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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 게이머’들의 정체성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게임과학연구원 ‘게임과 사람 센터’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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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승언(톤톤) 2024-07-03 17:59:18
톤톤 (방승언 기자) [쪽지]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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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 게이머’들의 정체성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게임과학연구원 ‘게임과 사람 센터’ 연구

현재의 ‘게임’은 단일 용어로 묶이기에 지나치게 광의의 개념이 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세부 유형에 따라 추구하는 근본적 미학에서부터 창작 트렌드, 제작 방법론, 타깃 청중, 생애주기, 소비자 행동, 사회적 입지 등 안팎의 여러 요소가 천차만별임을 볼 때 틀린 지적은 아니다.

미디어가 다변화되면 그 향유자 집단도 다변화되는 것이 통상의 흐름이며 게이머들 역시 그렇다. 지난 2일 게임과학연구원 주관으로 열린 ‘2024 게임과학포럼’ 세 번째 발제에 나선 ‘게임과 사람 센터’는 이런 관점에 입각해 ‘오늘날의 게이머’를 세부적으로 규명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

이번에 발표한 센터의 3년차 연구 대상은 이른바 ‘헤비 게이머’ 집단이다. 그간 ‘젊은 서구 백인 남성’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을 통해 주로 이해되어 왔던 ‘헤비 게이머’는 그러나 과거보다 다양해진 게임 환경에 의해 더 넓은 의미로 변화해 왔다.

특히 2020년대 이후 국내 ‘헤비 게이머’들은 더 이상 게임적 맥락에 머무르지 않고 외부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이에 게임과 사람 센터는 ‘헤비 게이머’의 정체성 형성 과정, 그리고 사회적 참여 계기 및 양상을 살필 필요성을 포착하고 연구에 나섰다.

발표에 나선 연세대 미디어 문화연구 박사과정 서도원 연구원


# 연구의 목적과 방법

연구의 목적은 헤비 게이머 집단에 대한 구체적 관찰을 통해, 2020년대에 나타난 이들의 사회적 발화 현상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고 이들을 향한 선입견을 완화하는 것이었다.

발표를 맡은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박사과정 서도원 연구원은 “2020년대 초 트럭시위 등으로 일반적 사회의 시각에서도 게이머들의 실천을 인식하게 됐다”며 “게임을 중심적으로 소비하는 게이머들이 어떤 사람인지는 시대적으로도 유효한 주제”라고 전했다.

연구진의 주요 연구 질문은 ▲‘헤비 게이머’는 어떤 게임을 플레이하며 게임 내적으로 어떤 실천을 하는가 ▲게임 외적으로는 사회에서 어떤 실천을 하는가 ▲그러한 실천을 왜 하게 되는가 등이다.

연구진은 이를 알아보기 위해 게임 커뮤니티, SNS 등에서 ‘헤비 게이머’를 자처하는 대상자들을 우선 모집했다. 다만 ‘헤비 게이머’의 정의는 주관적이기 때문에 회의를 통해 지원자 250명 중 대상자 32명을 추려 선정하는 절차가 필요했다. 이후 선정된 이들을 대상으로 2시간가량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심층 인터뷰는 ▲각자의 게임 경험 ▲’진정한 게임’과 ‘진정한 게이머’에 대한 자신의 정의 ▲게임계 사태에 관한 입장과 생각 ▲게임문화와 실천 등에 관련된 질문들로 구성됐다.

가령 ‘어떤 사람이 진정하지 않은 게이머라고 생각하는가’, 혹은 ‘윷놀이, 모바일 테트리스 등이 진정한 게임이라고 생각하는가’ 등을 물어 이들의 ‘헤비 게이머’로서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있는 가치관을 알아봤다. 또한 게임사 대상 1인 시위, 이용자 대표(총대) 활동 등 헤비 게이머로서의 실천에 관해서도 질문했다.

심층 인터뷰 질문 유형


# 헤비 게이머와 진성 게이머

심층 인터뷰를 통해 연구진은 ‘헤비 게이머’와 ‘진성 게이머’를 서로 구분해야 한다는 결론에 먼저 도달했다. 둘은 명확히 경계를 긋기 힘든 용어들이지만 ‘게임 이용을 많이 하는 사람’으로서의 ‘헤비 게이머’는 통일된 집단으로 볼 수 없으며, 그 안에서 ‘진성 게이머’로 구분할 만한 별도의 집단이 발견된다.

서 연구원은 연구 중 마주친 ‘극단적 예시’를 통해 둘의 차이를 설명했다. 첫째는 15년간 하나의 MMO 게임을 즐겨 온 인물로, 평일 개인 시간과 주말 대부분을 해당 게임에 할애하고 한 회에 100만 원 이상 게임에 지출하는 등 분명한 ‘헤비 게이밍’ 양상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이 참가자는 스스로를 ‘진성 게이머’로는 일컫지 않았다.

