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리 가시리잇고 나는 / 버리고 가시리잇고 나는 / 위 증즐가 대평성대”
1983년 대전 남녀공학 한밭고 봄소풍. 관심을 받고 싶었던 1학년 남학생은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 <가시리>를 불렀다. 그후 한밭고 학생들은 그를 ‘가시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가 게임을 시작할 때 ID를 ‘가시리’로 하는 이유다.
국회의원 조승래(더불어민주당)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근래 게임과 관련해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의원이다. 지난해 야당 의원들과 ‘대한민국 게임포럼’을 만들었고, 국정감사에서는 ‘게임전문 진흥기관’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올해 초에는 세계보건기구(이하 WHO)의 '게임장애질병코드 등재'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혀왔다.
조 의원이 이렇게 게임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그 또한 게이머이기 때문이다. 그는 대학교 때 <삼국지>를 처음 접하고 이틀 밤을 꼬박 지새운 게이머다. <삼국지> 시리즈로 시작된 전략 게임 사랑은 훗날 <삼국지를 품다>,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 같은 게임으로 이어졌다. 만약 게임을 하다가 ‘가시리’라는 닉네임을 봤다면 조 의원일 확률이 높다.
디스이즈게임이 조승래 의원을 만났다. WHO의 게임장애질병코드 등재에 관한 반대 의견부터 국내 게임회사들에 대한 아쉬움과 쓴소리, 국내 게임 생태계 진흥을 위한 생각 등을 들어봤다. /디스이즈게임 임상훈, 김승현 기자
# "게임장애질병코드? 그럼 프로게이머는 전부 환자인가?"
디스이즈게임: 최근 WHO의 '게임장애질병코드'와 관련해 가장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국회의원이다. 50대가 게임 분야 이런 이슈까지 관심 가지기란 쉽지 않은데...
조승래: 내가 워낙 게임을 좋아한다. 젊었을 때는 게임 하느라 밤도 샜을 정도로. (웃음) 물론 게임을 좋아해서 무조건 WHO에 반대한 것은 아니다. 그냥 내가 이성적으로 봤을 때 동의할 수 없는 건이라 반대 의견을 밝힌 것일 뿐이다.
얼마 전 토론회에서도 얘기했지만 너무 모호한 내용이 많다. 논리적인 근거가 빈약하고, 그냥 '선언'적인 내용으로 가득하다. 주관적이다. WHO의 견해를 간단히 정리하면 '게임하는 것을 오랫동안 스스로 통제하지 못해 일상 생활에 장애가 발생하는 것'을 질병 코드로 등록한단 얘기다.
그런데 이런 현상의 원인이 '게임'에만 있는지 알 수 없지 않은가? 가정의 문제나 사회적인 환경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게임을 선택할 수도 있고, 프로게이머처럼 게임의 우선 순위가 높아 게임에 몰두할 수도 있다. 이런 모든 것을 질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행동의 원인이 게임에만 있는 것일까?
기준도 문제다. WHO의 기준 중 '다른 이익·일상 활동보다 게임 플레이에 우선 순위 부여'라는 항목이 있는데, 이 기준만 보면 프로게이머 같은 사람들은 전부 환자다.
새로운 미디어가 부정적으로 보여지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왜 게임만 유독 '중독'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것일까?
나는 모든 나라에서 게임을 '중독'이라고 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건 한국의 이슈다. 한국은 교육욕이 엄청 강한 나라니까.
청소년기는 여러 욕구가 강한 시기다. 그런데 주변에서 공부만 하라고 하니 이 스트레스를 게임으로 풀 수밖에 없다.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오락거리니까. 기성세대가 보기엔 게임이 ‘공부의 적’이다. 그런데 한국은 슬프지만 입시 결과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바뀌기까지 하는 나라다. 기성세대가 게임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강하게 가질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내가 학생이었던 시절엔 '만화책'이 지금 게임과 똑같은 취급을 받았다.
