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 SRPG는 모바일 게임 시장의 대세가 아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장르의 특징과 모바일의 문법이 맞지 않는 부분이 크다. 수 싸움은 턴제 전략의 기본이지만 하나하나 고민해야 하기 때문에 템포가 느린 단점도 있다. 또한, 넓은 전장의 상황을 파악하거나 다수의 캐릭터를 살펴보는 것도 작은 화면에서는 불편한 부분이다.
<체인 스트라이크>는 이러한 한계에 도전한 게임이다. 맵을 좁히고 5명으로 캐릭터를 줄인 대신 제한된 행동력과 '협공'으로 몰입감을 높였다. 전통 SRPG를 사랑하지만, "모바일에는 모바일에 맞는 게임성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개발자가 만든 게임. <체인 스트라이크>는 턴제 전략 게임을 모바일로 어떻게 풀어냈을까. 컴투스 게임제작본부의 정학철 PD를 만나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디스이즈게임 김영돈 기자
디스이즈게임: 지난 20일 유럽 지역에서 게임이 먼저 공개됐다. 반응이 어떤가.
정학철 PD: 기대 이상의 호평을 받고 있어 얼떨떨하다. 유럽 지역은 지난해 11월 진행된 CBT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보여줬던 곳 중 하나다. 게임에 대한 이런저런 피드백이 즉각적으로 전달될 정도로 열성 유저가 많다. 아직 한국과 아시아, 북미 지역 론칭이 남아서 바쁘게 보내고 있다.
모바일 시장에서 턴제 전략 게임이 대세라고 할 수는 없다. 특별히 이쪽 장르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
새로운 재미를 주고 싶었다. 개발자라면 누구나 신선한 게임을 만들고 싶을 거다. <체인 스트라이크> 전에는 캐주얼 게임을 만들었는데, 가볍게 즐기는 재미도 좋지만, 깊이 있는 재미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일단 나부터 SRPG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전략 게임을 많이 플레이하는 편인지.
과거 <파랜드 택택스>, <파이널 판타지 택틱스>, <슈퍼 로봇 대전> 등 다양한 전략 게임을 플레이했다. 최근 모바일에서도 비슷한 재미를 찾아보려고 하는데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테스트 단계에 있다는 <랑그릿사>를 기대하고 있다.
장르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체인 스트라이크> 제작은 언제부터 시작됐나.
핵심 재미인 전투 부분을 구현하는데 2년 정도 걸린 것 같다. 내부에서 알파 테스트를 통해 여러 가지 방식을 시도했다. 구상 단계부터 전반적인 부분을 합치면 총 개발 기간은 약 3년 정도다.
3년이면 적지 않은 시간이다. 2015년쯤이면 이미 수집형이나 모바일 MMORPG가 부상하던 시기니까, 단순히 해보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겠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턴제 전략 게임을 좋아하는 매니아는 꾸준히 있다. 사업적인 측면에서도 글로벌로 눈을 돌리면 다른 시장을 볼 수 있다. 게임성이 다르긴 하지만 <퍼즐앤드래곤>이나 <서머너즈 워>의 성과를 보면 충분히 해볼만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체인 스트라이크>는 글로벌 원빌드를 지향하고 있다. 전 세계의 턴제 전략 게임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게임이 목표다.
# 경우의 수는 줄였지만,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체인 스트라이크>의 특징이라면 '협공'과 '방향'을 꼽을 수 있다. 새로운 개념인데 간단히 설명을 부탁한다.
'협공'은 수호자(캐릭터)가 공격할 때 주변 수호자와 연계 공격을 펼치는 시스템이다. 공격 대상인 적군 수호자가 인접 아군 수호자의 공격 범위 내에 있으면 자동으로 발동한다. <체인 스트라이크>의 맵이 5 X 7로 좁은 편이라, 수호자 배치만 적절히 해도 협공 상황이 많이 나온다.
<체인 스트라이크>는 행동력의 제한이 있어 한 턴에 모든 수호자를 움직일 수 없다.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는 수호자를 선택해, 몇 가지 제한된 수를 둬야 한다. 협공의 장점은 추가적인 행동력 소모 없이 보다 강력한 공격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턴의 공격이 아니더라도 다음 턴, 다다음 턴의 공격까지 내다보며 수호자의 배치를 신경 써야 하는 재미가 있다.
