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4일 샌드폴 인터랙티브에서 개발해 출시된 RPG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이하 클레르 옵스퀴르)가 전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메타크리틱 점수는 92점에 달하며, 판매량은 출시 3일 만에 100만 장을 넘어섰다.
게임이 크게 흥행하면서 개발사 샌드폴 인터랙티브 역시 주목을 받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샌드폴 인터랙티브는 소규모 개발사라는 점이다. 2025년 3월 에픽게임즈와 진행한 인터뷰에 따르면 샌드폴은 30명이 조금 안 되는 핵심 인력으로 구성되어 있다. 프랑스 몽펠리에의 사무실에 약 25명이, 파리의 사무실에 5명이 각각 근무하고 있다.
<클레르 옵스퀴르>의 배경은 프랑스의 '벨 에포크' 시대에서 영감을 받은 판타지 세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벨 에포크는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절'이란 뜻을 지닌 단어다. 보통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전까지 전 유럽이 평화를 누리며 기술이 크게 발전하고 만국박람회와 같은 행사를 열었던 시기를 말한다.
샌드폴의 공동 창립자이자 리드 프로그래머를 맡고 있는 '톰 기예르망'은 "프랑스에게는 국가의 성장과 문화적 측면에서 많은 것을 상징하는 중요한 역사적 시점이었기 때문에, 이 시대를 플레이어들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방식으로 생생하게 구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향을 받은 게임은 여러 가지가 있다. <클레르 옵스퀴르>는 많은 게임 팬들이 언급했듯 <페르소나> 시리즈, <파이널 찬타지> 시리즈, <로스트 오디세이> 시리즈와 같은 JRPG의 게임플레이에 <세키로: 쉐도우 다이 트와이스>와 같은 액션 게임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스토리 측면에서는 프랑스의 소설가 '알랭 다마지오'의 '라 오르드 뒤 콩트르방'(La Horde du Contrevent)'이라는 소설의 영향을 받았다. 세계를 여행하는 탐험가들의 스토리를 다룬 판타지 소설로, 미지의 세계로 위험한 모험을 떠나는 사람들의 스토리라는 점에서의 영향이다. 아쉽게도 알랭 다마지오의 해당 소설은 국내에 정식 출간되지 않았다.
더불어 인터뷰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던 내용이 하나 있다. 개발사 샌드폴 인터랙티브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개발자 각각이 좋아하는 게임을 정리해 놓았다. 가령 인터뷰이인 콤 기예르망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 <GTA: 바이스 시티>, <더 위트니스>, <골든 선>을 가장 좋아하는 게임으로 꼽았다.

샌드폴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모든 팀원과 팀원이 좋아하는 게임을 소개하고 있다.
덕분인지 '정말 게임을 좋아하는 개발자'라는 인식을 통해 커뮤니티의 호감도가 올라갔다. (출처: 샌드폴 인터랙티브)
게임 제목에 들어가는 '클레르 옵스퀴르'는 17~18세기 사이에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실제 예술 문화 운동을 말한다. 게임의 아트 방향성에 큰 영향을 준 요소이자, 넓은 의미로는 게임 전체 세계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톰 기예르망'은 "게임 스토리에 큰 의미가 있는 제목인 만큼 팬들이 (게임을 통해) 그 의미를 발견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JRPG로부터 받은 영향에 대해서는 "진지한 스토리와 캐릭터 간의 유쾌한 순간, 밝은 분위기의 장소가 어우러지는 점이 JRPG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게임에 어둡고 감정적인 스토리가 있더라도, 때로는 가벼운 순간을 통해 긴장을 완화하고 쉬어가는 틈을 만드는 것이다.
'톰 기예르망'은 "모노코나 에스퀴 같은 판타지적인 캐릭터 덕분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인간 종족이 아니며 대륙에 사는 존재로, 인간 주인공과는 다른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스토리에 신선한 시각과 독특한 유머를 더할 수 있었다"고 했다.

