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이렇게까지 할까?'
<몬스터 스트라이크>의 서비스종료 공지를 보는 순간의 필자의 기대는 여지 없이 무너졌다.
믹시의 도전은 실패했다. 야심 찼던 도전자는 생각보다 쥐고 있던 게 없었다. 총 5번의 경기를 치르는 동안 홈그라운드를 제외하고는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중국에 이어 한국에서도 KO를 당했고, 북미에서는 판정패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여기까지면 좋겠지만 경기가 수세에 몰리자 도전자는 태도까지 바꿨다. 맨 처음 약속했던 진정성과 정성은 사라졌고, 서비스정신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서비스종료를 선언했을 때, 그가 보여준 행동은 기가 차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했다.
'구입한 오브(캐시)에 대한 환불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몬스터 스트라이크>는 최악의 서비스종료를 맞았다. '2014년 최고의 기대작'에서 2년 만에 최악의 서비스종료를 맞기까지. 그 우여곡절을 정리했다.
서비스종료 과정만 정상적이었어도 최소한 이 칼럼까지 낼 일은 없었을 거다.
# 자신만만했던 세계 최강의 도전자. 하지만...
2014년 11월. 믹시의 <몬스터 스트라이크>는 정성과 관심으로 가득 찬 채 국내 시장을 밟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한 시작이었다.
당연했다. 일본 모바일게임 시장이 활성화할 때부터 부동의 1위를 유지했던 <퍼즐앤드래곤>을 넘은 게임이고, 구글플레이와 애플 앱스토어를 종합한 전세계 매출 1위를 달성한 적이 있는데다가, 일본에서만 2,500만 유저를 확보한 말 그대로 '세계 최고의 모바일게임' 중 하나였으니까.
정성도 대단해 보였다. 두 명의 PD와 디렉터, 대표까지 연이어 한국을 찾았고, 모든 음성을 새롭게 녹음했으며, 한국에 맞는 새로운 시스템과 이벤트를 선보였다. 행여 한국 유저들이 거북해할까봐 민감한 소재였던 전국무장까지 전부 새로운 캐릭터로 교체했다. 운영은 믹시가 직접 맡았고, 일본 서버에서 즐기던 유저들은 국내서버로 이전도 해줬다.
그만큼 관심도 대단했다. 지스타를 앞둔 기자간담회에서는 질문이 쏟아졌고, <로스트아크>와 <리니지 이터널>이 연이어 공개된 압도적으로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일개 모바일게임'이 이슈가 되는 기막힌 상황도 이끌어 냈다. 일본에서 역대 모바일게임의 흥행성적을 모두 갈아치운 <몬스터 스트라이크>의 방대한 시작이다.
여타 게임이 그렇듯 시작은 희망적이었다. 워낙 인지도가 높았던 게임이기도 하고
# 기대와 달랐던 실력. 순식간에 드러난 민낯
하지만 관심이 사라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몬스터 스트라이크>는 서비스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게임의 몇 안 되는 텍스트는 각종 번역오류로 가득했고, 핵심 콘텐츠인 GPS 기반의 멀티플레이는 국내 유저들에게 익숙하지 않았다. 아예 멀티플레이가 자신이 위치한 곳을 따지는 GPS 기반이라는 점조차 모르는 유저도 수두룩했다.
그 와중에 믹시에서 네트워크가 닿는 범위를 멋대로 조절하다 보니 멀티플레이 유저는 상황에 따라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하기 일쑤였다.
여기에 기껏 국내 버전으로 바꾼 전국시대 무장은 일러스트와 더불어 종족까지 바꿔준 탓에 제 성능을 발휘하지도 못했다. 예를 들어 우에스기 겐신의 종족은 '사무라이'지만 겐신의 한국판인 주몽의 종족은 '신'이다. 그리고 <몬스터 스트라이크>에서 보스들이 가장 많이 가진 스킬 중 하나는 '신 킬러'다.
그래서일까? 뒤에 나온 전국시대 무장들은 그나마 변화도 없이 그대로 출시하며 혼란을 더했다. 고성능 몬스터의 순서가 빠진 채 업데이트가 진행되는 등 고의적으로 콘텐츠를 미루는 모습도 보였다. 자신만만했던 준비가 벗겨지고 민낯이 드러나던 순간이었다.
종족 '신'. 이 한 줄이 바꿔 놓은 건 너무나 많았다. 그나마도 이후부터는 전국시대 무장이 그대로 나온다.
