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은 지난 4월 개발 조직에 큰 변화를 줬다. 중앙에서 통제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개발 조직을 7개 독립 스튜디오로 나눠 신작 개발과 게임 운영에 대한 자율권을 준 것이 핵심이다. 넥슨은 각 스튜디오를 매출 외에도 게임성이나 의미 있는 도전 등 여러 기준으로 평가할 예정이다.
넥슨이 스튜디오에 요구하는 것은 하나다. 넥슨의 ○○가 아니라, 순수하게 '○○ 스튜디오'라 불릴 정도로 각자 독자적인 색과 브랜드를 가지는 것. 즉, 넥슨은 개발사로서의 기조와 미래를 각 독립 스튜디오에게 맡긴 셈이다. 디스이즈게임은 넥슨의 체제 개편을 맞아, 각 독립 스튜디오의 총괄 프로듀서를 만나 그들이 꿈꾸는 비전에 대해 들어봤다.
넥슨에는 18년째 게임을 개발하는 고양이들이 있다. 개발자(Developer) + 창조성(Creativity) + 진보한 기술 (Advanced Technology)을 줄이고 합쳐서 DevCat. 데브캣 스튜디오는 국내에서 드문, 본인들만의 독보적인 색채를 만드는데 성공한 개발팀이다.
데브캣 스튜디오도 이번 개편으로 변화를 맞았다. ‘개발 독립성’을 추구하며 만들어졌지만 그게 회사의 시스템이나 허들 밖에 있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번 개편은 데브캣으로써도 큰 변화다. 더 많은 권한이 주어진 반면 더 큰 책임을 지게 된 데브캣. 18년간 창조와 도전의 아이콘이었던 그들은 지금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데브캣 스튜디오 김동건 총괄 프로듀서는 인터뷰에서 몇 개의 ‘비율’을 말했다.
1)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의 비율
2) 게임을 만들 때 유념해야 할 비율
3) 나와 조직이 주도권을 나눠 갖는 비율
4) 내가 가진 것의 비율만큼 돌려받을 수 있다는 약속
그러니까 이것은 김동건과 데브캣이 18년간 만들어 온, 앞으로 만들어 갈 ‘비율’에 대한 이야기다.
데브캣은 원래도 스튜디오였는데. 바뀐 것이 좀 있나?
크게 바뀐 건 없다. 말한 대로 데브캣은 원래 스튜디오였으니까. 다만 권한을 좀 더 받았다. 장기적인 방향을 스튜디오에서 정할 수 있게 된 것, 인사 고과 기준을 정할 수 있게 된 것, 인사 고과를 통해 보상에 직접적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된 것 등이 가장 큰 변화다.
이번 개편을 통해 회사의 지향점이 달라진 것 같다. 과거에도 개발 조직이 스튜디오 기반이었던 적 있었다. 로두마니 스튜디오와 데브캣 스튜디오가 넥슨 1세대 스튜디오였는데, 그때의 스튜디오는 서로 다른 색깔로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이 그룹핑 된 것에 가까웠다. 시스템도 넥슨이라는 틀 안에서 같은 걸 쓰고 있었다.
지금은 그것보다 좀 더 과격하게 ‘스튜디오에서 기존에 하지 못했던 것까지 한 번 해 봐. 허들도 없애줄 테니까 틀에 갇히지 말고.’ 이런 의미에 가깝다. 과거에는 스튜디오에서 프로젝트를 킥오프(시작) 하려면 경영진 허가가 필요했다. 허가가 떨어져야 프로젝트를 세팅하고, 팀을 만들고, 사람도 셋업할 수 있었다.
자유도 차이를 실질적으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우리는 일단 이상한(?) 짓을 많이 하니까. (웃음) 이런 것들 하려고 회사랑 덜 싸워도 되니 확실히 전보다 자유로워졌다고 볼 수는 있다. 당장 돈이 안 되더라도 지금 해 두면 나중을 도모할 수 있는 것들, 장기적으로 가치가 있는 그런 것들을 하기 쉬워졌다고 보면 된다. 과거엔 이런 것들을 하겠다고 경영진을 설득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아무래도 지금이 더 재밌는 건 사실이다.
우리는 사실 큰 변화를 맞았다기보다는 ‘앞으로 이런 것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있는 상태다. 예전보다 더 많은 권한이 생겨서 그것들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규모도 바뀌었나.
사이즈가 좀 커졌다. 조직 개편 때문은 아니고 론칭이 다가온 프로젝트들이 좀 있다. 올해 연말까지 300명 정도까지 인원이 늘어날 것 같다. 모바일게임 중심으로 개발하면서 스튜디오가 6~70명 규모까지 작아졌다가 프로젝트 수가 늘어나며 규모도 다시 커지고 있다.
조직은 어떻게 구성돼 있나.
