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나 자본 등에게서 독립해, 개발자가 만들고 싶은 것을 추구하는 '독립 개발'. 하지만 독립 개발을 꿈꾸는 개발자는 많지만 막상 독립 개발로 뛰어드는 이는 적고, 뛰어 들어서 살아 남는 개발자는 더더욱 적다. 독립 개발을 하며 '먹고 사는' 것은 너무도 힘드니까.
2인 인디 개발팀 핑퐁팩토리는 이 거친 환경에서 3년째 살아 있는 팀이다. 냉정히 말해 성공해서 살아 남은 것은 아니다. 이들은 3년 간 모바일 캐주얼 액션 게임 3개를 냈지만,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진 못했고 작업실 구할 돈이 없어 온갖 곳을 전전했다. 서울산업진흥원의 지원 사업이 통과하지 못했으면 여전히 그러고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이번에도 모바일 캐주얼 액션 게임을 만들고 있다. 심지어 더 호불호 갈리는 1:1 대전 요소가 있는 캐주얼 액션. 이들은 왜 이런 거친 환경에 뛰어 들었고, 이곳에서 왜 이런 게임을 만드는 것일까? <테일밤>으로 이름을 알린 핑퐁팩토리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 똑같은 게임 만들기 싫어 무작정 시작한 '독립 개발'
디스이즈게임: 팀을 만든 이후 계속 캐주얼 액션 게임만 냈고, 또 개발하고 있다. 팀을 만들기 전에도 이런 게임을 만들었나?
최경빈: 전혀. 팀을 만들기 전에 컴투스에서 일했는데, 그 때 내가 만들던 것이 SNG <타이니팜>이었다. 또 생각해보면 내가 만든 첫 콘텐츠는 '소설'이었다. 이후에 시나리오 기획을 염두에 두고 게임 회사에 들어갔는데, 어찌어찌 흐르다 보니 기획 일을 하고 있더라.
2015년 컴투스면 <서머너즈 워> 등으로 한참 잘나가던 회사였다. 왜 독립 개발로 뛰어 들었나?
최경빈: 예나 지금이나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이야기' 있는 게임은 드물지 않은가? 원래 내 꿈은 그런 게임을 만드는 거였는데, 회사에 계속 있으면 영영 못 만들 것 같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지도 못하고, 그러면서도 남들과 똑같은 게임을 계속 만드는 것이 견디기 힘들더라. 그래서 더 이상 늦어지면 평생 그대로일 것 같아, 무작정 회사를 나왔다.
솔직히 말하면 그 때만 해도 우리가 3년 동안 계속 캐주얼 액션 게임을 만들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다. (웃음)
처음 목표는 이야기 있는 게임이었는데, 지금은 3년째 캐주얼 액션을 만들고 있다.
최경빈: 사실 시작은 단순했다. 머리 속에 구상하던 게임을 만들긴 너무 버거우니까, 서로 합을 맞춰 보려고 가볍게 시작했다. 그 때 이 친구(황준연)가 막 유니티를 땠을 무렵이었는데, 시험 삼아 만든 것이 <달려라 뿅뿅뿅>이라는 런게임이었다.
그런데 막상 이런 캐주얼 액션 게임을 만들기 시작하니 옛날 기억이 나더라. 내 또래 사람들이면 옛날에 오락실이든 게임기든 간에 아케이드 게임을 많이 했잖은가. 그 때 기억, 그 때 재미가…. 정신 차려 보니 캐주얼 액션만 3년 째 만들고 있더라. 이젠 팀 목표도 아예 이쪽으로 바뀌었다. 물론 이야기 있는 게임을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만들더라도 캐주얼 액션 장르에 스토리를 가미하는 방향이 될 것이다. 세상 일, 참 모른다. (웃음)
황준연: 처음 팀에 합류했을 때 우리끼리 정한 것이 딱 하나 있었다. 모바일 게임은 스토리가 좋은 경우가 드문데, 우리가 만드는 작품은 꼭 스토리로 공감을 주고 감동을 주자고. 사실 처음엔 <검은 방>이나 <라이프 라인> 같은 게임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인데, 장르가 다르다고 이야기가 주는 감동이 달라진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캐주얼 액션 장르는 유저가 직접 무언가를 하기 때문에, 이야기가 더 와 닿지 않을까? 물론 아직은 먼 얘기지만.
런 게임이든 아케이드든 조작 요소가 있는 게임은 제대로 만들기 쉽지 않다. 2015년이면 방치형 게임도 대세가 되던 무렵인데, 시험작으로 제대로 못 만들면 욕 먹는 캐주얼 액션으로 간 이유가 있는가?
최경빈: 그냥 흔한 게임을 만들기 싫었다. 그것 때문에 컴투스를 나왔는데…. 방치형은 우리 말고도 많이 만들지 않는가?
또 사업적인 계산도 있었다. 우리는 프로그래밍을 독학으로 익힌 케이스인데, 이러면 필연적으로 전문적인 친구들보다 기술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남들 따라가봤자 성공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오히려 기술력은 떨어지더라도 창의적인 게임, 참신한 게임을 내는 것이 살아남는 데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가 게임으로 돈을 많이 번 것은 아니지만. (웃음)
그런데도 계속 독립 개발을 한 이유가 있는가? 먹고 살기 힘들지 않은가?
