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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자수첩] e스포츠 상설 경기장, 잘 지어도 문제

그런데 날림 공사를 하고 있으니...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김재석(우티) 2020-12-17 12:28:44

 

 

# 그날 부산에서 자꾸 재채기가 나왔던 까닭

 

지난 달, 대한민국 게임대상을 취재하러 부산에 갔다. 원래 센텀시티 부근에서 열리던 시상식은 새로 문 연 '부산 e스포츠 아레나'에서 진행됐다. 국정감사에서 "부실 시공"이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그날 기자가 본 현장 모습은 생각보다 꽤 근사했다.

 

그런데 자꾸 코가 간지러워서 재채기가 나왔다.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생애 최선의 재채기를 선보였다. 두꺼운 마스크를 쓴 채로 아무도 없는 곳까지 뛰어가 몸을 수그려서 "에취"한 뒤 제자리에 돌아오고 그랬다.

 

게임대상 다음 날은 지스타 개막이었는데, 취재진은 삼삼오오 경기장의 퀄리티에 의문을 제기했다. 마감이 안 됐더라, 화장실 물이 안 나오더라, 공사 자재를 감춰놨더라 등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기자는 공사로 나온 분진 때문에 코가 간지러웠던 것이다. 그래도 사고는 없었으니 '소프트 론칭'을 했다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부산은 도시도 크고, 지스타도 있으니 잘만 기획하면 '핫플'이 되지 않을까 기대도 해봤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못 본 체하고 넘어갈 순 없었다. 서울로 가기 직전에 다시 경기장을 찾았다. 진짜로 공사를 하고 있었다. 날리는 분진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같은 날 저녁에 바로 지스타 컵 일정이 있었는데, 정말로 이곳저곳에서 작업 중이었다. 이후로도 몇몇 행사가 잡혔다고 그랬다. '얼리 억세스' 개관인가?

 

부산 e스포츠 아레나

 

# 이상헌 의원, 거듭된 우려 표명... 생각해보니

지난 국정감사에서 e스포츠 상설 경기장의 부실 시공을 문제 삼았던 민주당 이상헌 의원이 페이스북에 다시 입장을 냈다. 앞서 기자가 밝힌 부산 경기장의 부실시공뿐 아니라 대전과 광주 상황도 우려가 된다는 것이다. (바로가기)

 

부산뿐 아니라 대전과 광주에서도 e스포츠 경기장을 짓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사업인데, 2년 전 발표됐고 세 곳이 사업 대상 도시로 선정됐다. 각 광역시와 지역별 정보산업진흥원에서 실무를 추진하며, 건설에는 국고와 지방비가 투입된다.

 

성남시도 이 사업과 별개로 e스포츠 경기장을 세운다. 사업비는 경기도 지원금 100억, 성남시 150억, 방송장비 투자유치 46억 등 총 296억 원이다. 성남산업진흥원이 진행 중이다.

 

각 지자체는 정규 대회, 동호인 대회, 국제 대회를 유치하는 한편, 선수 육성 프로그램도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부산 경기장. 11월 21일 촬영본
부산 경기장. 11월 21일 촬영본

 

# 넥슨 아레나는 닫았고 OGN 스타디움도 걱정인데...

그런데 이런 경기장들, 잘 지어도 문제다. 지은 이후에 '상설'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서울에만 경기장이 집중되어있기 때문에, 다른 도시에도 e스포츠 상설 경기장이 필요하다고 한다. 취지는 동의한다. 그러나 서울도 경기장 상황이 좋지는 않다. 당장 지난 7월, 한국에서 e스포츠 할 만한 게임을 가장 많이 보유한 회사의 넥슨아레나가 문을 닫았다. 위치는 강남이었다. 넥슨아레나 전에도 여러 경기장이 서울에 생겼다가 사라졌다. 왜 없어졌을까?

 

OGN이 운영 중인 상암 e스타디움. 2016년 문을 연 경기장은 문체부가 8년간 435억 원을 지원했다. 코로나19로 휴관 중인 경기장의 계약 기간은 내년 끝난다.​ OGN 뒤를 이어서 경기장을 운영하겠다는 곳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e스포츠의 아이콘 OGN은 현재 폐국 위기다. 아직 공식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지만, "낌새가 좋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OGN 스타디움에서 <클래시로얄> 시합을 하는 모습

 

상암 경기장은 판데믹 전부터 라이엇게임즈가 LCK를 롤파크에서 열기로 하면서 타격을 입었다고 전해진다. 롤파크는 이름 그대로 <롤> 전용 경기장. <하스스톤> 대회나 <카트라이더> 대회를 하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판데믹이야 끝이 날 것이지만, e스포츠는 일반 스포츠에겐 없는 종목사(IP 홀더)의 영향력이 가해진다. LCK를 부산, 대전, 광주에 분산 유치할 수 있을까? 그러면 좋겠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오버워치>는 어떨까? <오버워치> 리그는 최초로 지역 연고에 홈스탠드 제도를 도입했는데, 리그 디비전까지 올라간 한국 연고 팀은 서울 다이너스티 하나다. 이들은 올 시즌 동대문 DDP를 쓰기로 했는데, 그마저도 코로나19로 내년을 기약하게 됐다.

