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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G 20] "게임은 생산성 없는 유희에 불과한 걸까요?"

연세대 윤태진 교수는 "쾌락 복지"를 강조했다

김승준(음주도치) 2025-03-14 09:49:56
음주도치 (김승준 기자) [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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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G 20] "게임은 생산성 없는 유희에 불과한 걸까요?"

연세대 윤태진 교수는 "쾌락 복지"를 강조했다

게임을 만들고 소비하는 사람들은 "게임은 재밌으면 그만"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곤 합니다. 일각에선 이 말을 뒤집어 "게임은 생산성 없는 유희"에 불과하다며 폄하하기도 하죠. 레거시 미디어의 묘사처럼 게임은 사람들에게 악영향만 주는 취미인 걸까요? 기자 본인을 비롯해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서도 게임으로 스트레스 해소를 하거나, 정신적 위로, 감정적 감동을 받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지 않나요?


디스이즈게임 창간 20주년을 기회 삼아, 이런 질문에 대해 같이 고민해줄 수 있는 분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게임과 게임을 소비하는 사람들에 대해 연구하는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윤태진 교수는 "과거 TV가 바보상자 취급을 받았던 것처럼, 접근성이 좋은 쉬운 오락은 쉽사리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왔다"고 말합니다. 


동시에 그는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오락은 어느 시대에나 있어 왔고, 있어야만 한다"고 설명합니다. 윤태진 교수는 "재미나 쾌락이라 부르는 것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새롭게 하느냐에 따라 게임의 정의도 많이 바뀔 수 있다"며 "경제적 복지만큼 쾌락의 복지도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게임이라는 문화 생활을 우린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까요. 


서문에서 미리 예고해드립니다. 이번 인터뷰엔 정말 흥미로운 주제에 대한 문답이 많이 등장합니다. 게임이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비교하며 보시면 훨씬 더 재밌게 읽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윤태진 교수를 만나 게임이라는 문화 안팎의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 지난 20년 동안 게임은...

Q. 디스이즈게임: 안녕하세요, 교수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본인 소개를 해주신다면.


A.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윤태진 교수: 저는 미디어 연구를 했던 사람이고요. 미디어 연구 영역 내에서도 흔히 대중문화 연구라고 하는 것을 했습니다. 미국에서 박사 학위 논문 쓸 때는 텔레비전 드라마 연구를 했고, 그 다음에 돌아와서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장르의 문화적 경험에 대해 연구했어요. 


드라마, TV쇼 연구를 초반에 많이 했고, 2000년대 초반에 게임 연구를 또 오래 하다가, 또 한동안은 한류나 웹툰 연구를 했고요, 2010년대 중반부터는 다시 게임으로 돌아와서 게임 공부를 많이 하고 있어요. 그래서 게임 관련 연구 보고서, 책을 출판하고 관련된 기관, 단체 등에서 활동하며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여전히 대중문화 관련 과목을 가르치고요, 게임 관련 과목 가르치는 만큼 또 한류나 대중문화도 비슷한 비중으로 가르치고 있어요.



▲ 윤태진 교수는 이전에 넥슨컴퓨터박물관 인터뷰로 TIG 기사에 함께 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아래 질문에서 관련 내용이 이어집니다.


Q. 한류나 대중문화 안에서 게임의 비중이 옛날보다 많이 커진 편이기도 하죠. 교수님께서 이전에 넥슨컴퓨터박물관 인터뷰를 통해 기억나는 옛 컴퓨터로 IBM XT와 매킨토시를, 인생 게임으로 1983년에 출시된 <동키콩 3>를 언급해주시기도 하셨어요. 디스이즈게임이 이번에 창간 20주년을 맞이했는데, 지난 20년 사이를 기준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타이틀들을 꼽아주신다면.


​A. 윤태진 교수: 당시 넥슨 인터뷰 때는 개인적인 경험을 물어본 거지만, 오늘 주신 질문은 한 걸음 떨어져서 관찰자 입장에서 이야기를 해야 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연구자 입장에서 어떤 타이틀이 중요했나, 이런 걸 좀 생각해봤는데요. 저는 아무래도 미국을 중심으로 공부를 맨 처음 했다 보니까, 미국이나 유럽에서 게임 연구를 할 때, 이게 정말 논란거리야 하고 제일 먼저 나왔던 게임이 뭘까 생각해보면 역시 <GTA>인 것 같아요.