# 관심이 떨어지면서 정성도 떨어진 운영
야심에 가득 차 보였던 운영계획은 나날이 허술해졌다. 게임의 특징 중 하나인 숱한 콜라보 이벤트는 <울트라 스트리트파이터> 하나만 남기고 모두 사라졌고, 원래대로라면 첫 달에 나왔어야 할 첫 지옥강림은 다섯 달이나 지나서 추가됐다.
특별 이벤트로 진행했던 성만켄치 이벤트는 정작 첫 날에 필요한 몬스터가 전혀 나오지 않는 문제를 일으켰고, 원래대로라면 1에서 5사이로 랜덤하게 나와야 할 뽑기 몬스터의 행운은 1 혹은 5로만 고정됐다.
계정의 모든 데이터를 2배로 뻥튀기하는 버그를 악용했던 유저가 나왔을 때는 '앞으로 부정행위를 주의하라'는 경고문 하나로 끝났고, 문제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자 믹시는 아예 소통을 차단해 버렸다. 유저는 물론 각종 미디어나 팬사이트까지 포함한 소통의 차단이다.
결국 남은 건 일본과 똑같은 이벤트와 최소한의 업데이트만 이어지는 '영혼 없는 서비스뿐'. 여기까지가 서비스 반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겪었던 일들이다. 그리고 이 총체적 난국 속에서 <몬스터 스트라이크>는 해결의지조차 보이지 않은 채 1년 이상 서비스를 더 이어간다.
부정플레이를 한 유저가 이를 인증까지 했지만 처벌은 커녕 앞으로는 주의하라는 경고가 고작. 이 공지는 이후 게임이 각종 치트와 편법에 시달리는 계기가 된다.
# 끝까지 아름답지 못 한 마무리
그리고 2016년 11월. 믹시는 <몬스터 스트라이크>의 국내 서비스를 종료하기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이미 겪을 만한 일을 다 겪었고, 유저조차 거의 없었던 게임인 만큼 조용한 서비스종료를 예상했지만 믹시는 그마저도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오브(캐시)에 대한 환불은 불가능하니 많은 양해 부탁 드립니다'
<몬스터 스트라이크>의 서비스 종료 공지에 올라온 환불에 대한 단 한 줄의 문장이다.
일반적인 게임의 서비스 종료는 보통 다음처럼 진행된다. 종료일이 발표되고 나면 곧바로 결제가 차단되고, 뒤를 이어 환불을 위한 절차에 들어간다. 환불 수준은 게임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년 이하로 사용한 아이템에 대해서는 감가상각을 통한 가치를, 아직 사용하지 않은 캐시나 서비스 종료를 앞두고 결제한 내역 등에 대해서는 전액 혹은 대부분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몬스터 스트라이크>는 한 줄의 문장으로 유저들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환불을 양해해 줄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구매는 한 달 전에 막히고, 환불은 불가능하다. 서비스종료 발표 이후에도 결제가 가능하다는 뜻.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서비스종료에 대한 고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보여주듯, 혹은 (의지와 상관없이) 환불을 양해한 유저들이 남아 있는 캐시를 너무나 쓰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하듯, 서비스종료 발표와 함께 '유료 뽑기 이벤트'도 연이어 진행했다.
29일부터는 슈퍼 몬스터 페스티벌이 시작됐고, 31일부터는 국내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미야모토 무사시를 뽑을 수 있는 '검호열풍전' 이벤트가, 9월 5일부터는 패자의탑 정복을 도와주는 '패자도' 이벤트가 시작됐다. 모두 캐시를 이용한 뽑기 이벤트다.
이에 대한 소감은 페이스북에 남긴 한 유저의 댓글로 대신하자.
<몬스터 스트라이크>의 이번 환불불가는 가깝게 보면 공정거래위원회의 가이드라인, 멀리 보면 전자상거래법까지 위반한 조치다. 전자상거래법에 따르면 사이버재화(캐시) 또한 7일 이내에는 단순변심으로도 환불이 가능하고, 이후에는 적정수수료를 공제한 후 환불이 가능하다.
실제로 모바일게임 초창기 환불절차를 마련하지 않던 2012년에는 게임빌, 컴투스, 넥슨, 네시삼심삽분 등 다수의 개발사가 철약철회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전자상거래법 위반행위에 대한 시정명령과 과태료를 받은 적도 있다. 대부분의 모바일게임이 서비스를 종료할 때마다 꼬박꼬박 환불절차에 들어가는 것도 이 덕분(?)이다.
다만 과태료가 수 천 만원 수준에 그치는 데다가 시정명령을 따르지 않더라도 사업자등록이 중지돼 서비스를 못하게 되는 수준에 그친다. 현재 게임이 <몬스터 스트라이크> 하나 뿐이고, 그나마도 더 이상 국내 서비스 의사가 없는 믹시로서는 환불을 따로 해줄 이유가 많지는 않은 셈이다.