일부 사람들은 게임하는 것을 통제하면, 즉 게임을 끄게 하면 자식이 화낸다며 게임이 더 심각하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자기가 재미있게 하고 있는 것을 강제로 중단시키면 누구나 화낸다.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TV를 꺼도, 당구를 재미있게 치고 있는데 판을 엎어도. 그런데 이런 것을 가지고 사람들은 게임의 폭력성이니 뭐니 하니…. (쓴웃음) 이런 것 따지기 시작하면 모든 유희, 모든 놀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모든 콘텐츠는 질병의 원인이다.
2011년, MBC 뉴스데스크는 PC방 전원을 내린 후 흥분하는 유저들을 카메라에 담곤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폭력 게임의 주인공처럼 난폭하게 변해버렸다"라고 보도한 바 있다.
예전에 게임 장애 질병 코드 관련 토론회를 갔는데, 다른 나라는 이런 사례가 많이 없어 관심이 크지 않았는데 한국 사례를 접하고 본격적으로 조사를 시작했다는 얘기를 하더라.
그것이야말로 게임만이 그런 현상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과 같지 않을까? 환경에 따라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빈도가 다르다는 얘기니까.
사실 한국이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게임에 빠지기 좋은 환경이 아닌가. 일단 인프라적으로 IT 기기 스펙도 좋고 PC방과 같은 게임 하기 좋은 공간도 많다. 또한 안좋은 쪽으론 교육열이 너무 강해 공부 말고 다른 하고 싶은 것을 하기 힘들다. 그러니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거지. 또한 한국은 전통적으로 유희를 죄악시하는 경향이 강해 게임에 몰두하는 것을 더 문제로 여기기도 하고.
서구권은 콘솔을 기반으로 한 엔딩 있는 스탠드얼론 게임을 많이 하고, 한국은 온라인게임 같이 엔딩 없는 게임을 많이 한다. 이렇게 즐기는 게임의 차이가 그들이 '게임 장애'라고 하는 현상의 빈도를 다르게 했을 가능성은 없을까?
물론 그런 영향도 없진 않겠지. 그런데 온라인게임에 빠진 사람은 '재미'와 같은 게임적인 요소에만 빠진 것일까? 온라인게임은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고 경쟁하는 등 사회적인 관계가 만들어지는 공간이다. 그럼 다른 사람과 함께 게임을 하는 것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은 콘텐츠 자체의 재미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과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사회적인 요소 때문일까?
그것이 경쟁이든 협력이든, 거기서 무언가를 느낀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회적 행위다. 이를 함으로써 나라는 사회적 존재를 확인하게 되니까. 이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성을 간과해선 안된다.
여담이지만, 나는 이런 요소 때문에 싱글 게임보다 온라인게임을 하는 것이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한다. 싱글 게임과 달리, 온라인게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회니까. 그 안에서 다른 사람과 어울리고 관계를 맺을 수 있으니까. 물론 이런 사회성 때문에 욕설 같은 좋지 않은 것을 접할 수도 있긴 하지만, 그건 현실도 똑같지 않은가. (웃음)
# 불씨 남아있는 질병 코드 이슈, 철저한 연구와 게임 인식 개선이 답
다행히 얼마 전 게임 장애 이슈가 올해 WHO 총회에서 다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다만 '잠정' 연기이기 때문에 불씨가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닌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제대로 연구하고 논리를 다듬어야겠지. 이는 어느 한쪽에 대해 얘기한 것이 아니라, 의학계와 게임계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의학계에선 게임 자체에 대해 더 면밀히 연구하고, 만약 그래도 정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밖에서 봤을 때 합리적으로 여겨지는 기준을 정해야 할 것이다.
반대로 게임계도 단순히 게임의 특성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의학적으로 이게 어떻게 문제인지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얼마 전 게임 관련 학과들이 연합을 했는데, 이런 학회나 게임을 잘 아는 의학계 사람들을 중심으로 '논리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반박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의학계와 게임계가 공동으로 연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현상 자체는 존재하니 해결책은 찾아야 하니까. 그런 반면 의학계는 게임을 모르고, 게임계는 의학을 모르지 않은가? 그러니 양쪽 모두 중립적인 입장에서, 자신들의 전문 분야를 살려 연구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개인적으론 한국의 보건복지부와 (게임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이 건을 같이 연구했으면 좋겠다. 서로 편견 없이.
