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키는 연출, 갈림길이 있는 던전 등으로 화제가 된 모바일 RPG <에픽세븐>이 출시 초읽기에 들어갔다. <에픽세븐>은 2016년 공개한 영상 2개 만으로 유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수집형 RPG다. 개발팀은 이후 약 2년 간 개발에 전념하다 지난 7월 게임의 출시 임박을 알렸다.
2년 전과 비교하면 <에픽세븐>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이 생겼다. 모바일게임 시장은 MMORPG 중심으로 재편됐다. 수집형 RPG(정확히는 뽑기)에 대한 유저들의 피로는 더욱 커졌고, <에픽세븐> 또한 절정의 관심 이후 2년이라는 시간을 쓴 상태다.
개발사 슈퍼크리에이티브가 이런 환경에서도 계속 수집형 RPG를 만들고 다듬은 이유는 뭘까? 바뀐 환경를 어떤 무기로 헤쳐나가려 하는 것일까? 슈퍼크리에이티브 김형석 공동대표, 류한경 아트 디렉터(AD)와 수집형 RPG라는 장르, 그리고 <에픽세븐>이 추구하는 방향에 대해 2시간 가까이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런 얘기다.
1. 시간이 지나도 최고의 2D 그래픽 퀄리티를 자랑할 수 있는 게임이 되겠다.
2. 오토 일직선 진행이 아니라, 유저가 게임에 개입해 '탐험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만들었다.
3. 전투스타일이나 이야기 등 '캐릭터성' 때문에 수집 하고, 시간이 지나도 캐릭터의 '위상'이 유지되는 게임이 목표.
4. 숙제가 없는 게임, 가볍게 해도 손해보는 느낌 받지 않는 운영을 추구한다.
왼쪽부터 슈퍼크리에이티브 김형석 공동대표, 류한경 AD
디스이즈게임: 처음에 <에픽세븐> 영상을 봤던 게 엊그제만 같은데 벌써 2년이 지났다. 그간 어떻게 지냈나?
김형석: 너무 늦게 나온 것 아니냐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사실 처음 계획은 우리가 영상 공개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게임을 서비스하는 거였다. 이걸 처음에 (류한경 AD 포함해) 창업 멤버 5명이서 투자 받았을 때 계획했는데, 만들다 보니 아쉬운 점이 보여 엔진 고치고 시스템 추가하고 퀄리티 높이다 보니 이렇게 시간이 흘렀다.
카페도 처음에 내가 열었는데, 개발에 전념하다 보니 어느 순간 담당자 채용하고 퍼블리셔에 이관까지 됐다. 처음에 담당자 뽑을 때만 하더라도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생각 못했는데…. (웃음)
2년이나 투자했으면 바뀐 것도 많겠다.
김형석: 가장 변화가 큰 건 '아트'다. <에픽세븐>을 처음 만들 때 목표는 그냥(?) 퀄리티 높은 2D 게임이었는데, 이젠 언제나 최상급 품질을 보여줄 수 있는 2D 게임으로 업그레이드됐다. 이를 위해 라이브 서비스 중에도 애니메이션 퀄리티 높을 시 있게 엔진을 개량했고 엔진 안정성도 크게 상승했다. 그러면서도 로딩 시간은 거의 없애다시피 했고.
콘텐츠 측면에서는 기존에 수집형 RPG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시스템이 많이 추가됐다. 갈림길 있는 던전인 미궁, 스테이지에서 유저가 직접 캐릭터들을 이동하는 시스템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일부는 2년 전에도 있었는데 더 구체화되고 최적화됐다. 남들 안 하는 것을 하려다 보니 여러 의미에서 비효율의 극치였다. (웃음) 하지만 이 덕에 <에픽세븐>만의 요소들이 완성되고 다듬어질 수 있었다.
시장이 많이 변했다. 이젠 모바일 MMORPG 시대다. 수집형 RPG를 계속 만들고 다듬었던 이유가 뭔가?
