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2일부터 14일까지, 중국 상하이 국가 컨벤션센터에서는 '빌리빌리 월드' 라는 이름의 전시행사가 개최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들 '서브컬처 게임' 이라고 부르는 '오타쿠 게임' 관련 전시 행사 중에서, 중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행사인데요.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인지도가 높지 않았던 행사지만, 중국산 서브컬처 게임들이 많은 인기를 얻으면서 최근 들어 조금씩 그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행사이기도 합니다.
기회가 닿아서 이 2024년 '빌리빌리 월드'를 직접 취재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서브컬처 게임이 어느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는지, 그들은 어떤 콘텐츠에 열광하는지. 또 한국 콘텐츠는 또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여러 가지 면모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디스이즈게임 현남일 기자
중국은 '오타쿠 콘텐츠'를 지칭할 때 'ACGN'(Anime Comic Game Novel)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빌리빌리 월드'는 상하이, 나아가 중국 최대 규모의 ACGN 전시 행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빌리빌리 월드'는 행사명에서도 유추할 수 있지만, 중국을 대표하는 동영상 사이트면서 동시에 서브컬처 게임 퍼블리셔 중 하나인 '빌리빌리'가 주관하는 행사입니다.
지난 2017년부터 개최하기 시작한 이 행사는 빌리빌리 뿐만 아니라 호요버스(미호요), 페이퍼게임즈, 요스타, 쿠로게임즈 등 중국의 내노라 하는 주요 서브컬처 게임사들이 대거 참여하는 '서브컬처 게임 주제' 대형 게임쇼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게임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피규어를 포함한 각종 굿즈 판매사와 애니메이션 판권사, 버츄얼 유튜버 관련 업체들도 참여를 합니다.
특히 올해(2024년) 부터는 다양한 '2차 창작' 작가들의 부스까지 참가를 허용한 것이 눈에 띄는데요. 따라서 이 행사는 사실상 게임을 필두로 한 '종합 오타쿠 콘텐츠' 전시회라고 이해해도 됩니다.
우리나라에도 인기가 많은 수많은 중국 서브컬처 게임사들의 '게임 전시'가 핵심이지만(사진은 <붕괴 스타레일>의 대형 캐릭터 전시물)
동시에 다양한 분야의 전시와 공연도 함께 이루어집니다. 굳이 우리나라로 비유를 하자면 '서브컬처 게임' 주제의 지스타 + AGF + 코믹월드 가 모두 합쳐진 행사라고 이해해도 될 것입니다.
다양한 '콘솔 게임'의 전시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올해는 SIE에서 직접 참가하는 등.
앞으로도 콘솔 게임의 참가가 점차 늘어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사진은 <팰월드>
상하이, 아니 중국 최대 규모의 '오타쿠 콘텐츠 전시회' 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중국 현지인들의 반응도 뜨겁습니다. 행사의 모든 티켓은 사전 판매되었는데, 약 15만장 규모로 알려진 수량의 티켓은 온라인 예약 시작 5분도 되지 않아 전량 매진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약을 위해 대기한 사람들만 60만명이 넘었다고 하는데요. 참고로 중국 최대 규모의 게임 전시회인 '차이나조이'가 지난 2023년에 약 33만 명의 관람객을 동원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이 행사의 규모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도 '빌리빌리 월드'가 열린 행사장 내 관람객들의 밀도와 열기는 차이나조이에 결코 뒤쳐지지 않는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분위기가 달랐던 점은, 빌리빌리 월드를 보러 온 관람객들은 굉장히 많은 수가 적극적으로 '코스프레'를 한다거나, 소유하고 있는 굿즈로 자신을 꾸민다는 식으로 '좋아하는 게임'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오타쿠 콘텐츠나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동료가 이렇게 많다니!' 하고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할까요?
수년 간 차이나조이를 취재해왔지만, 빌리빌리 월드도 결코 뒤지지 않는 수준의 열기와 인파를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너나 할 것 없이 코스프레를 하고 온다는 식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츠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고 있었습니다.
빌리빌리 월드에 참가하고 느낀 제 첫 감상은 다름이 아니라 "중국 오타쿠들도 결국은 우리랑 같구나" 였습니다. 말 그대로 '위 아 더 월드' 였다고 할까요?