나는 사람들이 문제시하는 게임 장애, 게임 과몰입 이슈가 셧다운제나 질병 코드 등록 같은 것으론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이게 진짜 게임의 문제인지, 아니면 가정이나 사회, 개인 정서의 문제인지 아직 명확히 모르지 않은가?
두 업계가 편견 없이 공동으로 연구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특히 보건복지부는 이 건에 대해 굉장히 오랫동안 준비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단순히 두 업계를 담당하는 부서 둘이 모인다고 양쪽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연구가 나올 수 있을까?
둘이 같이 연구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문화체육부가 연구를 주도하고 보건복지부가 파트너로 참여하는 것도 방법이고, 반대로 복지부가 연구를 주도하고 게임 전문가가 참여하는 것도 방법이다.
제 3의 방법도 있다. 국무총리 산하에 경제인문사회연구회라는 일종의 종합 연구 기관이 있는데 여기서 이 연구를 하는 거다. 연구회 안에 게임 전문 연구 단체가 없는 게 조금 걸리긴 한데, 이건 문화관광연구원 같은 곳이 대신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물론 문화관광연구원 파트에 한콘진 같은 게임 잘 아는 부처에서 함께 참여한다는 전제 하에.
중요한 것은 연구에 게임과 의학 양쪽의 특성이 골고루 반영돼야 한다는 점이다. 당장 병리학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것과, 게임 디자인적인 관점에서 연구하는 것은 방법부터 논리, 결과 모두 완전히 다르지 않은가? 어느 한쪽의 특성만 반영해선 반쪽 짜리 연구가 될 뿐이다. 이는 연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모두에게 좋지 않다. 특정 업계를 떠나 사회 전체적으로.
그런데 합리적인 연구 결과가 나와도 이게 기성 세대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지금 WHO 이슈도 논리만 보면 반대측 입장이 더 합당해 보이는데, 기성 세대 대부분은 질병 코드 도입을 찬성하지 않는가?
앞서 얘기했듯이 그들에게 게임은 '공부의 적'이니까. 때문에 나는 이번 이슈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철저한 연구뿐만 아니라, 게임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또한 함께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4차 산업 혁명'에서의 역할이라든가. 산업적으로든 콘텐츠 자체로든 게임만큼 4차 산업 혁명에 잘 어울리는 산업이 없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4차 산업 혁명을 얘기하며 장미빛 미래를 꿈꾸는데, 사실은 엄청 불안한 사회다. 일자리가 확 줄어들 것이니까. 이런 환경에서 게임은 그 자체가 가진 산업적 가치뿐만 아니라, 게임을 하며 학습하는 자기 계획이나 전략적 사고 등도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4차 산업 혁명이라는 키워드 자체가 너무 모호한 개념 아닌가? 솔직히 말해 기성 세대들에겐 그런 것보다 당장 내 자식이 공부해 좋은 대학 가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일부 동의한다. 그런데 그 저변에 흐르는 '맹목적인 불신'은 걷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기성 세대가 무조건 게임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 좋은 거지. 그런데 아직은 공부가 먼저야' 정도로만 생각해도 큰 변화고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게임을 아예 악(惡)으로 보는 것과, 공부에 비해 덜 중요한 것으로 보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니까.
# "업계가 나서야 한다. 당사자가 가만 있는데, 정부가 어떻게 알아서 움직이나?"
지난해부터 게임 인식 개선을 위해 '대한민국 게임포럼'을 열었다. 성과가 어떤가?
아직 진행 중인 건이고, 또 명확한 해답이 나올 수 없는 건이기 때문에 당장 말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아직은 여러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단계다.