김형석: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많이 만날 수 있고, 그 캐릭터를 자기가 직접 가지고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은 수집형 RPG만이 가진 장점이다. 실제로 나는 게임은 재미 없는데 캐릭터가 좋아 수집형 RPG를 오래 한 적도 많다. 그래서 이젠 수집뿐만 아니라, '게임'도 재미있는 수집형 RPG를 만들고 싶었다. 유저가 직접 개입하고 싶은 전략적인 턴제 전투, 모바일에서 보기 힘들었던 미궁 탐험 등이 있는 게임을….
또 퀄리티에서 타협을 하고 싶지 않았다. 괜히 목표가 최상급 2D 그래픽을 가진 모바일 RPG로 바뀐 것이 아니다. (웃음) 보통 이 정도로 게임을 만들면 중간에 갈아 엎는 경우도 많은데, 다행히 우리는 그런 것 없이 직진할 수 있었다. 퀄리티는 자신 있다.
<에픽세븐>의 강점으로 아트·전투·모험 등을 꼽았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아트가 강점이 될 수 있을까?
김형석: 감성적인 이유와 사업적인 이유가 있다. 감성적인 이유부터 얘기하자면, 나는 2D 그래픽 그 자체가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2D는 3D에 비해 표현이 자유롭다. 3D는 기술적인 특성 상 화풍이나 표현 방식이 제한된다. 하지만 2D는 (품은 많이 들지만) 마음만 먹으면 정말 다양한 화풍과 연출을 구현할 수 있다. 다양한 캐릭터가 나오는 수집형 RPG에선 정말 중요한 강점이다.
또 2D 그래픽은 사람들이 상상할 여지를 남겨둔다. 3D로 구현된 캐릭터는 마치 현실의 캐릭터(?)와 같은 느낌을 주는데, 2D는 책이나 화면 안의 캐릭터처럼 보여 유저들에게 추가적인 '해석'의 여지를 준다. 2D 그래픽은 크든 작든 현실을 왜곡하고 간략화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유저들은 무의식 중에 그 부분을 채우려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게 2D 그래픽만이 가진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묘사해야 하는 수집형 RPG에 딱 맞는 강점이라 생각하고. 그래서 이 느낌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 풀프레임 애니메이션처럼 그래픽을 만들었다.
사업적으론?
김형석: 이런 풀프레임 애니메이션 느낌의 그래픽은 우리 밖에 없으니까. (웃음) 반면 전세계적으로 보면 2D 그래픽으로 성공한 게임은 여럿 있다. 한국의 <던전앤파이터>나 <메이플스토리>가 그렇고, 중국의 <몽환서유>, 일본의 <페이트/그랜드 오더> 등 여럿이다. 2D 그래픽에 대한 수요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같은 그래픽이면 경쟁력도 있다고 생각하고.
<에픽세븐> 캐릭터 설정화와 스킬 콘티
<페이트/그랜드 오더>는 국내에서도 준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아마 가장 큰 경쟁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데….
김형석: 나도 돈을 굉장히 많이 쓴 게임이다. (웃음) IP 덕에 캐릭터들의 매력도 압도적이고, 그 캐릭터들이 게임 속에서 멋있게 구현됐다. 게임도 일본 애니메이션 느낌을 잘 살렸다. ‘페이트’라는 IP까지 생각하면 정말 어려운 상대다.
하지만 우리도 <에픽세븐>을 만들며 어떻게 하면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묘사할 수 있을까 정말 많이 연구했다. 그리고 그 결과 연출이나 이야기, 각 캐릭터를 대표할 수 있는 고유의 전투 스타일 등 정말 많은 것을 구현했다. 특히 각종 캐릭터 연출과 컨트롤하는 재미는 우리 만의 강점이라고 자신한다.
