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이번엔 진짜로 흔한, 쉬운 게임 만들겠다면서요"
A: "아니 그게…, 만들다 보니 만족을 못하겠더라고요" (웃음)
엔젤게임즈는 독특한 회사다. <길드워> 프로게이머 출신들이 만들었다는 이력도 특이하고, 첫 작품인 <로드오브다이스>에 대중적이라 하기 힘든 '보드'와 '주사위'라는 소재를 넣었다는 배짱도 그렇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게임을 2년 간 서비스하며 세상맛(?)을 충분히 봤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트렌드와 거리가 있는 신작을 내놨다는 면에서 더더욱 그렇다. 엔젤게임즈는 무엇을 믿고, 왜 이런 행보를 보이는 것일까? 대구에서 엔젤게임즈 박지훈 대표와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
엔젤게임즈의 신작 <히어로칸타레>는 전작 못지 않게, 아니 어떤 면에선 전작보다도 더 독특한 작품이다. 전작 <로드오브다이스>는 플레이 방식이 독특하더라도 유료 모델은 다른 모바일 RPG와 흡사한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히어로칸타레>는 플레이 방식부터 유료 모델 모두 다른 게임에서 보기 힘든 방식을 사용했다.
<히어로칸타레>는 제한된 시간 동안 '캐릭터 블록'을 조합해 캐릭터들의 스킬이 나가는 전투 방식을 사용한다. 각 캐릭터들은 1·2·3블록 스킬을 가지고 있다. 유저는 매턴 드로우(?)된 블록을 합치고 재배치해 그 턴에 스킬을 사용할 캐릭터와 사용 순서를 설정할 수 있다. 한 턴에 발동할 수 있는 블록 수가 제한돼 있고 블록을 배치하는 시간도 제한되기 때문에, 유저는 매턴 최선의 수를 고민하고 제한된 시간 동안 이를 수행해야 한다.
이런 게임 방식 때문인지, <히어로칸타레>엔 모바일 RPG면 대부분 있는 자동 전투도 스토리 모드에서만 제한적으로 지원한다. (반복 플레이 기능 X) 대신 게임은 유저가 게임을 하지 않더라도, 캐릭터들이 유저가 진행한 최고 난이도 메인 스테이지에서 자동으로 성장에 필요한 재화를 파밍하는 시스템을 보여준다. 게임을 계속 켜놓고 자동전투를 돌리는 모바일 RPG 트렌드보단, 게임을 켜지 않아도 재화가 쌓이는 '방치형게임'에 가까운 구조.
캐릭터를 얻는 방식도 일반적인 '뽑기 게임'(?)과 다르다. <히어로칸타레>는 일정 시간마다 무료로 뽑기 기회가 주어지며, 유저는 몇 개의 뽑기 결과 중 하나를 바로 가질 수 있다. 일정 시간마다(정식 오픈 기준 3시간) 무료 선택 뽑기를 제공하는 것. 추가로, 유저가 원한다면 무료로 선택하지 않은 다른 뽑기 결과도 재화를 주고 구입할 수도 있다. (물론 시간과 관계 없이, 돈을 써서 뽑기를 다시 하는 것도 가능)
전투 방식은 시장에서 찾아보기 힘들고, 성장 시스템도 유저가 계속 게임에 접속하게 하는 요즘 트렌드와 거리가 멀다. 선택 뽑기라는 유료 모델도 유저들은 좋아할지 몰라도, 게임사 입장에선 일반적인 뽑기에 비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방식이다.
엔젤게임즈는 왜 이런 게임을 만들었을까?
# 그래도 게임이라면, 직접 했을 때 재밌어야 하지 않겠어요?
"이번엔 좀 대중적으로 가려 했는데, 만들다 보니 만족을 못하겠더라고요. 아무리 모바일이라고 해도, 게임이 '직접 한 판 했을 때' 재미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엔젤게임즈 박지훈 대표의 멋쩍은 대답이다.
