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챠(뽑기, 게임산업법에서는 '확률형 아이템'으로 표기). 2024년 확률형 아이템 규제 법안이 시행되면서, 이제 한국에서 서비스되는 게임에는 획득 가능한 아이템의 구성 비율과 종류, 아이템이 나올 확률 등을 명시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가챠를 둘러싼 논쟁은 아직 식지 않았습니다. 법이 시행된다고 하더라도, 컴플리트 가챠(콤프가챠)가 남아있는 한 과금으로 인한 소비자의 피해는 여전할 것이라는 비판입니다. 최근 포스타입에는 <ADHD 환자가 가챠중독에 빠진 만화>라는 제목의 웹툰이 연재되었습니다.
30대 여성 '이솜이'는 각박한 현실 속에서 "내가 가지고 싶은 건 현실 너머에만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각종 게임의 가챠를 하면서 캐릭터나 장비 등을 수집하게 됩니다. 가챠의 결과물은 현실에서 느낄 수 없던 "극도의 고양감"을 안겨주었고, 시간이 흘러 가챠를 위해 적금을 해지하고, 대출까지 받게 됩니다. 작가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이 겪은 실화를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만화 속 그녀는 일반적인 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되자 현금깡과 변칙 대출까지 대출상품에까지 손을 댑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가챠에 빠진 원인 중 하나로 '변형 컴플리트 가챠' 시스템에 대한 지적이 나오는데요. 복잡한 설계로 필요 수치를 알 수 없어 한계치까지 중복 상품을 결제해야만 하는 구조의 비즈니스모델(BM) 탓에, 그녀는 통제력을 잃고 과금을 이어갔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녀는 주변인들의 도움과 자신의 의지력으로 '가챠중독'을 벗어날 수 있었고, 현실의 성취 경험을 얻기 위해 심리학 독학학위를 취득하면서 수렁에서 점차 벗어납니다. 이윽고 그녀는 "게임 산업의 심연"에 빠진, 자신과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을 돕기 위해 자전적 이야기를 만화로 그렸다고 합니다. 이 만화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순식간에 퍼지며 연재 3주 만에 누적 조회수 303만 뷰를 기록했고, 많은 이들의 공감과 지지를 받았습니다.
화제의 만화를 그린 이솜이 작가와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ADHD 환자가 가챠중독에 빠진 만화>를 연재한 이솜이 작가
Q. 디스이즈게임: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이솜이 작가: 안녕하세요. <ADHD 환자가 가챠중독에 빠진 만화>의 작가 이솜이라고 합니다. 확률형 상품을 판매하는 온라인게임과 가챠형 모바일게임을 주로 플레이했던 게이머입니다.
Q. 본인의 체험담을 만화로 그리게 된 계기를 듣고 싶습니다.
A. 적당히 과금을 하는 평범한 게이머라고 생각해왔지만, 업무 스트레스를 계기로 과금액수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위화감을 느끼지도 못한 채 중독으로 빠져든 경험이 굉장히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주변 지인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헤쳐나갈 수 있었기에 해당 경험을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한편으로는 확률형 뽑기 시스템에 대해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싶기도 했습니다.
Q. 만화 연재 이후 주변에서 어떤 반응을 받으셨나요?
A. 주변 분들 중에 가챠 게임을 플레이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해당 만화를 본 이후 게임 과금에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해주시고, 일부 게임을 정리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주변에서) 확률형 상품에 대한 규제가 필요한 지 소소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Q. 만화에는 가챠를 위해서 '현금깡' 등 변칙 대출을 받는 내용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추심이 들어오지는 않나요? 상환은 어떻게 하고 계신지요?
A. 사채를 쓰지 않았기에 추심이 들어오지는 않고 있습니다. 대출금 상환은 합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한번 현금깡 등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막대한 이율으로 인해 계속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과금으로 인해 끊임없이 대출금이 늘어나는 동안에는 상환에 대한 압박이 심했으나 다행히도 게임 과금을 그만두게 되면서 무탈히 갚아나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만화에는 상조를 가입하고 가전을 받아서, 그것을 곧장 현금화하는 형태의 변형대출 상품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나옵니다. (ⓒ 이솜이 작가)
Q. 만화를 보면, 손에 쥘 수 있는 게 없는 현실 속에서 게임과 가챠가 해방구로 역할하는 것처럼 등장합니다. 아직도 게임 속 숫자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계신가요?
