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게임을 선택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장르, 그래픽, 스토리 그리고 음악까지. 각 게임의 고유한 특징이 게임을 알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본격적으로 게임을 시작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MMORPG <테일즈위버>는 그중 ‘음악’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중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세컨드 런’(Second Run), ‘빛속에서’ 등 OST뿐만 아니라 ‘레미니센스’(Reminiscence)나 ‘화이트 판타지아’(White Fantasia) 같은 배경음악까지 게이머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에피소드 2 ‘광휘’ 이후 7년 만에 나오는 <테일즈위버>의 새로운 에피소드 3에서도 음악이 빠질 수 없다. 디스이즈게임은 지난 13일 서울 잠실의 한 스튜디오에서 에피소드 3의 오프닝 OST 녹음을 진행 중인 넥스토릭의 박지훈 작곡가를 만나 새로운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디스이즈게임 송예원 인턴기자
넥스토릭 박지훈 작곡가
■ 피아노 소년, <파이널 판타지>를 만나다
TIG> 개인적으로 어떻게 게임음악을 시작했나?
내 게임음악 인생은 <파이널 판타지>에서 시작됐다. 사실 어머니 때문에 아주 어릴 때부터 10년 정도 피아노를 배웠다. 그러다 초등학생 때 운명처럼 <파이널 판타지>를 만났다. 진짜 재밌게, 열심히 했다.
피아노를 치면서 ‘나중에 크면 음악을 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파이널 판타지>를 접한 순간 ‘나는 무조건 게임음악을 한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한길만 바라보고 쭉 달려 왔다.
<파이널 판타지>의 OST 앨범은 세계적으로 1,000만 장 이상 팔릴 정도로 사랑을 받았다.
TIG> 그러면 대학교에서는 음악을 전공했나?
아니다. 교육학을 전공했다. 그것도 윤리교사 자격증 2급이 있다.(웃음) 그래도 음악을 좋아했고, 게임을 좋아하며 계속 꿈을 키웠다. 그러다 넥스토릭에 입사하면서 정식으로 게임음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카트라이더> 팀에서 시작해서 2006년 <테일즈위버>를 맡게 됐다.
TIG> <파이널 판타지>의 작곡가 우에마츠 노부오를 직접 만난 적이 있나?
세 번 정도? 그런데 일방적인 만남이어서 그분은 날 모르실거다. 한국에서 <파이널 판타지> 콘서트가 열렸을 때 무대 위에서 인사하는 모습으로 만났었다.(웃음) 사인회도 갔었다. 우에마츠 노부오 씨가 게임음악 말고 개인적으로 낸 음반이 있는데, 그걸 들고 갔더니 굉장히 놀라시더라. 기억해 주시려나? (사인을 받은 음반) 가격이 만만찮게 오를 거다.(웃음) 아, 물론 절대 팔 생각은 없다.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의 음악으로 유명한 작곡가 우에마츠 노부오.
■ <테일즈위버>의 음악을 말하다
TIG> 유저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테일즈위버>는 배경음악 때문에 게임을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음악이 큰 사랑을 받아 왔다. 부담감도 컸을 것 같다.
진짜, 엄~청 많았다. <테일즈위버>에 합류했을 때가 딱 ‘세컨드 런 (Second Run)’이 발표된 직후다. 이 곡은 진짜 인기가 어마어마했다. 아직까지도 <테일즈위버>를 대표하는 OST로 각인돼 있기도 하고. 하지만 부담감은 부담감이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작품에 더 집중했다.
최근의 <파이널 판타지 13-2> 배경 음악 들어 봤나? 우에마츠 노부오 씨의 작품은 아니지만 정말 좋다. 배경음악에 감명을 받았던 이유는 분명 ‘게임음악인데 게임음악 같지 않다’는 점이다. 들었을 때 영화 OST 같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라이트하면서, 현재 국내 온라인게임의 음악과 견주어 보면 또 묵직한 그런 독특함이 있다.
<테일즈위버>의 음악들도 그런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딱 내가 추구하던 방향이 아닌가 싶기 때문에 즐겁게 작업해 왔다.
<테일즈위버> 에피소드 2의 챕터 8의 제목은 ‘레퀴엠’. 엔딩을 암시하고 있다.
TIG> <테일즈위버>의 음악이 사랑받는 비결(?)은 무엇인가?
BGM은 말 그대로 배경이 되는 음악이기 때문에 음악 자체는 약간 묻히는 경향이 있다. 그게 맞는 거다. 게임 속에 녹아들어서 하나의 ‘요소’가 돼야 한다. 그런데 <테일즈위버>의 음악들은 이미 단순한 배경음악 이상이다.