게임 프로젝트별로 팀이 있고, 전체를 서포트하는 서버 엔진 팀 같은 조직이 있다. 팀들은 하나의 실이 총괄한다. 여러 실로 구성된 스튜디오도 있는데 우리는 조직 구조가 단순한 편이다. 스튜디오화되면서 조직 개편을 크게 하진 않았는데, 일단 중앙에서 리소스나 노하우 공유를 관리하는 조직의 사이즈는 좀 키울 생각이다.
중앙에서 공유하는 노하우라면?
주로 게임 서버 엔진 관련 노하우다. 실버바인 엔진이라고 데브캣에서 나오는 게임들은 모두 그 엔진을 사용하는데 이 엔진을 담당하는 팀의 역량을 강화할 예정이다. 많은 게임들이 범용적으로 이 엔진을 사용할 수 있도록 노하우를 집중해서 키워 나가자는 계획이다.
‘온라인게임 회사에서 남들이 가지지 못한 기술을 쌓아가려면 어떤 걸 해야 할까’ 고민해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서버 엔진 같은 것들이다. 온라인게임에선 게임 서버 기술이 핵심이지 않나. 게임의 여러 가지 내용들을 어떻게 분석할 것이냐, 분석한 결과를 중앙에 긴밀하게 넘겨주고 원활하게 피드백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등 발전시킬 요소가 많이 있다.
우리 내부에서는 ‘게임 서버계의 유니티가 되자’를 목표로 갖고 있다. (웃음)
생긴 지 10년이 넘었다. 넥슨도 그동안 많은 변화를 거쳤고. 데브캣은 어떻게 변해왔나?
처음에는 <마비노기> 라이브 운영을 직접 하면서 신규 개발도 하는 조직이었다. 이후에 라이브 운영을 회사가 맡게 되면서 신규 개발 전문 스튜디오로 바뀌었다. 지금은 다시 라이브 운영도 일부 하면서 신규 개발도 하고 있다.
회사의 방향이 달라짐에 따라 스튜디오가 대응해야 하는 것들도 조금씩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온라인게임이 대세던 시절에는 라이브 운영을 열심히 하는 게 스튜디오 차원에서도 좋은 전략이었다. 그때는 온라인게임이 급성장하고 있었고, 넥슨의 경쟁력도 라이브 운영 능력에서 나왔다. 라이브 운영을 중앙이 좀 더 체계적으로 맡게 되면서는 신규 개발에 집중하게 됐다.
이번 개편도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기회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한 시기라고 회사가 판단한 거다. 그러려면 스튜디오에 더 많은 권한을 줘야 했던 거고.
개편으로 스튜디오의 DNA가 바뀌진 않았을 것 같다. 지향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 스튜디오의 비전은 ‘비욘드 게임(Beyond Game)’이라고 정해져 있다. 우리는 게임이라는 분야가 점점 확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경계를 넓혀가고 있는 거다.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경계를 오가면서 경계를 넓히거나, 경계 밖에 있는 것들을 끌어오는 일이다.
방향성에 대한 공감대는 <마비노기2> 개발할 때 생겼다. 그때 “게임이 스포츠화되고 있다”라는 얘기를 많이 했다. 야구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이 야구를 직접 즐겼다면, 지금은 하기보단 보는 사람이 더 많다. 파생 상품들도 많이 나오고. 그럼 그런 것들은 스포츠가 아니냐. 생각해 보면 이런 것들도 다 스포츠라는 거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게임을 하기만 했지만 지금은 게임 방송을 보거나, 오프라인 행사에 가기도 하고 2차 창작도 한다. 이런 것들이 다 게임이다. 게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경계가 점점 확대되는 거고. 우리는 레드오션 안에서 계속 경쟁하는 스튜디오가 아니라 경계를 오가며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자는 비전을 갖고 있다.
굳이 게임과 관련있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게임에서의 경험을 이용해 다른 분야에서 게이미피케이션 기회를 찾을 수도 있는 거다.
구체적으로는 어떤 게 있나?
비밀리에 하는 게 많아서 다 말씀드릴 수는 없고. (웃음) 예를 들어 위에서 말한 ‘실버바인’ 서버 엔진을 판매할 수도 있고, 굿즈 같은 걸 팔 수도 있겠지. 정형화된 게임이 아니라 그것과 연관된 다른 영역을 고민하고 있다. 지금 시도하고 있는 것들도 있고.
그래도 게임 개발 스튜디오니까 가장 중요한 건 게임일 텐데. 지금 개발 중인 타이틀은 어떤 게 있나?
일단 메인 프로젝트로 <마비노기 M>과 <프로젝트 DH>가 있다. <마블 배틀라인>은 연내에 론칭할 예정이고 <어센던트 원>을 최근 공개했다. 이건 얼리액세스를 준비하고 있다.
신규 개발하고 있는 타이틀도 몇 개 있다. 쓰리매치 퍼즐 하나 개발 중이고, 아예 얼리 프로토타입 단계의 타이틀도 있고.