A. 게임에 복귀한다면 숫자에 대한 집착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재 다수의 게임을 정리한 상황으로 중독 증세가 완치되었다는 확신이 있을 때까지 게임을 가급적 멀리하고자 노력 중입니다. 그러나 게임의 보상 체계가 주는 순수한 재미는 대체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게임에 대한 애착이 남아 있으며, 복귀했을 때에는 더 건전한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Q. 게임의 가챠에 빠지게 된 게 본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그러한 게임을 만들어 판매하는 게임사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나요?
A. 흑백으로 딱 잘라 가를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임을 시작하고, 가챠를 돌리겠다고 결정한 것은 분명 게이머의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플레이를 지속하고 과금을 유도하는 과정에서는 게임사의 치밀한 설계가 일정 부분 관여하고 있습니다.
심심풀이로 시작했다가도 매몰 비용으로 인해 빠져나오지 못하는 유저가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압니다. 근본적으로 확률형 상품을 반복적으로 구매하게 되는 상황 자체가 취약점이 생겼을 때 중독으로 빠져들 여지를 제공한다고 봅니다. 게임사가 이러한 중독 현상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최소한 사행성에 대한 강력한 경고를 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Q. 처음에는 소소한 '과금러'였다가 시간이 흘러 '풀돌'(한계치를 풀[full]로 '돌파'한 것을 의미) 스크린샷이나 과금액 인증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A. 중독 상태에서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 곧 과금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과금을 하지 않고 플레이하는 기간 동안에는 게임을 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풀돌'이어야 게임을 제대로 즐기는 것만 같고, 과금액을 인증하는 것 또한 그만큼 게임을 깊게 플레이했다는 증명처럼 느껴졌습니다. 금전 감각이 망가져 그러한 인증이 주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리라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SNS의 가챠 과시 또한 같은 게임을 즐기는 이들에게 과금을 유도하는 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과시를 하는 입장에서는 "그만큼 게임을 깊게 플레이했다는 증명"이 됐겠지만 이는 "주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 이솜이 작가)
Q, '도박 중독자는 하나의 큰 것보다는 여러 번의 소액 베팅에 성공할때 더욱 행위에 빠져든다'는 만화의 문구가 상당히 인상깊게 다가왔습니다. 즐기셨던 가챠 게임의 시스템과 연결해서 조금 더 상세하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A. 현재 가챠 게임의 시스템은 초창기 수집형 게임 시절과 달리 한 번의 가챠로 완벽한 상품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캐릭터와 무기를 따로 뽑아야 하는 경우도 많고, 하나의 상품을 여러 번 얻어야만 최종 단계에 도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는 한번의 당첨으로 욕구가 해소되지 않으며, 더 큰 이득을 줄 수 있는 다음 단계를 위해 계속해서 가챠를 시행하게 됩니다. 해당 문제를 강하게 느낀 지점은 방치형 게임의 BM입니다.
기존 가챠 게임에서 100연속 뽑기가 당첨 기준점이라고 보았다면, 방치형 게임은 1000연속 뽑기를 기준으로 잡아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캐릭터가 더 많이, 더 쉽게 등장한다고 해도 해당 상품의 가치는 훨씬 낮습니다. 대여섯 장으로 풀돌에 도달하는 게임들과 달리 일부 방치형 게임은 풀돌에 수십 장 이상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수익 모델은 유저의 당첨 경험을 늘리면서도 쉽게 만족 상태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도박으로 비유하자면 '소액 당첨'을 무수히 늘려 도박 상태의 몰입감을 잡아두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Q. '게임산업의 이면에는 심연 같은 사례가 더 많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핵과금 유저가 보통 '돈이 많아서' 게임에 투자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사례로 다가와 놀랐습니다. 작가님 주변에 욕구를 채우기 위해 게임 속에서라도 무리하게 가챠에 돈을 쏟아붓는 사례가 있었는지요?
A. 10년 이상 가챠 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 여러 익명 사이트에서 과금으로 인해 대출을 했다는 케이스를 종종 목격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게임에 대출해서 과금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익명 사이트라 과장된 내용일 것이다'... 그렇게만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제가 중독에 빠져 과금을 하기 위해 많은 대출을 받은 뒤에야 해당 사례들이 정말 실재할 수 있겠구나 체감했습니다.
특히나 온라인게임에는 소위 '쌀먹'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여, 게임 재화의 현금화가 음성적으로 가능하기에 상황이 더욱 복잡힙니다. 한창 특정 온라인게임을 하던 중에는 관련 커뮤니티에서 대출을 받아 캐릭터 스펙을 올린다는 사례가 상당수 존재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현실에서 저축, 미래, 커리어를 생각하기 어려운 이들은 "게임 속 숫자만이 내 가치를 증명하는 모든 것"으로 생각하게 됐고, 작가는 더 강해지기 위해 과금을 선택합니다. (ⓒ 이솜이 작가)
Q. 각종 게임의 변형 컴플리트 가챠 때문에 그러한 '심연'이 더 커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개발사들은 실제로 그런 안내를 하나도 하지 않았나요? 앞으로 단순한 확률을 넘어, 기댓값을 위해 들어가는 돈까지 표기하는 것이 필요할까요?