<GTA>는 게임성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아시다시피 동시에 사회적인 논란을 많이 일으키기도 했잖아요. 시리즈로 나오면서 또 나올 때마다 다른 종류의 논란을 만들고. 그래서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게임 역사, 학술적인 장 안에서는 20년 전 얘기를 할 때 <GTA>를 빼고는 이야기를 하기 참 어렵다는 생각을 했고요. 


비슷한 의미로 2010년부터 2010년대 중반에 학술장에서 굉장히 많이 얘기가 됐던 건 <라스트 오브 어스>였던 것 같아요.


<GTA 산 안드레아스>는 약 20년 전인 2004년 출시작입니다. 
이번 가을에는 올해 최고의 기대작인 <GTA 6>가 나올 예정이기도 하죠.


<라오어> 또한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타이틀입니다. 여러 의미로 말이죠.

그런데 이제 우리나라 게임 역사는 또 조금 종류가 다르다고 생각하는데요. 뭐가 인기 있었느냐, 뭐가 많이 팔렸냐, 뭐가 좋은 작품이라고 평가 받았느냐 이런 걸 떠나서, 저는 대중문화 연구를 하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기자님은 "특정 시기가 아니라 일제 시대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가요 역사상 제일 중요한 노래나 가수가 누구냐"라고 물어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누가 있을 것 같아요?


Q. 가요사를 통틀어 봐도 저한테는 김광석인 것 같고요. 누군가에게는 서태지일 수도 있겠고, 지금 시대로 보면 또 BTS를 꼽는 사람도 있을 것 같고요.


A. 윤태진 교수: 그러니까 좀 비슷한 질문인 것 같아요. 김광석, 유재하를 꼽는 것은 음악의 퀄리티라든지 개인적인 호오(좋고 싫음)이라든지, 이런 게 많이 작용하는 것 같거든요. 그런데 가요의 문화사를 놓고 보면, 정말 가요의 사회적 위치를 바꿨다든지, 아니면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문화를 바꾸고 팬들의 어떤 반응 방식을 바꾼 측면에서 보면 1990년대 초반의 서태지랑, 2010년대의 BTS가 사실상 우리나라 가요 역사상 가장 큰 변곡점이었다고 생각해요.


마찬가지로 드라마 같은 경우에는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면 1990년대에는 <모래시계>, 그 다음에 2000년대 이후에는 아무래도 <오징어 게임>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드라마의 퀄리티 이런 걸 떠나서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화가 됐고, 한국어로 만들어진 한국 드라마가 서양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게임이 거기에 준하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면, 2000년대 초반에는 전 <리니지>를 빼고 얘기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리니지>가 게임 문화를 많이 바꾼 건 사실이고, 좀 부정적인 방향이긴 합니다만, 게임에 대한 인식을 어느 정도 통일시킨 게임이었다고도 보고요.


<리니지>


많은 사람들이 놀랄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2010년대에는 <애니팡>이 중요했다고 생각해요. <애니팡>은 주요 게임 기기가 스마트폰으로 옮겨오게 됐다는 걸 증명한 사례이기도 하고, 게임 인구가 이제 폭발적으로 여성이나 노인들한테까지도 퍼지게 된 계기이기도 하고요. 동시에 게임이라는 게 오랫동안 앉아서 하는 것에서 잠깐 짬 날 때마다 출근길에 몇 번 할 수 있는 게임으로 바뀌었다는 의미에서, 우리나라 게임 문화를 완전히 바꿔 놓은 건 <애니팡>이었다고 생각해요.