연출? <에픽세븐>은 2D 사이드뷰(캐릭터의 옆 모습을 보여주는 시점) 시점으로 게임이 진행된다. 카메라 앵글이 한정된 만큼 연출을 잘 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김형석: 그래서 <에픽세븐>은 인게임 리소스를 활용한 연출 외에도, 애니메이션 영상이나 컷인, 이벤트 삽화 등을 적극 활용했다. 또 우리 류한경 AD는 본래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커리어를 쌓은 사람이다. 이런 연출에 일가견이 있다.
실제로 아트팀에선 캐릭터 하나 만들 때 동작이나 연출 관련 콘티만 100장 이상 나올 정도로 공을 들이고 있다. 일부 기술 연출은 아예 자기들이 GIF 파일로 콘티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전달하기도 하고. 처음 봤을 때 내가 역으로 "우리 이거 다 할 수 있어요?"라고 되물을 정도로 열심이다.
류한경: 원래 퀄리티를 높이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웃음) 질문한 것처럼 2D 사이드뷰 게임이다 보니 연출을 넣을 때 고민이 많았다. 이 방식은 카메라를 쓰는데 제약이 많으니까.
특히 연출과 연출을 연결하는 부분에서 고민이 많았는데, 이 부분은 컷인이나 애니메이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해결했다. 컷인을 사용하면 화면 전환 겸 클로즈업 효과를 만들 수 있으니까.
<에픽세븐> 캐릭터 스킬 애니메이션 콘티
게임의 강점으로 아트 외에도 탐험, 전투 등을 꼽았다. 이 중 '탐험'이 모바일에서 의미 있는 콘텐츠가 될 수 있을까? 아무리 미궁 모드에 갈림길 등을 넣는다고 해도, 그게 플레이의 전부는 아니지 않는가.
김형석: 그래서 우리는 탐험을 크게 감성과 경험의 영역으로 나눠 구현했다. 감성은 말 그대로 유저가 '탐험을 하고 있다'라고 느낄 수 있느냐에 대한 얘기다. 많은 모바일 RPG가 그동안 일직선 진행을 보여줬고 게임 배경도 비슷하거나 재활용한 것을 보여줬다. 그리고 플레이의 대부분이 자동전투, 자동진행이고. 이런 방식이라면 게임을 아무리 재미있어도 '탐험'한다는 느낌을 받을 순 없겠지
그래서 우리는 유저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게임 전반에서 더 섬세히 묘사하고, 유저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줌으로써 탐험한다는 느낌을 받도록 설계했다. 예를 들어 <에픽세븐>의 세계는 전투를 하는 스테이지뿐만 아니라, 유저가 캐릭터를 조종해 직접 돌아다니고 NPC와 대화하는 '우호 지역'이 존재한다. 패키지 RPG의 '마을'처럼 NPC와 대화하거나 숨겨진 퀘스트를 찾고 예상 못한 이벤트 등을 겪는 공간이다.
전투가 벌어지는 스테이지도 (단방향이긴 하지만) 유저가 직접 돌아다니며 맵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 중간에 NPC를 만나 미니 퀘스트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스테이지 중간에 있는 여신상이나 보물상자, 분수 등을 건드려 이득이나 불이익을 얻을 수도 있고. 또 스테이지의 배경 아트도 다 달리해 유저가 '새로운 곳'을 간다는 느낌을 강조했다.
이렇게 일반적인 플레이에서부터 오토가 아니라, 유저가 새로운 곳을 직접 탐험한다는 느낌을 강조했다.
경험의 영역은 '미궁'을 말하는 것일까?
김형석: 맞다. 미궁은 이름처럼 유저가 여러 '갈림길'이 있는 방대한 공간을 탐험하는 콘텐츠다. 일반 스테이지에 비해 길이도 길고 갈림길과 각종 오브젝트 때문에 어떤 길로 가는지, 긴 탐험 시간 동안 파티의 전투력을 어떻게 관리하는지도 중요하다.