실제로 좋아하는 게임,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IP도 유사하고, 행사장 전반에서 느껴지는 감성이 전반적으로 일본의 '코믹마켓', 대한민국의 'AGF' 같은 행사하고 큰 차이를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중국에서 만든 서브컬처 게임인 <원신>, <명일방주>, <붕괴: 스타레일> 같은 게임들은 물론이고, <페이트/그랜드 오더>, <프린세스 커넥트>, <뱅드림> 같은 일본산 서브컬처 게임, 한국에서 만든 <블루 아카이브>, <가디언 테일즈> 등. '국적 관계없이' 화제가 되는 서브컬처 게임은 중국에서도 인기가 높고 관람객들의 열기에서도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기본적으로 중국 행사인 만큼 중국 게임에 대한 전시가 풍성하지만, 동시에 (중국 입장에서) 해외 게임들 또한 그 반응이 굉장히 뜨거웠습니다.
주요 게임사들의 전시를 살펴 보면 '공식 코스프레 모델 촬영', '게임을 주제로 한 현장 이벤트 체험 및 경품 수령', '공식 굿즈 판매'가 핵심이라고 보면 됩니다.
게임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버추얼 유튜버' 등 다양한 서브컬처 콘텐츠에 호응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콘서트에서 쓰이는 '펜 라이트'(형광봉)의 제조사 부스에서는 '디제잉'(클럽) 이벤트가 개최되었고, 관람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일본 유명 애니메이션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일본의 현역 유명 버추얼 유튜버는 행사장의 한 무대에서 중국 관람객들과 팬미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한 관람객은 <블루 아카이브> 굿즈를 들고 있는 저에게 말을 걸었지만 중국어를 못하는 눈치에 자연스럽게 '일본어'로 "어디서 샀냐" 라고 물어봤습니다.
순간 이전에 어디에선가 본 "오타쿠에 국경은 없다"는 한 사진이 떠올랐습니다. 그만큼 '처음 간' 전시회였지만, 빌리빌리 월드는 저를 포함해 서브컬처 문화와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그런 행사였습니다.
AGF의 '물품 보관소'가 떠오르는 애니메이션 클럽 이벤트 현장.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나 콘텐츠로 차를 꾸미는 '이타샤' 전시 코너. 다른 전시회와 다른 점은 차량이 정말 어마무시하게 많다는 것 정도? 최신 IP부터 굉장히 오래된 IP에 이르기까지 온갖 콘텐츠로 차량을 꾸민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사실 '오타쿠 문화/게임' 이라고 하면 누구나 알고 있듯 일본이 종주국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런 전시회나 행사에서도 점점 '한국'에서 만든 콘텐츠, 혹은 여러 의미로 '한국' 그 자체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는데요.
이건 이번 빌리빌리 월드에서도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넥슨게임즈가 만들고 요스타가 서비스하는 <블루 아카이브>는 중국 현지에서도 굉장히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습니다. 전시 부스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고, 관람객 중에는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로 '코스프레'를 하고 행사장을 누비는 사람들을 정말 손 쉽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2차창작 코너에서는 <블루 아카이브>를 주제로 하는 부스가 <원신>, <붕괴: 스타레일> 못지 않은 큰 규모로 설치되어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요스타가 중국에서 서비스하는 <블루 아카이브> 부스. 중국에서는 1주년에 '황륜대제' 이벤트 시즌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홍보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7월 14일, 빌리빌리월드 행사 마지막 날에는 넥슨게임즈 김용하 PD가 무대에 올라 중국 게이머들과 만남을 가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한편 '2차 창작 코너'는 기본적으로 중국의 유명 작가나 동인서클들이 참여해서 저마다 만든 다양한 2차 창작 굿즈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여기에서 또한 '한국'의 유명 작가들이 참가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단순히 '참가만 했다' 수준이 아니라 팬들과의 만남이나 사인회를 진행하고, 그 사인회에 수십명의 사람들이 대기열을 형성하는 등. 한국 작가들 또한 굉장히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이 체감이 되었습니다.
<원신>, <명일방주> 등 각 게임 별로 유명 작가나 서클들이 다양한 2차 창작 굿즈를 판매하는 '2차 창작' 코너.