최경빈: 나름 자부심이 있다. 우리 게임 중 가장 유명한 것이 <테일밤>이다. 이 게임이 비록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우리 2번째 작품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좋은 결과물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진 못했지만, 적어도 일부에겐 재미있다고 인정받기도 했다. 우리가 추구하는 재미에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개발하는 입장에서 정말 큰 힘이 된다.
비록 경제적으로 힘들긴 하지만, 여기서 조금만 더 버티고 노력하면 우리가 꿈꾸던 재미를 구현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3년 간 구르며 우리 실력도 많이 늘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우리가 꿈꾸는 재미를 구현할 수 있을 것 같다.
# 인간과 좀비 간의 쫄깃한 1:1 심리 대전, H.I.D
그래서 이번에 만들고 있는 작품은 어떤 작품인가? 어떤 재미를 보여주고 싶은가?
최경빈: 현재 <H.I.D>(한국어 제목은 아직 미정)라는 좀비 아포칼립스 콘셉트의 1:1 캐주얼 대전 게임을 개발 중이다. 게임을 간단히 설명하면 두 유저가 각각 인간과 좀비가 돼, 인간 유저는 도시를 벗어나야 하고 좀비 유저는 그런 인간 유저를 죽여야 하는 게임이다.
1:1 대전이긴 하지만, 서로 다른 환경에서 상대를 처치해야 하는 비대칭 대전 게임이다. 예를 들어 인간 유저는 좀비(유저 + NPC)로 가득한 도시를 손전등과 권총 한 자루에만 의지해 탈출해야 한다. 시야는 손전등을 켜지 않으면 자기 주변 밖에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좁고 어둡다. 반대로 손전등을 켜면 좀비의 시선을 끌게 된다. 인간 유저는 좀비에게 한 번이라도 물리면 사망이다. 좀비를 한 방에 죽일 수 있는 권총이 주어지긴 하지만 총알은 한정돼 있다.
인간 유저는 이런 환경에서 도시에 있는 탈출 스위치 3개를 가동하고, 입구까지 빠져나가야 한다.
이야기만 들으면 좀비 유저가 유리해 보인다. 좀비 측이 유리해서 비대칭 PvP라고 얘기한 것인가?
황준연: 아니다. 좀비 유저에게도 패널티가 있다. 앞서 비대칭 PvP라 말한 것은 서로에게 주어진 조건이 달라서지, 어느 한쪽이 유리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좀비 유저는 다른 NPC 좀비라는 아군이 있는 대신,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손전등처럼 강한 빛이 없는 한, 박쥐처럼 반사되는 소리(빗소리, 발자국 소리, 천동 소리, 총성 등)를 듣고 다른 캐릭터와 지형지물을 파악해야 한다. 아니면 자기가 직접 소리를 지르거나. 이 부분은 <다크 에코> 같은 게임을 많이 참고했다.
또한 좀비는 인간 유저의 총알 한 방에 죽는다. 인간 유저를 찾았어도 섣불리 달려들거나 소리를 질러선 안된다. 그래서 좀비 유저는 인간 유저 앞에선 일부러 엉뚱한 곳을 어슬렁거리는 식으로 'NPC인척' 하다가 상대의 허를 찔러야 한다. 아니면 상대가 상자를 뒤질 때 덥치거나.
인간 유저는 손전등을 최대한 사용하지 않으며 맵을 뒤져야 하고, 좀비 유저는 제대로 볼 수도 없는 상황에서 NPC를 연기해야 한다. 대전 게임이긴 하지만 잠입 액션의 느낌이 왠지 강하다.
최경빈: 맞다. <H.I.D>는 예전에 본 <나는 전설이다>라는 영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게임이다. 좀비 아포칼립스를 소재로 한 영화인데, 극 중에 윌 스미스가 어두운 건물 안을 탐색하는데 좀비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손전등을 껐다 켰다 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느껴지는 스릴을 게임으로 만들고 싶었다.
'이런 분위기를 어떻게 살리지' 고민하다가 <다크 에코>에서 맹인으로 플레이하는 감각, <라스트맨 스탠딩>에서 NPC처럼 움직이며 다른 유저를 속이는 경험이 떠올라 버무렸고. 콘셉트가 콘셉트니 만큼 잠입 액션 게임도 많이 참고했다.
미지의 위험을 경계하며 나가는 스릴과 긴장감을 주는 것이 목적인가보다.
최경빈: 메인은 그것이다. 다만 맵의 구성이 정해져 있고, 스위치가 몇 개 정해진 풀 안에서 나오기 때문에 나중 되면 유저 간의 심리전 요소도 있을 예정이다. 예를 들어 좀비 유저라면 미리 스위치가 생성되리라 예상되는 지점에서 잠복해 있다가 인간 유저를 습격할 수도 있고, 반대로 인간 유저가 스위치를 찾으로 다니는 동안 자신도 '고기'를 파밍해 캐릭터 능력치를 올릴 수도 있고.