아무래도 가장 주목받는 타이틀은 <마비노기M>이다. <마비노기M>을 통해 유저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경험은 무엇인가?
<마비노기>를 할 때 좋았던 경험을 다시 하게 해 주고 싶다는 게 프로젝트의 취지다. 근데 원작을 정확하게 복원한다고 해서 그 느낌이 나진 않는다. 어느 정도는 현재에 맞게, 그렇지만 과거의 향수를 느낄 수 있도록 개발하고 있다.
사실 <스트리트파이터4>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스트라이트파이터2> 고유의 테이스트를 잘 살리면서 세련된 느낌을 가미했는데, <마비노기M>이 지향하는 걸 아주 잘 구현했더라. 그런 부분을 보고 ‘아, 그냥 리메이크를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구나’ 생각했다.
<마비노기>의 이미지를 그대로 옮겨오는 게 아니라, 그때의 좋았던 경험을 다시 하게 하는 것. 10년이 지난 지금 이 시점에 유저들이 다시 <마비노기>를 한다고 가정하면, 우리는 과연 게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쪽에 집중하고 있다.
‘마비노기M’ 트레일러 영상. 최초 공개시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마비노기>가 유저들에게 좋은 경험을 준 것은 게임의 어떤 요소들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내가 생각하는 거랑 유저분들이 생각하는 건 많이 다를 거다. 나는 생활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게임이 나의 생활에 침투하는 것 같은 느낌. 내가 하루를 24시간 살면, 그 공간(에린)에서 보내는 시간도 내 생활의 일부인 것 같은 느낌. 어떤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다. <마비노기M>에서도 그 느낌을 잘 살려내고 싶다.
그런 느낌을 주려면 게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잘 만들어야지. (웃음) 요즘 옛날에 <마비노기> 만들 때 무엇에 집중했는지 팀과 많이 얘기하고 있다. <마비노기> 만든 것도 10여 년 전이니까 지금이랑 같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 당시에도 생활감을 내기 위한 몇 가지 요소들, 방향성은 있었다.
예컨대 이런 거다. 비율이 굉장히 중요하다. 캐릭터 얼굴 몸통 비율이 아니라, 게임을 생활처럼 느끼게 하려면 일상과 비일상의 비율이 적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일상을 비일상인 것처럼 느끼게 하려면 일상이 이만큼 충분히 있어야 한다.
만약 비일상으로 의도한 게 더 많고 일상이 적다면, 비일상이 비일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굉장히 강한 몬스터를 막 쓰러뜨리고 그런 건 비일상적이어야 가치가 있는 것이지 않나. 그런 것들을 비일상적으로 느끼게 하려면 일상적인 것들이 적절한 비율로 있어줘야 한다는 거다.
이 외에도 화면에 보이는 남녀의 비율이 반반 정도였으면 좋겠다 / 캐릭터 머리카락 색이 사람 머리에서 진짜 날 것 같은 색이어야 생활감을 좀 더 줄 수 있을 것 같다 / 다들 벌거벗고 있거나 다들 화려한 갑옷을 입고 있는 건 좀 이상하니까 적절한 일상복과 비일상복이 섞여 있으면 좋겠다 / 화면에서 나무가 차지하는 비율, 건물이 차지하는 비율 같은 것들이 어색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만들어야 내가 실제로 생활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을까 같은 논의들이 오갔다. 그때 <마비노기>는 이런 논의들을 바탕으로 디자인됐다.
나는 그런 생활감을 <울티마 온라인>을 하며 경험했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 아닌, 게임에서 생활을 하는 듯한 느낌. <울티마 온라인>에서 그런 경험을 한 뒤 ‘그런 느낌은 어디에서 오는가’, ‘내가 게임을 만든다면 어떻게 만들까’같은 생각을 하게 됐다. <마비노기M>도 그런 부분은 살리면서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마비노기M>에서 생활감을 주기 위해 가장 집중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지금 많이 고쳐지고 있는 단계라 공수표를 남발하면 안 되는데. (웃음) 기본적으로는 일단 초기 모습에 가깝게 만드는 게 목적이다. (<마비노기>의 초기 상태?) 맞다. 그 초기 상태를 현대적으로 리파인(Refine 정제, 개선) 하는 게 1차 목적이다. 그 뒤로는 <마비노기>에 쌓인 것들을 조금씩 차용하는 형태로.
현대적으로 리파인한다는 건 그래픽을 뜻하나, 시스템을 뜻하나?
그래픽은 당연히 바꾸고 있는데 시스템도 낡은 것들은 좀 쳐내고 있다. 요즘 봤을 때 좀 이상해 보이는 것들. 일단 전투 시스템 같은 것들도 모바일에서 편하게 플레이하려면 좀 고쳐야 하는 부분이 있다. 게임을 편하게 하면서 채팅도 열심히 할 수 있는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
<마비노기>는 커뮤니티도 굉장히 활발했던 게임인데. <마비노기 M>에서는 게임과 채팅이 어느 정도 비중이어야 적절하다고 보나?
