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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나라 클래식: 사장님, 맛이 좀 변했어요

드디어 돌아온 바람의나라 클래식, 해봤더니

김재석(우티) 2024-11-12 18:48:23
우티 (김재석 기자) [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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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나라 클래식: 사장님, 맛이 좀 변했어요

드디어 돌아온 바람의나라 클래식, 해봤더니

페이스북에서 재밌는 이야기를 읽었다. 대를 이은 노포의 접객은 왜 그렇게 뾰로통한가?


이유인즉 단골들 불평에 마음 편할 날이 없기 때문이란다. 백발의 노객들은 '내가 너희 아버지랑 같이 월남했는데'부터 시작해 '내가 너 용돈도 주고 그랬다' 따위의 이야기를 수시로 꺼내며 바쁜 사장을 붙잡는다고 한다. 가게를 물려받은 사장은 오랜 단골을 섭섭지 않게 응대하느라 '접객력'을 전부 소모한 탓에, 뜨내기 손님에게는 신경을 써줄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오랜 단골의 불평 중에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은 무엇인가 했더니 '맛이 바뀐 것 같다'라고 한다. 원자재 인상을 비롯한 다양한 요인은 물론​, 자기 미뢰가 줄어든 것은 생각지 않고 대뜸 '맛이 변했다' 불평하니 사장 입장에서 곤란한단다. 단골이야 수많은 대체재가 존재함에도 굳이 그 밥집을 고수하면서 들인 시간과 돈, 그리고 추억을 위해서 매장의 발전을 위한 고언을 한 것이겠지만, 사장이 단골 말을 다 들어주기란 참 어려운 일이란다.


혹여나 고객의 피드백을 수용해 '옛날 맛'처럼 바꿔놓으면, 한켠에서 다른 단골이 '맛이 바뀐 것 같다' 하니 화가 날 지경이라고. 그렇게 복원한 '옛날 맛'이 어떤 단골도 만족시키지 못할 지 모를 일이니 섣불리 시도할 수도 없단다.


서울의 모 유명 냉면집에서 찍은 평양냉면. 그냥 먹고 싶어서 올린 것으로 본문과는 관계 없음.


# "사장님, 맛이 좀 변했어요"


넥슨은 11월 9일 유저 창작 플랫폼 <메이플스토리 월드>에 <바람의나라 클래식>의 OBT를 시작했다.


앞서 넥슨은 <바람의나라> 어셋을 <메이플스토리 월드>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었고, 개인 유저들이 만든 <짭람의나라>나 <클래식바람> 등이 인기를 얻었다. 이어서 넥슨주막(바람의나라 클래식 복각 TF)이 분위기를 타고 금세 <바람의나라 클래식>을 출시했다. '공식의 귀환'은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바람의나라>가 어떤 게임인가? 1996년 출시되어 무려 28년 동안 서비스 중인 기네스 선정 '세계 최장수 상용화 그래픽 MMORPG'다. 그만큼 저마다 기억하고 있는 <바람의나라>가 다르다. 넥슨컴퓨터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바람의나라 1996>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고, 부여가 추가된 이후의 버전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고, 구버전(2000~2003)과 신버전(2005)을 특정한 기점으로 짚는 사람도 있다.


<바람의나라 1996>은 지금도 무료로 받아서 해볼 수 있다. (출처: 넥슨컴퓨터박물관)


넥슨은 '예전 <바람의나라>를 즐기고 싶다'는 요구를 꾸준히 받아왔다. 2016년 7월 열린 20주년 행사에서는 "초기 모습에 대한 향수를 그리워하는 유저를 위해 ‘클래식 월드’를 새롭게 선보인다"는 소식까지 발표했다.​ 하지만 정작 업데이트됐던 것은 부여성진입로에서 백두산으로 가는 길 반대쪽에 업데이트된 옛날 부여성 맵뿐이었다. 이 이벤트 맵은 채 6개월도 존치되지 않았다. 이후 넥슨은 구버전 그래픽을 적용할 수 있는 업데이트를 했고, 슈퍼캣은 옛 추억을 자극하며 <바람의나라: 연>을 출시했다.


기자는 2000년대 초반에 <바람의나라>를 접한 '바람초딩' 출신으로, 가이드북의 60시간 쿠폰을 사냥하며 <바람의나라>를 즐겼다. 가장 오래한 게임이 무어냐 묻는다면 주저없이 이 게임을 고를 것이다. 아카이브, 일회성 콘텐츠, 전혀 다른 BM의 모바일게임과 달리 완전히 복각된 월드가 나온다는 소식에 대단히 기뻤다. 불법 사설서버가 아니라, 개인제작자의 창작이 아니라, 넥슨 공식이라니! 지스타 출장보다 <바람의나라 클래식> 출시가 더 기대됐다.


그런데 <바람의나라 클래식>은 맛이 좀 변한 것 같다. 확실하게 선언할 수 있다. 기자의 '미뢰' 문제가 아니다.


