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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게임 바로 사면 '바보'가 되는 시대?

시니컬해지지 말라곤 하지만...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김승주(사랑해요4) 2023-09-25 17:30:32


# "우리는 여러분의 피드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게임을 바로 왜 사? 문제 고쳐지고, 할인하면 사야지".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을 터놓고 솔직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 하나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인터넷 게시판이 될 수도 있고,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모인 카카오톡이나 디스코드 채널이 될 수 있다.

기자에게도 그런 커뮤니티가 있다. 몇일 전, 모 게임의 시스템이 가진 구조적인 불합리에 대한 하소연을 늘어놓으니 패키지 게임은 대부분 해 보는 '헤비 게이머' 친구가 한 마디 남겼다.

"그러게 왜 바로 샀어? 난 기다렸다 살 거임. 나중에 고치겠지". 깊은 울림을 남기는 한마디였다. 최근 출시되는 게임에는 대부분 비슷한 흐름이 있다. 

출시 직전에 수많은 예약 구매자가 "빨리 문 열어!"라며 게임이 오픈되길 기다리고, 보통 발매 첫날에는 즐겁게 플레이한다. 그러나 2~3일이 지나면 몇몇 결함이 발견된다. 게임 시스템의 결함일 수도 있고, 최적화나 서버 문제일 수 있다. 여기서 조금 시간이 더 지나면 개발사의 공식 발표가 나온다. 디렉터의 이름을 남긴 '편지'일 수도 있고.

"우리는 여러분의 피드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최선을 다해 후속 업데이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출시 후 개선과 로드맵에 대해 밝힌 <스타필드> (출처: 스팀)


# "새로운 일상이 두렵다"

해외 게임 웹진 'PC게이머'도 최근 비슷한 칼럼을 작성했다. 

"<사이버펑크 2077>를 플레이하기 위해 3년을 기다린 것은 기쁘지만, 이것이 새로운 일상이라는 사실이 두렵다"라는 제목을 가진 칼럼이다. <사이버펑크 2077> 출시 당시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았던 기자가 최근 진행된 2.0 업데이트 이후 개선된 게임을 플레이하며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었지만, 출시 당시 불거졌던 과장 광고 논란과 수많은 버그를 생각하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다.

기자는 게임이 처했던 상황을 '신호등이 없는 번잡한 횡단보도'에 비유했다. 자신은 천천히 차가 모두 지나가기를 기다렸기에 무사히 도로를 건널 수 있었지만, 게임을 출시 당시 즐긴 사람을 "최대한 빨리 길을 건너려다 차에 치인 상황"으로 비유하며 "그런 경험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개발자들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지만,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게임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칼럼을 마쳤다.

오픈 월드 게임은 특히나 버그를 막기 어렵다. 사진은 출시 직후의 <사이버펑크 2077>


# 더 좋은 경험을 찾기 위해서...

완벽하기란 어렵다. 

게임 그래픽 기술이 고도화되고, 수많은 명작 게임들이 나오면서 '평범한' 것 만으로는 마음을 사로잡기 힘들어진 지금, 새로운 시도를 한 게임들이 버그나 시스템 상 헛점 없이 완벽하게 출시되기는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대규모 오픈 월드를 가진 게임은 더더욱 그렇다.

렇다고 기대감을 끌어올려야 하는 마케팅팀의 입장에서 "저희 게임은 상호작용은 별로 없고, 스토리는 무난한 수준입니다. 저희가 이번에 새롭게 도전하는 전투 시스템에 집중했습니다. 전투 위주로 즐겨주세요. 그리고 완벽히 버그를 막기는 어렵잖아요? 최대한 고쳤지만, 어쩔 수 없는 버그는 있습니다"라고 할 수는 없는 셈이고.

플랫폼은 또 어떤가? 게임은 판매량이 가장 중요하고, 판매량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은 플랫폼'에 파는 것이다. PS, Xbox, PC로 게임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PS에 출시한다면 가능할 경우 PS4와 PS5에 둘 다 게임을 출시하는 것이 좋고, Xbox 역시 두 기종에 모두 게임을 내는 것이 더 좋기에 각 하드웨에에 맞는 최적화가 필요하다. PC는 각자의 사양과 환경이 크게 다르기에 더욱 골치가 아파진다.