모노코 (출처: 반다이 남코)
톰 기예르망은 언리얼 엔진 5의 여러 시스템 덕분에 다양한 시도를 하며 이를 개발할 수 있었다고 답했다. <클레르 옵스퀴르>의 개발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기욤 브로슈'가 자신이 전하고 싶어하는 스토리를 상상하며 몇 가지 게임 엔진을 테스트하던 도중 언리얼 엔진이 가장 적합하다는 판단을 하며 시작했다.
언리얼 엔진의 시퀀서, 애니메이션 시스템, 캐스케이드 등 각종 툴을 통해 의미 있는 콘텐츠를 빠르게 개발하고, 블루프린트 비주얼 스크립팅을 통해 프로그래밍을 잘 몰라도 콘텐츠에 로직을 손쉽게 추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플러그인, 에셋, 템플릿까지 사용할 수 있는 언리얼의 에코시스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렇게 <클레르 옵스퀴르>는 톰 기예르망과 기옴 브로슈 단 두 명이서 개발을 시작했고, 기욤 브로슈가 프로그래밍 경험이 없음에도 여러 가지를 같이 개발하며 협업할 수 있었다. 이후 공동 창립자이자 프로듀서인 '프랑수아 뫼리스'가 합류하면서 '샌드폴 인터랙티브'가 설립됐다.

<클레르 옵스퀴르>의 프로토타입 반응형 전투 시스템도 이런 과정 속에서 만들어졌다. 바로 마법을 사용할 때의 퀵타임 이벤트나 자유 조준 메커니즘, 방어를 할 때의 패리나 회피 시스템이다.
톰 기예르망은 "초기에 전투 시스템을 선보이기 위해 제작한 데모에서 팀과 함께 이 기능을 처음 플레이테스트했던 기억이 난다. 팀원들이 차례대로 보스에게 도전하다 실패하면 컨트롤러를 다음 사람에게 넘겼는데, 그 순간 저희는 모든 것이 딱 맞아떨어진다고 느낌과 동시에 '게임의 정체성'을 정의할 독특한 것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했다"고 언급했다.
<클레르 옵스퀴르>의 또 다른 호평 요인은 전투에서 보여지는 다양한 시네마틱 카메라에 있다. 톰 기예르망은 언리얼 엔진이 시퀀서를 사용해 모든 스킬을 작은 시네마틱으로 취급하고 전투 액터를 동적으로 연결해 멋진 모습을 유연하게 만들 수 있었다고 했다.

한 가지 마주했던 문제점은 레벨 시퀀스에서 동적인 무브먼트를 통합하는 것이었다. 적이 어느 위치에서건 아군 캐릭터에게 점프하려는 상황이 하나의 예시다. 이런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액터 속성을 시퀀서에 노출하고 전용 트랙에서 키프레임으로 액터의 속성을 제어해, 게임플레이를 어떻게 연출할지를 직접 통제할 수 있었다고 했다.
출시 시점에서 샌드폴의 인력은 30명이 조금 안 되게 구성되어 있었다. 개발 기간은 5년이었다. 톰 기예르망은 팀원 각자의 실력과 더불어 "신규 렌더링 기능을 대거 탑재한 언리얼 엔진 5의 출시 시점과 저희 개발 일정이 우연히 맞물린 것이 큰 행운"이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블루프린트를 통해 C++ 프로그래밍을 모르는 팀원이 있음에도 매우 신속하게 여러 콘텐츠를 만들 수 있었다는 점도 컸다고 언급했다.
톰 기예르망은 "프로그래밍 팀원이 총 4명으로 늘어나기 전에는 몇 년 동안 저 혼자 프로그래밍을 담당했다"라며 "저희 같은 소규모 팀에는 모든 팀원이 대부분의 프로젝트에 접근할 수 있고, 코드의 장벽에 가로막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블루프린트가 정말 많은 기여를 해 줬다. 프로그래머가 아닌 팀원도 게임 로직을 이해하고, 직접 바꿀 부분을 제안하거나 기존 기능을 다듬을 수 있을 정도로 자유도가 높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외에도 캐릭터 제작에 언리얼의 메타휴먼을 사용하고, 음악의 조절 및 전환을 쉽게 하는 메타사운드 등의 기능이 유용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메타사운드, 서브믹스 아키텍처, 오디오 모듈레이션 등 게이머에게 호평받고 있는 음악에 관한 부분은 모두 언리얼 엔진의 오디오 파이프라인을 통해 만들어졌다. 루멘과 니나이트, 나이아가라 비주얼 이펙트 시스템과 같은 기능도 게임의 시각적 표현에 많은 도움을 줬다.

마지막으로 기예르망은 "첫 프로젝트에 사용할 게임 엔진을 선택할 때는 제작할 콘텐츠의 종류를 생각하고 다양한 엔진으로 대상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