서비스 종료 발표 직후에도 이어진 이벤트. 원래 하던 이벤트라고만 보기에는 결제가 되는 상태에서 환불도 해주지 않는 게임이 결제 이벤트를 진행하는 게 상식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 이해를 해주는 유저. 하지만 이해를 악용해서는 안 되는 개발사
서비스 종료 직전에 결제 이벤트 한 번 했다고 '먹튀' 논란까지 샀던 <뿌요뿌요!! 퀘스트>. <몬스터 스트라이크>는 이보다 몇 배는 더 한 상황이다.
여기서 믹시의 입장을 최대한 이해해보자.
혹자는 말한다. 보통 회사라면 진작에 접었을 서비스를 이만큼 끌고 온 것도 대단한 게 아니냐고. 틀린 말은 아니다. <몬스터 스트라이크>의 성적은 출시 이래로 꾸준히 좋지 않았다. 매출순위 10위권에는 한 번쯤 얼굴을 비춰야 인기가 있다고 보는 시기에 100위권 이하의 매출을 기록하기는 예사요, 언제부턴가는 순위를 찾아볼 수도 없게 됐다.
그 와중에 2년 이상 서비스를 유지한다. 그것도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기도 어렵다는 걸 알면서. 업데이트가 부족하다, 현지화가 제대로 돼있지 않다는 모든 단점을 차치하고 이것만으로도 믹시의 '서비스 유지에 대한 노력'은 칭찬받을 자격이 있을 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유저가 개발사의 노력을 이해해준다 치더라도 그것이 개발사가 법까지 어기며 마지막까지 최대의 이익을 추구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약 1년 반 전의 이야기다. NHN엔터테인먼트에서 서비스하던 <뿌요뿌요 퀘스트>가 갑작스러운 서비스종료로 '먹튀'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서비스종료를 일주일 앞두고 뽑기 이벤트를 진행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속된 말로 '서비스 종료 전에 뽕을 뽑겠다'는 생각이 아니었냐는 논란인데, 이를 접한 필자는 꽤나 크게 시간과 공간을 할당해서 NHN엔터테인먼트를 비판했다. 하지만 지금의 <몬스터 스트라이크>를 보면 그때의 가열찼던 비판이 무색해질 수준이다.
서비스 종료 직전에 결제 이벤트 한 번 했다고 '먹튀' 논란까지 샀던 <뿌요뿌요!! 퀘스트>. <몬스터 스트라이크>는 이보다 몇 배는 더 한 상황이다.
# 그들이 생각하는 서비스의 가치
2014년 11월 믹시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친절한 얼굴로 국내 시장에 얼굴을 내밀었다. 이후 예상했던 만큼의 관심을 받진 못했지만,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더 이상 국내 서비스 계획이 없다는 이유로 이런 정 떨어지는 마지막 모습을 보이는 건 그 동안의 진정성마저 의심케 만드는 행동이다.
게다가 이번 서비스종료는 국내 모바일게임 시장에 최악의 선례를 남길 수도 있다. 생각해보라. 일본에서 가장 잘 나가는 모바일게임 개발사가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며 환불조차 없었고, 모르쇠로 일관한 유료이벤트로 마지막까지 최대의 이익을 창출하며 사라졌다. 그보다 더 작은 개발사가, 더 영세한 개발사가 같은 짓을 하지 못 할 이유가 대체 어디 있겠는가?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가치는 친구들과 모여서 떠들고 웃으면서 즐기는 것에 있다"
<몬스터 스트라이크>가 국내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 믹시의 모리타 히로키 대표가 꺼낸 이야기다. 하지만 <몬스터 스트라이크>의 서비스는 물론이고 무성의한 마지막까지 보여준 믹시의 태도는 그 웃음과 즐거움이 어디까지나 '개발사가 충분한 수익을 거두는 상황'에서만 유지된다는 걸 알려준 셈이다.
믹시의 도전은 실패했다. 그렇다고 그 실패가 도전자가 민낯까지 드러내고 태도를 바꿔 경기를 보러 온 관중이자 돈을 대주는 스폰서인 유저들에게까지 행패를 부려도 된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
<몬스터 스트라이크> 출시에 맞춰 한국을 찾았던 믹시의 코우 세이겐 글로벌 전략 디렉터(왼쪽), 모리타 히로키 대표(오른쪽)
국내에 들어온 몇 안 되는 이벤트였던 <울트라 스트리트파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