그렇기에 시스템 상의 허점, 과장 광고, 최적화 문제가 계속해서 발생하는 느낌이다. 과장 광고의 대표 예시로는 <노 맨즈 스카이>나 <사이버펑크 2077>이 있고, 최적화 문제로는 <스타 워즈: 제다이 서바이버>가 있다. 개발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출시 후 시간이 지난 지금은 어느 정도 해결된 문제긴 하지만, 앞선 세 게임 말고도 수많은 사례가 있었다. 

그래서 소비자 사이에서는 "게임은 출시 후 고쳐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뉴 노멀'로 자리 잡은 느낌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소비자 사이에서 무의식적으로 "게임은 출시 직후에 사면 바보"라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듯하다. 게임 가격이 결코 싸다고 할 수 없는 시대에서 소비자들은 자연스럽게 적은 돈으로 최선의 경험을 즐길 방법을 찾기 때문이다.

서버 문제로 게임을 원활히 즐기기 어려워 비판받고 있는 <페이데이 3>
많은 유저가 "서버 문제가 해결된 이후에 사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출처: 스팀)


# "이 게임은 조금 기다렸다가 사야겠네요"

마냥 낙관적으로만 바라보기만은 어렵다. 기자는 게임을 출시 직후 즐기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스토리에 대한 스포일러 없이 공략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헤딩하며 게임을 클리어하고, 커뮤니티에서 실시간으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같은 목표를 이루어 나갔는지 보며 즐기거나,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난관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거나, 같은 감동을 얻은 사람들과 댓글로 나누며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 등의 경험은 게임 출시 초기가 가장 즐겁고,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흐름이 지속된다면 조금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게임이 출시되면 커뮤니티에선 즐겁게 서로 간의 경험이나 공략을 나누며 즐거워하기 보다는, 두 갈래로 나뉘어 싸우기만 하는 느낌이다. 게임을 산 사람들은 "그래도 할 만한데?"라고 하고, 게임을 사지 않은 사람들은 "아까운 돈 주고 샀으니 자기합리화를 하는 거겠지"라며 맞선다.

멋진 트레일러가 발표되거나 게임을 미리 들여다볼 수 있는 10분 정도의 게임플레이 트레일러가 발표될 때도 대다수의 반응은 이렇다. "2014년의 <더 디비전> 트레일러처럼 분명 정교하게 연출된 게임플레이겠지...", "<사이버펑크 2077> 생각하면 선뜻 예약 구매 버튼에 손이 가지 않네요. 출시되면 반응 보고 사겠습니다". 

2014년 발표된 <더 디비전>의 게임플레이 트레일러
트레일러는 엄청난 호평을 받았지만, 실제 출시된 게임은 달라 실망했다는 댓글이 있다. (출처: 유비소프트)


# 게임 바로 사면 바보 되는 시대?

이제는 게임이 선보여지면 기대감보다는 우려가 먼저 나오는 세상이 된 것 같다. "믿고 사는 OOO! 이번에도 정말 기대된다!"라며 일단 예약 구매를 하고, 커뮤니티에서 같이 기대감을 공유하던 이전과는 분명히 달라진 모습이다. 

미국의 유명 토크쇼 진행자 '코난 오브라이언'은 "제발 시니컬해지지 마세요. 저는 냉소주의를 싫어합니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성격인 데다,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로 시작하는 명연설을 남긴 적이 있다. 기자도 어느 정도 공감하지만, 게임계에서는 워낙 기대를 배신한 사례들이 많다 보니 이런 말을 하면 슬리퍼부터 날아오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출시 직후에도 일정 수준의 퀄리티를 담보'하는 게임을 자주 출시하는 개발사가 게이머들 사이에서 '명 개발사'로 손꼽히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싶다. "이 개발사는 최소한 최적화 문제는 없다"거나 "문제가 없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게임을 최대한 다듬어서 낸다"라는 이미지를 가진 개발사가 남들보다 앞서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다.


<사이버펑크 2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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