다만 내가 하나 요청한 것은 있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선 게임의 의미를 계속 얘기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이걸 계속 연구해 결과를 만들고, 이걸로 사람들을 수긍시킬 전담 인력이…. 일종의 싱크 탱크랄까? 사실 규모 있는 산업은 대부분 이런 역할을 하는 곳이 있는데, 게임은 산업 규모에 비해 이런 부분이 많이 부족하다.
너무 소극적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정부 대상 간담회 열어 게임이라는 콘텐츠가 가진 가치도 부각하고, 4차 산업 혁명에서의 산업적 역할도 부각하고. 간담회가 힘들면 기고나 광고도 좋다. 대단한 솔루션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바랄 뿐이다.
그렇게 업계 움직임이 없다면, 평소 게임 관련 정책을 만들 때 의견은 어떻게 듣는가?
뭐, 어쨌든 업계에 학회가 있고 협회도 2개 있고, 인디 게임 분야에도 협회 있으니…. 포럼을 만든 것도 이런 단체를 한 곳에 모아 의견을 듣기 위함이었다. 아, 포럼에 단체만 들어와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개인도 있고, 또 들어올 수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NGO가 없다는 점이다.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NGO나 학술단체, 싱크탱크 같은 것. 이런 곳이 있어야 게임의 문화적 가치나 산업적 가치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해 성과도 만들고 또 이를 대중에 알릴 수 있다. 물론 다들 먹고 살기 바쁘니 총대 매기 힘들어 하는 것은 이해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아쉽다.
요약하면 업계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슈도 만들고 연구하고, 이슈 파이팅도 해야 한다?
맞다. 게임포럼이 있긴 하지만, 이건 연구단체가 아니라 의원들이 각계 의견을 듣는 협의체 아닌가? 지금 필요한 것은 협의체가 아니라, 이 안에다 정책이나 의견 같은 알맹이를 채워줄 수 있는 곳이다.
업계가 나서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 당장 셧다운제가 시작된 이후, 제도가 주는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우수한 인력들이 업계에 뛰어드는 것을 꺼려하지 않는가? 기존에 있던 사람들도 중국 같이 대우 좋은 나라로 떠나고. 이런 것을 앞장 서서 바꾸지 않으면 서서히 말라 죽을 뿐이다. 문화적 가치를 부각해 부정적 인식을 불식시키는 것, 산업적 가치를 부각해 진흥 정책을 끌어내는 것 모두 필요하다.
그래서 포럼을 할 때마다 매번 요청한다. 게임 잘 아는 명망가들 찾아가고 활동 좀 부탁하고, 아이 교육 관련해 유명한 유튜버도 찾아가 게임에 대해 잘 알리고. 이렇게 업계가 우호적인 사람들 모아 게임 인식 개선단을 만들어 달라고. 이들과 함께 강연하고 기고 하고 유튜브에 영상 올리고 1년만 해도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전반적으로 동감하지만, ‘게임 인식 개선단’이라는 이름은 반대다. (웃음) 정부 쪽에선 게임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있다. 이쪽에서도 비슷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현황이 어떤가?
아마 게임 정책의 핵심은 문화와 산업을 한데 묶는 것일 것이다. 지금 문화부와 콘텐츠진흥원이 하고 있긴 한데, 솔직히 말하면 전문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아무래도 담당하고 있는 영역도 많고, 또 공무원 특성 상 이 분야 전문가도 찾기 힘들고.
보통 정부에서 어떤 정책을 집행할 땐 언론이나 연구단체, 시민단체 등이 많이 참여해야 정책의 질이 올라간다. 전문가는 정부 밖에 있으니까. 때문에 게임계가 더욱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게임의 문화·산업적 가치와 이슈에 대해서…. 이해 당사자가 입을 닫고 있는데, 관(官)이 이걸 어떻게 알아내고 연구해 정책을 만들겠나? 그렇지 않아도 할 일이 많은데.