'방향'은 수호자들의 이동과 공격 범위를 말한다. 체스에서 모티브를 얻었고 나이트, 비숍, 룩, 퀸, 킹이라는 다섯 가지 생소한 방향으로 구분된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룩은 상하좌우 직선으로 긴 거리를 이동·공격 할 수 있다. 나이트 유형의 수호자는 바로 인접한 타일의 지형이나 수호자를 뛰어넘을 수 있다. 비숍 수호자는 대각선 방향에 특화돼있다.
행동력 제한이 있다는 점도 특이하다. 다른 SRPG의 경우 캐릭터마다 각각의 행동력이 있어 모든 캐릭터를 한 번씩 조작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체인 스트라이크>는 3개의 AP(Action Point)라는 행동력 제한을 뒀다. 어떤 점을 의도한 것인가.
행동력을 제한하면서 얻은 장점이 많다. 일단 모바일에 맞는 빠른 템포를 구현할 수 있다. 기존 SRPG는 후반에 적이 많아지고, 맵도 넓어지면 전투 시간이 길어지는 단점이 있다. 내 턴에는 할 게 많지만, 반대로 상대 턴에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했다.
또한 전략의 선택지를 이해할 수 있는 범위로 줄이려는 의도도 담겼다. 기존 SRPG는 움직일 게 너무 많다 보니 변수가 너무 많아져 상대 움직임을 예측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게임이 전략보다 스펙 싸움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었다. 최선의 수를 찾기보다 누가 누가 좋은 캐릭터를 많이 가지고 있느냐로 승패가 결정 되기 쉬웠다. 행동력을 제한하면 줄어든 경우의 수 안에서 전략을 예측하고, 가장 최선의 수를 선택하는 방향으로 플레이를 유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전략 게임이다 보니 이것저것 생각할 요소가 많다. 매 턴마다 '묘수풀이'를 하는 느낌이다.
어떤 사람은 이런 장르를 '퀴즈 푸는 느낌'이라고 하기도 한다. 스펙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 상황에 따라 묘수와 악수가 달라지는 재미를 주려다 보니 그런 느낌을 받는 것 같다.
대부분의 전략 게임에서는 공격이 최선의 전략이다. 상대 캐릭터를 줄이면 내가 우위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체인 스트라이크>는 다르다. 상대 수호자를 공격해서 제거하면, 공격 주체인 내 수호자가 그 자리로 이동한다. 체스나 장기의 룰과 같다고 생각하면 쉽다.
이 시스템은 별거 아닌 것 같지만 큰 차이를 가져온다. 상대 수호자와 자리가 바뀌면 보통 적진 한가운데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대로 상대 턴이 되면 협공을 받아 내 수호자도 죽는다. 이처럼 협공과 행동력 제한 등 여러 수를 고려해야 한다. 이번 턴 뿐만 아니라 다음 턴까지 계산하는 재미를 주려고 했다.
<체인 스트라이크>의 PvP 준비 화면
전투를 시작하기도 전에 스펙 차이로 승패가 결정되는 게임은 원치 않는다. 유저가 끝까지 긴장하게 만드는 전략적 재미를 넣으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어려워도 익숙해지면 큰 재미를 주는 게 수 싸움이다. 플레이어를 상대로 하면 이 재미가 배가될 것 같은데. 유저 간 대전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까?
'친선전'의 경우는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승급전'은 비동기 방식으로 진행된다.
승급전이라면 랭킹 모드일텐데, 보통 반대로 하지 않나?
비동기 방식은 충분한 시간을 쓸 수 있고, 실시간 대전은 제한된 시간 내에서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친선전은 길드원이나 친구와 함께 즐기는 대전이다. 조금이라도 친분이 있는 사이에서 너그럽게 상대를 기다려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실시간 방식을 도입했다. 승급전에 입문하기 전 PvP를 배우는 수단이다. 반면, 승급전은 실수 없이 최선의 수를 찾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을 쓸 수 있는 비동기 방식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출시 이후 '아레나'라는 이름의 실시간 글로벌 PvP 모드도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글로벌 랭킹전이라고 생각하면 쉬운데, 유저는 게임에 충분히 익숙해진 유저가 참가할 거라 판단한다.
아레나 모드가 어느 정도 구현됐는지 언제쯤 업데이트될지 궁금하다.
