥부큥 루루핑>(이하 즈큥도큥), GPT-4o(포오)를 활용한 대화 생성 추리게임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이하 스모킹 건)으로 업계 전체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즈큥도큥>과 <스모킹 건>의 특장점 중 하나는, 게임 개발의 보조도구로 AI를 활용한 걸 넘어, 핵심 콘텐츠에 AI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게임 모두 다른 게임들에서 접하지 못했던 생경한 경험을 제공해 호평을 받았다. 앞으로 AI를 활용하는 게임들이 어떤 혁신적 플레이와 게임성의 확장을 보여줄지 기대되는 이유다.


다만, 이런 생각도 해보게 된다. 이 정도의 '혁신과 확장'을 보여주면서 게임의 본질인 재미를 잃지 않는다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구나. 


<즈큥도큥>

# 정확히는 '성공하는 게임'을 만들기 어렵다

게임이 우후죽순 쏟아지는 시대다. PC, 모바일, 콘솔 시장에서 주목 받지도 못하고 사라져가는 게임들이 얼마나 많은가. AI는 개발 진입장벽을 낮춰줬고, 기존처럼 각 분야의 전문가가 협업하지 않더라도 생성형 AI로 콘텐츠를 채울 수 있게 됐다. 이런 기술을 기반으로, 지금보다 더 많은 게임들이 앞으로 시장에 나오게 될 것이다. 안 그래도 치열한 마케팅 비용 경쟁 또한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 누구도 망할 심산으로 게임을 만들지 않는다. 출시는 쉬워질지 몰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금전적 보상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면, 다시 말해 '성공하는 게임'을 만들기 어렵다면, 오히려 악재일지 모른다.  


AI를 활용한 콘텐츠가 중심에 있는 렐루게임즈의 게임들은 그럼 위기인 것일까? 그렇지 않다. 두 게임 모두 AI 활용 콘텐츠 이전에 게임으로서의 매력이 탄탄하기 때문이다.


"출산율 저하로 마법 소녀 부족 현상(?)이 발생한 서울. 갈등이 고조된 사회에서, 당신이 항상 상상하던 중년 남성 마법소녀(?)가 되어 세상을 구하라." 


<즈큥도큥>은 낯 부끄러운 주문을 외치는 플레이가 직접 공개되기 이전부터 콘셉트만으로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머리 벗겨진 수염 난 아저씨가 세라복을 입고 괴상한 주문을 외우다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게임이다. 


게임으로서의 매력이 살아있었기 때문에 얼리 액세스 단계에서부터 많은 화제가 된 <즈큥도큥>이다.

이틀 전인, 24일 정식 출시된 <스모킹 건> 또한 마찬가지다. 본지에서 알파 데모 체험기, 인터뷰, 데모 리뷰 등 여러 차례 이 게임을 소개한 이유도, AI 활용 콘텐츠를 떠나 추리게임 그 자체로 매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택지를 고르는 게 아닌 등장인물과 직접 대화를 나누고, 주관식으로 정답을 직접 기입하는 방식은 그 자체로도 신선했지만, 게임의 설정과 연출만 놓고 봐도 이미 흥미로운 작품이다. 사람을 죽인 로봇-이라는 연쇄 사건의 이면에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로봇 사이의 갈등이 녹아있어, SF 애호가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완급조절의 노련함도 돋보였다. 안드로이드 로봇들과 대화를 주고 받는 방식이 익숙해질 때, 말하는 고양이나 천장에 달린 기계와 대화를 나누는 챕터가 등장한다. '숨겨진 지하실' 같은 예상하지 못한 공간으로의 확장도 적재적소에 활용되고 있으며, 이때 등장하는 음악도 몰입감을 크게 높여줬다. 특히 3, 4, 5 챕터의 연출은 공포 게임에 버금가는 수준의 긴장감과 수많은 반전을 포함하고 있어 단숨에 끝까지 깼다.


최근 렐루게임즈가 두 게임으로 이목을 끌었던 상황을 고려하면, 차후 AI 기술을 비슷하게 활용하는 유사 게임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선택지를 제시하던 기존 추리게임들은 변수 통제가 상대적으로 용이한 반면, 플레이어의 행동을 모두 예측해 AI의 답변의 틀을 잡아주는 작업은 쉽지 않다. 확장된 경험 만큼 개발 노하우도 더 요구되는 것이다.