희망은 이렇다. 게임 켜면 마치 단톡방에 들어간 것 같은 상태가 되는 거다. 그래서 게임도 일부러 세로로 만들고 있고. 게임에 들어가면 이미 게임을 하고 있는 친구들 채팅이 쭉쭉 올라오고 ‘너 어딨어?’ 물어보고 거기로 이동하고. 근데 뭐 다 카카오톡 쓰지 이거 하겠나 싶기도 하고. (웃음)
어떤 게임 일지 감이 잘 안 잡힌다. 우리가 지금까지 보지 못한 형태일 거라는 생각도 드는데.
아니다. 그렇게 만들면 망하기 때문에... (웃음) 우리가 많이 망해봐서 아는데 아주 특이한 걸 만들면 안 된다. 특히 <마비노기>는 오래된 IP라 익숙함을 기대하는 유저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의 비율도 <마비노기M>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다.
나도 예전과는 좀 달라진 게 게임이 좀 매끄럽게 돌아갔으면 좋겠다. 게을러져서 그렇다. 유저분들도 그런 생각 하실 때 있을 텐데 ‘이런 부분까지 내가 직접 해야 해?’하는 것들은 좀 편하게 만들어 주면 좋겠다. 그걸 직접 했을 때 정말 재밌다면 모르겠지만 그렇게 않은 것이라면 더욱.
개인 트위터를 통해 크롬북(PC)에서 <마비노기M> 구동하는 장면을 공개했다. 멀티플랫폼을 기대해도 좋나?
일단 모바일만 생각 중이다. 역시 공수표를 남발하면 안 되기 때문에 (웃음) 잘 되면 여러 가지를 해 보고 싶긴 하다. 일단 게임은 내년 론칭을 목표로 하고 있고 계속 결과물을 공개하면서 개발할 예정이다. 유저들 반응을 좀 보면서 괜찮다 싶은 건 더 보강하고, 아니다 싶은 건 좀 빼고. (웃음)
<마비노기>는 직접 디자인했는데, <마비노기M> 개발에는 어느 정도 개입하고 있나?
일단 <마비노기M>은 예전에 ‘로나와 판의 판타지 라이프’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던 이진훈 씨가 디렉터를 맡고 있고, 거의 한 몸(?)처럼 일하고 있다. 디렉터와는 얼라인(align)*이 잘 돼 있는 편이다. <마비노기M> 뿐만 아니라 다른 프로젝트들도 디렉터들과 긴밀히 커뮤니케이션하며 개발하고 있다.
align: ‘핵심 가치 내재화’를 의미하는 경영/조직관리 용어. 핵심 가치와 목표가 구성원에게 내재화 돼 있으면 별다른 지시나 구성원의 자율성 침해 없이 조직의 핵심 가치 실현이 가능한 것을 의미.
생활감 하니까 생각나는데. <마비노기>만큼 한국에서 VR과 잘 어울리는 게임은 없는 것 같다. VR은 생각 안 해 봤나?
VR도 테스트 많이 했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았다. VR은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몇 개 있다. 일단 어지러움 문제가 있다. 어디론가 이동할 때 워프를 통해 순간 이동하는 게 아니라 걷거나 뛰어서 이동하면 무조건 어지러움이 생긴다. WASD 키를 사용해 앞으로 걸으면 넘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 문제를 지금 상태에선 해결할 수 없다.
<마비노기> 리소스 가지고 마을에 캐릭터 올려서 테스트도 해 보고 프로토타이핑까지 해 봤다. 근데 어지러움증도 해결 안 되고 VR이 사실 지금 사업성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가능성을 열어두는 차원에서 테스트해 본 정도다.
<프로젝트 DH>는 어떤 게임인가. 공개된 영상만 보면 <몬스터헌터> 같기도 하고, <마비노기 영웅전> 느낌도 난다.
‘말 타고 용 잡는 게임’이라는 얘기 많이 했는데, 실제로 딱 그렇다. 말을 타고, 대포를 들고 용을 잡는 게임. 코옵 멀티를 지원하는 슬로우 템포의 액션 게임이다. 탱크를 모는 것 같은 느낌을 생각 중이다. 대포도 좀 느릿느릿 움직이고. 정교하게 조준을 해서 쏴야 하는 게 아니라 적당히 조작해서 쏴도 액션적 쾌감을 주는.
왜 하필 말이냐면, 말은 생물이지 않나. 알아서 움직여 준다. 앞에 바위가 있으면 비켜가 주고. 훈련이 잘 돼 있다면 장애물을 뛰어넘기도 한다. 자동차와는 달리 나에게 맞춰서 움직여 주는 이동 수단이다.