깹방(앞줄 2번째)을 들고 사냥하는 사람이 있던데 깹방은 원래 '뽀대'템이다.



# <바람의나라>는 채널 게임이 아니다

넥슨주막은 5.50버전, 그러니까 2003~2004년 기준의 <바람의나라>를 복각 기준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2005년 8월 무료화로 수십만 유저가 쏟아지기 직전의 시기를 부활의 기준으로 잡은 것이다. 훌륭한 선택이다. <바람의나라 1996>과 똑같은 빌드로 복각하면, 추억을 느낄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 말이다. 


5.50버전이었지만, 유저 성장의 편의를 위해 '왕퀘'(왕의 퀘스트)를 도입했다. 레벨 60부터 지존(레벨 99)으로 가는​ 길은 대단히 험난해지는데, 전과 다른 유저의 게임 환경을 생각해봤을 때 나쁘지 않은 결정으로 보인다. 100% 복각보다는 이해 가능한 선에서 월드를 기획하는 게 제공자 입장에서나 유저 입장에서나 편할 수 있다.


추억 돋는 첫 화면


그렇게 죽으면 아이템을 떨어뜨리는 기능도 없앴다. 일장일단의 결정인데, 다른 플레이어가 떨어뜨린 아이템을 줍는 '체류'에서 온 스트레스가 사라진 대신 죽음의 리스크가 다소 사라지게 됐다. 게임 초반에는 <바람의나라 클래식>에 부여성, 동부여성, 국내성, 평양성 등의 4개 성만 존재한다. 신성의 독도(고구려의 신성에는 따로 떨어진 섬이 있었고, 그 섬을 유저들은 독도라고 불렀다)나 부여 만번한성처럼 특이하게 생긴 지역은 나중에 만나볼 수 있을 듯하다.


론칭 초반 <바람의나라 클래식>에 4개의 성만 존재해도 괜찮은 이유는, 이 게임에 채널이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채널 기능은 게임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옛 <바람의나라>에는 채널이 없었다. 전갈굴/사마귀굴이라고 한다면, 성마다 하나 뿐이었고 시비를 피하기 위해서 한 무리가 그룹사냥을 하고 있으면 다른 성으로 이동하거나 다른 층으로 자리를 옮기곤 했다. 흉가 같은 엔드급 사냥터에는 문 앞에 노란비서를 깔거나 사자후로 중(사냥 중)을 알리며 충돌을 피했다.


오픈 초기 초보자사냥터에 사람이 왜 이렇게 적나 했더니, 채널로 구분이 되어있었다.

그래도 병목현상이 계속되자 과거 넥슨은 한때 2성, 3성, 4성을 제공하기도 했다. 인형굴, 사슴굴도 그렇게 추가된 던전들이다.  유저간 충돌은 MMORPG에서 핵심적인 재미 요소인데, 100명 단위의 채널로 게임이 재편되면서 게임의 핵심적인 재미가 희석된 인상이다. 이를테면 보스 몹이 있는 10굴에 보스몹이 없거나, 다른 플레이어들이 잡고 있으면 몬스터가 나올 때까지 채널을 옮기면 될 뿐이다. 체류가 없어졌는데 채널까지 도입됐으니 긴장감이 덜하다.


통합 서버 게임이 아니다 보니 부여성 남쪽처럼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은 북적거리지 않는다. 일본 가는 길의 고래 이벤트나 오엑스퀴즈, 천명 이벤트는 어떻게 구현하려는지 모르겠다. <바람의나라>에서 연 서버가 인기고, 비인기 서버는 한가한 것과 같은 서버간 격차 문제는 없어지겠지만, 채널에 사람이 최대 100명 뿐이니 그때 그 맛이 전혀 나지 않는다. 픽셀 그래픽이 깨지거나, 아직 추가되지 않은 지역의 NPC가 존재하는 것은 소소한 문제일 정도로.


물론 게임 자체가 <메이플스토리 월드>에 구현이 되어있고, 이 월드에 제공되는 통상적인 인스턴스 인원 한계가 100명이라는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MMORPG에서 M(Massively)이 하나 빠지는 기분은 어쩔 수 없다.


채널을 옮겨서 보스몬스터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싸움에 경쟁자는 없었다.



# 그룹사냥 경험치 효율에 관한 아쉬움


필경(필요경험치)이 낮은 직업으로, 뒤에서 힐이나 주면서 편하게 키우려고 도사를 골랐다. 게이머 전성기였다면 이제 마비, 중독, 저주를 난사하고 신수마법을 맵 전체에 뿌렸겠지만, 이제 그 정도는 아니다.


초보자학교에서 목도를 받아나온다는 것을 깜빡해 알몸으로 부여성에 던져졌고, 다른 유저의 훈지(훈훈한 지원) 덕에 목도를 얻어 레벨 5를 달성했다. 도사를 골라서 신수마법이 열리는 레벨 12까지 쥐굴에서 닥사(닥치고 사냥)를 했다.