또 <LoL>을 빼놓고 얘기할 수가 없습니다. e스포츠라는 것을 게임과 분리시킨 계기이기도 하고, 하는 게임에서 보는 게임으로 바꾼 사례이기도 하고요. 이전에 <스타크래프트>가 있긴 했지만, e스포츠를 훨씬 더 체계적인 비즈니스의 차원으로 올리고, 스포츠랑 접합을 시킨 계기라는 점에서, 다국적 기업의 마케팅 전략의 결과물 아니냐는 평가도 저는 정당한 평가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결론적으로 우리나라 게임계의 지형을 바꾼 대표적인 게임이죠.


장르적 측면에서는 비교적 최근 게임 중에 <배틀그라운드>도 기여한 바가 꽤 크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실 게임에 대한 어떤 미학적 판단을 하는 게 아니라, 대중문화로서의 게임의 가치 같은 걸 따지다 보니까요. 이전에 MMORPG 때 사람들이 생각했던 온라인에서의 사람 만나기, 관계를 맺고 혹은 거기서 싸우기도 하고 친구가 되기도 하고 결혼도 하는 이런 모습이, <배틀그라운드>나 <LoL>에서는 굉장히 바뀌었잖아요.


애시당초 친한 사람들과 잠깐 팀을 짜서 한다든지, 아니면 잠깐 만나는 관계라도 완전히 일시적으로 만났다가 헤어지니까요. <배틀그라운드> 하다가 결혼했다는 얘긴 못 들어봤었거든요.(웃음) 그런 면에서 게임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어요.


시대와 지형의 변화를 알렸던 <애니팡>

하는 게임에서 보는 게임으로 바꾼 계기이자, 동시에
온라인에서의 관계 맺음을 재정립한 <LoL>과 <배그>



# 도박과 게임의 구별 그리고 게이머의 '소비자화'


Q. 실제로 현실에서의 인간관계도 예전보단 아무래도 가벼워진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리니지>나 <와우> 시절의 혈맹, 공대로 묶이는 긴 호흡의 관계에 대해, 요즘 사람들은 온라인에서까지 그런 관계를 맺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MMO도 꾸준히 나오곤 있지만, 더 짧은 관계성을 넣는 편이기도 하네요. 말씀해주신 것처럼 게임 씬에 변곡점이 참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변화의 순간이 있을까요?


A. 윤태진 교수: 이것도 몇 가지 시기적으로 나눠서 봐야 할 것 같아요. 2000년대 초중반엔 <바다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 것 같아요. 이게 <바다이야기>도 게임의 한 종류라고 말하는 순간 게임의 정의가 되게 달라지는 것 같아서 이야기할 만한 건진 잘 모르겠지만요. 역설적으로 <바다이야기> 때문에 게임과 도박이 구별되기 시작했다고 생각을 해요.


게임에 대한 비판을 할 때, 우리나라 역사적으로 보면 예전 오락실의 어떤 어두침침한 분위기, 그 안에서 삥 뜯는 모습들, 이런 걸 훑으면 두 가지로 좁혀지는데, 폭력성과 사행성 이 두 가지가 비판의 대상이었다고 보거든요.


<바다이야기> 때문에 게임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나빠지고, 게임 업계도 철퇴를 맞고 그러기는 했으나, 게임물관리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이런 과정들을 돌이켜 보면, 게임은 이제 사행성과는 구별되는 상품이 됐죠. 게임 업계를 거의 망쳐버린 원흉이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런 구별이 됐다는 의미에서 큰 변곡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는 아무래도 스마트폰의 등장이겠죠. 단순히 단말기가 등장했다는 의미 이상으로, 앞서 <애니팡>도 말씀드렸지만 <포켓몬 GO> 같은 게임을 생각해보면 게임 인구를 넓히기도 했고, 게임을 하는 방식이나 게임이 주는 즐거움의 종류가 바뀐 계기가 결국 스마트폰의 대중화에 있으니까요. 


또 e스포츠도 앞서 말씀드렸지만, 단순히 e스포츠로만 말하면 안 될 것 같고요. 몇 가지 요소들이 섞여 있는 것 같아요. 게임이든 e스포츠는 이제 국내에서만 통용되는 게 아니라 범 세계적으로 움직이는 글로벌라이제이션을 겪었고, 또 동시에 게임을 한다는 행위가 언제부턴가 게임을 본다는 행위로 넓혀졌다는 거죠. e스포츠뿐만 아니라 유튜브가 보편화되면서 스트리밍도 그렇고요.