프로게이머들이 창업한 회사라 그런지 엔젤게임즈는 게임성에 대한 기준이 높은 편이다. 회사의 개발 기조를 간단히 말하면 ▲ 다소 어렵더라도 특징이 확실한 작품 ▲ 그 게임만의 재미를 갖춘 작품으로 정리된다. 그러다 보니 <히어로칸타레>도 '이번엔 좀 쉽고 무난하게 만들어야지'라는 첫 목표와 달리, 다소 학습 난이도가 있는 게임이 탄생했다.
다른 플랫폼에 비해 캐주얼한 게임이 인기인 '모바일'에선 약점일 수도 있는 부분. 하지만 이에 대한 엔젤게임즈의 생각은 확고하다. 적어도 자신들이 만드는 게임은 직접 했을 때 재미 있어야 하고, 게임성도 독창적이어야 한다게 그들의 생각이다.
스타트업 티를 벗은 이젠 이런 생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도 가지고 있다. 첫 작품 <로드오브다이스>는 비록 까다로운 방식 때문에 국내에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그 독창성 덕에 2년 넘게 서비스 중이고 유저들의 충성도도 최고 수준이다. 엔젤게임즈도 그 덕에 인원 규모가 (론칭 당시와 비교했을 때) 2배 이상 성장했다. 회사는 첫 작품이 그랬듯, <히어로칸타레> 또한 추구하는 것만 잘 구현했다면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물론 저희 방식이 요즘 모바일게임 트렌드와 잘 어울리진 않겠죠. 다른 게임들이 하는 방식으로 만들면 수동 플레이가 아무리 재미 있어도, 유저들은 캐릭터 키우기 위해 가장 효율 좋은 던전을 자동사냥으로 '뺑뺑이' 돌잖아요?"
방치형 게임을 연상시키는 <히어로칸타레>의 파밍(?) 시스템 또한 '직접 플레이'에 대한 고민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히어로칸타레>는 아예 게임을 끈 상태에서도 캐릭터들이 유저가 진행한 최고 난이도의 메인 스테이지를 자동으로 파밍하는 시스템을 추가했다.
특정 요일에 특정 던전만 돌 수 있는 모델도 없앴다. 흔히 말하는 '요일던전'이 존재하긴 하지만, <히어로칸타레>의 요일던전은 요일과 무관하게 모든 던전이 오픈돼 있고 요일마다 드롭 확률 버프만 추가되는 식이다. 숙제에 쫓기듯 의무적으로 접속하지 말고, 무의미하게 게임 켜놓고 자동 돌리지 말고, 대신 '게임' 하고 싶어 접속하면 그동안 쌓인 재화로 성장의 기쁨만 느끼라는 의도다.
대신 개발진이 추구하는 것은 한번 접속하면, 직접 플레이하면 확실히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게임이다. 고민할 것이 많은 전투 시스템은 이런 의도로 만들어졌다.
이를 위해 유저가 접속했을 때, 직접 할 수 있는 콘텐츠도 대폭 늘렸다. 일반적인 스테이지 모드나 도전형 콘텐츠는 물론이고, 요일던전 같은 파밍 콘텐츠도 도전형으로 만들어 유저가 고심하며 던전을 돌도록 유도했다. (일정 구간마다 세이브 포인트 개념이 있어 반복은 많지 않은 편)
오픈 후엔 유저가 직접 맵을 탐색하고 길을 개척하는 '로그라이크' 모드, 원하는 캐릭터를 쉽게 얻을 수 있게 돕는 스토리 던전 등 서브 콘텐츠도 추가할 예정이다. 파밍처럼 귀찮고 반복 필요한 것은 시스템에 맡기고, 유저에겐 직접 플레이의 재미만 주는 것이 엔젤게임즈의 목표다.