도사가 그룹사냥에서 밥값을 시작하는 순간은 대략 레벨 30 전후로 본다. 이때면 버프 마법인 보호와 무장이 열리고, 체력을 500 채워주는 구름의기원을 배울 수 있다. 체력을 큰 폭으로 깎아 마법을 회복하는 공력증강은 레벨 14에 일찌감치 습득 가능하다. 그러므로 레벨 30만 찍으면 격수(도사, 전사)에게 밀대(체력을 계속 채워주는 행위)를 해주며 안정적으로 경험치를 올릴 수 있다.


진웅은 일반 몹이지만, 낮은 확률로 지력의투구1를 드랍한다.


그런데 채널에 사람이 100명 뿐이니 같이 사냥할 상대를 어디서도 구할 수 없었다. 그때 알았다. 게임 바깥의 디스코드를 통하거나, 대기 방에서 친구를 추가해서 그룹사냥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이것 또한 기자가 알던 맛이 아니었다. 솔로잉으로 지존까지 도사를 키울 수는 없을 일이었다. 급하게 철검을 끼고 외롭게 100전짜리 고기를 떨구는 산돼지를 패던 전사에게 다가가 그룹사냥을 제안했고, 격수의 실력 덕에 힐만 넣어주면서 편하게 사냥할 수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자호굴, 인형굴, 전갈굴에서 사냥을 이어가면 될 일이었지만, 기자의 의욕을 꺾는 사건이 있었다. 십여 명의 캐릭터들이 우루루 달려들어 자호굴을 1부터 10까지 반복 순회하고 있던 것이다. 분명 저들 모두 한 그룹이라고 그랬다.​ 원래 사냥 중인 사냥터는 피해가는 것이 예의인데 채널이 적용되다 보니 당한 사람이 피해가야 하는 꼴이 됐다.


도사가 여우굴에서 혼자 논다니 바보 짓이 따로 없다


그렇게 하면 경험치 손실이지 않느냐 물었더니, 별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기자는 경험치를 1/n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해당 버그는 지금 수정됐는데, 핫픽스 전에 그런 방식으로 달린 유저들은 이미 지존에 몇 걸음 더 가까워진 상태였기에 전의를 잃었다. 이후 넥슨의 설명을 보면 경험치 분배식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유저들은 호박 등의 아이템 파밍을 일정 부분 포기하고(1/10을 해야 하니) 빠른 성장을 하는 형태의 메타를 찾아낸 것으로 보인다. 당장의 파밍 아이템은 마법 재료로만 의미가 있을 뿐, 금전 수급처는 앞으로의 업데이트에서 존재할 것이라는 파악이 있었기에 나온 메타이기도 할 것이다. 채널을 돌아다니면서 보스몬스터를 찾고, 열 명이 떼로 사냥하는 <바람의나라>는 기자가 알던 <바람의나라>가 아니었다.


채널이 도입되어 한산한 부여성 남쪽. 위에는 아직 추가되지 않은 백두산 NPC가 있다.


# 나이 서른 넘게 먹은 아저씨들끼리 '길' 하니까 재밌긴 해


허전한 마음으로 푸줏간에 가죽을 팔러 가는데 누가 가게 문을 잠궈버렸다. 아, 이것도 추억인가. 


<바람의나라>에는 체류 말고도 파란열쇠로 문 잠궈버리기, 잠수타는 플레이어 소환해서 저승보내기, 진입로에서 구걸하기, 막아서고 서로 길을 트라며 '길' 외치기, 두 명이서 아이템 바닥에 버리고 줍기(따묵), 투명 상태로 돈 떨어뜨려서 다른 플레이어 낚기, 몬스터로 변신해서 상대방 약올리기와 같은 플레이가 있었다. 기자는 <바람의나라>로 인생을 배웠고, 덕분에 좀처럼 사기를 당하지 않는 성인이 된 듯하다. (그 아저씨들이 길막하고 있다니 웃기지 않나?)


이뿐 아니라 이 게임에는 맨손으로 사냥하는 플레이어에게 무기를 나눠주거나, 사슴굴 길을 묻고 데려다주는 훈훈함이 남아있다. 10명 사냥이 효율이 좋다고 하지만, 격수/비격수로 오손도손 사냥하는 재미가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다. 새로운 메타의 발견에 전의를 잃었고, 매시브한 느낌도 크게 줄었지만 짬짬이 즐기며 1차승급까지는 계속 가보려고 한다.


왼쪽의 유저가 쥐굴에서 잠수타는 플레이어를 소환비서로 이끌어서 시체로 만들었다. 다행히 아이템은 떨어뜨리지 않았다.


옛날엔 이런 짓 많이 하고 놀았는데 오랜만에 하니까 칸을 벗어났다.


모르는 사람에게 사슴굴로 가는 길을 가르쳐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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