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었다. 더위에 워낙 약했던 탓에, 그늘과 아이스크림이 없으면 이 계절을 나기가 참 힘들었다. 그러면서도 너무 단 건 또 싫어서, 가벼운 맛을 선호하곤 했다. 그래서 흔히 '쭈쭈바'라고 부르는 제품 중에서도 '탱크보이'를 종종 사먹었다. 먹기 전에 손에서부터 그 시원함이 느껴지는 게 좋았다.
'음주도치'라는 필명처럼, 대학생 때는 꽤나 알아주던 주당이었다. 숙취해소에 '배'가 도움이 된다는 설 때문에, 학기말이면 '갈아만든 배'와 '탱크보이'의 판매량이 조금씩 늘어난다는 소문이 있었다. 술자리의 끝까지 함께 한 친구와 서로 다른 아이스크림을 사면 '꼬다리'를 나눠 먹는 게 일종의 예의였다. 작은 부분일지 몰라도 그걸 내어주는 마음은 결코 작지 않았다. 서로 다른 크기의 두 조각으로 쪼개진 쭈쭈바를 보고 있노라면, 유년시절과 어른이 된 모습을 나란히 쥐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많은 기억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추억'으로 '그리움'으로 이어지곤 한다. 그런 기억의 특징은 시간 앞에 꿋꿋한 단단한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스크림의 계절에 옛 기억을 떠올려보면, 시원한 개천에서 돌을 던지는 걸 이상하리만치 좋아했었다. 포물선으로 멀리 더 멀리 지칠 때까지 던지며 놀았다. 그런 기호의 연장선이었는지 <포트리스> 게임도 추억의 한 페이지에 있다. 포물선-하면 떠오르는 게임이 더 어린 세대에겐 <앵그리 버드>겠지만, 우리에겐 <포트리스>였다.
추억의 국민게임을 만든 CCR이 최근 <포트리스M>에 '탱크보이' 캐릭터를 추가했다. 맞다, 아이스크림 '탱크보이'다. CCR은 이 신규 캐릭터에 '시원함'이라는 키워드만 담아내지 않았다. 아군에게 '꼬다리'를 나눠줘서 함께 회복하는 스킬이 있는 걸 보고 확실히 느꼈다. <포트리스>가 재밌던 이유는 '함께' 했기 때문이라는 본질을 놓치지 않았구나. 누군가의 '추억'이 되는 게임은 그 감성을 아는구나.
'탱크보이' 캐릭터는 도전 모드와 이벤트 상품 판매를 통해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이벤트가 꽤 재밌다. 아이스크림 제품 포장지를 모아 CCR에 보내면, 포장지 수량별로 게임 아이템을 지급한다. 추첨을 통해 진짜 금으로 만든 황금 탱크보이 피규어도 제공한다. 컬래버 아이스크림은 해태 아이스 공식몰에서는 박스 단위로 판매됐고, 일반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기존 제품 소진 시에 새로운 컬래버 디자인으로 유통되고 있다.
'포장지'를 직접 우편으로 보내거나 방문해 전달한다는 다소 아날로그적인 이벤트 진행 방식 덕분에, 아이러니하게도 커뮤니티 등지에서 꽤나 화제가 됐다. "추억의 게임이라, 그 시절 엽서 이벤트 감성인가"라는 반응부터, "어차피 버려질 쓰레기를 보내는 것이니 지구가 건강해지는 친환경 이벤트"라는 반응까지 다양했다. "포트리스가 아직 살아있구나"라는 댓글도 있었던 걸 보면, 결과적으론 성공적인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온오프라인에서 '탱크보이' 아이스크림을 구매해 CCR에 포장지를 보낼 의향이 있는 분들을 위해, 한 가지 유의사항을 전해드리자면, <포트리스> 캐릭터가 그려진 컬래버 제품 포장지만 인정된다. 같은 '배 맛'이라고 협업 이전에 유통된 포장지를 보내면, 이벤트에 참여할 수 없다는 점만 유념하도록 하자.
게임에 구현된 캐릭터는 어떨까? 서문에 언급한 '꼬다리'를 나눠주는 스킬처럼, '탱크보이'라는 아이스크림의 특징이 정말 재치 있게 담겨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참고로 <포트리스 M>에는 AP를 소모하는 4대4 실시간 전투 '리얼대난투'와 2대2 턴제 '클래식' 두 가지 모드가 있어, 각 스킬의 상세 내용은 모드마다 조금씩 다르다.