또한 기술만 따라한다고 재밌어지는 게 아니다. <즈큥도큥>과 <스모킹 건>이 AI 없이도 재밌는 기획을 바탕에 두고 있다는 본질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스모킹 건> 데모에선 망가져 있던 Q-bot이 정식 출시 버전에선 살아났다.

<아토믹 하트>가 생각나기도 했던 미술관장 로봇도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이제는 말하는 고양이라니! 데모 이후 상상했던 것보다 더 놀라운 이야기가 많았다.

특히 미술관 챕터는 처음엔 아름다운 공간과 작품에 매료되다가


예상치도 못한 반전을 마주하게 된다. 공포게임스러운 연출이 오히려 취향 저격이었다.
플레이한다면 최종 엔딩까지 꼭 보시길 권장한다.

# 의도된 불편함, 그 안에 살아 있는 재미

<즈큥도큥>과 <스모킹 건>은 '의도된 불편함'을 노린 게임이다. 대부분의 경우 불편함과 재밌음은 양립 불가능하지만, 드문 예시라고 볼 수 있다.


<즈큥도큥>의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플레이어의 부끄러움'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주문을 외친 음성을 인식해 대미지 점수로 변환만 해주는 것이 아닌, 자신의 목소리를 다시 한 번 들어야만 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인게임에서의 설명처럼 플레이어의 '항마력'을 뛰어넘어야 한다. 


이 '부끄러움'이야 말로 <즈큥도큥>의 재미의 근간이다. PvP까지 만들어, 서로의 부끄러움을 마주하게 한 센스도 돋보인다. 확률분포표 같은 발음이 어려운 단어, 대머리 마법소녀와 저주파 치료기가 한 문장에 등장하는 생경한 조합 등, 입 밖으로 한 번도 내보지 않은 문장을 내뱉기 때문에 느끼는 원초적 재미가 <즈큥도큥>의 장점이다.


'항마력' 한 단어로 요약되는 <즈큥도큥>이다.

한편, <스모킹 건>은 사고의 확장을 위해 일부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다. 선택지를 고르는 게 아닌 대화를 통해 정보를 얻고, 파편적인 정보를 연결하는 방식에 익숙해지기 전까지, 정보의 중요도를 구분하는 게 다소 어려울 수 있다. 사건 현장에는 정말 다양한 증거가 있고, 용의자나 주변 로봇들에게 설명도 자유롭게 들을 수 있다. 중요한 정보를 따로 취합해주고 볼드 처리해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보 습득 방식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또한, GPT를 사용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항상 적재적소의 대답만 내놓는 툴이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에겐 인게임 캐릭터와의 대화가 덜 매끄럽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플레이어가 물어본 질문을 로봇이 똑같이 반문할 때도 있고, 질문하는 방식에 따라 사건과 무관한 삼천포 대화로 빠지는 경우도 가끔씩 있다. 자유도의 확장을 위해 AI를 사용했기 때문에 생긴 리스크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처럼 추리게임을 좋아하거나,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과 같은 SF 스토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스모킹 건>이 가진 이야기의 깊이와 확장성에 빠져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직전의 데모 버전에서도 느꼈지만, 이번 정식 버전에서도 로봇과의 문답은, 사람이 대사를 직접 써도 이것보다 더 철학적이고 감성적일 수 있나-싶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놀이터로서의 기능도 뛰어났다. 예를 들어, 로봇은 지문이 없다는 설정은 인게임에서 한 번도 직접 설명되지 않지만, 증거에 묻은 지문을 은근히 드러내는 방식으로 플레이어에게 새로운 해석을 하게 만들어준다. 또한, 특정 로봇에게 인류를 말살시키자-고 설득하면 일시적으로 대화의 흐름이 바뀌기도 한다. 이전 기사에서 '텍스트 오픈월드'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일부 대사는 검은색으로 지웠지만, 이 대사를 꼭 보여주고 싶었다.

"로봇은 인간의 그림자일 뿐이다, 하지만 그림자도 실체를 움직일 수 있다"
GPT가 생성한 답변이든, 개발팀이 의도한 답변이든 어느 쪽이라도 흥미롭지 않은가?
이렇듯 상상의 여지를 참 잘 활용하고 있는 <스모킹 건>이다.
다소 어려울 수 있는 구간이 있어도 꼭 한 번 해보시라 권하는 이유도 이런 매력 때문이다.