그래서 게임 종류도 많이 달라졌잖아요. 방치형 게임 같은 게 이렇게 인기 있을 줄 어떻게 알았겠어요. 보통 텔레비전과 게임을 비교할 때 게임은 플레이어가 직접 입력을 하니까 더 정서적 참여도 많다고 이야기를 해왔었는데, 이제 그게 아닌가 봐-라고 하는 상황이 된 거죠. 왜냐면 드라마도 소셜 와칭 한다고 같이 대화도 하는데, 게임은 틀어 놓고 알아서 하라 그러고 딴짓하고 이러니까 게임 플레이의 의미도 많이 바뀌었죠.


하는 게임에서 보는 게임으로 넘어오면서 게임 플레이의 의미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미국에도 해당이 되는 얘기가 있습니다만, 게임 문화가 좀 급격하게 '소비자화'됐어요. 소비 중심이 됐죠. 이와 동전의 양면인데 여성 혐오가 표면화된 것도 저는 비슷한 맥락이라고 봐요.


'소비자화'가 좀 뜬금없이 들리실 수 있겠지만 여혐 문제가 등장했던, 과거 '김자연 성우 사태'를 되돌아보면 그때부터 어떤 논리가 나오기 시작했냐면 젊은 남성 게이머들이 "우리가 소비해주니까 우리 말을 들어야 돼"라고 하는 소비자화가 되버린 거거든요. 그렇게 불매 운동을 하기 시작했고요. 


그 전까지는 젊은 남성은 그렇게 뭉친 적이 없고, 결과물을 만들어낸 적이 없었어요. 게임이 아니라 무엇이 됐든, 자동차든 뭐든 효능감을 느낄 정도의 결과를 이끌어낸 게, 저는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우리도 힘을 발휘할 수가 있구나, 데모하면 되는구나, 혹은 돈을 쓰거나 안 쓰면 되는구나 이런 걸 처음 느낀 게 하위 문화와 게임 쪽에서의 젊은 남성들의 불매 운동이었다고 생각을 해요. 그러다 보니까 그 논리가 확대 재생산된 거죠.


그래서 그런 사건이 날 때마다 커뮤니티 등에서 "난 여기 돈 얼마 썼으니까 말할 자격이 있어"와 같은 주장이 나오는 거고, "돈 쓴 거 인증해라"와 같은 방식으로도 반응이 나오는데, 아시다시피 결국 본인들이 손해를 보는 거거든요. 왜냐하면 돈을 많이 쓰는 일명 '고래'는 다른 곳에도 있으니까요. 그러면 돈 쓴 사람도 자신보다 돈 더 쓴 사람 앞에 있으면 나는 아무 말도 못한다는 구조가 돼버리는데, 그 논리에 함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자신을 게이머가 아니라 '소비자'라 말하는 거죠.


그런데 그 논리가 나오고 반복되는 것은, 대체로 젠더 이슈가 첨예할 때 나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여성들은 돈을 안 쓴다"거나 "이 게임의 주요 소비자는 남성이다" 같은 것이죠. 그러다 보니 이 두 가지 이슈를 떼어 놓고 설명하기 어렵게 됐다는 그런 판단이 들어요. 게임 씬 안에서의 젠더 이슈 그리고 동시에 '소비자화' 이게 최근에 있었던 변곡점 중 가장 큰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돈을 많이 썼으니 말할 자격이 생기게 된다면, 
돈을 더 많이 쓴 사람 앞에선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논리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윤태진 교수는 이런 '소비자화'가 젠더 이슈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고 봤습니다.