아직 다듬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정확한 일정을 말씀드리긴 어렵다. 다만 2017년 대만 게임쇼에서 진행자들과 40분 동안 2판 정도 플레이 시연을 했다. 서버 안정성과 관련된 별다른 문제가 없어서 조금만 완성도를 높이면 될 것 같다. e스포츠의 가능성을 봤다. (웃음)
# 개성 있는 수호자들, 각자 키워야 할 '이유'가 있다
수호자를 획득하는 방법이 뽑기다. 등급과 획득 확률 부분에서 게임성 외적인 불만이 생길 수도 있는데. 보완책이 있을까?
수호자 소환에 필요한 재화는 다양한 콘텐츠에서 얻을 수 있어, 무과금 유저도 충분히 원하는 덱을 맞출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소환이 아니라 조합*에서만 등장하는 강력한 수호자도 있어서 과금 유저가 무과금 유저를 압도하는 경우는 없을 거라 생각한다.
조합: <체인 스트라이크>의 일부 수호자들은 다른 수호자를 재료로 사용한 '조합'에서만 얻을 수 있다. 재료로 사용되는 수호자의 조건은 5성 진화, 35레벨 이상이며, 결과물로 방향과 특성이 다른 수호자가 등장할 수도 있다.
상대적으로 얻기 쉬운 저등급 캐릭터의 경우 '진화'를 통해 최대 레벨을 늘릴 수 있어서, 보다 육성이 쉬운 장점도 있다. 한 수호자의 다섯 방향을 모두 모으면, '컬렉션 버프'도 발동하는데 상당한 능력치 보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등급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출시된 유럽에서 반응은 나쁘지 않다. 무과금으로 게임을 진행하는 유저들도 충분하다는 견해고, 뽑기를 해본 유저들도 납득할 수 있는 정도라는 피드백을 줬다. 다만, 유료 재화와 뽑기는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에 항상 지켜볼 예정이다.
소위 '티어'라고 말하는 성능 차이 때문에, 다양한 수호자가 기용되는 게 어려울 수 있겠다. 전략 게임에서는 영향이 더 클 것 같은데.
초반에 성능이 뛰어난 수호자를 얻는다면 진행이 빨라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 수호자도 만능은 아니다. 예를 들면 파괴 불가능한 오브젝트가 중앙을 가로막고 있는 스테이지의 경우,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는 나이트 수호자들이 필요하다. 이밖에 다른 콘텐츠도 시너지가 있거나 해당 콘텐츠에 특화된 수호자와 조합해 기용해야 하는 것이 유리하다.
PvP는 PvE와 달리 상대 넥서스만 파괴해도 승리할 수 있어서, 이에 특화된 조합과 이를 방어하기 위한 조합의 싸움이 펼쳐진다. 성능 좋은 수호자보다 다양한 조합의 수 싸움의 비중이 더 클 것으로 본다.
협공이 중요한 게임이다 보니 수호자의 방향이 파티 구성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개별 수호자의 개성보다 방향이 중요해지지는 않을까?
방향뿐만 아니라 다양한 스킬이 개성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걸로 기대한다. 단순히 상대를 공격하거나 아군에게 버프를 주는 스킬부터, 상대 캐릭터의 활동 범위를 줄여버리거나 상대 AP를 뺏어버리는 스킬도 있다. 상대 수호자와 내 말의 자리를 바꾸는 스킬도 있다. 상대의 중요한 수호자와 내 방어 계열 수호자의 위치를 바꿔버리면 상대는 딜레마에 빠질 것이다.
자동 전투 시스템이 포함된 걸로 알고 있다. 직접 플레이하는 재미와 어떻게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제작진끼리도 '전략 게임에 자동이 꼭 필요할까?' 하는 질문을 많이 했다. 결국 자동 전투가 포함되긴 했는데, 편의성 측면에서 추가한 요소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반복 전투를 통해 재화를 얻는 과정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다.
내가 가진 수호자 능력보다 하위 던전을 돌 때는 자동 전투가 통할 수 있겠지만, 결국 상위 콘텐츠 공략에서 수동은 필수다. 또한 부가적인 부분이지만, 입문 유저에게는 자동 전투가 교본의 역할이 될 수도 있다. AI의 플레이를 보면서 수호자의 역할과 경우의 수에 익숙해지면 게임에 적응하기 쉬워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