그것도 아까 했던 표현처럼 ‘게을러져서’ 그런 건가. (웃음)
맞다. (웃음) 원래 ‘DH’는 사이드 스크롤을 지원하는 2D 모바일게임으로 디자인 됐다. 최초 프로토타입은 스마트폰에서 돌아간다. 근데 어느 날 출근하니까 디렉터가 이걸 3D로 만들어 놨는데, 되게 멋있는 거다. ‘그럼 여기 언리얼을 붙여서 더 멋있게 만들어 보자’ 해서 PC 출시가 결정된 거지. 그래서 초반엔 모바일을 감안하고 정교한 조작을 요구하지 않도록 디자인 한 것이다. 스펙 낮춰서 모바일로도 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무기는 대포만 사용할 수 있나?
경량 무기부터 대포까지 다양하게 쓸 수 있다. 활이나 총, 사람 크기의 샷건, 거대 총검, 전기톱 등 여러 가지 무기가 등장한다. <몬스터헌터>보다는 좀 더 템포가 느리다. 말을 타고 움직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좀 더 많은 공간을 사용하고. 독특한 게임인 건 확실하다. 팀이랑 얘기할 때, PC방에서 누군가 이걸 하고 있으면 “이거 뭐야?”하고 볼 것 같다고 하더라.
말 타고 용 잡는 게 끝은 아닐 것 같은데.
일단 캐릭터는 여러 개 키워야 한다. 그리고 약간의 매니지먼트 요소가 있다. 내가 조종하는 용병이나 말 같은 것들을 매니지먼트하는 거다. 이것들을 성장시켜야 하고. 한 번에 같이 싸울 수 있는 사람 수는 되도록 많게 하자고 하는 중인데, 정확히 몇 명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이번 지스타에서는 볼 수 있나?
일정상 지스타 나가야 할 것 같은데. (웃음) 나가고 싶기도 한데 확답은 못 하겠다. 우리가 생각한 스펙대로라면 2018년에 출시돼야 하는 건 맞다. 근데 나중에 회사에서 게임 보고 ‘우리 이거 좀 더 해 보자’하면 일정 늦추고 더 개발할 수도 있고.
콘솔 욕심도 났을 것 같은데.
콘솔도 해 보고 싶지. 계속 해 보고 싶다는 말만 하는 것 같다. (웃음) 근데 콘솔은 좀 다른 문제다. PC나 모바일게임은 회사가 안정적으로 해 오던 부분인데 콘솔은 회사랑 논의를 하고 진행해야지. 특히 어느 지역에 어떤 플랫폼으로 나가느냐 같은 문제들은 사업 영역과도 밀접한 접점을 갖고 있다.
데브캣에서 콘솔 프로젝트 진행하긴 했었다. 되게 옛날에 아무도 안 할 때. 지금은 옛날이랑 환경도 달라졌다. 콘솔게임 개발하기 훨씬 쉬워졌고.
인사 평가는 원래 본부에서 했는데 어떻게 할 계획인가? 스튜디오 내부에 담당자나 팀이 존재하게 되나?
평가를 어떻게 할지 방향성은 공유돼 있다. 인사평가할 때 보통 ‘이 사람 잘 하는 사람이냐’ 물어보는 방식을 쓰는데 그걸로는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이 사람이 최근에 잘했으면 잘했다고 평가 나오고, 나랑 친하면 잘했다고 나오고.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더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하느냐는 스튜디오의 지향점과도 연결된다.
우리는 ‘이 사람 연봉 대비 얼마나 했나’, ‘얼마 받는데, 실제로 얼마나 했나’ 같은 방향을 생각 중이다. 이 사람에 대한 기대치 대비 실제로 해낸 퍼포먼스가 얼마나 되나를 기준으로 평가하자는 것이다. 그 기대치를 어떻게 만들어야 모두가 동의하는 형태가 될 것인지는 고민되는 부분이다. 사실 우린 기대치를 ‘업력’ 같은 걸로 돌려서 표현한다. ‘이 사람이 업력 대비 얼마나 했나’ 그런 식으로 풀어보려 생각 중이다.
신규 개발에서는 거의 모든 파트가 정성 평가일 수밖에 없지 않겠나.
이걸 연봉 대비 산출물이라고 하면 너무 드라이한 접근이고, 실제로 측정할 수도 없다. 게임 업계에서 그동안 계속 못 했던 것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표준 노동 가치’ 책정이다. 가마수트라(해외웹진) 같은데선 매년 이걸 업데이트한다. ‘아티스트 몇 년 차, 이 지역에서 연봉이 이 정도부터 이 정도까지’, 이런 거다.
이런 게 그 사람의 퍼포먼스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팀 안에서도 대충 ‘어느 정도 경력과 실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실제로 이 정도 퍼포먼스는 보여줘야 돼’라는 기준. 기존의 평가 시스템에선 그런 것들이 무시돼 왔다. 팀에서도 이 사람이 1년 차 인지 10년 차 인지 모른다. 그냥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면 올바른 평가를 하기가 쉽지 않다.