아, 참고로 좀비 유저가 고기 3개를 먹으면 NPC 좀비들에게 인간 유저를 찾으라고 '명령'할 수 있다. 이 경우 인간 유저의 좌표가 실시간으로 알려지기 때문에, '볼 수 없다'는 좀비 유저의 약점이 상당 부분 완화된다.
# 사람들 마음에 무거운 파문을 일으킬 수 있는 작품이 꿈
팀 설립 초창기 목적이었던 '스토리'는? 이번 작품에선 볼 수 있을까?
최경빈: 2인 개발이다 보니 '스테이지'처럼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을 바로 시작하긴 힘들더라. 일단은 PvP 모드부터 잘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일단은 오픈 스펙이 1:1 PvP를 추가하고 업데이트로 다대다 PvP까지 추가하는 것까지 계획하고 있다.
스토리와 관련해선 욕심은 정말 많다. 당장 쓰지도 않을 캐릭터 배경 스토리 등을 다 갖춰 놨으니까. 다만 이번 작품에서 스토리 콘텐츠를 넣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다. 아쉽게도 독립 개발은 리소스 관리가 엄청 빡빡해서, 게임이 우리 예상보다 인기가 적거나 유저들이 이쪽을 원치 않으면 우리도 섣불리 움직이기 힘드니까.
그래도 여력이 된다면 이번 작품에선 캐릭터 별 배경 스토리에 걸맞은 콘텐츠를 추가하고 싶다. 예를 들어 마을에서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가족을 찾는다거나. 만약 만든다면 스테이지 방식으로 만들지 않을까 한다.
배경이 배경인만큼, 스토리 모드가 추가된다면 그다지 유쾌한 얘긴 아니겠다.
최경빈: 사실 우리 취향이 원래 이렇다. 우리 이상향도 <울프 어몽 어스>같은 분위기와 연출을 보여줄 수 있는 아케이드 게임일 정도니. 아, 참고로 <울프 어몽 어스>는 텔테일이 만든 어드벤처 게임으로, 느와르 풍의 스토리가 끝내주는 작품이다. 이쪽에 관심이 있다면 꼭 해봐라. (웃음)
사실 이런 이야기가 요즘 대중이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닐 것이다. 요즘은 스넥처럼 가볍게 소비되는 스토리가 대세니까. 게임으로 먹고 살려면 이런 쪽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 맞긴 한데, 아직은 우리가 좋아하고 더 잘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려 한다. 무작정 시장에서 먹히는 것만 추구하려면, 굳이 독립 개발을 할 필요 없으니까.
또 이렇게 사람의 깊은 곳을 건들이는 이야기도 수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콘텐츠는 스넥형 콘텐츠에 비해 여운이 크니까. 여력만 되면 우리도 이런 파문이 있는 이야기로 유저들의 마음을 울리고 싶다. 먼 얘기긴 하겠지만, 이왕이면 <H.I.D>로 첫 시작을 했으면 좋겠고. (웃음)
<H.I.D>는 언제 플레이할 수 있을까?
최경빈: 목표는 이달 중 베타 테스트를 하고, 5월 중 정식으로 출시하는 것이다. 일단은 베타 테스트로 1:1 PvP를 충분히 다듬고, 오픈 후에는 다대다 모드를 업데이트 하고. 개인적으론 게임이 사랑 받아 스토리 콘텐츠까지 꼭 추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작성자 주: <H.I.D>는 현재 구글플레이 인디게임 페스티벌 2018 TOP 20에 선정됐다. 게임은 4월 21일, 행사장에서 대중에게 첫 선을 보일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최경빈: 2가지를 말하고 싶다. 하나는 유저 분들에 대한 감사다. 우리가 그동안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이렇게 계속 게임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게임을 좋아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유저 분들 덕분이었다. 우리가 추구한 재미를 좋아해주신 분들께 꼭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 곧 나올 <H.I.D>에서도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더 많은 즐거움을 안겨 드리고 싶다.
마지막으로 우릴 지원사업에 통과시켜 준 서울산업진흥원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 최근 작품이 <테일밤>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제임스 봄드>란 작품이었는데, 우리 예상에 비해 많이 부족한 작품이었다. 그래서 한 동안 슬럼프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같이 일하는 공간도 일정하지 못하니 컨디션을 더 끌어 올리기도 힘들었고.
그런데 지난해 말 지원사업에 통과한 덕에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다. 센터에 입주해 사무실이 생기니 일에 더 잘 집중할 수 있었고, 또 주변의 다른 인디 개발자들과 어울리며 시너지도 만들 수 있었다. 최근엔 '마나크리'라는 팀과 합심해 <고블린 코인>(가칭)이란 판타지 테마 모의 투자 게임을 한달 만에 뚝딱 만들어냈다. 이렇게 개발자들이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이 일하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됐다. 앞으로 이런 사업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 고블린 코인(가칭): 핑퐁팩토리와 마나크리가 합작한 판타지 테마의 모의 투자 게임. 유저는 게임에서 상인이 돼 온갖 소문 속에서 '정보'를 캐치하고, 이 정보를 바탕으로 물건을 사고 팔며 더 많은 이익을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