특히 이 콘텐츠는 긴 클리어 타임과 달리 파티 회복 수단이 제한돼 있다. 미궁을 오래 탐험하면 파티의 '사기'가 떨어져 점점 전투가 힘들어지고, 하루에 도전할 수 있는 회수도 적다. 물약이나 텐트 등의 회복 도구를 챙겨갈 순 있지만, 이것도 유저가 직접 생산해야 하고 가져갈 수 있는 수량도 제한돼 있다. 때문에 유저의 판단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하지만 반대로 클리어만 하면 다른 곳에선 얻을 수 없는 좋은 장비를 보상으로 얻을 수 있다. 또한 일부 미궁은 유저 외에도 NPC들이 등장해 그들과 관계를 맺거나 그들의 부탁을 들어줄 수도 있고. 많은 선택지와 고민, 상황 덕에 신선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수집형 RPG에서 없었던 '탐험'의 재미를 주고 싶다.
홍보 영상에 나온 미궁은 맵도 작고 함정 같은 오브젝트도 보여 조금 심심해 보였다. 2년 전 영상과 많이 달라졌는데, 혹시 개발 기조가 바뀐 것일까?
김형석: 개발 기조는 변함 없다. 다만 이런 방식이 모바일 RPG에서 많이 쓰이는 것은 아니다 보니 초반에는 비교적 작고 난이도도 쉬운 미궁을 준비했다. 물론 함정 없고 규모만 작을 뿐 난이도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고난이도 미궁을 가거나 하드 모드를 해금하면 초창기 영상처럼 함정 가득하고 몬스터도 쌘, 방대한 미궁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미궁 플레이 이미지. 미궁을 탐험할 땐 갈림길 외에도, 효과를 알 수 없는 각종 오브젝트를 만날 수도 있다.
미궁이 재미있으려면 높은 난이도뿐만 아니라, 그에 걸맞은 좋은 보상도 함께 있어야 한다. '뽑기'가 있는 게임에서 미궁이 의미 있는 보상을 줄 수 있을까? 캐시 같은 것 말고.
김형석: 그런 보상을 준다. 물론 캐시 보상도 없진 않겠지만, 미궁은 기본적으로 '미궁에서만 얻을 수 있는' 장비를 보상으로 줄 예정이다. 뽑기로도 구할 수 없는, 진짜로 미궁에서만 얻을 수 있는 전용 장비다. 악세서리 같은 장비류는 아예 미궁에서만 구할 수 있고. 또 이렇게 얻은 장비는 (적정 레벨에 클리어했다면) 그 시점에서 가장 좋은 아이템일 것이다. 옛날 JRPG처럼 어렵지만 클리어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미궁이 될 것이다.
참고로 장비의 경우, 던전에서만 얻을 수 있는 장비, 제작으로만 얻을 수 있는 장비 등 각 콘텐츠의 고유 아이템을 굉장히 많이 준비했다. 장비도 단순히 공격력 같은 숫자 하나가 아니라, 다양한 능력치와 옵션을 준비했고. 현실적으로 상·하위 호환이 없진 않겠지만, 최대한 많은 옵션을 준비해 특정 장비 하나가 최고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위의 요소들은 결국 수집형 RPG라는 장르를 꾸며주는 요소다. 그렇다면 수집형 RPG 본연의 재미는 어떨까?
김형석: 수집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려면 결국 그 캐릭터에게 매력을 느껴야 한다. 매력이란 외형일수도 있고 스토리상에서의 모습, 캐릭터의 강함, 독특한 전투 스타일 등 여러 부분에서 느껴진다.
우리가 이 중 가장 신경쓴 것은 전투 파트에서 캐릭터의 개성과 스타일, 이야기 파트에선 서사(narrative)와 연출이 만드는 그 캐릭터의 '캐릭터성'이다.
전투에서는 속성 싸움이나 가위·바위·보 싸움이 아니라, 각 캐릭터마다 독자적인 스킬 구성을 줘 모두 각각의 쓰임이 있는 것이 목표다. 초창기 <퍼즐앤드래곤> 같은 밸런스가 목표다. 캐릭터성 부분에선 이야기와 연출 등을 유저들에게 '잘' 어필해 단순히 외형이나 강함뿐만 아니라, 그 캐릭터 자체에서 매력을 느끼게 하는 게 목표고.