해외엔 그런 게(표준 노동 가치 책정) 있는데. 한국엔 왜 없을까.
미국이랑 한국이랑 워낙 다르기도 하고. 특히 고용 유연화 측면은 많이 다르고. 한국은 역량의 표준화 작업이 잘 안 돼 있다. ‘내가 이거 이거 할 줄 알면 이만큼 받아야 해’라는 가치 책정을 잘 못하고 있는 거다. 노동자 입장에선 그걸 하는 게 유리한데 ‘우리는 지적 노동자니까 그런 거 책정하는 거 좀 그래’ 라는 인식도 팽배하고. 업계가 발전하려면 그런 게 분명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새로운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되나. 그리고 프로젝트를 죽일 때는 어떻게 하나.
과거에는 프로젝트 킥오프 할 때 경영진 도장을 받아야 했다. 지금은 스튜디오에서 피칭하게 한다. 론칭할 때 되면 론칭 리뷰를 통해 경영진과 사업 쪽 도장을 받는다.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봤다. 탑다운 방식으로 오더를 준 적도 있고, ‘당신이 만들고 싶은 것 갖고 와 보세요’ 한 적도 있고. 둘 다 결과는 별로 안 좋았다. 그래서 지금은 타협 선에 있고, 역할 분담은 잘 돼 있는 편이라고 본다.
끊임없이 기회를 나열해 준다. ‘데브캣에선 이런 아이디어로 이런 거 했으면 좋겠다’ 같은 거. 얘기하면서 의기투합 되는 포인트가 있다. 서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면서 ‘어 이거 우리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럼 킥오프 하는 거다.
죽이는 건 어려운 문제다. 감정의 이슈도 크다. 옛날엔 보통 회사에서 게임을 죽였다. 근데 우리는 그런 부분에서 공감대가 좀 있는 편이다. 회사를 오래 다닌 사람이 많아서. 이 사람들은 게임을 많이 접어 봤지. 그래서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공감대가 있다. ‘우리 이거 할 거 아껴서 저거 해야 돼’ 하는 공감대도 있고. 이걸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진 않는다. (죽일 때 단계 같은 것도 있나?) 있지. 몇 단계가 있다. 가능하면 명문화하려 한다. 지금도 체크리스트는 있고.
처음엔 내가 게임 기획 다 했다. 프로듀서이자 디렉터였던 거다. 일을 분장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허스키 익스프레스> 같은 게 처음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잘 안됐지만. 시행착오 끝에 지금은 과거보다 잘 되고 있다. 어디까지 내가 하고 어디까지 맡길지 나눠져 있다. 아예 다 줘도 안 된다. 가능하면 많은 부분을 알아서 할 수 있게, 근데 적어도 이게 ‘내 것 같다’ 하면 내가 해야 한다. PD가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게임이 잘 안 나온다.
그런 깨달음을 쌓은 주요 레슨이 있다면.
<허스키 익스프레스> 얘기 잠깐 나왔는데, 그때 멀티 프로듀서 역할을 처음 해 봤다. 결과적으로 실패했고 그때 프로듀서 역할에 대해 많이 배운 것 같다.
<마비노기2> 잘못됐을 때도 후회 많이 했다. 그때는 좀 자만했던 것 같다. 전작이 좋은 반응 나왔으니 후속작도 잘 만들 수 있다는 자만심이 컸다. 팀에 문제가 쌓이고 있었는데도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찌 됐든 결과물은 나왔지만 프로젝트가 계속 길어졌다. 회사는 상장 준비 중이었고. 이것저것 얽히면서 많이 힘들었던 때다.
그러고 나서 회사에서 ‘모바일’ 미션 떨어지고 모바일 스튜디오가 됐다. MMORPG 한 덩이로 움직이던 조직이 여러 프로젝트를 다각도로 다루는 조직이 돼야 했다. 그때도 쉽지 않았다. 처음엔 이거 하자고 내가 제안했다가, 다음엔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해 봐 하면서 타협점을 찾았다. 지금은 굉장히 분위기 좋다고 생각한다. 결과물도 잘 나오고.
데브캣은 과거 인센티브를 1/n로 분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인센티브 분배는 어떻게 하려 하나.
이번 개편으로 인센티브 분배 정책도 PD가 정할 수 있게 됐다. 내부적으로 많이 고민하고 얘기도 나눠서 실행안이 확정된 건 아니지만 방향은 어느 정도 정해졌다.
개인적으로 인센티브가 ‘이만큼 벌었으니까 이만큼 줄게’ 같은 사후 보상 형태가 아니어야 한다고 본다. 인센티브 제도는 ‘뭔가 더 해 봐야지’, ‘새로운 걸 시도해 봐야지’라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도 얘기 중이다. 각 팀이 주식회사 같은 게 되는 거다. 프로젝트 시작할 때 주식이 몇 주 발행되고, 어떤 페이즈를 넘길 때마다 더 발급하고. 정식 이름이 주식은 아니고 일종의 ‘기여도’ 티켓 같은 것이다.