좋게 말하면 곡 하나하나가 mp3에 넣어 다른 가요나 뉴에이지와 섞어서 들어도 어색하지 않은 음악이고, 반대로 나쁘게 보면 그 목적성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유저들은 오히려 이런 부분에 열광해 주셨다.
원작 소설도 큰 사랑을 받았고, 게임도 훌륭했다. 그래도 배경음악이 <테일즈위버>의 인기를 견인하는 데 한몫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웃음)
TIG> 그런 독특함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건가?
내가 작곡하는 스타일이 조금 독특하다. 대부분의 배경음악은 연주곡이어서 모든 악기가 하나로 어우러지도록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 안에서 녹아들 수 있다. 이게 정석이고, 보통 작곡 수업을 들으면 다 이렇게 배운다.
하지만 나는 완전히 다르다. 연주음악이라고 해도 보컬이 있는 노래처럼 작곡한다. 보컬 멜로디 라인에 피아노면 피아노, 바이올린이면 바이올린을 얹는다. 하나의 악기가 곡 전체에서 주인공이 되니까 묻히지 않고 튈 수밖에.(웃음)
TIG> <테일즈위버>의 음악을 맡은 지도 7년이 됐다.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이 있나?
(단호한 목소리로) 설원마을 엘티보 맵의 BGM인 ‘화이트 판타지아’(White Fantasia)다.
‘세컨드 런’이 작곡가 남구민 씨가 20분 만에 만든 곡인 건 많이들 아실 거다. ‘화이트 판타지아’도 그렇게 탄생했다. <테일즈위버> 팀에 합류한 이후 제일 처음 쓴 곡인데, 엄청 빨리 만들었다.
예전에 <테일즈위버> 공식 홈페이지에 배경음악을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해놓은 페이지가 있었는데, ‘세컨드 런’ 다음으로 ‘화이트 판타지아’의 다운로드 횟수가 제일 많았다. 객관적으로도 사랑받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거다.(웃음)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만든 곡의 경우 내 자신은 크게 만족하는데 듣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부담이 될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가벼운 마음으로 편하게 작업할 때 대중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좋은 곡이 나오는 것 같다.
<테일즈 위버> 설원 마을 ‘렘므’. 엘티보는 이곳의 수도다.
TIG> 이제 신곡 얘기 좀 해보자. 드디어 에피소드 3이 나온다. 음악에 대한 팬들의 기대가 크다.
알고 있다. 일단 오늘 녹음한 건 오프닝 곡이고, 이것 말고도 댄스 장르의 오프닝 곡이 하나 더 있다. 더블 타이틀이다. 무엇보다 ‘써드 런’(Third Run)이 나온다.
‘세컨드 런’이 게임을 해보지 않은 분들에게도 알려질 정도로 사랑받은 곡이기 때문에 그 어떤 곡보다 부담도 컸고 걱정도 많았다. 그런데 막상 데모가 나오고 나서 내부 반응이 뜨거워서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웃음)
<테일즈위버> 에피소드 3 OST 녹음 현장 모습.
TIG> 어떤 음악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테일즈위버>는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있는 게임이다. 예를 들어 에피소드 2는 다양한 챕터로 나뉘었지만 ‘광휘’(光輝: 환하고 아름답게 눈이 부심. 또는 그 빛)라는 핵심 주제가 있었다. 아직 에피소드 3의 주제를 밝힐 수는 없지만, 이번 신곡들 역시 하나의 주제로 얽혀 있다.
각각의 곡에도 뚜렷한 메시지를 담았지만, 세 곡을 한 세트로 함께 들었을 때 어우러져 그 주제를 떠올릴 수 있도록 의도했다. 어떻게 보면 이게 새 에피소드의 힌트가 될 수도 있는 요소인데.(웃음)
우선 오늘 녹음한 오프닝 곡은 멜로디로 메시지를 담았다. 후렴 바로 앞 부분까지의 멜로디를 들어 보면 돌림노래와 같은 느낌을 받을 거다. 아까 보컬을 맡은 가수를 잠깐 만났는데 (후렴보다) 이 부분이 너무 독특해서 계속 기억에 남는다고 하더라. ‘돌림노래’의 형식이 에피소드 3의 주제를 담으려 했던 의도다. 더블 타이틀인 다른 곡의 장르는 댄스다. 전적으로 가사에 주제를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대망의 ‘써드 런’은 두 장르를 하나로 녹였다고 보면 된다. 도입부는 깨끗하게 그랜드피아노 선율로 시작해서, 후반에서는 일렉트로니카의 강렬한 사운드가 등장한다. 안 어울릴 것 같지만 하나로 잘 어우러져 새로운 느낌을 준다. 앞쪽이 화이트, 뒤에는 블랙인 느낌?