Q. 이런 변곡점들이 교수님이 게임이라는 주제를 학술적으로 다룸에 있어서도 영향을 많이 줬을 것 같은데요. 수업을 하실 때나 논문을 쓰실 때 보는 관점이 좀 바뀌었다거나 하는 영향이 있었나요?


A. 윤태진 교수: 제가 텔레비전 드라마나 뉴스를 연구할 때는 주로 그 안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가를 많이 본단 말이에요. 소위 '재현 연구'라고 하죠. 이전엔 드라마에서 흑인을 어떻게 재현하는가, 여성을 어떻게 재현하는가, 혹은 한국을 어떻게 재현하는가 이런 게 주요 관심사였는데요. 어느 순간부터 대중문화면 '대중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에 대한 연구가 돼야 하는데, 텍스트 분석만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거예요. 문화 연구의 역사랑도 관련된 얘기인데요.


문화적인 텍스트도 중요하지만, 사실 사람들이 그것을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수용한다는 데 더 초점을 맞춰서 '사람'들에 대한 연구를 더 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움직임이 1990년대부터 굉장히 강력하게 등장했어요. 


저도 게임을 맨 처음 연구하기 시작했던 2002년, 2003년에는 그래서 게임 텍스트를 먼저 연구했었는데, 동료들하고 같이 냈다가 지금은 절판된 책이 게임 장르에 대한 것이었어요. 게임 장르를 더 학술적으로 구별해서 각 장르마다의 특징을 보자, 경쟁이 중요하냐 성취가 중요하냐 이런 연구를 했는데, 점점 더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 흔히 '게이머 문화'라 말하는 쪽으로 관심이 옮겨가게 되더라고요. 


인간 연구로서의 게임 연구를 추구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최근 10년 동안 제가 한 걸 생각해보면 게임 하는 노인 연구라든지, 진성 게이머 연구라든지, 어떤 사람들이 게임을 하면서 일상생활에 그 게임이 무슨 의미가 있고, 혹은 일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고, 그들에게 있어 게임이란 무엇인가 이런 데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게임이 훨씬 더 보편화되고 아무 데서나 플레이하는 걸 발견할 수 있게 되면서, 저한테도 변화가 생긴 게 아닌가 싶네요.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윤태진 교수

Q. 대학교에 계시니까 특히 더 잘 아시겠지만 요즘 졸업하고 취업이 힘들다는 건 어느 학과나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게임 업계의 빙하기도 길어진다는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이 겨울이 더 장기화될 것이라 보시나요? 해법이 있을까요?


A. 윤태진 교수: 제가 업계에 있던 사람이 아니고 연구를 하는데, 산업에 대한 연구는 잘 안 하다 보니 가진 정보가 제한적인 편이에요. 업계인들 만나면 한발 늦게 듣곤 하지만, 일반론적으로라도 얘기를 하면, 저는 게임 산업 자체는 장기적으로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이에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점점 더 노동보다는 즐거움을 찾고 있거든요. 그게 관광이든 스포츠든 뭐가 됐든, 즐거움을 찾는 시장은 계속 커질 것이라는 생각이 하나가 있고요. 


또 하나는 이제 겨우 30년 된 한국 게임 산업이라는 게 역사가 너무 짧고,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주먹구구식이었던 때도 있었거든요. 어떤 면은 전문적인데 어떤 면은 아마추어 같고 이런 불균형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거든요. 나름대로 이제 역사 속에서 체계화되면서,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 발전하는 방식이 생길 거라 봐요. 시장 측면에서도 작아지진 않을 거라고 봅니다.


빙하기 생존을 소재로 한 <프로스트펑크 2> 티저 이미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 게임은 생산성 없는 유희에 불과한 걸까요?

Q. 지난 달에는 디그라(DiGRA)한국학회의 제1회 학술대회를 열어주셨어요. 디그라에 대해 소개해주신다면.


A. 윤태진 교수: 디그라는 세계 게임학회입니다. 정치학회 사회학회가 있듯이 게임학회입니다. 운영되는 방식이 조금 독특한데, 각 지역에 독립된 지회를 만들어요. 일종의 독립 프랜차이즈 정도가 되려나요, 밀접하게 연결은 되지만 운영이나 법적인 의미에서도 관련성이 없는 지회, 챕터가 있어요. 중국, 대만, 홍콩, 동남아시아 한자권을 아우르는 차이나 챕터도 있고 북유럽의 노르딕 디그라가 있고, 일본 디그라도 따로 있어서 18개의 챕터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엔 따로 없었기 때문에, 한국처럼 게임 산업도 크고 게임 연구도 많이 하는 나라에 챕터가 없으니 디그라한국학회를 만들게 됐습니다. 세계 디그라 학회와 긴밀한 협력 속에서 게임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게임 연구의 세계화나 그 다음 게임 연구 후속 세대를 진작하고 개발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연구자들 모임이죠.