A. 상품의 중복 획득으로 핵심 기능을 부여하는 '변형 컴플리트 가챠' 시스템은 다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게임에서 중복 상품의 파밍이 가능하거나 돌파에 단순히 보너스 수치를 제공하는 경우와는 다릅니다. 돌파 단계에 따라 성능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며, 해당 성능 변화를 얻지 못하면 컨텐츠 플레이에 지장을 주는 케이스가 존재합니다.
명함(게임 플레이 중 귀한 카드를 우연히 입수한 경우를 '명함만 받았다'라고 표현)만으로 불가능한 컨텐츠를 포기하는 유저가 있는 한편, 게임사가 설정한 고점을 따라가기 위해 한계치까지 가챠를 돌리는 유저 또한 있습니다. 신규 캐릭터를 출시하여 과금을 유도하는 것과 달리, 중복 상품 획득에 의한 고점 유도는 개발비를 줄이면서도 효율적으로 과금을 이끌어낼 수 있는 설계가 아닐까요? 이러한 설계가 과도하게 적용되며 게임의 질이 낮아지고 사행성을 부추기는 상황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만화 본편에도 등장한 '무기 가챠의 돌파 필요 수치를 알 수 없었던 에피소드'는 실제로 겪었던 상황입니다. 인게임에서 돌파 단계별 요구 수치에 대해 한눈에 알 수 있도록 안내받은 경험이 드뭅니다. 일부 게임은 공식적으로 전혀 정보를 찾을 수 없어 게임 커뮤니티의 정보글을 찾아야 하거나, 직접 돌파를 시도하며 알아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내를 제공받는다 해도 복잡한 돌파 시스템으로 인해 중복 상품이 얼마나 필요한지 직관적으로 알기 어려운 경우 또한 있었습니다.
중복 상품 획득을 유도하는 시스템 하에서 개별 상품의 확률만을 고지하는 현 상황은 정보의 불균형에 가깝습니다. 풀돌 확정 획득에 들어가는 유료 재화의 총량과 원화 비용의 고지는 상품에 대한 공정한 정보 제공의 영역이며, 이는 소비자의 기본적인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가상의 게임 '이터널 나이츠'의 풀돌 시스템은 단계별 필요 수치가 공개되지 않아, 매몰비용을 파악할 수 없었고, 그녀는 그 끝을 확인하기 위해 계속 과금을 시도했습니다. (ⓒ 이솜이 작가)
Q. 이후의 극복기나 게임생활 등을 추가로 연재하실 계획은 없는지요?
A. 극복기는 에피소드를 구성할 만큼 극적인 부분이 없기에 만화로 전달하기가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많은 실패 경험들 속에서 차차 과금을 끊게 되는 과정은 특별한 계기가 없는 지루한 일상의 반복이었습니다. 저 또한 극복과정에서 크게 깨달은 경험이 있었다면, 다른 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더라면, 싶은 마음이 크기에 무척 아쉬운 부분입니다.
겪어본 게임의 시스템 중에 다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던 부분이나 게임을 하며 겪었던 일화들을 짧게 구성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습니다. 부족한 만화에 관심을 가져주신 모든 독자분께 감사를 전합니다.
Q. 비슷한 처지의 '가챠중독'에 시달리고 있는 게이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문제를 해결하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고 의지가 따르지 않아 헤매는 사람들에게 조언해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말씀해주셔도 좋습니다.
A. 중독에서 벗어나기란 정말 힘든 일입니다. 저 또한 오랜 세월 동안 애착을 가진 게임을 삶에서 완전히 끊어내는 일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독 치료를 받는 동안은 과금형 게임에서 잠깐이라도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충동이 드는 순간 의지로 이겨낼 수가 없기에 과금 상품에 대한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치료 과정 중에도 무수한 실패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마시고 꾸준히 과금을 제어하려는 노력을 이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혹시나 많은 빚으로 자포자기한 분이 계시다면 결코 끝난 게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채무조정, 신용회복위원회 등을 이용하여 현실적으로 상환이 가능한 규모로 조정받는 것부터 시작해 보았으면 합니다.
나아가려는 의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게임에서 성취를 이루었던 것처럼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스스로를 믿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ADHD 환자가 가챠중독에 빠진 만화>는 같은 게이머끼리 도우며 위기를 극복하자고 말합니다 (ⓒ 이솜이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