기여도 티켓? 기여도가 높은 사람에게 인센티브를 더 주는 건가?
맞다. 조금 다른게 있다면 기여도를 사전에 예측, 평가한다는 것이다. 보통 기여도는 프로젝트가 끝난 뒤에 판단하는데, 이 아이디어에 따르면 그 사람의 기여도를 예측해서 기여도 티켓을 미리 부여한다.
기여도 티켓 작동 메커니즘은 주식과 비슷하다. 그래서 주식을 예로 든 것이다. 팀이 주식시장에 상장된 회사라고 생각해 보자. 회사(팀)의 성과가 좋을수록 주식(기여도 티켓)의 가치도 올라간다. 자신이 가진 기여도 티켓의 가치를 올리려면 좋은 성과를 만들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주식을 산 사람이 그 회사 물건을 구매하거나 응원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프로젝트에 오너십을 갖게 되는 거지.
기여도를 잘못 예측하면 어떡하나. 기여도가 높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실제론 낮다거나.
그건 말 그대로 잘못 판단한 것이고, 실수한 게 된다. 실제 회사에서도 발생하는 일이다. 주식 주고 유능한 인재 데리고 왔는데 성과가 나쁜 경우. 판단 실수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아이디어는 인센티브를 완벽하게 공평히 분배하는 것보다는 인센티브 사전, 사후 지급 문제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완벽히 기여도를 평가해 그만큼의 인센티브를 줄게. 믿고 같이 하자.’가 아니라 ‘우리 프로젝트는 당신이 필요해. 기여도 티켓을 이 정도 줄 수 있는데 나중에 성과가 나면 이걸로 이 정도 금액을 받을 수 있어. 같이 할래?’라고 미리 말할 수 있는 시스템인 것이다.
프로젝트에 오너십을 가진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나?
나의 비전과 프로젝트의 비전이 얼마나 잘 일치돼 있나. 이게 성공하면 나도 성공한다는 의식. 내가 하고자 하는 일과 이 프로젝트가 가고자 하는 일이 얼마나 일치돼 있는가가 오너십의 실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잘 되고자 노력하는 게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는 길이라면 더 욕심을 내게 되고. 그런 사람들이 더 많은 인센티브를 받아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을 뽑는 게 제일 좋을 텐데, 회사에서 만들어질 수도 있다고 보나?
맞선 보는 거랑 비슷하다. 스튜디오의 방향성이 있고 그 사람의 방향성이 있을 텐데, 가능하면 맞는 사람이 좋지만 아니라면 서로 맞춰야겠지. 타협하는 거다. 스튜디오에 A라는 방향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으면 그 사람들한테 맞는 A프로젝트를 할 수도 있고. 결국은 스튜디오도 멤버들에게 맞춰진다. 스튜디오는 멤버들의 합이니 멤버들의 방향성과 스튜디오의 방향성이 완전히 다르다고 볼 수도 없다.
물론 정말 방향성이 너무 안 맞으면 본인이 나가겠지. 가능하면 맞는 사람을 뽑고, 그다음은 타협의 영역이다.
조직이 해 줄 수 있는 부분은 없을까? 멤버들이 프로젝트에 오너십을 갖도록.
옛날에는 시스템을 타이트하게 만들려고 했다. 지금은 방향은 명확하되 최소한의 시스템을 가지는 게 맞다고 본다. 각자 결정할 수 있게. 다만 몇몇 굵직한 것들은 결정돼 있어야겠지. 평가와 보상 같은 것들.
여기서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칭찬받는 일인가. 더 잘했다고 평가받는 것인가. 그런 것은 시스템이 커버를 해야지. 그리고 그 평가에 따라 이 사람이 얼만큼의 돈을 받아야 하는지도 시스템이 평가하고. 그 밖에는 각자 판단하게 해야 한다. 지금 이미 200명이 넘는데 그 사람들을 하나의 틀로 규정하기 힘들다. 이미 지금 팀마다 출근 시간도 다 다르다. 유연 근무제 도입돼서 더 그렇게 될 거고.
왜 시스템이 더 작아져야 한다고 봤나.
큰 시스템으로 사람들을 통제하는 게 불가능하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게 다 다르고, 롤도 다 다르고. ‘우리는 이런 사람이 필요해’ 하고 체처럼 촘촘하게 기준을 짤 수는 없지. 큰 그림으로 우리는 이 방향이었으면 한다. 이런 걸 짤 수는 있지만. 사람마다 넌 이렇게 하고 넌 이렇게 하고 그걸 정해주는 게 또 굉장히 비효율적이고.
팀의 디렉터들이 자율권을 갖나?