"태생이 태생이라 그런지, 저희 궁극의 목표는 우리 게임으로 대회를 여는거에요. 그런데 대회를 열려면 직접 하는 재미가 있어야 하고 또 계정 스펙보단 '실력'으로 승부가 결정돼야 하잖아요? 우리에겐 이게 맞는 것 같아요."
# 캐릭터를 수집하는 게임에 뽑기와 등급(★)이 과연 적절할까요?
그렇다면 이렇게 게임을 만들면 유저들에게 인정받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해 월급도 잘 받고 다음 게임도 만들 수 있을까? 이 부분은 엔젤게임즈에게도 미지수다. 시장 트렌드를 따라가도 확신한 수 없는 게 성공인데, <히어로칸타레>는 게임 방식은 물론 유료 모델까지도 선택 뽑기라는 (사실상) 미지의 길을 선택했으니까.
"솔직히 걱정이 안 되는 게 이상하죠. 물론 지금 모델 만들며 안에서 열심히 계산해보긴 했지만, 이런 모델 자체가 거의 없었으니까요." 엔젤게임즈 박지훈 대표의 심경이다.
하지만 엔젤게임즈가 이런 걱정에도 지금 모델을 구상한 것은 '수집형 RPG'와 뽑기라는 상품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뽑기는 내가 돈을 지불해 랜덤한 무언가를 얻는 상품이다. 물론 게임사에선 시스템적으로 나름 가격 이상의 상품을 준다지만, 만약 그것이 유저가 원하지 않는 상품이라면 의미가 없어진다. 어떤 캐릭터를 좋아하고 그를 가지고 싶은 유저들이 많은 수집형 RPG에서는 이 문제가 더 두드러진다.
"개발자로서 유료 모델을 부정할 순 없죠. 하지만 돈을 많이 썼다면 그만큼 무언갈 얻어야 하는데, 수집형 RPG의 뽑기에선 의미 있는 무언가를 얻기 힘들잖아요. 수집형 RPG에 돈을 많이 써 본 입장에서 이 부분이 자꾸 걸리더라고요. 특히 원하는 캐릭터를 운 없어 못 얻으면 엄청 스트레스고…. 그래서 이번 게임에선 그런 요소를 줄이고 싶었어요. 선택 뽑기 방식이면 그래도 좋아하는 캐릭터를 빨리 얻을 순 있으니까요."
<히어로칸타레>는 3시간 마다 무료 뽑기 기회를 제공하고, 뽑기로 나온 3개 결과 중 임의의 하나를 얻는 방식을 사용한다. 나머지 2개 결과도 원한다면 재화를 써 구입할 수 있고, 원한다면 돈을 써서 시간에 관계 없이 뽑기를 더 하는 것도 가능.
박지훈 대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히어로칸타레> 속 캐릭터들의 태생 등급(★) 구분을 없앴다. 좋아하는 캐릭터를 쉽게 얻더라도, 그 캐릭터의 등급이 낮아 상처받을 가능성을 없애기 위함이다.
캐릭터들의 등급 구분이 없는 만큼, 모든 캐릭터는 기본적으로 같은 위상을 가진다. 이런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해 오픈 버전 캐릭터도 40여 명으로 한정했다. 때문에 고등급 캐릭터, 혹은 밸런스 상 의도된 강한 캐릭터 때문에 유저들이 뽑기를 할 필요도 줄었다. 한 발 더 모바일 유료 모델 트렌드에서 벗어난 셈.
"걱정이 없진 않지만, 이번에는 이렇게 가고 싶어요. 수집형 RPG를 만드는 이상, 유저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가질 수 있게 하고 또 그 캐릭터의 가치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또 <히어로칸타레>가 오픈 후 어떤 성적을 거둘진 모르겠지만, 이런 시도가 계속 쌓여야 나중에 더 나은 모델이 나오지 않겠어요?"
과연 엔젤게임즈의 고민은 의미 있는 결과를 낳았을까? <히어로칸타레>는 1월 22일 정식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