캐릭터의 개성과 전투 스타일이라고 한다면, 캐릭터마다 독자적인 메커니즘으로 전투를 한다고 이해해도 될까?
김형석: 맞다. <에픽세븐>은 액티브 턴제로 전투가 진행돼 유저가 캐릭터에게 어떤 명령을 내리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전투 시스템에선 캐릭터의 전투 스타일과 메커니즘도 그 캐릭터의 매력을 어필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투는 유저가 게임을 하며 가장 많이 하는 경험이니까. 그래서 설사 같은 성향의 캐릭터라고 하더라도 전투 기믹과 메커니즘을 최대한 달리해 상·하위 호환이 없도록 신경 썼다.
<에픽세븐> 전투 장면. 화면 좌측에 캐릭터들의 행동 순서가, 화면 가운데 하단엔 소환수를 부르거나 스킬을 강화하는데 쓰이는 '소울' 게이지가 보인다.
모든 게임이 비슷한 얘기를 한다. (웃음) 혹시 직접적인 예를 들어줄 수 있는가?
김형석: 예를 들어 똑같은 탱커라고 해도 '퍼지스'는 광역 공격 판정인 '자동 반격' 스킬 덕에 적을 공격할 때 디버프를 부여하는 아이템, 자잘한 몬스터가 많이 나오는 전투와 상성이 좋다. 반면 '켄'은 탱커지만 맞을 때마다 공격력도 강해지고 공격 횟수도 늘어나는 패시브를 가지고 있어 폭딜이 필요한 전투에 더 유리하다. 장비도 공격적인 세팅이 선호되고.
메르세데스는 모든 스킬이 광역 공격이기 때문에 딜러 중에선 쉽게 사용할 수 있고, 반격·협공 확률 상승 아이템이라도 차고 있다면 자잘한 몬스터를 말 그대로 쓸어 버릴 수 있는 캐릭터다. 반면 루트비히는 평상시엔 그리 좋진 않지만, 누구 하나를 죽이기만 하면 '무적' 상태가 되고 다음 턴 적 전체에게 굉장히 강력한 피해를 주는 스킬이 해금된다.
이처럼 <에픽세븐>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모두 전투 운영 방법이 다르고, 경우에 따라서는 유리한 콘텐츠나 스테이지도 다르다. 물론 수집형 RPG인 이상, 등급이 높은 캐릭터가 더 강한 경향이 있긴 하지만, 그 강함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낮은 등급 캐릭터보다 더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전투 기믹만으로도 그 캐릭터의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는 말 같다.
김형석: 맞다. 개개인의 스킬 구성도 구성이고, 추가로 유저가 그에 특화된 장비까지 맞춰 캐릭터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일 것이다. 예를 들어 카린 같은 캐릭터는 치명타 발생 시 쿨타임 감소, 치명타 발생 시 적 방어력 감소 등 치명타 관련 옵션이 많은데, 이런 친구에게 치명타 확률 증가 아이템을 장착시키면 무시무시한 효율을 보이겠지.
그리고 각 캐릭터들의 스킬은 그 캐릭터의 성격이나 이야기와도 맞닿아 있다. 예를 들어 앞서 말한 '켄'은 굉장한 열혈 소년이다. 이런 성격과 '맞으면 투지를 쌓아 강해지는' 전투 스타일이 잘 어울리지 않는가. (웃음)
전투 스타일에 대한 얘기는 알겠다. 하지만 게임이, 캐릭터가 오래 사랑 받으려면 유저들에게 서사가 전달돼야 한다. 요즘같이 글 잘 안보고 긴 이야기 싫어하는 시대에 이야기로 캐릭터의 매력을 어필할 수 있을까?