 

경기장을 짓고 있는 각 도시들이 팀을 꾸리거나, 기존의 팀과 연결 고리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쟁쟁한 팀들을 상대로 '프로가 되는 길'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그나마 부산에는 GC 부산이 있으니 다행일까?

 

내년에는 서울 DDP에서 다이너스티의 경기를 열 수 있을까? 사진은 미국의 블리자드 아레나.

 

# 장밋빛 김칫국을 마시지는 맙시다

 

여러 도시에서 경기장을 짓는 이유는 "e스포츠 저변 확대와 지역 e스포츠 활성화"다. 이 사업은 규모 면에서나 취지 면에서나 학교 운동장에 잔디를 깔고 축구 골대를 세우는 것보다 돈도 많이 들어갔고, 힘도 들어갔다.​ 

 

"축구장을 세우면 시민들이 축구를 하겠지"는 훌륭한 도시 정책이겠지만, 한국의 PC방 인프라는 막강할 뿐 아니라, 최근 들어 선수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수준급 아카데미도 여럿 생겨났다. 내일의 스타를 꿈꾸는 지망생들이 체계화된 아카데미의 연습생으로 들어간 지금, 상설 경기장에서도 만족할 만한 육성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관람'이라는 키워드가 굉장히 중요하게 떠오른다. 수백 석 규모의 경기장 공사 계획에는 그 수백 석을 어떻게 채울지 뚜렷한 계획이 보이지 않는다. <롤>이나 <오버워치>가 아닌,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는 e스포츠 대회에 가본 적 있나? 시시하다고 깔보는 것은 절대 아닌데,​ 수백 석이나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썰렁하다.

 

간헐적으로 열리는 이벤트성 대회를 위해 공적인 시간과 돈을 들였다면 시민들은 만족할까? 게임을 즐긴다면 PC방이 있고, 선수가 되고 싶으면 아카데미가 있고, 어차피 현재 상황에서 인기 종목을 직관하려면 결국 서울에 가야 한다.

 

대기업이 뛰어들고 있고, 아카데미까지 팀을 꾸린 지금​, 경기장에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 - 이 계획이 뚜렷하게 제출되고 이행되지 않는다면 미래는 어둡다. 경기 없는 경기장이 무슨 소용인지, 코로나19 사태로 보고 있지 않은가?

 

그 와중에 상설 경기장 사업 계획에는 '굿즈샵'이 보인다.​ 무슨 굿즈를 팔 수 있을까? 이것은 장밋빛 김칫국 아닐까? 첫 삽 중의 첫 삽인 공사마저 날림인데 관람 조건까지 나쁘다는 말까지 들려온다. 부산 경기장의 경우 스크린이 너무 관람석에 바짝 붙어있어 눈이 아프다는 지적이 나온다.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부산 e스포츠 아레나

 

 

# 국제 대회에서의 e스포츠

 

16일,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e스포츠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이를 근거로 국제 대회에 e스포츠가 종목으로 채택될 거란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따져야 할 게 많다. e스포츠 종목은 일반 스포츠보다 사유재의 성격이 더 강하다. 국제 스포츠 대회에 e스포츠가 종목으로 채택된다면 공공성 문제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다양한 장르의 게임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와중에 얼마나 많은 게임을 국제 스포츠 대회라는 큰 틀 안에 선정하고, 어떤 게임을 종목으로 선정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도 있다.

 

참고로 바둑, 소프트볼, 당구, 댄스스포츠도 아시안 게임 종목이었다. 원래 아시안게임 종목은 자주 바뀐다. 즉, 이번 종목 선정이 지금 짓고 있는 상설 경기장에게 호재가 아닐 수도 있다. 

 

 

# 재 뿌릴 마음은 없지만, 명과 암을 함께 봐야

기자로 일하면서 e스포츠로 뭔가 해보려는 사람들을 종종 만났다. 그들은 하나 같이 종주국, 임요환, 페이커 말만 하지, MBC 게임 폐국이나 <히오스> 리그 폐지 사례는 꺼내지 않았다. 바라건대 우리는 e스포츠 문제를 논할 때 명과 암을 함께 꺼내야 한다.

 

e스포츠 '종주국'의 우리는 끄떡 없을 것 같았던 방송국과 팬들이 아끼는 종목의 사라짐을 경험했다. 새로 지어질 공간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각 진흥원의 사업에 재 뿌릴 마음은 없지만, 그렇다고 나랏돈을 마구 쓸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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