디그라한국학회 제1회 학술대회 당시 윤태진 교수의 기조연설 내용에 대한 이미지입니다. 
윤태진 교수는 디그라한국학회의 초대 학회장이기도 합니다.

Q. 학술대회 당시 교수님이 해주셨던 이야기를 제가 이해한 바가 맞다면, 즐거움에 대한 추구는 자연스러운 것이고, 게임은 이를 충족시켜주는 좋은 매개다, 그리고 게임에 대한 연구는 곧 인간에 대한 연구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었잖아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사람들 중에 아직까지도 "게임은 생산성 없는 유희에 불과하다"거나 단순히 왜 하냐를 넘어서서 "그런 것에 왜 시간과 돈과 젊음을 낭비하느냐"며 비판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게임은 악"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이런 시각 차이에 대해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A. 윤태진 교수: 재미나 쾌락이라고 우리가 부르는 것에 대한 정의가 사람마다 굉장히 다를 테고, 이 정의를 어떻게 새롭게 하느냐에 따라서 게임의 정의도 많이 바뀐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가령 영화나 클래식 음악을 생각할 때 과연 초기에 그걸 생산적이라고 봤을까요? 남는 시간에 하는 거 아니에요? 예술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고, 창의적인 행동이라는 것은 그런 쾌락을 추구하는 본성에서 나오는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거기에 대해 반론할 때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를 하겠죠. 셰익스피어를 읽거나 베토벤을 듣는 것은 나의 교양적 수준을 올려주는 것, 영화를 보는 것은 내 예술적 감수성을 진작시키는 것이라고요. 저는 게임이 예술이라고 우기는 것도 아니고 게임이 사람의 교양을 올린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지만 동시에 이것들이 같은 수준의 쾌락이라고 부를 순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쾌락이라는 것도 다시 정의가 돼야 하는 게,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성욕, 식욕의 만족감 그리고 심지어 폭력성의 발현, 사람을 때려서 얻는 즐거움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게 진짜 쾌락은 아니라는 거죠. 정말 즐거움이라는 것은 욕설이나 혐오나 조롱으로 인해서 얻어지는 게 아닌 것이고요. 


그러니까 어떻게 이 재미라는 것을 대중화하고, 재미를 모르고 살던 사람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가, 평등한 쾌락을 이룰 수 있는 것인가. 저는 그래서 '쾌락 복지'라는 말을 쓰고 싶은데, 사람들은 평등한 복지를 원하잖아요. 


그런데 지금 어떤 사람들은 굉장히 즐거움을 느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그럴 여유가 없을 수 있는데, 우리가 경제적 수준이나 의식주의 복지만 이야기할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되지 않겠느냐, 경제적 복지 사회를 추구하는 것만큼 쾌락의 복지 사회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여기서의 쾌락은 조롱이나 폭력 같은 데서 나오는 쾌락이 아니라는 거죠. 베토벤을 들으며 느끼는 쾌락일 수도 있고, 좋은 드라마나 만화를 보면서 느끼는 즐거움일 수도 있는 거죠. 이런 고민이나 연구가 너무 없었던 것 같아서, 게임 연구에서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윤태진 교수는 '놀이하는 인간'을 의미하는 호모 루덴스에 주목했습니다.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본성 중 하나라는 것이죠.

Q. 말씀해주신 내용에 공감합니다. 예를 들어, 당장 출퇴근 길에서 몸이 아프신 분들이 구걸을 하고 계실 때, 그 분들이 길에서 시간을 보내는 행위가 어떤 면에선 노동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통스러움을 참아내야 하는 시간이잖아요. 그런데 유튜브 시청이나 간단한 3매치 게임 플레이는 그분들이 몇 안 되게 즐길 수 있는 여가입니다. 그리고 당장 사지 멀쩡한 저 같은 사람도 정신적 위로가 필요할 때, 게임을 한단 말이죠.