김형석: 일단 좋은 스토리를 짜야겠지. (웃음) 이 부분은 자신 있다. 우리 작가진은 <테일즈위버>, <드래곤네스트>, <마그나카르타> 등에 참여했던 사람들이니까.
그렇다면 문제는 질문처럼 이걸 어떻게 '어필'하느냐다. 여기에 대해선 일단 게임에서 글을 보여주는데 있어 분량과 가독성에 굉장히 많이 신경 썼다. 추가로 글 외에도 애니메이션, 이벤트 삽화 등을 적극 활용해 이야기 전달을 도우려고 한다. 애니메이션의 경우 챕터 당 평균 1개 정도 들어가는 것 같다. 한 에피소드에 대충 10개 정도 들어가겠지.
아, 참고로 에피소드란 기승전결 뚜렷하고 '엔딩'까지 있는 이야기 단위를 뜻한다. 엔딩에선 전용 애니메이션도 있을 예정이다.
그건 캐릭터가 아니라 <에픽세븐> 관련 이야기 아닌가. (웃음) 물론 그 과정에서 조명 받는 캐릭터도 분명 있겠지만, 모든 캐릭터의 네러티브가 잘 전달될 것 같진 않은데….
김형석: 각 캐릭터의 이야기는 다양한 전달 방법을 준비했다. 일단 가장 흔한(?) 캐릭터별 전용 에피소드가 있고, 추가로 1~2주 간격으로 이벤트 스토리가 게임에 추가된다. 여기에 캐릭터의 성격·관계도 게임에 직접 영향을 끼치며 유저에게 자신을 어필한다.
예를 들어 미궁 탐험의 경우, 떨어진 사기를 다시 높이려면 '휴식' 상태에서 특정 주제로 각 캐릭터들이 얘기를 해야 한다. 하지만 서로 사이 나쁜 캐릭터끼리 파티를 맺었거나, 특정 캐릭터가 싫어하는 키워드를 선택하면 오히려 사기가 떨어지기도 한다. 미궁에서 파티를 짤 때는 캐릭터들의 전투력이나 시너지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궁합까지 따져야 하는 셈이다.
캐릭터를 주관이나 성격 없는 전투 기계가 아니라, 한 명의 '인격체'처럼 느껴지게 하고 싶어 이런 장치를 넣었다.
그렇다면 게임 상에서 캐릭터를 묘사하는데도 많이 공을 들였겠다.
류한경: 기획적으로도 각 캐릭터의 오리지널리티를 살리기 위해 엄청 노력했고, 우리 아트 쪽에서도 이를 최대한 잘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예를 들어 스토리 상 소심한 성격을 가진 캐릭터에게 특별한 이유 없이 호쾌한 모션을 주는 것은 좀 아니지 않는가. (웃음) 이런 식으로 각 캐릭터의 스토리, 성격에 어울리는 동작과 연출을 만들어주기 위해 고민 많이 했다.
이것 때문에 히어로 영화는 정말 원없이 본 것 같다. 아무래도 <에픽세븐>의 액션이 현실적인 움직임은 아니기 때문에 영감을 떠올리기 쉽지 않더라. 특히 한손검과 방패를 쓰는 캐릭터들은 동작에 제약이 많아, 각기 다른 동작을 연출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고생 끝에 좋은 결과물이 나와 다행이다.
수집형 RPG는 콘텐츠·사업적인 이유 모두에서 계속 새로운 캐릭터가 나오기 쉬운 장르다. 이 과정에서 묻히는 캐릭터는 어떻게 할 계획인가?
류한경: 아트 입장에서 할 얘긴 간단하다. 어떤 캐릭터든 그가 '서브'라고 생각하지 않고 극한의 퀄리티로 만들어내는 것.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에픽세븐>의 엔진은 라이브 서비스 중에도 아트 퀄리티를 높일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엔진이다. 작업자들이 욕심을 제어하지 못하면 못했지, 캐릭터를 대충 만들 일은 없을 것이다. 사실 아트팀 모두 자기가 목표했던 것만큼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면 속상해 하는 파이팅 넘치는 사람들이다.