갖는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하는 일 보는 걸 되게 중요하게 생각한다. 팀 그룹웨어에 마치 트위터 피드처럼 작업물이 올라가는데, 어떻게든 남 하는 일을 보게 만들려는 시도다. 자세하게 나오진 않고 프리뷰처럼 짤막하게 나오는데 좀 재밌어 보이는 거 있으면 클릭해서 보고. 그렇게 보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고, 잘한 거 있으면 따봉도 날린다. 그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시너지도 생기고.
서로 작업 내용을 알면 어떤 시너지가 생기나?
왜 데브캣에 왔냐, 왜 데브캣에 있냐 물어보면 이렇게 답하는 사람들이 있다. “데브캣에 있는 사람들이 똑똑해 보이고 잘 하는 사람 같아서 같이 일하고 싶다”라고. 그 사람이 잘하는지 다른 사람들이 알려면 어느 부분이 잘났는지 보여줘야 하거든. 보고 나서 ‘이 사람 잘 하네, 열심히 하네, 나도 한 번 해 봐야겠다.’ 생각하기도 하고. ‘내가 잘 못 하는 건 이 사람한테 물어보면 되겠다.’ 생각도 하고. 서로 자기 맡은 일만 하면 누가 뭘 잘 하는지 전혀 모른다. 하루 종일 일하다 보면 얼굴 볼 일도 없고.
잘 돌아가나? 작업물 퀄리티가 다소 낮은 사람도 있을 텐데. 부작용은 없나?
이미 데브캣 고유의 문화가 된 것 같은데, 긍정적인 부분이 더 많은 것 같다. 별의별 게 다 올라온다. 정말 중요한 건 ‘똥글’이 올라와도 이상하지 않게 생각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아이돌 영상도 올라오고 짤방도 올라오고 여기 내가 뭘 써도 이상하지 않은 거다. 꼭 완성된 문서를 올려야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이런 거 하고 있어.’ 하고 자연스럽게 보여 주는 거고, 그런 게 많이 쌓여있는 것이다. 처음 온 사람도 ‘이렇게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구나. 이미 오래 이렇게 해 왔구나’ 하며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간다.
김동건은 왜 넥슨에 18년이나 있었나? 힘든 순간도 있었을 텐데.
빨리 퇴직해야 하는데. (웃음) 넥슨이 좋은 토양이었다고 본다. 나랑 잘 맞는 토양이었고.
누군가 넥슨의 유전자가 뭐냐고 물으면 나는 ‘카오스 한 분위기’라고 한다. 사실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넥슨에는 ‘이런 게임 만들어라’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만들고 싶은 게임 만들어도 되는 분위기다. 엉뚱한 거 만들면 안 밀어줘서 그렇지. (웃음) 그런 분위기가 흔하진 않더라고. 나는 그게 중요한 동력이라고 본다. 그런 데서 생겨나는 것들이 판을 바꿀 수 있는 것들이라고 보고.
데브캣이 편애(?) 받아서 가능했던 것 아닌가. 데브캣처럼 참신한 시도를 하고 싶어 하지만 못하는 넥슨의 다른 사람들도 있을 텐데.
데브캣은 핍박받는 존재지. (웃음) 뭐 생존한 거 자체가 편애를 받은 거긴 하다.
회사가 여러 시도를 했었지. 신규 개발 본부도 해 보고, 인큐베이션 시스템도 해 보고, 사내 벤쳐 같은 것도 해 보고. 그건 너무 카오스였던 거다. ‘니들이 알아서 살아남아 봐’ 같은 거였지. 이 정도까지 카오스를 만들 건 아니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했고.
어느 정도 울타리는 있어야 그런 시도들이 회전된다고 본다. 데브캣은 그동안 실패한 사람들이 남아있을 수 있는 바운더리가 있었다. 실패한 사람들도 당연히 ‘다음엔 더 잘 해야지’ 한다. 그런 시스템, 테두리를 만들어서 남기자. 그게 스튜디오 체제 개편의 굵직한 목표라고 본다.
넥슨 전체 평균 근속연수랑 데브캣 근속연수가 차이 나나.
옛날엔 데브캣 근속연수가 굉장히 높았던 적이 있다. 지금은 신입이 많이 들어와서 평균으로 따지면 좀 달라졌을 거다.
18년을 한 회사에 있었다. 게임을 개발하고 게임이 접히는 걸 보고. 그런 생활을 18년 해 왔는데 여전히 재밌고 좋나.
게임 만드는 건 재밌고 좋지. 회사에서 만드는 거랑 개인적으로 만드는 게 다르긴 하지만. 퇴직해도 개인적으로 만들 것 같다.
남아있는 이유라. 이런 식으로 게임업계에 들어와서 커리어를 밟고, 개발자로 퇴직하는 코스를 좀 남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업계에서 제대로 퇴직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개발자를 계속하는 케이스 자체가 별로 없고. 물론 개발자 하다가 창업하는 사람은 많지만 개발자로 계속 커리어로 쌓는 건 드문 일이다. 지금 회사에서 근속 3번째다. 앞에 두 명 남았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