이런 느낌은 시각적으로도 보여줄 예정이다. ‘써드 런’의 영상은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 제작사 곤조 스튜디오에서 제작을 맡았다. 내가 원했던 그 느낌을 아주 잘 살려주었다. 조만간 감사의 메일이라도 보낼 생각이다.(웃음) 기존 게임 OST 영상에서 보아 왔던 메이킹 필름 형식 이상의 퀄리티를 볼 수 있을 거다.
TIG> 이번 음악들이 기존 에피소드 2와 다른 점이 있다면?
크게 두 가지 차이점이 있다. 먼저 음악 자체에서 기존과는 확연히 다른 색의 작품을 들을 수 있다. 물론 메인 테마의 영향도 있겠지만,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느낌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만큼 달라진다. 에피소드 2의 음악들에 비해 보다 어그레시브(Aggresive)한 느낌이랄까?
이걸 들려 주면 참 좋은데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웃음)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를 가미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된다. 일렉트로니카 아티스트 중에 유명한 분들이 함께 작업했다. 기대해도 좋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테일즈위버> 음악의 특징이 사라지진 않았다. 게임음악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은, 그 느낌은 분명히 있다. 게임을 많이 했던 유저들이 들으면 “어? 가요 같은데?”라고 생각할 테고, 가요만 들었던 즉, 게임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가요라고 하기엔 좀 뭔가 다른데? 애니메이션 음악인가?”라고 생각할 거다.
두 번째로 작업과정이 뒤바뀌었다. 보통 게임의 배경음악이든 OST든 스토리, 그래픽, 시스템 등이 먼저 나오고 난 뒤에 거기에 맞춰서 작업한다. 이건 에피소드 2만이 아니라 다른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번 <테일즈위버> 에피소드 3의 경우 내가 콘셉트를 제안해서 음악이 먼저 나왔다. 거기에 맞춰서 게임의 작화나 구체적인 내용이 이어졌다. 세부적인 부분은 조금씩 변화가 있어도 어쨌든 처음 콘셉트의 뼈대는 그대로 이어졌다. 캐릭터나 작화처럼 눈으로 보이는 것도 아니고, 음악을 듣고 그 의도를 잡아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다.
TIG> 생각지도 못한 방법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도중에 트러블은 없었나?
다른 작곡가들이 이건 <테일즈위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하더라. 맞는 말이다. 스스로도 음악이 게임에서 어느 정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또 개발팀이나 사업팀에서 이에 동의해 주었기에 이런 작업이 가능한 게 아닐까 싶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정말 트러블 한 번 없이 척척 진행됐다. 물론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할 기회가 많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콘셉트를 제안했던 시점이 지난해 여름 어느 날, 그냥 밥 먹다가 툭 던졌던 내용이었으니까… 벌써 1년이나 지났다.
어느 정도 뼈대가 구성된 후에 개발팀에서도 작업을 시작했는데, 내가 작업한 곡을 보내면 그에 맞춰서 다시 수정해 주었다. 곤조 스튜디오와 작업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 이건 여담인데 최근에 ‘써드 런’을 함께 작업한 모 아티스트에게도 내가 작업한 부분을 먼저 보내고 우리 콘셉트를 요구했다. 내가 논리적이지 못하고 감성적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직접적으로 ‘후반부 현악을 전부 일렉트로니카로 바꿔 달라’고 요구했다.
솔직히 이분들이 게임음악을 한 번도 안 해봤기 때문에 걱정도 있었다. 2주 만에 결과가 왔는데, 놀랍게도 현악기 특유의 그 떨림을 일렉트로니카로 그대로 살렸다. 알고 보니 게임도 굉장히 좋아한다더라. 그것도 <파이널 판타지>를. 대중음악과 게임음악의 차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고, 내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잘 이해한 것 같다. 일이 너무 척척 잘 진행된 것 같다.(웃음)
TIG>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이번 <테일즈위버> 에피소드 3에 거는 기대가 클 것 같다.
게임, 음악 모두 오랫동안 준비했다.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내 경우를 설명하자면, 원래 오늘 녹음한 오케스트라는 처음에 14중주로 계획했다가 30중주로 늘렸다.
일반적으로는 10여 명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로 녹음해서 그 사운드를 겹쳐서 30중주와 같은 효과를 낸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아무래도 30중주에서 나오는 풍부함을 살릴 수는 없다. 욕심이긴 하지만 그렇게 노력하고 있다는 거다. 나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분들이 그렇게 진행해 왔다. 기대해 달라.
박지훈 작곡가 영상 인터뷰
30중주 오케스트라의 녹음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