김형석: 아트에서 이렇게 파이팅 해주면 우리도 그에 보답해야겠지. 애초에 <에픽세븐>의 목표 중 하나가 캐릭터가 인격체로 인식되는 것, 버려지는 캐릭터가 없는 것이다. 현실은 감안해야겠지만, 되도록 이 기조는 꼭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하나 확실히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오버 파워(일명 OP)로 OP를 덮고 덮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 목표는 '천장'이 있는 밸런스, 캐릭터의 위상이 유지되는 밸런스다. 우리가 생각한 위상에 미치지 못해 캐릭터를 버프하는 일은 있을 수 있어도, 한계를 초월한 캐릭터가 나와 기존 캐릭터들의 위상이 와르르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러기 위해 캐릭터를 설계할 때 (상·하위 호환이 적게) 최대한 다양한 특성으로 캐릭터를 구현한거고.
개인적으로는 국내 게임 중 <서머너즈 워>가 이런 것을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도 캐릭터 위상 관리에 대해선 이를 목표로 하려 한다. 실제로 밸런스 담당 중 한 명은 <서머너즈 워> 랭커이기도 하다. (웃음)
아, 성능(밸런스) 얘기가 많았는데, 이것 외에도 지속적으로 메인·이벤트 스토리 등을 추가해 캐릭터도 어필할 예정이다.
스토리, 미궁, (직접 조작이 필요한) 전투 등등 콘텐츠의 대부분이 쉽게 소모되는 성격을 가졌다. 이야기나 미궁은 깨면 끝이고, 전투도 파티 스펙이 오르면 자동 전투가 가능해지니까.
김형석: 그래서 업데이트를 공격적으로 하려 한다. 업데이트 관련해선 크게 2가지 트렉을 생각하고 있다. 하나는 <페이트/그랜드 오더>나 <뱅드림> 같은 일본 수집형 게임처럼 1~2주마다 끊임없이 미니 스토리와 과제를 주는 방식이다. 스토리 다 깨고 파티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유저도 즐겁게 이야기 보고 과제 해결하며 즐길 수 있을 것이다. 1~2주마다. (웃음)
다른 하나는 메인 스토리나 신규 시스템 관련 업데이트다. 자세한 건 오픈 후 게임 상황을 봐야할 것 같긴 한데, 일단 다음 에피소드나 신규 시스템, 캐릭터, 미궁 등은 어느 정도 개발이 끝난 상태다. 한국 유저들 성향 상 콘텐츠가 빌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까진 말 못하겠지만, 비는 기간이 길진 않을 것이다.
스토리 중간 중간 애니메이션, 삽화 등이 제공될 예정이다.
보통 한국 RPG는 사실상 무한히 스테미너가 주어지는데, 너무 자신 있게 얘기하는 것 아닌가?
김형석: 대부분의 한국 RPG처럼 스테미너를 무한히 주는 방식으로 서비스하진 않을 거다. 이 방식은 필연적으로 유저를 게임에 계속 묶어 두게 된다. 모두에게 무한한 시간이 허용되면 게임을 많이 한 사람이 앞서 나갈 수 밖에 없고, 시간을 다 쓰지 않은 유저는 뒤처질 수 밖에 없으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유저들이 의무감, 혹은 손해보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게임에 접속한다.
나는 이런 방식이 싫다. 게임이 아니라 '숙제'가 되니까. 우린 이렇게 시간을 점유하는 방식으로 가진 않을 거다. 반대로 유저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나가도, 잠깐 쉬거나 접어도 다음 날 부담없이 접속할 수 있는 게임이 되고 싶다. 숙제가 없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1~2주마다 업데이트되는 이벤트 스토리도 스토리만 깨고 일부 중요한 보상만 얻으면 마음 편히 쉬어도 되는 방식으로 만들려고 한다. 다 하지 않아도 손해보지 않는 이벤트로. 물론 최고 효율을 추구하는 유저는 스테미너 충전 시간 계산하거나 스테미너를 사 과제를 모두 깰 수도 있겠지만, 그걸 모든 유저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다.