이건 비단 정부뿐만 아니라, 나 같은 국회의원에게도 포함되는 얘기다. 물론 의원들도 관심 있는 분야가 있고, 새 정책을 만들 때 이를 위해 엄청 공부한다. 하지만 이걸 하루 이틀 한다고 우리가 당사자들보다 얼마나 잘 알겠는가? 업계 밖에 있는 사람이 아는 것, 공부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여유가 있는 곳이라도 움직여 줬으면 좋겠다.
# 규제 개선부터 중소 게임사 진흥책까지. 조승래가 생각하는 게임 정책
여유 있는 곳이 많지 않다. 업계 양극화가 너무 심해졌다. 새로운 사람들이 뛰어들기 꺼려질 정도로. '들어가면 성공할 수 있다'라는 생각도 안 든다더라. 그러니 시장은 더욱 고착화되고 경쟁력도 커지지 않고.
주변에서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 나는 지금 생태계 자체가 파괴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공기도, 땅도, 물도 다 썩은 거지. 이걸 바꾸려면 어느 하나만을 바꿔선 안될 것이다. 조금씩 바꾸더라도, 땅·물·공기 전부 한꺼번에 바꿔야 그나마 뭐가 나아지겠지. 특정 파트에서 두 발자국 걷는 것보다, 한참 고민해 전체적으로 반 발자국 가는 것이 (길게 봤을 때) 더 좋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2000년대와 비교하면 게임에 대한 인식이 그나마 나아진 편이다. 요즘은 PC방가서 전원 내리는 일은 안하지 않은가? 게임 산업이 돈 잘 번다는 것도 제법 알려졌고, 요즘 학부모 중엔 게임을 하며 큰 친구들도 있다. 이제는 이런 흐름을 타 정부의 게임 규제 정책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련해 계획한 것이 있는지?
아직은 포럼을 통해 여러 의견을 듣는 중이라, 정책 계획을 말하긴 조금 이른 것 같다. 다만 이와 별개로 내 개인적인 생각을 이야기하자면, 일단 옛날 기준으로 만들어진 각종 규제부터 손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 오해할까봐 덧붙이자면 규제를 없애자는 얘긴 아니다. 규제가 필요한 경우도 있으니까.
다만 내가 문제라고 보는 것은 '옛날 기준'의 규제다. 많은 게임 규제가 온라인게임이 대세였던 시절에 만들어졌고, 그 때문에 법안의 대상이 온라인게임 뿐이다. 그런데 지금 게임 시장을 보자. 온라인, 콘솔, 모바일, VR, AR 등 게임의 플랫폼이 엄청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온라인게임만 규제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제대로 정책을 만드려면(혹은 규제하려면) 시장을 관통하는 질서를 만들거나 모든 플랫폼에 각각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면 아예 풀어주거나. 전체를 대상으로 규제를 만들었는데, 그게 특정 플랫폼에만 불이익을 주면 위험하다.
물론 내가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대뜸 국회에 들어가 '셧다운제 폐지합시다!' 같은 것 말하면 답이 안나오겠지. 의원마다, 부처마다 입장도 다르고 시각도 다르고 기반 지식도 다르니까. (웃음) 그래서 계속 포럼 열어 의견 듣고 의원끼리 의견 조율하고, 또 업계가 적극적으로 움직이라고 얘기하는 것이고.
규제가 바뀌면 생태계가 좀 나아질까?
진흥책도 필요하겠지. 탁 터놓고 말해, 햇볕을 만드는 것은 '돈과 사람'이다. 그래서 이번에 위풍당당 펀드라는 콘텐츠 지원 사업에 게임쪽 관련 비용을 200억 규모로 신설했다. 100억 원은 출자하고, 100억 원은 펀딩으로 마련하는 구조다. 사람은 정부가 줄 수 없으니, 돈이라도 더 지원하자라는 의도다. 최근 게임 시장은 중소 규모 회사가 진입하기 힘들고 진입해도 초기 자금이 없어 말라 죽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자금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또 중소 개발사의 인력 확충을 돕기 위해 '청년 인건비 지원' 정책 같은 것도 적극적으로 도입하려 한다. 다만 정부는 게임 회사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이런 정책이 빨리 시행되려면 업계에서 많이 도와줘야 한다. 비단 이번 건이 아니더라도, 업계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업계나 협회에서 적극적으로 말해줬으면 좋겠다. 특히 중소 개발사 지원 사업 같은 것.