<벽람항로> 2차창작 코너에 참가한 'seseren' 작가님 인터뷰
Q. 디스이즈게임: 중국의 2차 창작 행사는 한국과 무엇이 다른가?
A. seseren 작가: 기본적으로 팬들의 '스펙트럼' 이 넓다. 한국에서 인기가 없거나 오래된 콘텐츠라고 해도 팬덤이 형성되어 있고, 작가들 또한 수많은 작가들이 골고루 인기가 높다.
Q. 디스이즈게임: 앞으로도 빌리빌리 월드 같은 중국 행사에 참여할 생각인가?
A. seseren 작가: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재미 있었고, 앞으로도 적극 참여하고 싶다. 한국 행사도 참여해보고, 중국 행사도 참여해보면 딱히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고, 중국 유저들 또한 작가들의 국적이나 콘텐츠의 국적을 따지지 않는다. 앞으로 참여 안 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
2차 창작 굿즈의 판매는 일본의 코믹마켓이나 한국의 코믹월드 같은 행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코스프레를 한 '판매원'들이 적극 굿즈 판촉에 나서는 것도 비슷합니다.
참고로 중국의 2차 창작 코너는 한국이나 일본과 다르게 '동인지', '아트북'의 판매는 공식적으로 불허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굿즈는 '아크릴'을 이용한 굿즈나, 포스터, 기타 같은 물건들이었습니다.
<블루 아카이브> 코너에 2차 창작 부스로 나온 '모군' 작가님의 부스.
Q. 디스이즈게임: 빌리빌리 월드에 참가한 소감은?
A. '모군' 작가: 중국 시장이 크다고는 들었지만, 이 정도로 크다는 것은 몰랐다. 지금까지 시장의 절반만 알았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여건상 중국에 나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이번에 많은 도움을 받아서 부스를 낼 수 있었다. 굉장히 기쁘고 시야가 탁 트인 느낌이다.
Q. 디스이즈게임: 앞으로도 한국과 중국 2차 창작계의 교류가 활발해질 수 있을까?
A. '모군' 작가: 중국 현지에도 유명한 작가들이 많고, 한국에도 유명한 작가들이 많은 만큼 교류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높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아무래도 한국에 있으면 중국의 유명 작가들의 굿즈를 구매하기 힘들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니까. 이제 이런 시장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양 국가간의 교류도 더욱 활발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결론적으로 '빌리빌리 월드'는 게임을 중심으로 중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서브컬처 콘텐츠의 현황을 확인할 수 있고, 무엇보다 이 문화에 진심인 '진성' 마니아들이 집합하는 굉장히 큰 규모의 행사라는 데서 확실히 존재감이 컸습니다.
행사장에서 만난 중국 게임업계 관계자들은 대부분 '앞으로도 빌리빌리 월드의 중요성과 규모 자체가 확장될 여지가 충분하다' 고 입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이런 행사가 중국에서도 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작의 최초 공개나 홍보의 장으로 활용한다는 식으로 게임사들 또한 적극적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요.
최초로 오프라인 행사에 참여한 만쥬의 <아주르 프로밀리아>
실제로 지난 해 <블루 아카이브>는 빌리빌리 월드에서 게임의 서비스 시작을 알린 덕분에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올해 빌리빌리 월드 또한 만쥬의 <아주르 프로밀리아>가 오프라인 행사로서는 처음 참가하는 가 하면, 아틀라스의 <메타포: 리판타지오>가 체험버전을 선보이는 등. '게임쇼' 로서도 그 가치를 증명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러한 경향이 앞으로도 이어지고, 가치 있는 정보가 계속해서 공개된다면 빌리빌리 월드는 차이나조이와 더불어 중국에서 가장 주목해 볼만한 '게임쇼'로도 발돋음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연 이 행사가 앞으로 어떤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요?
다른 국가의 전시회와 비슷하지만 '다른 점' 또한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특히 중국은 '여성향' 서브컬처 게임의 인기가 높다보니, 여성향 게임의 전시와 비중이 높은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사진은 우리나라에도 서비스 중인 <러브 앤 딥스페이스>의 부스
격리된 공간에 자리를 잡은 남성 부스 모델이 관람객들과 손을 맞잡아주고 응대해주는 이벤트 코너. 나 이거 한 10년 전에 도쿄 게임쇼에서 비슷한 거 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