한국 RPG가 스테미너를 많이 주는 이유 중 하나는 그만큼 유저들의 시간을 점유해, 유저들이 다른 게임으로 빠지지 않게 막으려는 이유도 있다. 앞서 말한 방식으로 서비스하면 이른바 '메인 게임'이 되기 힘들지 않을까?
김형석: 우리도 당연히 메인 게임이 되고 싶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지금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이 몇 명인데, 당연하지. (웃음) 그래서 이 시도가 맞는 것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불리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니까. 지금 생각이 앞으로 계속 이어질지도 장담 못하겠고.
하지만 유저마다 게임을 즐기는 패턴이 전부 다르다. 나는 적어도 첫 발자국부터 유저들에게 특정 패턴을 강요하고 싶진 않다. 게임은 즐기려고 하는 것 아닌가.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이 맞다면 자연스럽게 메인 게임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니라면 고쳐야겠지.
<에픽세븐>의 모험 맵. 메인 스토리를 따라가는 루트 외에, 서브 퀘스트를 위한 제 2, 3의 루트도 보인다.
게임과 캐릭터에 공을 들인 건 알겠다. 하지만 수집형 RPG는 때로는 그 매력 때문에, 정확히는 그 매력과 뽑기라는 유료 모델이 만나 유저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
김형석: 유저들이 뽑기에서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은 결국 자신이 원하는 캐릭터를 얻지 못하고, 언제 얻을지 기약도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에픽세븐>은 뽑기 방식을 도입하더라도 이런 부분을 최대한 케어하는 방향으로 가려 한다.
일단 계정 당 1회 <오버히트>의 '선별소환'처럼 30회의 가상 뽑기 기회를 준 다음 그 중 마음에 든 결과물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줄 예정이다. 어렵게 '리세마라' 하지 말고 직접 여러 번 뽑아보고 가지라는 취지로 만들었다. 여기에서도 5성 캐릭터까지 다 나온다.
또한 스토리상 얻을 수 있는 4~5성 캐릭터도 여럿 있다. 해당 캐릭터와 조우해 영입 미션이 해금된 뒤 미션 조건을 충족시키면 영입할 수 있는 방식이다. 스토리 상 비중 있는 캐릭터들 대부분은 이렇게 얻을 수 있을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유저가 '최애캐'를 쉽게 얻을 수 있게 픽업 이벤트를 상시 실시할 예정이다. 신규 캐릭터와 기존 캐릭터 픽업 이벤트를 번갈아 진행해 어떤 유저도 최애캐를 쉽게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다.
마지막으로 유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류한경: 오랫동안 유저 분들을 기다리게 했다. 사실 안에서 개발할 때도 우리끼리 "퀄리티 기준 너무 높은 것 아냐"라는 얘기를 많이 했다. 하지만 그 덕에 앞으로도 계속 게임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던 것 같다. 출시했을 때는 물론, 출시 이후에도 아트로 유저 분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게임이 되겠다. 계속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봐 달라.
김형석: 류한경 AD 말처럼 시스템 개선 때문에 정말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그만큼 토대를 탄탄히 다졌다. 로딩 시간은 아예 없애다시피했고, 전투나 스토리, 미궁 등 많은 콘텐츠도 2년 전에 비해 개선됐다. 부담 없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수집형 RPG가 되겠다.
게임 초반부 미궁 '성검기사단 훈련소'. 지도 중간 중간 아이콘이 있는 곳에 다다르면 새로운 구역이나 다음 층이 해금된다.
각 캐릭터들의 관계를 볼 수 있는 창. 사이가 나쁜 캐릭터와 함께 미궁을 탐험하면 사기가 더 빨리 떨어질 수도 있다.
로비 화면
기사단(길드) 화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