중소 게임사 지원에 관심이 많은가 보다.
큰 곳은 이미 잘 살고 있지 않은가? (웃음) 그리고 변화는 변방에서 온다. 중심에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바꾸려 하지 않는다. 가만히 있어도 먹고 살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이미 덩치가 커져서, 새로운 도전을 하기 너무 위험해졌으니까.
하지만 변방은 다르다. 변방에 있는 사람들이 중심이 만든 질서 속에서 살아 남으려면 스스로를, 나아가 환경을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말라 죽고, 설사 실패해도 중심에 비하면 잃을 것이 없다. 실제로 최근 한국 게임계에 가장 큰 충격을 준 <배틀그라운드>도 대기업에서 나온 게임이 아니지 않은가? 때문에 나는 한국 게임계가 살아나려면 이런 변방이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 햇빛을 비춰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게임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혹시 개정안에 이런 내용이 들어갈까?
아직 의견 취합 중인 것이 많아 지금 확답하긴 힘들다. 다만 4차 산업 혁명을 대비한다는 측면에서, 게임 산업 진흥에 대한 내용은 들어가지 않을까?
얼마 전 국무총리 주재 업무보고에서 4차 산업 혁명에 대한 이런 얘기가 나왔다. 4차 산업 혁명에서 선도국이 되기 위한 방법이 2개 있다. 하나는 AR이나 자동차 자율주행처럼 4차 산업 혁명을 상징하는 기술을 선점하고 선도하는 것. 솔직히 말해, 이 방법은 우리 나라가 써도 중국이나 미국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다른 방법은 우리가 가진 강점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다. 콘텐츠 산업은 4차 산업 혁명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게임은 한국 콘텐츠 산업 중 돈 잘 벌기로 소문난 분야다. 규모만 보면 출판·방송·광고를 이기진 못하지만, 해외 시장 개척이란 측면에선 이들보다 잠재력이 더 크다. 또한 이젠 게임의 플랫폼도 PC 외에도 여럿 있다. 그 중엔 VR이나 AR 같은 신기술도 있고. 지금 우리 강점을 보나, 다른 산업과의 연계성을 보나 게임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게임포럼부터 게임법 개정안까지. 올해 해야 할 것이 굉장히 많아 보인다.
차근차근 해야지. 일단 오는 30일, 국회에도 게임포럼이 열린다. 거기서 얘기 많이 듣고 다른 의원들과 의견도 많이 조율하려 한다. 장기적으로 게임포럼도 더 확대하고 아예 시스템화하고 싶기도 하고. 아마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선거 이슈 모두 사라진 올 하반기가 아닐까? 앞에서 여러 번 얘기하긴 했지만, 업체가 많이 움직여줬으면 좋겠다.
하반기에는 게임 외에, 콘텐츠 산업 전반적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견하는 일을 추진하고 싶다. 보통 이런 것은 특정 기술을 기반으로 얘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은 콘텐츠 자체가 가진 산업적 가치가 어마어마 하지 않은가? 추가로 다른 문화 산업과 만들 수 있는 시너지도 더 크고. 콘텐츠 산업에 대해 범정부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단은 문화부에 얘기해 볼 생각이다. 그럼 산업도, 종사자들의 마음도 좀 나아지지 않을까?
그동안 콘텐츠 제작자들은 '노는 것' 만든다고 잘 대우 받지 못했는데, 이제는 '잘 노는 것'이 중요한 사회 아닌가? IT 기술 발달해 자동화되는 것들이 많아지면 사람들이 다 뭐하겠는가? 어떻게 하면 더 잘 놀 수 있을까 고민하겠지. 꿈같은 얘기지만, 언젠가 올 미래를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