둘째 사례는 이와는 정반대로 ‘일주일 최소 6시간’, ‘평생 게임 관련 지출 80만 원’ 등 일반적인 ‘헤비 게이머’의 관념에 다소 못 미치는 소비 양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참가자는 ‘진성 게이머’를 자처했다.

연구진은 이러한 차이가 어디서 발생하는지 관찰한 결과 스스로의 기준으로 게임을 헤비하게 즐긴다고 여길 뿐인 유저들을 ‘헤비 게이머’, 그리고 온/오프라인을 통해 게이머 집단의 목소리를 직접 내는 데 참여하는 집단은 ‘진성 게이머’로 구분할 수 있다고 봤다.



# 게임 커뮤니티의 주류 담론

진성 게이머를 포함해 헤비 게이머는 대부분 게임 커뮤니티를 이용해 게임 정보를 얻고 다시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정보를 공유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주류 의견’이 형성되는데, 이는 주요 게임 커뮤니티의 문법과 관련이 있다. 최초에 추천을 받은 의견이 주목을 받고 여기에 다시 그만큼의 추천이 몰리면서 점차 ‘주류 의견화’가 가속화하는 구조인 것.

그렇다면 헤비 게이머는 모두 이러한 ‘커뮤니티 주류 의견’에 동화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연구진이 인터뷰한 헤비 게이머 중에서는 커뮤니티에서 정보만 습득하고 활동하지 않거나, ‘대안 커뮤니티’를 찾아 활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대안 커뮤니티’의 첫째 유형으로는 외국 게임 커뮤니티가 있다. 해당 게이머들은 외국 커뮤니티에 전문적 정보가 더 많으며 유용하다고 이야기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SNS상에서만 얻는 사례가 있으며, 지인 간의 네트워크로 구성된 소수 커뮤니티(디스코드 채널) 등을 스스로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

이렇게 대안적 커뮤니티 활동 방식이 나타나면서, 국내 게임 커뮤니티의 주류 의견이 점점 더 과대표되는 경향이 있다고 서 연구원은 설명한다. ‘헤비 게이머’지만 ‘진성 게이머’는 아닌 유저들이 커뮤니티의 담론을 비판하는 대신, 대안을 찾아 떠나버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외부에서는 ‘헤비 게이머지만 진성 게이머는 아닌’ 유저들의 존재를 파악하기가 더 힘들어진다.



# 진성 게이머의 정체성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앞서 이야기된 것처럼 ‘헤비 게이머’와 ‘진성 게이머’를 아주 명확히 구분할 수는 없고, 이들의 실천 또한 각각의 맥락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진성 게이머’들의 경우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생성된 담론들이 이들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다시 게임적 실천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파악된다.

한 가지 예시로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 내부에서의 발화만으로는 게임계의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커뮤니티 내부에서 늘어나면서, 트럭시위와 같은 직접적 행동이 표출되기도 했다.

한편 이런 의사 표명의 동기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 참여자가 본인이 게이머로서 ‘무시와 탄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진성 게이머’들이 게임을 하위문화로 향유하면서 경험하지 않은 기억에서도 집단기억으로서 억압을 상상하고 있었고, 그게 이들의 정체성을 만들어 냈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20대 ‘진성 게이머’들은 과거 정부의 ‘셧다운’ 제도의 집중적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셧아웃이 자신들에 대한 규제이자 압박이었다는 ‘공동 기억’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면 공동 기억은 어떻게, 왜 형성됐을까? 진성 게이머들은 헤비 게이머로서 ‘남들과 다르다’는 구별 짓기를 원하는 동시에,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여타 취미 향유자와 똑같이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욕구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이는 하위문화 전반의 마니아적 특성과 같으며, 게이밍 씬 전반에서 강화되고 있다고 서 연구원은 설명했다.



# 결론과 제언

‘진성 게이머’는 대중화된 디지털게임 문화 속에서 자신을 고유한 하위문화 마니아로 여기는 ‘마이너리티 정체성’이 현금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받는 ‘소비자’로서의 정체성과 결합하며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트럭시위로 대표되는 특유의 직접 행동은 하위문화적/소비자적 맥락의 결합이 드러난 대표 사례다.

진성 게이머 정체성의 형성 과정에 영향을 미친 것은 과거 게임 문화에 대한 무시와 탄압이다. 이것이 문화적 기억으로 남아 작동하면서 실제 그 사건들을 겪지 않은 게이머들조차 이를 자신의 기억과 경험같이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이들로 하여금 이러한 ‘집단 기억’을 토대로 발화 및 실천하게 했다.

이번 연구는 헤비 게이머 집단을 세밀히 분류한 뒤 개별 집단을 관찰하는 일의 중요성을 제기한다. 온라인 게시판 기반의 주류 커뮤니티가 특정한 입장을 중심으로 고착화하고 과대표되면서, 다수 게이머의 입장을 보편적으로 살피기 어려운 공간으로 변모 중이란 점도 드러났다. 따라서 새롭게 대두되는 대안 커뮤니티들에 대한 관심과 연구 관찰의 필요성도 대두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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