# 쉽게 변하지 않는 취향, 의도치 않게 변하는 습관

유저들이 기존에 즐기던 게임을 계속하고, 신규 게임에 잘 진입하지 않는다는 점은 업계의 오랜 고민거리였다. 신규 게임을 플레이하더라도 오래 머무르지 않는 경우도 많다. 


<서든어택>이나 <리그 오브 레전드> 같은 대형 개발사의 게임만 그런 것도 아니다. 인디 씬도 마찬가지다. 덱빌딩에선 <슬레이 더 스파이어>, 액션 로그라이크에선 <하데스>, 탄막 로그라이크에선 <뱀파이어 서바이버즈>가 여전히 전통의 강호 아닌가. 최근 <하데스 2>의 폭발적인 흥행도 결국 같은 맥락에 있다. 익숙함이 가진 힘은 크다.


이런 시장에서 '낯선 게임', '혁신적인 게임'이 이목을 끄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즈큥도큥>과 <스모킹 건>이 가진 화제성이 더욱 대단한 이유 중 하나다.


사진은 <하데스 2>다.
<스타듀밸리>, <하베스트 문>처럼 느긋하게 즐기는 장르와 달리 호흡이 더 짧은 장르들도 비슷한 현상을 겪고 있다.

반면, 적잖은 개발사들은 AI를 활용해 플레이의 확장성을 크게 늘리려 하고 있다. 기술이 충분히 발전한다면 대사 텍스트, 음성, 심지어 컷씬까지 자동 생성해, 플레이어의 선택에 실시간으로 대응하는 살아 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런 발전 과정에선 일부 과도기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기존에 쉽게 볼 수 없던 플레이 방식을 제시한 렐루게임즈의 게임들도, 누군가에겐 혁신이지만, 누군가에겐 진입하기 어려운 게임이 아닌가. 사람들이 하던 게임만 계속 하는 '관성'까지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혁신에는 비용이 뒤따른다. 마이크에 주문을 외치고, NPC와 직접 문답을 주고 받는 건 흥미롭지만, 다소 불편함이 동반된 상호작용이기도 했다.


사람들의 취향은 잘 변하지 않는 세상에서, 낯설지만 재밌는 게임을 만드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즈큥도큥>에 참신한 기획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마이크에 대고 낯 부끄러운 주문을 외치는 과정은 분명 잊지 못할 추억이 되겠지만
시끄러워도 괜찮은 별도의 공간을 필요로 하는 등 불편함도 동반하고 있다.

이번엔 조금 다른 층위의 이야기를 해보자. 취향은 쉽게 변하지 않는 반면, 습관은 의도치 않게 변한다. 특히 말습관이 그렇다. 최근 <SNL> 등의 풍자 프로그램에 종종 나와 화제가 된 90년대 서울 사투리를 아시는가? 시대가 변하며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 어투가 변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다.


AI 관련 연구, 특히 자연어 중에서도 음성 언어 연구를 하는 업체들과 만날 때마다 기자가 종종 하는 말은, 지금도 표준어가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학생들은 릴스, 틱톡, 쇼츠에 나오는 TTS(텍스트 투 스피치) 음성을 어릴 때부터 들어왔다. 이미 성인인 사람들은 TTS가 '어색한 말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금세 눈치채지만, 어린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에겐 자주 듣는 말이 곧 '자연스러운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많이 지나면 어떨까. 어른들이 듣기에 어색한 TTS 말투 중 일부가, 표준어처럼 널리 쓰이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언어는 원래 유동적인 것이라곤 하지만, 문화적인 교류에 의한 변화가 아닌, 기계 음성을 따라 인간의 언어가 바뀌는 건 낯선 풍경이다. 그런 미래가 온다면 인공지능 기술과 콘텐츠를 만드는 업체들도, 바뀐 자연스러움에 맞춰 새로운 기술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AI가 사람들의 소비 트렌드 속에 쉽게 녹아들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 지점이다. AI에 영향을 받아 습관이 변하는 사람들에 맞춰, 다시 AI 기술이 조정되어야 한다니.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결국 AI 기술에도 세상의 변화를 계속 따라가야 하는 수고로움이 동반되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GPT를 활용해 만든 추리게임 <스모킹 건>에 등장한 대사를 다시 한 번 보면 느낌이 색다르다.


"로봇(인공지능)은 인간의 그림자일 뿐이다. 하지만 그림자도 실체를 움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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