그런데 학업에서 어려움을 겪거나 교우 관계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이 게임을 즐긴다고 했을 때, 누군가는 게임을 즐겨서 일상에서도 문제를 겪는 게 아니냐는 귀인 오류를 범하곤 해요. 오히려 반대로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른 취미 생활은 그들을 쉽게 포용해주지 못하는데, 접근성이 좋은 게임은 그들도 모두 받아주고 포용해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게임의 접근성이 좋아서 발생하는 이런 인식에 대해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A. 윤태진 교수: 아무래도 제가 공부한 배경이 영향을 많이 미쳐요. 저는 게임에 대한 현상이나 이슈가 나와도 계속 TV 드라마나 만화나 영화는 어땠지-하고 비교를 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그 비교가 주는 통찰이 굉장히 커요.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TV 켜놓고 주무시거나 할 때 텔레비전 보고 있는데 왜 끄냐고 화내시기도 하고, 다들 그런 경험이 있잖아요. 


장애인 이야기도 해주셨는데, 저는 사실 게임을 통한 쾌락 복지에서 장애인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누구든지 쉽게 접할 수 있는 오락이라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에요. 


지금 취미가 뭡니까? 물어봤을 때 해외여행입니다, 골프입니다-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이게 여가사회학 시각에서 이야기하면 완벽한 여가 활동이 아니에요. 노동이 많이 들어가요. 골프 한 번 치려면 전화해서 예약하고, 차 새벽에 몰면서 씻고 가야 되고, 해외여행도 아시겠지만 정보를 얼마나 많이 접해야 합니까. 아무리 MBTI가 P인 즉흥적인 사람이어도 최소한의 노동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좋게 말하면 진지한 여가고, 나쁘게 말하면 노동과 여가의 경계에 있는 활동이란 말이에요.


그런 노동이 필요 없는 정말 캐주얼한 오락의 대표적인 게 텔레비전을 보는 거죠. 영화만 해도 예전엔 극장을 가야 했으니까 좀 경우가 다른데, 텔레비전이 사람들에게 준 위로라는 게 사실 개량화하기 어려울 만큼 크거든요. 하지만 동시에 그만큼 쉬운 오락이기 때문에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죠. 바보상자라고 하고, 할 일 없이 TV 본다고 그러고, TV 보고 있으면 아버지들이 밖에 집어던지고, 이런 일들이 벌어졌던 게 게임으로 바뀌어 온 거라고 생각하고요.


한편으론 이제 게임의 시대도 끝나는 거 아닌가, 이제 유튜브의 시대 아닌가 생각도 들 정도예요. 그냥 스마트폰 보는 거지 게임조차도 안 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그런데 거기다 대고 과잉 반응인 거죠. 게임을 하면 뇌가 썩는다거나, 공부를 못하게 된다거나, 그런 것은 완벽한 여가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활동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지 못했던, 어떤 인류의 역사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게 바뀔까, 바뀌기 쉽진 않겠죠. 왜냐하면 우린 계속해서 뭔가 생산성 있는 것에 대한 가치를 높게 평가해왔기 때문이에요. 쉽지는 않겠지만 이런 여가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방향으로 바뀔 거라고 생각합니다.


질문에서 기자가 피지컬을 요구하지 않는 3매치 퍼즐 게임의 예시를 들었지만,
접근성을 개선하는 컨트롤러 등을 통해 뇌병변을 앓으면서도 3형제를 열심히 키우고 있는 강제길 씨 가족도
2022년 지스타 현장에서 <카트라이더 러쉬플러스>처럼 빠른 템포의 게임까지 즐겼습니다.

하나만 더 이야기할까요? 아까 질문에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가령 단순하게 얘기하면 폭력적인 사람이 폭력적 게임을 하는 것이냐, 아니면 폭력적인 게임을 하면 폭력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냐. 중고등학교에서 공부 못하는 속칭 '찐따' 취급을 받는 학생들이 게임을 즐기는 것이냐, 게임을 하다 보면 찐따가 되는 것이냐 하는 이야기는, 아무리 사회과학이나 심리학이 발달해도 명확하게 판결난 것이 없거든요.