'탱크보이'의 첫 번째 스킬은 '쭈쭈바로켓'이다. '쭈쭈바' 모양의 로켓이 포물선으로 날아가 지형에 닿으면 연속으로 폭발한다. 입을 대고 먹는 부분이 로켓 분사구 방향으로 설정됐고, 물로켓처럼 헤드와 날개가 달린 것이 특징이다.
두 번째 스킬은 '배군 뒹굴탄'이다. '리얼대난투' 모드에서는 "앞으로 뒹굴뒹굴 굴러가며 적을 밀어내는 배군을 발사"한다. 일정 시간 후 폭발해 주변 적에게 대미지리를 주고 이동속도와 다음 공격의 탄속을 감소시킨다. '클래식' 모드에서는 "적을 쫓아가는 유도 성능을 가진 배군을 날린다". 적의 포신을 '얼려' 다음 공격의 조준을 어렵게 만든다. 배맛 아이스크림이라는 특징이 이렇게 녹아들다니 재밌지 않은가?
세 번째 스킬은 '리얼대난투' 모드에서 필살기에 해당하는 기술로, '배군슬러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모든 방어 기술과 지형을 무시하는 슬러시를 전방에 발사한다. 적은 잠시 얼어 붙어서 8초 동안 스턴 상태에 빠진다. 굉장히 강력한 기술이지만 AP를 8이나 소모하고 재사용시간도 60초로 길어, 필요한 때에만 사용해야 하는 기술이다.
네 번째 스킬은 '꼬다리나눔'이다. 아군 한 명을 지정해 쭈쭈바를 나눠먹는데, 큰 부분은 본인이 먹고 작은 부분을 아군에게 나눠준다. 쭈쭈바를 먹은 자신과 지정한 아군 주변의 해로운 효과를 제거하고, 체력을 천천히 회복시키는 기술이다.
해외에서 'IdH'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어 큰 화제가 된 숙취 해소(?) 음료가 있었다. 해태음료에서 만든 '갈아만든 배' 음료가 그 주인공이었다.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이 '배'를 'IdH'로 읽었던 것이다. '탱크보이'의 아버지로 불리는 최낙언 식품공학자가 해태제과에서 '탱크보이'를 '배 맛'으로 만든 것도, '갈아만든 배'의 선풍적인 인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참고로 '갈아만든 배'는 1996년에 출시됐고, '탱크보이' 아이스크림은 1997년에 출시됐다.
'탱크보이'에 숙취 해소에 도움이 되는 특별한 성분이 따로 들어 있진 않다고 한다. 수분과 당분을 빠르게 섭취할 수 있어 숙취 해소에 약간의 보탬이 되는 것이다. 앞서 캐릭터 스킬명에서도 보셨겠지만 '슬러시'라는 특징이 여기로 이어진다. 해태제과에서 처음 아이스크림을 만들 때, 너무 꽝꽝 얼지 않고 쉽게 먹을 수 있는 '슬러시' 형태의 아이스크림을 만들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영하 5도 안팎에서 짜먹을 수 있게 배합했다고 한다.
누군가에겐 숙취 해소 아이스크림으로 통했던 반면, 동시에 '탱크보이' 아이스크림을 먹은 직후 음주측정을 하면 걸린다는 낭설도 있었다. 팩트만 남기자면 '탱크보이' 아이스크림에 포함된 실제 '배' 성분이, 입 안에서 짧은 시간 숙성되면서 잠깐 알코올 성분으로 변화한 것이 측정기에 검출됐을 뿐이다. 혈중 알코올 농도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가당배퓨레 등의 형태로 실제 '배'가 함유되어 생긴 해프닝이다.
이런 사실들을 알고 나면 조금 더 맛있게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저런 소문들 때문에 '술'과의 인연이 많았던 터라 그런지, '탱크보이'를 활용한 칵테일 레시피도 꽤나 많다. <포트리스>X'탱크보이' 이벤트에 응모하고 아이스크림이 냉동실에 남았다면 '칵테일'로 만들어 더운 밤을 시원하게 만들어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지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