벌써 논란이 50년 이상 됐지만, 폭력적인 만화를 많이 본 어린애들이 정말 폭력적이겠는가 하는 제일 기초적인 질문에 대해서도 지금 학자들이 공통된 답을 못 내놓고 있어요. 왜냐하면 너무 케이스 바이 케이스고, 뭐가 원인이고 뭐가 결과인지 모르니까. 그래서 최소한 학자들은, 폭력적인 게임을 하면 폭력적이게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연구 논문을 보는 게 아니라, 보통 누구네 집 아들 개똥이가 그렇다는 등의 간접 경험을 통해 이야기를 듣는 건데, 그건 저는 사람들의 굉장히 게으른 귀인 행동 때문이라고 봐요. 보통 뭔가 안 좋은 일이 벌어지면 빨리 이유를 찾고 싶어 하거든요. 그 이유가 나는 아니었으면 좋겠고, 내가 부모거나 선생이면, 아이나 학생이 나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걸 인정하기는 싫어하고, 그래서 계속 뭔가 대상을 찾는 인류의 역사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게 어떤 때는 텔레비전이었고 어떤 때는 게임이었는데, 지금은 스마트폰이나 웹툰이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사람들의 굉장히 게으른 본성 때문이라고 봐요.


<GTA 6>가 출시되면 이 해묵은 담론이 또 재점화될 것입니다.

Q. 끝으로, 디스이즈게임과의 인연이 있다면 소개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게임 미디어가 해줬으면 하는 역할에 대해 말씀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A. 윤태진 교수: 저는 사실 게임 오타쿠가 아니기 때문에, 게임도 책을 통해서 배우는 사람이다 보니까, 좀 의무적으로 게임을 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거든요.(웃음) <P의 거짓>이나 <데이브 더 다이버>가 상 받고 호평 받으면 도대체 무슨 게임일까-하고 한 번 해본다든지, 최근에도 그런 게임들이 있었고요. 굉장히 센세이셔널한 드라마가 나오면 내가 싫어하는 배우가 나오고 싫어하는 장르여도 강의를 위해 억지로 봐야 하는 경우도 있는 것처럼요.


그래서 어떤 게임이 새로 나왔고, 요새 게임에 대한 이런 이슈가 있다는 것을 사실 디스이즈게임을 통해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그래서 도구적으로 기능적으로 많이 활용하는 측면도 있고요.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건 제가 2019년에, 저로서는 조금 의미가 있는 연구를 했는데 제목이 <게임 문화 매개자 연구>라는 것이었어요. 흔히 게임 연구한다 그러면 만드는 개발자나 게임 하는 사람 이렇게만 연구를 하는데, 중간에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게임 문화에 있어서 되게 결정적이라고 하면서, 세 종류의 집단을 나눠서 봤어요. 게임 정책 결정자, 게임 스트리머, 그리고 또 하나가 게임 언론이었죠.


그래서 세 집단을 연구하면서 개인적으로도 재미있게 연구를 했는데, 그때 디스이즈게임에 대해서도 더 공부를 했던 경험이 있네요. 당시 게임 언론 연구를 하면서, 사실 우리나라의 평론의 장이 너무 열악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평론의 역할을 기자들이 다 하고 있고, 그러면서도 불가피하게 어떤 때는 산업 쪽에 기울거나, 어떤 때는 소비자 쪽에 기우는 등 게임 언론이 겪는 고민들도 알 수 있는 기회였죠.


그래서 여전히 디스이즈게임뿐만 아니라 게임 전문 언론이 게임 씬 발전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게임 문화 매개자라는 인식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 그 역할을 디스이즈게임이 앞으로도 좀 더 많이 해줬으면 좋겠네요. 


그간의 취재 과정에서 명쾌하게 정리되지 못하던 고민들이
윤태진 교수와의 문답을 통해 해소된 부분도 많았습니다.
게임과 게이머에 대한 고민과 연구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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